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김 준 현
달에서는 어떤 상태로 살까? 이백(李白)이 붓 끝을 들자 가늘어지는 글씨체가 세상을 떠나려고 했다 당(唐)의 시인들은 무중력을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술잔에 비친 달이 더 잡기 쉬웠을 텐데." 이백의 시는 술처럼 흘러나와서 젖었다가 마른 자리―그게 주인도 없는 그림자가 될 때가 있었지―그림자가 취한 모양을 보고 싶어 이백의 시를 읽을 즈음 시인의 말을 써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1 몇몇 사람을 무음으로 해 놓았다 바깥에 눈이 많이 왔지만 한참 동안 무음이었다 2 아이누인들은 해와 달을 모두 춥이라고 부른다 3 소리가 날 때까지 썼다 혼자 듣기엔 좋았다 4 러시아어 mope는 바다를 뜻한다, 모래와 모레와 모례 사이에서 나를 잃을 때까지 발음한다 5 인체에 무해하니 먹지 마세요 시인의 말후보들은 왜 제게 힘을 주고 있을까? 떠오를지도 몰라서 그래 얼마 안 되는 중력 때문에 걷다 보면 떠오를지도 몰라 밤에 산책을 하다 떠오르는 게 많다 금목서 가지, 검은 장우산, 새벽 4시의 시곗바늘, 시로 쓰고 싶은 지역감정―수족냉증이 심한 몸이 마음 급해서 달려가게 된다, 집으로 갔니? 응, 집으로 갔어 땀과 비에 젖은 몸을 씻고 자리에 앉으면 그들은 전부 유령처럼 사라졌어 사라졌어? 혼잣말을 둘이서 하는 것은 손을 자주 바꿔 우산을 드는 일과 같았다 왼속과 오른손 중에 한쪽만 사랑하는 일은 빗소리와 같은 혈관을 쓰는 것처럼 한 손로 우산의 손잡이를 꽉 쥐는 일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내 몸까지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 시집〈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민음사 -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 예스24
사소한 우연에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몸짓,귀 기울이면 가뿐히 경계를 넘어오는낯선 세계의 말들김준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이 민음의 시 302번으로 출간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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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민음사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