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1월 25일 필자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 딸, 며느리가 손주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산수연(傘壽宴)을 베풀어 주었다. 내 나이 벌써 여든 살 - 나이가 무
슨 자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를 마냥 숨길 수만도 없다. 어차피 남은 인생은 시간
을 꼽으면서 살아가는 여생(餘生)이니, 현실적으로 조물주의 순리를 따르면서 나날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겁게 지내는 것이 최상의 생활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10년 전 칠질연(七秩宴) 행사에는 나는 아들과 딸 둘 다 결혼하지 않은
미성(未成)이라 외국에 머무르고 있던 두 자식들이 코리아나호텔7층 글
로리아 홀을 예약하고, 거기에 따른 주찬 음식(酒饌飮食)과 부대(附帶)
되는 여러 소창(消暢)이나 몇가지 엔터테인먼트까지 마련하여, 아들 딸
그들 남매가 아비 몰래 나름대로 정성드린 조금은 거창한 연회(宴會)를
준비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미혼자(未婚者)는 부모의 칠질연(七秩宴)
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호통을 쳐서, 그놈들의 해외 근무지로 바로 쫓
아 보낸 것을 밝힌 바 있다.
일흔 살의 나이를 일컫는 한자어는 과거에 주로 쓰던 "고희(古稀)" 라는 말을
비롯하여, 현대에서 가장 일반적인 말인 “칠질(七秩)” 또는 "칠순(七旬)"도 필
자가 한번 상세히 설명하였다. 아울러서 “종심(從心)”, “불유구(不踰矩)”, “장
국(杖國)”, “노전(老傳)”, “치사(致仕)” 라는 말도 있는데, 필자는 그 말의 뜻과
따로 원전(原典)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80세를 일컬을 때, 일반적으로 우리말로는 보통 여든 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든 살 생일을 한자어로는 “팔순(八旬)" 또는 "팔질(八秩)” 이라는 일
반적인 용어 외에 "산수(傘壽)"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산수(傘壽)라는 말은 傘(우산-산) 壽(목숨-수)자를 쓰는데, 글자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傘은 人변에 10획을 합해서 12획으로 되어있는 글자
로, 傘을 파자(破字)하면 '팔(八)+십(十)' 이 되므로 80세가 된다는 것이다.
傘자는 人자 5개와 十(열-십) 1개가 모인 글자인데, 人을 八로 보아서 80으로
해석하였다. 아흔 살을 "졸수(卒壽)"라고 부르는 것도 卒(군사-졸)자의 일본식
속자(俗字)가 卆로 이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구(九) + 십(十)이 되어 90으로
해석한다. 보통 일본식 한자 속자로는 〈卒壽 → 卆寿〉라고 쓴다.
아울러 미수(美壽)=66세、희수(喜壽)=77세、미수(米壽)=88세、백수(白壽)
=99세 : 모두 같은 방법의 일본식 언어에서 들어와, 그렇게 해석하여 지내고
있는 나이에 따른 기념잔치이다. 특히 77세를 말하는 〈희수(喜寿)〉의 "기쁠-
희(喜)"자는 여러 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옛날에는 70세를 고희(古稀)
라 하여 일흔살을 살기도 드물었는데, 77살을 산다는 것은 대단히 장수하는
일로 생각하면서, 몹시 기쁜 일이었다. <희(喜)>를 속자로 쓸 때는 일곱-칠
(七)자 3개를 포개어 品자형으로 쓰기도 하여 희수(喜寿)는 77살을 가르킨다.
1950~60대에는 희극배우 김희갑(金喜甲)씨를 한자 파자(破字)로 써서 '칠삭
동이(喜)의 표본(甲)' 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6.25 전후 필자의 누나들 세대
는 여학교 시절 옷섶이나 베갯잇 등에 놓는 자수(刺繡)에서, 가장 좋아하면서
많이 쓰는 글자가 "기쁠-희(喜), 복-희(禧), 쌍기쁨-희(囍)" 혹은 "목숨-수(壽),
복-복(福)" 자였다.
♣ 傘<우산-산> 人+10=12획 ; 글자의 훈(訓)에는 뜻이 없고, 파자(破字)
하면 '팔(八)+십(十)'이 되므로 80 곧 여든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 壽<목숨-수> 士+11=14획 ①목숨. 수명 [春秋佐氏傳]人壽幾何(인수
기하); 사람의 목숨(수명)은 얼마나 될까? ②늙은이 [詩經]三壽作
朋(삼수작붕); 세 늙은이가 서로 벗이 되었다.
♠ 壽자를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속자(俗字)로 寿로 쓰고, 우리나라
에서도 그렇게 쓰기도 한다.
♣ 宴<잔치-연> 갓머리(宀)+7=10획 ; 잔치
이번 필자의 산수연(傘壽宴) 잔치에는 미국의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까지
모두 귀국하여 참석하였고, 밴쿠버의 딸은 돌도 되지 않은 손녀를 데리고
서울에 와 있지만, 사위는 학교에서는 잠깐 쉴 수 있어도 아르바이트(제2)
성 일자리인 병원에서 몸을 뺄 수 없어 오지 못했다. 많이도 아쉬운 일이지
만, 젊은이는 자신의 직장을 먼저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팔순 잔치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완전히 내 가족 중심으로 늙은이 내
외와 아들 딸, 며느리 그리고 친손 손자, 손녀 그리고 외손녀까지 같이 하니
흐뭇하기가 그지 없다. 요란시끌벅적했지만, 내용이 없어서 오히려 남모르
게 뇌리(腦裏)에 회한(悔恨)만 엄습해 오던 칠순잔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 때는 외형상으로는 화려하면서, 잔치 비용도 많이 들었고 하객(賀客)도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팔순이란 나이에도, 두 다리로 걸으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살고, 내 맘대로 보고 싶은 책을 보면서 내 의
견을 글로서 쓸 수 있으니, 이것이 정말 행복이 아닌가?
'산수(傘壽)' 라는 말의 뜻을 일본에서 해석한 바로는 병 없이 하늘이 내려 준
나이라고 표기돼 있다. 병이 없다는 말은 누워 있지 않고 움직이며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이해를 해야 할 듯하다. 나이 팔순인데 병이 없을
수는 없다. 아무튼 지금까지 살아 있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필자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팔순잔치라도 이번에는 내 가족만 모여서 조촐하면서 알차게 치렀다.
6살 짜리 큰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풍선이 하늘로 날아 오르면 5만원
짜리 지폐가 주렁주렁 달린 줄이 빠져나오는 게임을 하면서 말한다.
"할아버지! 20년 뒤에는 내가 돈 많이 벌어 가지고 먼나라 여행가게
해드릴게요. 오늘은 엄마 아빠에게 말해서 5만원 짜리 20장밖에 못
가져왔어요. 그것 가지고는 할머니하고 먼나라 여행 못 가죠? 내가
커서 돈 벌면 그것 10배 100배 드릴건데? 그때도 할아버지 우리하
고 따로 살 거에요?"
"그때는 할아버지는 죽어서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아."
"그럼 우리 옆에 안 계시는 거요?" "그럼, 할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어"
"그럼 할아버지를 제가 먼나라 구경 못 시켜드려요? 아이구, 속 상해.
으응 어엉, " (속 상하다고 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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