대한민국 대표팀이 현지시각으로 6월 8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원정에서 박주영과 이동국, 정경호와 박지성의 연이은 득점으로 4-0의 대승을 거두고 통산 7회, 6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4골차, 무실점의 승리를 거둔 것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7월 27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쿠웨이트를 상대로 이동국의 두 골과 차두리, 안정환의 득점으로 4-0 완승을 한 이후 처음이다.
1. 박주영의 가세로 향상된 3톱의 연계성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중앙의 안정환, 좌우에 박주영과 차두리를 배치했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안정환 대신 이동국을 중앙 공격수로 세워 쿠웨이트전에 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박주영과 활동 영역이 겹치는 안정환 대신 이동국을 중앙에 놓고 우즈베키스탄전과 달리 박주영에게 왼쪽뿐 아니라 중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움직임을 요구했다. 자신의 선택과 경기 상황에 따라 왼쪽 공격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섀도 공격수의 역할을 겸한 박주영은 직접 공격과 동료에 대한 지원을 겸할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보여줬다.
그동안 대한민국 대표팀의 3톱은 중앙 공격수와 측면 공격수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3톱의 측면 공격수는 중앙과 조화가 필수적임에도 4-4-2전술의 윙처럼 측면에 치중하면서 중앙 공격수는 고립을 면하지 못했고 경기는 답답하게 전개됐다.
본프레레 감독 부임 이후 중용됐던 이동국이 부단히 측면과 이선으로 나와 동료의 패스를 받고 수비를 끌고 나와 공간을 만들려 고군분투했던 것도 이러한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박주영의 특성이 발휘된 쿠웨이트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3톱 상호의 유기적인 움직임이다. 오른쪽 공간 돌파와 상대 공격의 1차 지연 역할에 충실했던 차두리는 세밀하진 않지만 힘있는 경기로 측면을 장악하며 중앙 공격을 도왔고 박주영은 우즈베키스탄전과 달리 이동국과 투톱으로 여겨질 정도로 적극적인 중앙 침투로 공격의 시작과 마무리를 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박주영의 가세로 공격에서 과중한 부담을 던 이동국도 중앙에서 이선과 최전방을 오가는 간결한 동작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박주영의 활약에는 이동국의 보이지 않는 공헌도 컸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박주영과 위치가 겹쳤던 안정환과 달리 이동국은 박주영의 중앙 공격때 측면이나 이선으로 살짝 빠져 상대 수비를 끌고 나와 박주영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줬다.
이동국의 이러한 모습은 과거 자신을 아꼈던 황선홍이 "이동국이 중앙에 있고 내가 공간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로 이동국의 좁은 활동 범위에 대한 비판에 응수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동료를 살려주는 이러한 움직임에 득점 기회에서 집중력을 조금만 높인다면 본선에서 이동국의 선전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측면 공격수로 박주영이 지닌 한계는 정경호의 급부상이란 결과를 낳았다. 서정원 이후 대표팀에서 가장 시원한 왼쪽 돌파를 보여주는 정경호는 2004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이후 미국전지훈련을 통해 성인 대표팀 적응을 마쳤고 최종예선 4, 5차전에서는 후반 교체 선수로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정경호 투입 후 박주영은 두 경기에서 모두 중앙 공격수로 역할을 완전히 변경했는데 이는 성인 대표팀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풀타임을 소화하긴 아직 이른 박주영의 체력 안배에도 도움이 됐다.
군사훈련 때문에 이번 대표팀에서 제외된 설기현과 이천수는 A매치 두 경기 만에 성인 대표팀 공격의 핵이 된 박주영의 존재로 입지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두 선수 모두 박주영처럼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동안 대표팀에서 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설기현은 이번 시즌 소속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고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중앙 공격수를 원했으며 이천수는 지난해 올림픽 본선에서 3-4-3의 왼쪽 공격수로 뛰며 중앙과 측면을 아우르는 다양한 움직임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보고서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힘과 높이를 겸한 보기 드문 측면 공격수인 설기현과 올림픽 예선과 본선, 에스파냐 프리메라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이천수 모두 여기서 포기하긴 너무 이르다. 박주영의 급부상으로 더는 무임승차가 어려워진 이들이 대표팀에서 보여줄 분발이 기대된다. 아직 월드컵 본선은 1년이나 남았다.
2. 좌 김동진 우 이영표의 공격 지원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오른쪽 윙백을 맡았던 송종국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정착 실패 등 여러 이유로 대표팀에서 탈락한 후 대한민국 대표팀의 윙백은 김동진이 왼쪽에, 오른쪽에 이영표가 배치됐다. 오른쪽 윙백과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지만 본래 왼쪽 윙백인 이영표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량을 연마한 김동진이 왼쪽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김동진이 올림픽 이후 리그와 대표팀에서 모두 하락세를 보였고 에레디비지 정상의 왼쪽 윙백으로 성장한 이영표도 오른쪽에서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본프레레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의 윙백은 수비 가담이 부족했고 공격 역시 수비를 등한시한 것에 비해 별 효과를 보지 못하며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윙백의 수비 가담이 개선될 조심을 보였다면 쿠웨이트전에서는 공격 지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왼쪽의 김동진은 여전히 수비력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지만 올림픽 본선에서 보여줬던 양질의 크로스와 중앙에 대한 기회 창출을 보여줬고 이영표는 오른쪽에 국한되지 않고 중앙을 넘나들며 유럽 진출 이후 부쩍 성장한 패스 능력을 활용했다.
