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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간의 달 관찰 숙제를 하기 위해 오른쪽 팔을 휘저으며 '동쪽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 아이처럼 작가는 구체적인 대상을 응시하고 몽환적인 미지의 상태를 담아낸다. 풍경의 시점은 서 있는 장소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진다. 『미끄러진다』의 세계에는 멀리서 바라본 피상적인 풍경 대신, 작가의 움직이는 눈이 포착해낸 구체적이고 가까운 현실 내부의 순간들이 있다. 오징어잡이 배와 오리 배 한 척, 빨간 지붕과 방파제가 자연 어딘가에 숨어들어 있는가 하면, 툭 잘라낸 건물의 단면과 공간을 전면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빨간 크레인이 장난감 같은 극소의 크기로 화면 중앙에 멈춰있다.
그 사이 사이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와 공기가 슥슥 화면 위를 오간다. 그리고 미끄러진다. 작가는 팔레트 페이퍼에 그려진 작은 크기의 그림(26×36cm)에서는 작가가 선택한 만큼 화면을 과감하게 잘라내 꽉 찬 시야의 상태로 풍경을 구성하고, 아크릴 보드에 그린 큰 그림들(60x 140cm)에서는 밀어낼 수 있을 만큼 풍경을 멀리 밀어내고 펼쳐낸다. 가까이서 또 멀리로 화면 안으로 또 화면 밖으로 넘치게 밀어내고 끌어오는 포획을 주도하면서, 리듬감 있게 풍경을 잘라내고 배치하는 화면의 운동을 즐긴다. 그 안에서 작가는 또 미끄러진다.
이호인은 첫 개인전 『아무도 없는 곳으로』에서 인간 사회와 절연된 듯 한 환상적인 풍취의 독립된 섬을 바라보고 꿈에서 나올까 싶을 만큼 움틀 거리고 짙푸른 풍광의 조감도를 그려냈다. 이번 『미끄러진다』에서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질적인 상태에 대한 의문을 계속하면서도 움직이는 작가의 '눈' 이 포획한 가깝고 구체적인 풍경으로 바꿔 질문한다.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속속들이 펼쳐지는 풍경들, 몸이 움직여 다가가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변화무쌍한 자연의 풍경들이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작가가 직접 찾아갔던 청간정, 백담계곡, 산정호수의 풍광들이 작가의 그림 속에 있다. 서울의 야경과 옥상풍경, 동대문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 자연과 대비되는 아주 작은 건물의 빨간 지붕, 회색 건물의 프레임 구조는 현실 어느 곳에나 어떤 시간대에나 존재할 법한 비범할 것 없는 대상들이다. 구체적인 풍경의 대상들은 조감도가 아닌 배치도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풍경의 단서가 되어 화면에 올라간다. 각각의 화면 안에서나 각기 그림들 사이에서도 풍경은 서로에 의해 간섭하고 구획 지어지며 일상성과 특이성 사이를 오간다. 그렇다고 어떤 대상이 특정 대상의 위에 있다거나 주된 위상을 차지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작가가 바라본 대상의 어떠한 것이 풍경의 주인공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니다. 단지 그 자체, '자리 잡고 있음'이다.
작가는 그 동안 무엇을 어떻게 본 것일까. 어떤 변화를 짧은 몇 문장으로 규정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풍경의 가운데를 내려다보는 부감을 밀어내고, 옆과 뒤 그리고 주변을 밝혀내는 다양한 혼돈의 시점들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무수히 많은 길목들 중에서 선택한 흔적(비행기, 별, 배 한 척, 색깔 다른 지붕)과 크기를 결정짓는 축척의 놀이가 그의 기존 작업들에 비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더 많이 걸었고 더 많이 보았으며 더 작은 풍경들의 단서를 쫓고 큰 자연 풍광 앞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장면들의 겹침 사이에서 '풍경'을 건져내는 행위의 힘겨움을 만들어냈다. 이 어려움은 감각적인 붓질로 인해 여기저기 유동하는 어쩌면 더 나아가 방랑하는 유희적인 어려움이다. 어려움은 곤란이 아닌 놀이의 상황이다. 일정한 규율을 거부하는 붓질은 결국 미끄러진다. 딱딱하게 굳어진 시간과 공간의 고정된 시선을 잠시 풀어헤칠 수 있는, 내부로 또 외부로 안팎으로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붓질의 즐거움이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뒤에서 보았다가 앞에서 보았다가 빛이 쨍 들어왔다가 멀리 달아나는. 그리고 화면 아래에서 위로 쭉 뻗어 페이퍼보다 커져 버린 수직의 나무들처럼. 분명히 두 눈으로 어떤 공간에서 보았지만 하나의 풍경으로 고정될 수 없는, 잡아낼 수 없는 풍경들이다. 가까운, 또한 붙잡고 싶은 흔적들의 모임이 그의 미끄러지는 화면들 위에서 이렇게 움직인다.
