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홈 포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영국 록과 블루스 가수 크리스 리아가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22일(현지시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수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냈으며, 자동차와 운전에 대한 애착이 그의 노래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는 25장의 솔로 앨범을 녹음했으며, 그 중 두 장이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의 독특한 거친 목소리와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Road to Hell', 'Auberge', 'On the Beach', 'Driving Home for Christmas', 'Fool (If You Think It's Over)', 'Let's Dance' 같은 곡들에 잘 담겨 있다.
가수는 짧은 병환 끝에 이날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가족 대변인이 전했다. 부인과 두 자녀는 성명을 통해 "사랑하는 크리스의 별세 소식을 깊은 슬픔과 함께 알린다. 그는 오늘 일찍 짧은 병환 끝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미들즈브러 FC는 엑스(X)에 "크리스 리아의 별세 소식을 깊이 슬프게 생각한다. 티사이드의 아이콘. 편히 쉬세요, 크리스"라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리아의 1980년대 히트작 '드라이빙 홈 포 크리스마스'는 지친 여행자가 교통 체증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M&S Food 크리스마스 광고의 배경으로 쓰여 새로운 팬들이 생겨났다.
2020년, 그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에는 리아와 고향 미들즈브러 친구인 밥 모티머의 대화가 게시돼 이 곡을 쓰게 된 얘기를 들려줬다. 리아는 1978년에 실업수당을 받고 있었고, 매니저가 막 떠났으며 운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둘 다 열여섯 살 때 만나 결혼했고 당시 여자친구였던 조안이 미니카를 타고 런던에서 그를 데리러 와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곧바로 이 노래를 썼는데 1988년에 싱글로 발매될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유명해지는 일과 인기에 별 욕심이 없었던 그는 "그때는 크리스마스 노래가 필요 없었다. 그 앨범을 내지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다행히도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1986년 성탄 시즌에 맞춰 앨범을 내자고 음반사는 매달렸지만 그는 또 2년이나 버텼다.
노래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가수는 그 노래가 "몰디브에서의 사랑스러운 작은 휴가"를 가져다줬다고 농담을 했다. 이 곡은 뒤에 잉글버트 험퍼딩크와 스테이시 솔로몬 등 여러 아티스트에 의해 다시 불렸다.
리아는 모티머와 친했으며, 1997년 미들즈브러의 FA컵 결승전을 위해 'Let's Dance'를 녹음했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는 성공과 함께 여러 차례 건강 악화를 겪었다. 그는 서른세살이던 199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몇 년 만에 췌장을 제거했으며, 이 때문에 제1형 당뇨병이 발병했다. 그는 2016년에 뇌졸중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결코 잊지 않아 지난해 사가 매거진 인터뷰를 통해 "나는 첫 병에 걸리기 전부터 명성과 항상 어려운 관계를 갖고 있었다"면서 "내 영웅들 중에 록스타가 된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 그래미 시상식 때문에 할리우드에 도착했을 때, 라이 쿠더나 랜디 뉴먼 같은 중요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팝스타들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셀럽 관련 사건은 완전히 잘못됐다. 모두가 서로를 능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부인에 대해 "우리의 황금 같은 순간은 매일 아침 누가 커피를 만들 차례인지 팔꿈치로 다투는 순간"이라며 "신선한 커피가 가득 든 큰 머그잔, BBC 아침 뉴스나 스카이가 있고, 창밖으로 시골을 한 시간 동안 바라보며 우리는 아직 열여섯 살이야 그런다. 우리가 아직도 그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토퍼 안톤 리아는 1951년 영국 북동부 미들즈브러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여섯 형제자매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이스크림 사업을 도왔다. 운전을 배운 것도 아이스크림 판매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 "미들즈브러의 커피 바에서 아일랜드인과 이탈리아인으로 사는 것—나는 외부인으로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첫 기타인 1961년산 호프너 V3를 구입할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리아는 당시 "아버지의 아이스크림 카페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 임무를 맡았지만, 나는 모든 시간을 창고에서 슬라이드 기타를 치며 보냈다"고 말했다.
곧 여러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데뷔 앨범 'Whatever Happened To Benny Santini?'를 1978년에 발표했다. 싱글 'Fool (If You Think It's Over)'가 미국 빌보드 컨템포러리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해 그를 그래미상 신인 아티스트 후보로 이름을 올리게 했다.
그의 상업적 돌파구는 1980년대에 찾아왔는데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 'The Road To Hell'(1989)과 'Auberge'(1991)가 영국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그는 건강 문제와 맞서면서도 말년에 블루스의 뿌리로 돌아갔다. 9년 전 뇌졸중을 겪은 뒤 회복해 2017년 24번째 앨범 'Road Songs For Lovers'를 발표했다. 그는 그 해 말 투어 공연에 나섰는데 옥스퍼드의 뉴 씨어터에서 노래를 부르다 쓰러져 여러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리아는 런던으로 가는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차에 있는 커플들을 봐 - 결혼한 사이인가, 직장 동료인지, 바람을 피우는 사이인가?" 인생의 단순한 것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노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제로 길을 걷고 있다 - 길은 항상 우리가 인생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은유가 된다."
리아는 지난 10월 마지막 앨범 'The Christmas Album'을 발매했으며, 이 앨범에는 '드라이빙 홈 포 크리스마스' 리마스터와 여러 성탄 축하 노래들이 수록돼 있다.
건강 문제로 인해 그는 자신의 경력을 재평가하게 됐고, 인기가 있었는데도 한 차례도 미국 투어를 하지 않았다. "나는 록스타나 팝스타가 아니었고, 모든 병이 내가 항상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자 토니 파슨스는 그를 "최고의 인물"이자 "매우 과소평가된 작곡가"라고 묘사했다. 2009년 '드라이빙 홈 포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방송인 리지 컨디는 뮤지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너무 슬펐다"면서 "모든 순간이 너무 좋았고, 그와 함께 일하고 그의 상징적인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는 항상 내게 영감이자 전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들즈브러 및 손나비 이스트 지역구 노동당 의원 앤디 맥도날드는 X에 글을 올려 "미들즈브러의 가장 소중한 아들 크리스는 그의 멋진 음악을 통해 계속 살아갈 것이다. 가족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리아와 조안은 두 딸 조세핀과 줄리아를 뒀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이 자신을 잘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다. 리아는 한때 "나랑 음악은 가족이다. 나는 네 명 중 한 명일 뿐이다. 그게 내 본성"이라며 "나는 유닛의 25%야. 항상 그랬고 우리는 그게 좋았다. 그 사이에는 음악이 있다"고 돌아봤다.
리아의 어린 시절 꿈은 영화를 위한 음악을 쓰고 작곡하는 일이었다. 그는 영화 'La Passione'(1996)에서 그 꿈을 이뤘다. 그는 또 1999년에 'Soft Top Hard Shoulder' 사운드트랙 곡을 썼고, 코미디 'Parting Shots'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리아는 자동차를 진짜 사랑하는 중독자임을 인정하며,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그의 음악에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그는 1957년형 모리스 마이너 1000 경찰차를 포함해 다양한 빈티지카를 소유하고 경주에 참가했다.그는 조던 포뮬러 1 팀 소유주 에디 조던과 친구였으며, 한때 피트 레인에서 도운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