김동진이 기나긴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인 것 못지않게 고무적인 것은 이영표가 오른쪽에서 뛰는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이다. 왼쪽 윙백이지만 오른발에 더 능한 이영표는 왼쪽 윙백으로 뛰며 오버래핑시 측면 돌파뿐 아니라 오른발을 활용한 중앙 침투를 적절히 활용하며 상대 측면 수비를 어지럽혀 재미를 봤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뛸 때 이영표는 측면 돌파라는 한가지 무기에 의존했고 이는 에레디비지 정상의 왼쪽 윙백을 평범한 오른쪽 윙백으로 만든 주된 요인이었다.
이영표가 찾은 첫 번째 해법은 PSV 에인트호벤의 동료 박지성과의 위치 변경이다. PSV에서는 주로 왼쪽에서 볼 수 있던 것을 대표팀에서는 오른쪽에서 보여준 것이다.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뛰었던 박지성은 이영표와 잠깐 위치를 바꾸기에 충분한 선수였고 이영표는 박지성과 패스 연결을 통해 상대 수비의 견제를 피해 측면 공격에 기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오른발을 이용한 중앙 혹은 반대편으로의 패스이다. 이영표가 왼발보다 오른발 크로스가 좋다는 것은 이제 더는 비밀이 아니지만 PSV 진출 이후 "드리블 못지않은 패스의 재미를 느꼈다."라는 고백처럼 그의 오른발 패스는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오른쪽에서 왼발로 접어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은 여전히 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그의 오른발 패스가 중앙과 반대편으로 향하게 되면서 상대 수비는 측면 돌파 한가지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전반 16분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진입한 이영표가 왼쪽에서 오버래핑한 김동진에게 넣어준 전진패스와 여기서 만들어진 박주영의 선제골은 좌 김동진 우 이영표의 정상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왼쪽 공격수 박주영이 사실상 중앙 공격수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고 왼쪽 윙백 김동진의 수비력과 수비가담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지난해 아시안컵 준준결승의 상대 이란처럼 오른쪽 공격이 강한 팀을 만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3. 숨은 공신 김정우
이날 박지성이 이영표를 돕지 않았다면 앞서 언급한 좌 김동진 우 이영표의 성공 가동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박지성과 함께 이날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김정우는 쿠웨이트전 승리의 숨은 주역이었다.
김정우는 아테네 올림픽 예선과 본선에서 박지성과 마찬가지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기 힘든 김두현과 호흡을 맞추며 아시아 예선 전승 무실점 통과와 올림픽 준준결승 진출에 공헌한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전과 달리 박지성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준 김정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힘의 열세가 약점으로 지적됐던 김정우는 이날 부쩍 좋아진 몸으로 자신의 노력을 시청자에게 각인시켰고 상대 공격 무산 이후 안정적인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것은 올림픽 예선 통과 이후 본선 준비 과정에서 그의 성장을 극찬했던 김호곤 감독의 말이 1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함을 보여줬다.
에레디비지와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유럽 수준급의 미드필더임을 증명한 박지성을 3-4-3의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와 짝을 이루는 선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격수로 뛸때처럼 수비에 대한 전술적인 부담 없이 경기장 곳곳을 누빌 수는 없겠지만 경기 운영과 수비진 앞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해야 한다는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준다면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공수에서 도움을 주는 박지성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지성이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서 이영표와 함께 멋진 콤비 플레이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를 가능하도록 한 김정우의 보이지 않은 공헌에 대한민국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 감사를 표한다.
이밖에 70분 김동진 대신 곽희주를 투입하면서 맛보기로 보여준 4백의 혼용 가능성은 이후 평가전을 통해 구체화될 소지가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본프레레 감독은 본래 4-1-3-2를 선호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고 세계정상급의 팀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4백의 혼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른다.
월드컵 본선행 확정으로 1차 목표를 달성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8월 4일 전주에서 열리는 북한전을 시작으로 홈에서 치러지는 제2회 동아시아선수권에서 2연속 우승을 노리며 이후 8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가진 후 본격적인 본선 준비에 들어간다. 본선 조추첨은 12월 9일로 예정되어 있다.
쿠웨이트 0 대한민국 4 / 알카즈마 경기장, 쿠웨이트시티
골: 16분 박주영, 28분 이동국 (페널티킥), 55분 정경호, 58분 박지성 전반: 0-2
대한민국 (3-4-3): 이운재 - 김진규, 유경렬, 김한윤 - 이영표, 박지성, 김정우, 김동진 (70분 곽희주) - 차두리 (54분 정경호), 이동국 (80분 안정환), 박주영
대한민국 대표팀 향후 일정
2005년 7월 31일 대 중국 (대전, 동아시아선수권) 2005년 8월 4일 대 북한 (전주, 동아시아선수권) 2005년 8월 7일 대 일본 (대구, 동아시아선수권) 2005년 8월 17일 대 사우디아라비아왕국 (서울, 월드컵 예선) 2005년 9월, 11월 평가전 예정 2005년 12월 9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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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전문가 답게 치밀한 분석을 하셧군요...
이야... 이글 누가썼나요... 정말 치밀한 분석이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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