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人性)이란 무엇일까?
우선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사람의 성품,
또는 다른사람과 구별되는 사고(思考)와 태도
및 행동적 특성이라 적혀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말한다.
인성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인성교육은 뒤로 밀리고,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한 학업 교육만 시키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교육이 제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사교육에 밀려
아이들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말을 하면서도 그 당사자 자녀들은
사교육에 매달리는 이율 배반적인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 3대가 같이 살면서 아이들이 성장했다,
할아버비,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 일부이긴 하지만 같이 살았다.
생기는 대로 낳아야 했기에 아이들도 적어야 5명, 많으면 7~8명이나 되었다,
집안에 위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가정교육이 철저했다. 어른을 알고, 효(孝)를 배웠다.
형제들 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당겨주고, 보살펴 주었다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울어도 안 되는 일은 안 돠었다
안되고, 되는 것을 알수 있었기에 아예 넘 보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했기에 대부분 배고픔의 어려움을 체험했다.
먹고 살아야 생존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몸에 익혔다.
스스로 살아 가야함을 미리부터 알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하며 참고 일했다
그렇게 살아가며 성장했기에 삶의 어려움을 알았고,
인생살이에 진정한 공짜가 없음을 알았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았다.
되지 않을 일을 넘 보는 일이 없었다.
요즈음은 너무 풍요롭다, 물질이 넘쳐 흐르고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자기자신만이 최고이고, 남은 안중에도 없다.
도덕교육은 사라지고,
수능시험 한 문제 더풀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목적이 되었다.
의대에 가기위해 유치원부터
별도의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있단다.
사림이 먼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 장관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인성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선 사람은 주변에 적(?)이 없어야 하는데~, 참으로 어려운 일인긴 하지만~.
완장 채워 주었을때 더욱 긴장하고, 양보하고, 버릴줄 알아야 한다. 역지사지,
남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곳 저곳에서 갑질의 행태가 숨김없이 들쳐지고 있었다.
스스로 잘 했으면 그랬을까?
이 아침, 스스로 생각해 본 내 짧은 단상이다.♧
♬ - El Pescador de Perla / Mila Khodorkovsky
첫댓글
인간 관계
많이 배우고 덜 배우고를 떠나서
인성이 나쁘면 상종을 안 합니다
제일 어려운게 인성과 인간관계 입니다.
네 참 어려운것이 인간관계인데
‘역지사지‘를 항상 염두해두고
초면을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매사 노력을 한답니다요.
외모도 곱상하시고 더구나 발달장애아 자녀도 있다며
아랫 사람 무시하는 습관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그 버티던 모습은 더욱 추접해 보였습니다.
요즘 아이들 좋은대학 보내려 애쓰는 부모들요. 그래도 우리때보다 수월한 겁니다.
우리땐 중학교 고등학교 시험봤잖아요. 오히려 대학갈 땐 쉬웠던것 같습니다.
일류중학교에 넣으려고 국민학교 때부터 맨날 과외하고 입주 가정교사 들이고----
자녀는 좀 많아요? 주로 5-6명이니 2년주기로 합격 불합격으로 들썩입니다.
입주 가정교사는 거의가 일류대학 재학생이었죠.
외가쪽에 산부인과 의사인 이모가 계셨는데 달 셋을 연달아 났습니다.
입주 가정교사가 첫째딸 중학교를 원서를 쓸 때 E여중을 보내야 합니다.
이모는 무조건 K여중 넣어 불합격하니 정신여중을 보냈습니다.
다음딸도 셋째딸도 K여중---떨. 떨-- 정신여중에 1-2-3 학년이 나란히 다녔지요.
고등학교 갈 때 다시 K여고를-- 떨어졌어요.
결국 일류병에 결린 이모의 딸셋이 정신여고 동창생이 되었습니다.
이모는 자녀중에 K동창생을 만들어 의사를 시키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학갈 때는 딸들이 반발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솔직히 우린 국민학교 중학교 이런시절의 추억이 없습니다.
저학년땐 학교 다녀 오면 과외공부하고 5-6학년엔 입주 가정교사하고
공부하는데 그 선생님은 왜 그리 빼 먹는 날도 없는 지 ㅋㅋ
운좋게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면 약간의 자유가 있지요.
학원을 다니니까요. 집에서 하던 레슨도 교수집으로 가야 하니 외출이지요.
학원이나 외출시 우리딴엔 멋을 내고 갑니다.
ㅎㅎ 멋이라 해 봐야 교복 치마에 윗 옷만 사복으로요.
그래도 그것이 큰 자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땐 서울에 대부분 아이들이 중고교 입학을 격으며 살았고
같은반 친구끼리도 대부분 집이 멀어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거의 였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동네학교 뽑기이니 거의가 같은 동네 친구들이고---
그런 중에도 좋은 동네 이름있는 학교 보내느라 열광하는 학부모들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때 치열함이 더욱 쎗다 ㅎㅎㅎ라고 피력합니다.
흠~~~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잘되었을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 모델이 한** 이기도 합니다. 제작년에 모든걸 접었으면 훌륭했을텐데
추접스럽게 왜? 그렇게 막을 내렸는지? 너무 잘 아는 집이기에 안타까웠습니다.
네 "anna" 님 귀하신 발걸음에 아름다운 옛 추억들의 장문의 한 페이지를
아낌없이 보여주심에 감사의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할런지요.
우선 너무나도 고마웠고 일정때문에 이제서야 답글로나마
대신하는 점을 이해하여 주셨으면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갈고 닦아서 좋은 모습들을
집필하여 보여드리겠습니다.
"anna"님 넘 고맙다는 인사 재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