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사전투표, 할까 말까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요즘, 1960년의 3·15부정선거 시위가 떠오릅니다. 당시 중2였던 나는 "부정선거 다시 하라"며 책가방을 들고 인천 시위대에 끼어 목청을 높였습니다. 4·19세대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요즘 우리 대선에 다시 부정선거를 공공연히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징조라고 봅니다. 사전투표 논란이 그렇습니다. 국민의힘도 지도부는 투표율이 높아야 야당에 유리하다며 사전투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반면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 등을 역임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사전투표 반대 운동을 벌이며 공명선거를 감시할 5만 명의 행동 요원을 모집 중인데 아직 3만여 명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부정선거를 막자는 목표입니다. 국민의힘 당원인 황 전 대표는 재검표 현장 여러 곳에서 직접 찾아낸 증거들을 토대로 2020년 4·15총선은 부정선거였다며 그게 사전투표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공안검사로서 13대 총선에서부터 누구보다 부정선거 사건을 많이 수사했다고 자부하는 황 전 대표가 허튼소리를 할 리가 만무하죠.
주목할 것은 이런 기류 속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기선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고위 원로들이 중앙선관위를 찾아가 공명한 대선 관리를 촉구한 사실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원로들은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에게 선거 홍보 문구의 편파적인 판정 논란 등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작년 서울·부산 시장 등의 4·7재보선 때 야당의 ‘내로남불’ 문구는 특정 당을 연상시킨다고 불허하면서 어용방송인 tbs의 노골적인 ‘#1합시다’는 허용했죠. 원로들은 야당 지지자들의 사전투표 거부 움직임도 전달했습니다.
사전투표는 조작 시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하지 말자고 합니다. 반드시 당일 투표를 하되 그것도 투표지를 먼저 여러 번 접은 뒤에 펴서 도장을 찍어 전자 개표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수개표로 유도하자는 것이죠. 또 투표지에는 투표 지역이 분간되는 투표관리관의 사인(私印)을 요구하라는 겁니다. 전면적인 수개표도 촉구합니다.
전자 투개표(electronic voting system)는 집계가 빠르지만 오류도 있어 한국산 전자 투개표기는 콩고, 이라크,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트럼프 정권에서 대선주자로도 꼽혔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2018년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콩고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신뢰할 수 있고, 검증되고, 투명하며, 결과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용하기 편한 종이 투표를 위해 전자 투개표기 사용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은 전자 투개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콩고 민주화운동 단체인 ‘루차(LUCHA)' 소속 콩고인들은 한국산 전자 투개표기 사용을 반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정보통신 대국인 일본도 전자 투개표와 거리가 있죠. 투표용지는 우리 선거처럼 사람 인(人)자가 들어간 동그라미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고 공직선거법 46조에 따라 지역구는 후보자 한 명의 이름을, 비례대표는 정당명을 투표지에 연필로 써서 투표합니다. 기표한 투표용지의 후보별, 정당별 분류는 자동화했습니다. 어느 일본 시사평론가는 왜 투표지에 이름을 써야 하느냐고 한국인들이 물어본다는데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고 합니다. 당선시킬 사람의 이름 정도는 자필로 쓸 수 있어야 민주주의의 원칙에 더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3·15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려고 부정선거를 자행한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이듬해 5·16 혁명재판부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국민에게 큰 부정선거의 상흔을 남겼습니다. 잊고 살았던 부정선거가 요즘 시대에 가능하냐고 낙관론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중앙 통제가 가능한 양날의 칼이죠.
의심하는 사람들은 21대 총선에서 여야가 팽팽했던 당일 투표 결과와 너무 다른, 여당의 일방적인 사전투표 압승은 어떤 민의였나,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야당 중부권 광역 단체장 후보들의 득표율 35.x 퍼센트는 뭐냐고 묻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은 180일 이내에 판결하도록 명문화한 법을 어기고 120여 곳에서 제기된 총선 소송에 왜 한 건도 판결을 못 내리는지 의심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컨디션이 나빠 코로나19에 걸리면 투표를 못 할까 걱정해서 사전투표한 것을 후회합니다. 투표지부터 두껍고 좀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 소독제 바르고, 비닐장갑 끼고, 신분증 꺼내고, 마스크를 내려서 얼굴 보여주고, 정신없이 투표하다 보니 선관위원장의 도장이 제대로 찍혀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어 투표장에 되돌아가 직원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비례 의석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을 지냈고 지금 공명선거 투쟁을 열심히 전하고 있는 공병호 박사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 김기현 원내대표가 사전투표 독려하고 나섰습니다. 국민의힘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11시간 동안 실시한 결과 응답자 3만 9,000여 명 중 88퍼센트가 ‘사전 투표 조작에 대해 무지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답변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 확진 증가에 따른 올바른 행동’, 즉 독려 찬성 응답은 9퍼센트에 불과했답니다. 사전투표는 3월 4일과 5일 진행됩니다.
TV조선도 사전투표 참여 의향을 물은 결과 “이재명 후보 지지자는 29.8%가 하겠다고 했지만, 윤석열 후보 지지자는 11.2%에 그쳐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수준으로 확산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도 드러났다”고 2월 14일 보도했습니다.
총선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특보였다고 야당이 문제시한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임기가 끝났는데도 평 선관위원으로 눌러 앉히려다가 최근 전국 2,900여 명의 선관위 공무원들이 반발해 사퇴했습니다. 야당 몫 선관위원도 공석이죠. 공명선거가 이루어지나요. 대선결과가 무서운가요. 중립내각 요구를 거부한 채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이 여당입니다. 전국 11만 지방 공무원들은 수당이 적다면서 개표 업무를 거부한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공백을 누가 메우나요.
우리나라의 전자 개표는 의무조항이 아니라 가능 조항이라고 합니다. 민의를 존중한다면 수개표를 해야죠. 사전 투표 여부는 개인 사정과 국익과 민주주의의 수호 의지를 고려하여 각자가 판단할 몫입니다. 잊지 말 것은 대선은 국가의 대표 일꾼을 뽑는 것이고, 그가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이냐의 포부를 선택한다는 것이죠. 서 있는 발판이 흔들린다면 제대로 미래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나라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인 원전 폐쇄나 각종 선거 부정 의혹을 비롯한 국기문란 불법 청산은 누가 반대하고 찬성하든 새로운 대통령의 과제가 될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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