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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죄의 흔적을 쫓아서’(Der Schuld auf der Spur)를 주제로 스위스에서 진행되는 심리학 심포지엄의 2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 1시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온라인으로 정토회 합동회의에 참가할 준비를 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 정각에 정토회합동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합동회의는 대중부, 공동체, 사회활동위원회를 비롯해 정토회 산하에 모든 단체의 임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각 단위 사업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회의입니다. 참석자들은 사전에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후 오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이 입재 법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나서 지난 1년 6개월을 돌아보면서 지금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지금 스위스 바드라가츠(Bad RagARTz)라고 하는 온천 도시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조그마한 시골 마을인데 휴양지입니다. 국제 심리학 심포지엄이 이곳에서 열려서 어제부터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입니다. 이렇게 멀리서 여러분과 온라인으로라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온라인 환경이 여러 가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면도 있습니다.
3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요?
정토회가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30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에 따라 정토회는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1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 방향을 잘 잡았기 때문에 2차 만일결사에서는 그 방향을 확대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주로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하던 것을 전 세계인을 향해 확대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30년 후에도 지금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때 방향을 잘 잡았다' 하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는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차 만일결사 중 1차 천일결사는 그런 준비를 좀 더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1차 만일결사의 마지막 시기에 이미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을 했기 때문에 온라인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이든 물적 자원이든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중 1차 천일결사의 절반이 지난 지금, 우리가 처음 세운 목표를 기준으로 다시 우리의 활동을 평가해 보면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거의 정체되어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다른 단체들도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창립할 때부터 변화하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단체들도 전반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정토회도 정체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한 평가가 아닙니다.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의 활동이 점점 축소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회의 한 추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그런 추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롭게 출발을 한 단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토회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이유
그런 면에서 온라인 방식의 도입이 정토회의 확산에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인력을 양성하고 자원봉사자를 확대해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정토불교대학 수업만 듣거나 온라인으로 법문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토회 회원이 되어서 수행, 보시, 봉사를 직접 실천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을 양성하기에는 온라인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오프라인 방식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사람이 만나서 체취를 느끼고,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경험하면서 따라 배우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방식은 모니터 스위치를 꺼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태가 되니까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제대로 운영하여 한 개의 정토회 본부 지부 규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양성된 인력이 건물 관리도 하고 여러 사회 활동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을 하게 되면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본래의 취지에 맞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지금의 정체된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검토해 봤으면 합니다.
현재 정토회의 모든 회의와 교육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온라인 방식에 적합하게 회의와 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지에 대한 검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 오긴 했지만, 온라인의 특성에 맞도록 재설계를 하는 부분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부가 애초에 온라인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물론 많은 연구를 했으나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온라인 방식에 적합하게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는 다른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의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일반 기업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여력이 부족하여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라인 정토회가 단순히 오프라인 활동을 온라인으로 옮긴 것을 넘어서 온라인에 적합한 교육 방식, 조직 운영 방식, 실천 방식으로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진정으로 온라인 정토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정토회를 보다 더 온라인 방식에 맞게끔 만들어가는 일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선뜻 추진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추진하는 주체인 우리들이 온라인 방식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온라인 방식의 미흡한 점을 오프라인 활동으로 보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온라인 정토회를 후퇴시킨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일부분은 오프라인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활동가들이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나서 새롭게 하고 있는 일들이 많은데, 여기에 오프라인 활동을 보강하는 일까지 더해진다면 업무 과중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이런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면, 곧바로 전체를 바꾸기보다는 오프라인 방식을 보강하는 TF팀을 꾸려서 실험적으로 일부분만 적용해 보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가기 위한 준비
