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처음 게임방에 간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난 아직도 그날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아침이라 한산했고 딱 한 명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마이러브라고 부르는 화상쳇팅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며칠 씻지도 않았는데 머리와 얼굴엔 개기름이 줄줄 흘렀고, 얼굴은 창백했고, 테이블엔 담배꽁초와 먹다 남은 과자
라면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소위 말하는 폐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인터넷에 로그인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도와주었다.
"병신, www도 모르냐? 요즘 애새끼들은" 이라며 친절하게 www.daum.net를 쳐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를 기억하고 다음을 기억한다.
2.
첫 게임은 가디우스였다. 당시 동접자가 1500~2000명 사이의 아주 작은 게임이었다.
난 통영에 살았는데 거의 동네 게임 수준이었다. 게임하다 문제생기면
"야이 씨벨놈아 어느 게임방이야? 씨벨, 뉘기미..."
이렇게 친근하게 어느 게임방에서 게임하냐고 물어봤다. 당시 필터링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게임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초딩과 현피를 떴고 당당하게 승리했고, 전리품으로 녀석의 아이템을 갈취했다.
3.
고등학생이되지 더이상 가디우스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디아블로를 했다,
친구와 학교 끝나고 매일 4시간씩 꼬박 석달을 키워 80렙 소서러를 만들었다.
장비도 나름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친구와 함께 예전에 게임을 하던 곳에 갔다.
그곳에서 리니지 고렙 유저인 아는 형을 만났다. 그 형은 심심풀이로 디아블로를 한다고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형은 성혈의 성주였는데, 당시 한달 수입이 몇백만원이 넘었다.
나와 친구의 케릭을 보며 그 형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소서보다 아마존이 대세야"
그 형은 우리에게 아마존을 키우라고 했다. 90렙 찍는데 딱 여섯시간 걸렸다.
4.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게임하는 사람을 훼인이라고 불렀다.
게임은 좋지 못한거고, 꼭 안 좋은 녀석들만 하는 것이고,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은 폐가망신하는 지름길이었다.
뉴스에서 매일 같이 게임에 관련된 않좋은 사건만 떠들었다.
그러다 스타 프로리그가 생겼났다.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타를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
프로게이머.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는 게임을 이-스포츠 산업이라고 불렀다.
당시 나는 린2를 시작했다.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베타 테스트를 했었다.
대학 붙은 것보다 더 기뻤다. 난 서울대 갈 성적은 안 됐지만 서울대 붙은 것보다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심히 린2를 하는 나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프로훼이머.
6.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난 린2 성혈의 일원이었다.
렙도 낮고 장비도 없었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피케이를 했다.
욕을 하고, 마구 적혈을 죽였다. 그리고 공성이 끝나면 보상을 받았다.
그걸로 렙업을 하고 장비를 맞췄다.
어떤 혈원이 내게 물었다.
너 커서 뭐 할래?
그땐 열심히 게임하는 사람에게 꼭 이렇게 물었다.
너 커서 뭐할래? 평생 게임만 하며 살거야?
7.
군대를 전역 했을 때 내가 몸담고 있던 성혈은 패전해서 없어졌다.
새로운 혈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은 사냥터를 통제하고 레이드를 통제했다.
참고로 레이드가 뭐냐고 보스몹이 있는데 작게는 한파티(9명), 많게는 50파티(9*50)씩 꾸려서 대규모 사냥을 하는 거다.
처음엔 거기에 맞추어 사냥했다.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레벨이 높아질 수록 낮은 경험치와 보상을 주는 사냥터에 불만을 품었다.
그렇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여럿모였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500명이 넘는 혈맹을 만들었다.
중립연합.
성혈의 각종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8.
중립연합의 인원으로 쟁을 하던 나날이 있었다.
매일 같이 패전의 연속이었지만, 언젠가 이겨서 마음껏 사냥도 하고 레이드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 두 달째가 되었을 때
연합은 와해되었다.
핑계는 많았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에요.
현이나 잘하세요
찌질하게 뭐하는 건가요? 게임이나 하세요
내돈 내고 하는 게임 즐겁게 하려고 다른 서버 갑니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연합은 와해되고 나도 일반 중립혈로 돌아갔다.
9.
그 이후 난 꾸준히 생각했다.
어째서 중립연합은 질 수 밖에 없었을까?
어째서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에 저런 핑계를 대며 비난하고 힐책하는 걸까?
불확정설 원리라는 게 있다고 한다.
내가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 대상은 변한다.
예컨대 내가 전자를 관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전자를 건드려야 한다. 그러면 전자는 원래의 이동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운동한다. (넘버스라는 곳에 나오는 설명)
게임도 이런 불확정설 원리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게임을 나쁘게 보면 나쁘게 볼 수록 게임은 나빠진다.
그리고 그걸 플레이 하는 유저는 점점 나빠진다. 게임 따위를 뭐하러 진지하게 하겠는가.
게임은 게임일 뿐 깊이 빠져들지 마자!
10.
인터넷 시대다. 웹2.0시대다.
진중권 같은 사람들이 웹2.0이 어쩌구 하며 마구 부추겨 세운다.
내가 중학교때로 돌아가자.
아니 초등학교때로 돌아가자.
그땐 tv가 나쁜 녀석이었다.
그리고 중학교땐 인터넷이 나쁜 녀석이었다.
인터넷은 가짜였다. 짝퉁이었고, 허상이었다. 다들 그렇게 교육 받았다.
인터넷은 사기꾼이 많다. 다들 사기꾼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도 많다.
현실도 사기꾼이 많다. 다들 사기꾼이다. 현실을 이용한 범죄도 많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
웹 기반 시대다. www는 더이상 낯설은 단어가 아니다. www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www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안다.
이제 인터넷은 모든 사람의 생활에서 빠질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생활 기반은 현실에서 인터넷으로 옮아간다.
산업화 초기 도시로 간 많은 농민들은 도시민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범죄율을 높아졌다. 왜냐하면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기 때문이다.
인터넷 범죄율도 꾸준히 증가한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난 핑계 대며 약삭빠르게 빠지는 건 상관 없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 맥빠지게 하는 건 너무 싫어요. 하앍. 언젠가 찾아온 정의와 평화를 위해 오늘도 투쟁하러 가야겠군.
TV가, 인터넷이, 도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쁜 거지요.
저는 그 좋은 인터넷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팔아버렸습니다. 이용하는 제가 나쁘니까요. 인터넷도 끊어버리고 싶은데 12만원 물어야 한데서, 최대한 집 밖으로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