『미끄러진다』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의 제목 '짓기'다. 제목은 작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경험의 방식이자 풍경의 프레임을 결정짓는 태도가 된다. 미리 정해진 해답 그림이 없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작가는 그가 보았던 나무와 건물, 검은 하늘과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별들에게 작고 큰 이름들을 붙여준다. 그림의 이름을 지어 '명명'하고 '고정'시키기보다는 그리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다. 화면에 나타난 사물이나 작가가 발 밟고 서 있었던 장소의 이름을 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규율이 없는 제목들이다. 어떤 제목은 가장 앞에 우뚝 드러난 대상을 지칭하기도 하고 다른 제목은 가장 뒤에 있는 작가가 숨겨둔 어떤 미비한 퍼즐조각을 지칭하기도 한다. 제목은 그림 속 대상의 강약이나 중요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의 상태를 말하여주면서 보이지 않는 화면의 이면을 보게 한다.
팔레트 페이퍼 위에 그려진 작은 그림들인 『위의 식물들』과 『집 안의 식물들』, 『하늘에 비행기』, 『자동차 한 대』, 『빨간 창 파란 창』은 대상이 존재했던 현실에서의 자리인 동시에 또 다른 대상의 배경이다. 집 안에 있던 식물과 위로 보이는 식물들, 그리고 하늘 안에 있던 비행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으로 각각 서로 대칭적인 관계(집: 식물, 하늘: 비행기)를 이룬다. 하지만 이 그림 속 상태와 제목은 또 역설적으로 아예 그 반대를 지칭할 수도 있다. 시선을 돌려볼 때 위로 보이는 식물 그림에서 우리는 위의 식물들을 넘어 '식물들의 윗부분'을 보기도 하며 하늘에 있던 비행기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진 후 '아무 것도 없어진 하늘의 흔적'을 볼 수도 있다. 제목은 아주 잠깐의 정지 상태를 지칭할 뿐 고정될 수 없다. 이 가능성으로 넘치는 매 순간순간의 현실을 작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붙잡아낸다. 숲 속 풍경의 가장 끝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 『방랑자』라는 그림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림의 풍경 곳곳을 걸었던 한 신체의 움직임을 유추하게 된다.
『방랑자』는 뒷모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어떤 방랑자인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고 숲 속 끝에 방치된 남자는 관람자로 하여금 뒷모습의 또 뒤에 있는 '모습(숲)', 즉 풍경 내부를 보게 한다. 숲 속 인물이 보고 있는 저 앞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다를까. 무엇이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았기에 그는 그곳에 서 있는 것일까. 그림 속 남자와 비슷한 위치에서 풍경을 바라보았을 수많은 이들의 수없이 많은 풍경들이 떠오른다.
이호인의 이런 풍경들은 몽환적인 정지 상태를 반영한다. 꿈이 아닌 이상 정지 상태일 수 없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고 변화하는 현실에서 잠시 건져 올린 음표다. 현실이라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로 중첩된 악보 위에서 잠시 떠올려보는 악상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낸 음표들(체험한 풍경의 그림)은 실제 풍경을 화면 안에 재구성하는 배치의 방법이다. 작가는 그림 속에서 대비되는 대상들을 한 화면에 빠른 속도로 중첩시킨다. 서로 다른 두 대상은 철저하게 이분법적이지 않으며 서로를 겹쳐가며 한 배를 탄 듯 같은 시공간을 구성한다. 식물이지만 작은 동물들처럼 파닥거리고 구불구불 땅에서 하늘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휙 하고 내려오는 식물이기도 하며, 창문 안 실내의 화분이지만 창문 바깥 거리의 식물 그림자와 구분하기 힘겨운 상태이기도 하다.
숲 사이로 쭉 뻗은 길 또한 숲의 오래된 야성적인 뿌리처럼 육감적으로 보인다. 그가 그리는 감각적인 풍경들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비롯된다. 캔버스가 아닌 아크릴 보드(큰 크기의 작업들)에 붓을 올리는 이호인의 붓질은 화면 위를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 순간적으로 움직였던 풍경의 시각을 잡아내는 일은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또 다른 사건이 된다. 화면과 붓질이 미끄러지고, 그가 그리는 대상도 그리면서 변화한다. 풍경의 '강압적이지 않은 유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슥슥 그리듯 화면에 붙잡아두는 임시성은 그의 고민을 가벼운 그림들로 치환시킨다. 회화적 상황의 포착 그리고 회화를 통해 '현재로 만들기' 다.