지금도 여러분의 일상은 업무로 꽉 차 있고, 일상이 너무 바쁘다 보니 정토회의 미래에 대한 기획과 설계를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제가 일선에서 조금 물러나 세계 전법과 JTS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탐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JTS 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 보니 세계 전법은 더 이상 미국, 영국, 유럽 등 선진국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전법을 하려면 번역과 통역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 덕분에 번역과 통역에 어려움이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잘 활용하여 세계 전법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또한 세계 전법이 확대되어 외국인들이 한국 정토회를 찾아오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연수 시스템도 갖추어야 합니다. 결국 세계 전법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 정토회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 측면에서 좀 더 자리를 잡아야 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 개발에도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지난 상반기 동안 불교대학, 경전대학, 행복학교를 운영하면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6·13 만인대법회를 준비하느라 우리 모두가 온 힘을 모았습니다. 지난 정토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북한 동포 돕기와 빈 그릇 운동 등 정토회가 온 힘을 모아서 한 일은 그때는 굉장히 일이 벅차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 놓고 보면 그런 활동이 계기가 되어 정토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번 6·13 만인대법회도 당시에는 우리에게 큰 과제였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6·13 만인대법회를 기점으로 해서 정토회가 비약적 확산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을 일회성으로 한 번 하고 멈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정토회의 모든 일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도 오늘 합동회의에 참가한 여러분이야말로 정토회의 핵심 멤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 의해서 정토회가 유지되어 왔고, 앞으로도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이 일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해도 모두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낸 보시금이 그 일을 하기 위한 재정 자원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회의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세계 흐름 속에서 정토회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이고, 그 활동이 개인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관점을 가지고 정토회의 지난 사업을 평가하고 미래를 설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님이 개회를 선언하고 2024년 상반기 사업보고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처, 청년특별지부, 국제특별지부, 행복운동본부의 사업보고와 질의응답 시간을 연달아 가졌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 건의,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다음은 활동가 지원 시스템, 행복플랫폼, 6.13만인대법회에 대한 특별 보고를 하고, 수행, 전법, 실천을 위한 특별 정진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이어서 지부별 의제 토론 시간을 70분 동안 가졌습니다. 그사이 날이 서서히 밝아졌습니다. 지부별 의제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스님은 아침 7시부터 숙소 내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합동회의 참석자들이 토론한 결과를 서면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10분, 스위스 현지 시간으로 오전 8시 10분부터 스님은 다시 합동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먼저 하루 종일 회의에 집중해 준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보고를 받고 토론도 활발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정토회의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지부별로 논의했습니다. 이번 시간은 여러분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참석자들은 토론 과정 중에 생겼던 다양한 의문들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질문 뿐만 아니라 정토회 운영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들도 많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정토회 회원들이 어떻게 하면 더욱더 수행을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경전대학 졸업 후 정토회 회원에 가입한 사람들이 수행법회에 정착하기가 힘들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 법회 진행 방식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수행법회 후 소감 나누기만 하니까 참석자들로부터 뭔가 좀 허전하다는 반응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평화 행동을 정해 일주일간 실천하고 법회 후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니까 훨씬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것처럼 각자 수행 과제를 정해서 일주일 동안 연습해 본 후 그 경험을 수행법회 후에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일상생활에 대한 나누기를 하면 너무 늘어질 염려가 되거든요. 도반들과 수행 과제를 하나씩 정해서 나누기를 하면 그게 또 일상생활 나누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이 정토회의 정체기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데, 그 원인이 정진이나 수행적인 부분이 많이 약화된 데서 오지 않나 싶습니다. 봉사자들이 활동을 그만두는 이유는 뭔가 계속 소진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업무 속에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체험하게 되면 계속 활동을 해나갈 수가 있을 텐데, 그게 지금 안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닐 때 조금 더 수행에 대한 체험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사 과정을 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졸업 후 스스로 정진하는 데에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제안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스님이 이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수행법회를 어떻게 개편하면 좋을까요?
“수행법회를 개편하자는 제안들이 많은데, 수행법회를 어떻게 개편하는 게 좋을까요? 가령 법회 시간을 늘리면 시간이 너무 길다고 문제 삼고, 법회 시간을 줄이면 별로 들을 게 없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법회 시간도 짧으면서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49재를 지내는 방식 역시 전통도 살리면서 현대인의 요구에도 부응해서 누가 봐도 참신하다고 할 만한 방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행법회도 지금까지 해 온 기본 틀에서 어떤 부분을 조정하는 게 좋을지 연구해야 합니다.
법회 의식을 간소화해서 대중의 요구에 맞춰가다 보면 확산은 되는데 수렴이 안 되는 결과가 빚어집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따랐을 때 과연 정토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백일 출가를 하려면 만 배를 해야 하고, 불교대학도 졸업해야 하고, 깨달음의 장도 수료해야 합니다. 이렇게 장벽이 높다 보니까 입재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장벽을 낮추면 어떻게 될까요? 장벽을 낮춘다고 입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설령 입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장벽들을 넘고 온 사람들처럼 삶의 변화가 일어날까요?
이렇게 토론을 하다 보면 이런 우려, 저런 우려 때문에 논의가 중단이 됩니다. 또 문제를 제기하면 토론을 하다가 여러 가지 우려를 고려하여 다시 논의가 중단이 됩니다. 그래서 전통을 지키는 방식과 현실에 맞게 변경하는 방식을 교차로 해보면서 사람이 얼마나 모이고 진행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함께 검토해 보자는 의견이 새로 나왔습니다.
