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00세 나이에 은퇴하겠다고 발표할 때까지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의 최고령 레인저로 이름을 알린 베티 리드 소스킨이 104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고 피플 닷컴이 전했다. 유족은 그녀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우리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인 베티 리드 소스킨이 캘리포니아 리치먼드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그녀는 충일한 삶을 살았고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베티의 삶이 공적이었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지금은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면서 "공개 추모식 시간과 장소가 공지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로지 더 리벳터 신탁기금(트러스트)와 협력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노 타임 투 웨이스트: 베티 리드 소스킨의 긴급한 메시지'에 따르면 그녀는 1921년 디트로이트에서 루이지애나 출신 노예의 증손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85세에 NPS 레인저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리치먼드에 위치한 로지 더 리벳터/2차 세계대전 홈 프론트 국립역사공원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하며 투어를 진행했다고 이 매체는 전에 보도했다. 오직 그녀 같은 사람만 알 수 있는 미국 서사의 빠진 장을 채우려는 의도였다.
그 전에는 공원 조성 연구를 진행하는 NPS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당시 그녀는 방 안에서 유일한 유색인종이었고, 공원이 인종 분리의 역사를 지우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15년 동안 소스킨은 투어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며, 2차 세계대전 중 흑백이 엄격하게 분리된 노조 회관에서 서기로 일한 경험과 시민권 운동 시기에 정치 및 지역사회 활동가이자 작곡자가 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소스킨은 2015년 NBC 투데이 쇼 인터뷰를 통해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면서 "내가 거리나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에 있을 때, 나는 모든 유색인종 어린 소녀들이 미처 몰랐던 일자리를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소스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기념 주화를 받았으나, 다음 해 도둑이 집에 들어와 그녀를 구타하고 훔쳐갔다.
3주 후 복귀한 소스킨은 NBC 베이 에어리어에 이 경험을 "내가 결코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험"이라면서 "하지만 이제 끝났고 돌아와 기쁘다. 지역사회의 지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소스킨의 은퇴 발표는 100번째 생일을 보낸 지 몇 달 만에 있었다. "내 인생의 극적인 궤적과 우리 세대의 다른 이들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지점을 표시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 역사, 즉 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데 있어 1차 자료가 돼 새로운 국립공원을 형성하는 것은 흥미롭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서 "그것은 내 마지막 시절에 의미를 가져다줬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마지막 생일을 자축했다. 사망 후 소스킨은 "어머니, 딸, 음악가, 작가, 정치 운동가, 아내, 음반가게 주인, 작곡가, 화가, 할머니, 증조할머니, 다작 블로거 등"으로 기억됐다.
그녀의 수상 경력 가운데 1995년 캘리포니아 주의회로부터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된 일과 2016년 국립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의 실버 서비스 메달리언과 2018년 글래머 매거진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한 것이 있다.
유족은 조화 대신 캘리포니아 엘 소브란테에 있는 베티 리드 소스킨 중학교와 그녀의 영화 'Sign My Name to Freedom'를 완성할 수 있게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소스킨의 케이준-크리올 가족은 6년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으며, 리치먼드에서 자라난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는 흑백이 엄격하게 분리된 조선소 노조 회관에서 서기로 일했다. 수십 년의 차별이 그녀의 인격과 결의를 단단히 만들었다.
그녀가 '서비스 노동자 세대'가 벨보이, 가사 하인들이 겪는 인종차별과 그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노조 서기란 일자리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같은 한 단계 상승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노 타임 투 웨이스트'에서 "호텔에서 침대를 정리하거나 백인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립공원 트러스트에 따르면, 소스킨은 미국 최초의 흑인 음반 가게 주인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블랙 팬서 당의 캘리포니아 이스트 베이 밸리 지부에서 일했으며, 결국 회고록을 쓰고, 낭독 녹음을 제작하며, 감정의 기복을 반영한 노래를 썼다고 말했다. 후자는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그녀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