작가의 시선은 해변에서 정면을 향해 멈춰선 노인의 움직임을 향한다.(『노인』) 그러면서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하나의 특수한 풍경을 만든다. 자기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그 주변의 풍경을 살아있게끔 하는 노인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풍경 속에서 유유히 한 흔적을 남기는 노인은 그의 등 뒤로 펼쳐지는, 우리 인간이 상상해낼 수 없는 또 다른 뒤 풍경의 너비와 깊이를 추측하게 한다.
이호인의 풍경은 풍경의 전체에서 이탈하고 그림 또한 단어의 바깥으로 벗어나거나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의지를 보인다. 호텔과 국회의사당, 청와대 건물을 무색하게 덮어버리는 화면의 무성한 나뭇가지들은 시야에서 결코 가려지지 않는 대상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작가의 작은 실행이다. 그러나 가려버린다고 온전히 가려질 수 없는 풍경들은 또 다른 각도, 반대편 혹은 앞면에서 다시 제 몸통을 드러낼 것이다. 이호인의 풍경은 한 순간 스쳐 바라보는 것으로나마 잠시 소유할 뿐인 동시대의 파편적인 풍경들이며 도무지 답 안 나오는 현실을 바라보려는 시도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어둠 속에 위치한 희미한 점은 작기 때문에 더욱, 무한한 가능성의 풍경이 된다. ■ 현시원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
낯익은 곳 그린 70여점 신작 선보이는 이호인의 세 번째 개인전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색하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 16번지는 오는 4월 27일 (금)부터 5월 27일 (일)까지 자연 속에 숨은 인간의 흔적을 그리는 이호인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3년 전 『아무도 없는 곳으로』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성공리에 마친 작가가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미끄러진다』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모두 PVC 소재의 아크릴판 위에 그려졌다. 이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일 때 가장 아름답다' 는 작가의 관념을 반영한 재료다. 전작 시리즈에서는 깊고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의 자연 풍광에 보기 싫은 흠처럼 인공물을 박아 넣어 이러한 주제를 나타냈다면 이번에는 '자연'이라는 완벽한 대상을 캔버스라는 물질 위에 그대로 재현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한 것. 즉, 캔버스에 물감층을 쌓아 실제와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내려는 회화행위로 자연을 온전히 나타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매체의 선택에서부터 피력하는 셈이다.
과거 작품에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상 속의 장소를 그렸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꽤 낯익은 곳들이 등장한다. 청와대, 국회의사당, 신라호텔, 반얀트리 클럽앤스파 등 하나같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은 명소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이 장소들은 간신히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울창한 나무로 뒤덮여있다. 작가는 원래 있던 자연을 밀어내고 인간이 만든 도시, 그 도시의 과잉으로 인해 사라진 자연을 회복하기 위해 또다시 인간이 만든 자연인 정원. 이 악순환적 불협화음을 꼬집는다. 'Surrounded'라는 영문 제목은 인간이 자연을 건물과 아스팔트로 둘러쌌듯, 작가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공 조형물들을 덮어버린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아무리 실제보다 많은 나무를 그려도 고개를 내미는 인간의 흔적은 작가가 꿈꾸는 완벽한 자연으로의 회귀, 회복이 좌절 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호인 작품의 또 한가지 특징은 인간은 매우 작게, 나무와 숲 등 자연은 대조적으로 거대하게 그려진다는 점. 거대하고 완전한 자연 속의 미물처럼 묘사된 인간의 모습은 현대의 인간중심적 사고를 성찰함과 동시에 이토록 깊은 자연 속 미지의 세계에도 이미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져 있음을, 지구상에 더 이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완벽한 자연은 없다는 것을 탄식하는 듯 하다.
이번 이호인의 신작 전시는 작가가 독특한 매체와 표현법으로 던지는 인간 행위에 대한 반성을 공감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16번지
첫댓글 이 전시 좋다는 호평이
끄덕끄덕 좋더라구요 :-) 지하공간에 배치된 단 두점의 여운, 그 공간감
1층 한 걸음에 한 작품
2층 좁은 간격의 다닥다닥함, 그러나 혼란스러ㅂ지 않은 아웃라인, 균형감
사적인 시선이지만, 느슨하고 편안한 붓질, 낯설지 않은 장면들,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구요.. 저는 참 좋았습니다 :-)
쥐님덕분에 좋은전시 찜해두었어요^^..색상대비가 뚜렷하면서도 다정한느낌들..
5월과 잘 어울리는 호흡이었어요, 그린미셸님과도 잘 어울릴 듯!!
김종학전 기대하며 삼청동 들렀다가 이 전시 젤 인상적으로 보았어요^^ 지하에서 본 그림한점에 잠시 찌르르~ 하였던거 같아요~ 사진과 글로 정리해놓은걸 보니~ 또 좋네요~~ 감사^^*
재크와 콩나무 삽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배경화면 분위기.
찜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