그것처럼 수행법회 운영 방식도 연구를 많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운영에 쏟는 정성에 비해 수행법회 운영에 쏟는 정성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불교대학 학생들을 챙겨주는 것 이상으로 수행법회를 듣는 회원들도 챙겨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지회장과 모둠장이 불교대학 입학생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에 많은 힘을 싣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원들 중에 책임 봉사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교육도 더욱더 안정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심포지엄에 참가해야 해서 스님은 질의응답까지만 받고 합동회의에서 나왔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곧바로 심포지엄 장소로 내려갔습니다. 오전 심포지엄에서는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인류학자이자 활동가인 안나 셀린 좀머펠트(Anna-Céline Sommerfeld)가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관계로서의 죄' 를 주제로 우리가 맺고 있는 경제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부채 관계인 우리의 관계를 다른 유형의 관계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맺고 있는 경제적 관계가 대부분 '채무 관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채무 관계'란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관계처럼, 서로가 빚지고 빚을 받는 식의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연조차도 돈으로 환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채무 관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대신, 서로 돕고 의지하는 돌봄 관계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녀는 라오스와 인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수익도 함께 나누며 살아갑니다. 이를 통해 채무 관계를 넘어서서 서로 돕고 책임지는 돌봄 관계가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발표 후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청중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만든 합창단이 12년 동안 서로를 돌보며 활동해 온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돕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좀머펠트 (Sommerfeld)는 "상대방의 상처와 필요를 알아보고 배려하는 것은 돌봄의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다른 청중은 권력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묻기도 했습니다. 이에 좀머펠트는 인도의 공동 경작 농장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모두가 함께 일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개인의 소유가 없는 형태로 운영되는 농장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운영되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청중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도 채무 관계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가 성공해서 부모의 노후를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좀머펠트는 "부모와 자녀, 선생님이 함께 논의하며 운영하는 유치원과 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돌봅니다. 이는 모두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청중 중 한 명은 이 대화를 듣고 벌떡 일어나 의견을 말했습니다.
“할머니 입장에서 말하겠습니다. 모든 부모와 조부모들이 가야 할 길은 아이들을 돌보고 보호하다가 언젠가 때가 오면 아이들이 다른 인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놓아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구 기후 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청중은 선진국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서양의 선진국 인구 10억이 탄소 배출을 해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 것은 후진국 인구 70억에게 빚을 진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빚을 돈으로 환산하면 모든 선진국의 1년 치 총 생산액을 모두 후진국에 주어야 마땅합니다. 선진국이 자연을 파괴하고 70억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앞으로 강연할 때 이런 권력의 불균형을 날카롭게 언급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좀머펠트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그러한 충격적인 발언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웃으며 답변한 후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발표 내용과 청중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수첩에 메모하며 심포지엄에 집중했습니다.
다음은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불어 및 비교문학 교수인 토마스 훈켈러(Thomas Hunkeler)가 “죄와 수치심”을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훈켈러 교수는 에르노의 작품들이 그녀의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전 심포지엄을 마치고 스님은 박후남 님과 함께 숙소 밖으로 걸어 나가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스님은 박후남(Hoo Nam Seelmann) 님과 다음날 예정된 심리학자 피셔(Annette Fischer) 박사와의 대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후남 님은 스님께 몇 가지 주요 질문을 소개하며 대담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후에도 심포지엄은 계속되었습니다. 마르크 체스니(Marc Chesney) 취리히 대학 교수는 '금융 부문에서의 부채 문제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체스니 교수는 현대 금융 시장을 '카지노 경제'라고 비유했습니다. 이는 금융 시장이 마치 카지노처럼 위험과 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이 글로벌화, 디지털화, 그리고 지나친 금융화로 인해 부와 이익이 극히 일부에게 집중되는 문제를 초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체스니 교수는 최근의 금융 위기를 언급하며 이런 문제들이 단순히 경제적인 위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문제는 단순히 돈과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체에 걸쳐 불공정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금융 시스템이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금융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지나친 부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며,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출판인이자 큐레이터인 게르하르트 요한 리슈카(Gerhard Johann Lischka)가 죄와 속죄의 관점에서 역사와 법을 어떻게 탐구해 왔는지, 예술적 표현을 통해 죄책감과 속죄의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었는지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노동자이며 철학자인 한나 라코미(Hanna Lakomy)가 성적 상황에서 드러날 수 있는 죄책감과 그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탐구를 주제로 아네테 피셔와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성노동자라는 직업에서 죄의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 노동자 노동조합과 인신 매매 근절 단체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에서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 과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제적 관계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재정의, 그리고 문학과 예술을 통한 인간 경험의 탐구에 대한 발표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성찰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내내 숙소에서 휴식을 했습니다. 어제 밤새 비행기로 이동한 여독이 풀리지 않은 데다 오늘은 정토회 합동 회의에 참석했는데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밤을 새어야 했습니다. 또 스위스에는 오후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한밤중인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충분히 휴식을 하여 건강을 회복한 후 내일 심포지엄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내일은 심리학 심포지엄의 마지막 날입니다. 스님과 심리학자 피셔(Annette Fischer) 박사의 대담을 끝으로 심포지엄이 막을 내립니다. 심포지엄이 끝나면 다시 취리히로 가서 한국 교민들을 위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