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우리나라 해군이 보유하게 된 최초의 군함은 백두산함이다. 함번호는 701이었다. 미국에서 사용할 때는 함(艦)으로 끼워주지도 않는 정(艇)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잠초계정이다. 영어로는 'Patrol Craft', 줄여서 PC라고 부르는 종류이다. 한국에 팔리기 전에는 미 해군 PC823호정이었다. 군함다운 배 한 척 없던 신생 조국의 해군은 국민들이 피같은 돈을 모아준 성금으로 군함 보유의 비원을 풀 수 있었다. 당시 돈으로 국민들이 1만 5천불을 모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떨리는 손으로 4만5천불이라는 거금을 꺼내주었다. 그야말로 국고가 휘청거린 지출이었다. 미국이 2차대전 중에 불과 3년 동안 자그마치 361척이나 만들어 대서양과 태평양에 뿌려대다시피 한 초계정 한척의 구입을 위해서 온 국민이 코묻은 동전까지 각출하여야 했다. 참모총장 이하 전 해군 장병들이 월급의 10%를 각출하였고,.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의 부인들이 삯바느질을 해서 돈을 모았다.
그 배를 인수하러 간 우리나라 해군 요원들이 49년 12월 29일, 뉴욕항의 8부두에서 명명식을 할 때 마스트에 태국기가 올라가는 동안 장면 대사와 인수단장 손원일 제독, 그리고 축하하러 모여든 우리 교포들이 모두 함께 울었다. 오는 중간에 하와이의 호놀룰루항을 들렀을 때는 역시 교포들이 나와 눈물로 마중했다. 하와이 교민들이 누구인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떠나 사탕수수농장의 노예로 팔려온 한국인들이었다. 조국의 군함이 온다는 소식에 보러 나온 교포들은 매일 같이 보아 눈에 익은 미해군의 엄청난 군함들에 비해보면 조각배 같은 조그만 초계정인 것을 보고 실망도 하였지만 그 뱃전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고 어찌 눈물이 나지 않았으랴. 백두산함이 하와이를 떠날 때 승조원도 울고 교민들도 울고 그렇게 백두산은 우리 해군의 첫 군함으로 태평양을 건너 어머니품 같은 진해만에 안기어 들었다.
백두산함을 미국에서 인수해서 몰고 돌아온 박옥규 중령이 해군의 2대 참모총장이다. 그 뒤를 이은 2대 함장이 최용남 중령이었다. 최용남 함장이 지휘하는 백두산함은 6.25가 발발한 그날 진해만에서 출동, 동해안을 북상하다가 부산 앞바다에서 북괴의 1천톤급 무장 수송선을 만나 치열한 포격전 끝에 침몰시켰다. 수백명의 특수부대원을 태운 북괴의 수송선이 만약 부산항에 상륙하여 한반도의 유일한 군수지원항인 부산을 교란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한국전쟁의 판도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대한해협 해전이라 부르는 이 전투에서 백두산함의 분투가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배에 장착된 무장은 포탑도 없는 벌거숭이 3인치 포 1문과 40밀리 고사포 1문이 전부였다. 돈이 없어서 실탄 사격을 못해본 지라 그 날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포를 쏘아본 장병들이었으나 충무공의 후예로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고, 이겼다. 그리고 그 승리가 조국을 구했다.
최용남 중령이 어떤 사람인가? 오늘날 진보 세력들이 싸잡아 친일파라 부르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다. 일본군 육군 소위로 임관된 지 몇 달 후에 해방을 맞았다. 박정희가 그런 것처럼 덴노헤이까에 충성을 맹세하고 황군의 장교로 임관된 그의 부친은 고향 평안남도 구성군에서 알려진 애국지사이다.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 장교가 된 조선인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기구하고 각양각색으로 일본군의 경력만으로 친일, 반일, 애국, 매국으로 구분하다가는 큰 일 생긴다. 최용남 함장이 해방 후 월남해서 자신의 진로를 상의하고 의논을 드렸던 사람이 친일매국신문 조선일보의 사장 방응모였다. 방사장은 그에게 해군에 입대해서 조국의 해군을 건설하는데 한 몸을 바쳐보라고 권유했고, 최용남은 그 말에 따라 해군에 입대했고, 한국 해군 최초의 군함인 백두산함의 함장에 취임했다. 나이 26살 때이다. 그리고 그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고, 나중에 세계가 떤다는 대한민국 해병대를 만들었다. 해병대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그가 한국 해군에 기여한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천황에 충성을 서약하고 황군의 소위로 임관된 사람이 매국신문 조선일보의 추악한 매국노 방응모 사장과 의논을 하고 그의 권유를 따라 해군에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매국노들의 덕분에 이나마 살만한 조국에서 숨을 쉬고 있다. 나는 그 친일파 매국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존경을 바치며 산다. 그런 친일파는 너무나 많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구름이 어찌 살고 있을까 싶은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나는 너무나 민망스럽게도 일제의 법관을 했던 사람, 일제 때 대학교수를 했던 사람, 일제 때의 신문기자들, 일제 때 돈벌었던 기업인들, 일제의 경찰, 일본군 장교였던 분들의 은혜를 입어 자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뭐라고? 친일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든다고? 그것은 누구도 못 만든다. 이 조국의 은인들을, 우리의 부모들을 니들이 무슨 수로 구분하고 무엇으로 재단을 한다 말이냐?
첫댓글구름... 얼마전에 친일파 나부랑이들이 한국의 최대 주주라나 뭐라나 데일리안에 뜬거 봤습니다. 충무공의 후예?? 충무공께서는 왜에 맞서 싸웠지만 니들은 왜에 진충보국 멸사봉공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끄러운줄 알고 닥치고 살아가도 모자를 판에.. 잘 했다네.. 왜나라 애들이 자위대 끌고 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녀석.
첫댓글 구름... 얼마전에 친일파 나부랑이들이 한국의 최대 주주라나 뭐라나 데일리안에 뜬거 봤습니다. 충무공의 후예?? 충무공께서는 왜에 맞서 싸웠지만 니들은 왜에 진충보국 멸사봉공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끄러운줄 알고 닥치고 살아가도 모자를 판에.. 잘 했다네.. 왜나라 애들이 자위대 끌고 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녀석.
이런글로 친일파들을 합리화 시키려고? 에라이 친일파만도 못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