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지금은 깰 때입니다. 새벽이슬 맞으며 네가 맡은 본분을 다하여라!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사 아들 못 낳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라헬에게 요셉을 잉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삭은 40세에 장가를 들었고 20년 후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에서가 이방인인 헷 족속 여인에게 장가든 것을 리브가와 이삭이 근심하여 야곱은 외조부 집 가문에서 장가를 들라고 합니다.
야곱은 장가가서 7년 동안 8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면서 사랑하는 라헬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대하던 라엘에게서 요셉을 낳았으며 부끄러움을 씻어주셨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태복음 2:18)
라헬이 그 세월을 통곡으로 보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늦게 난 자식을 사랑하여 요셉에게는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라헬은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는 슬픔, 고통대신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베냐민으로 바꿨습니다.
요셉은 17살에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여 미움을 삽니다.
곡식의 단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경배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부모까지도 너를 공경하냐고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세겜으로 형제들이 양을 잘 치고 있는지 보러 갔더니 도단으로 형제들은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꿈꾸는 자가 오는구나 하면서 죽이려고 하자 르우벤이 피를 뭍이지 말자고 제안하여 웅덩이 속에 버리려고 하였던 것을 은 20냥에 미디안 상인에게 팝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일 때 숫염소 피로 속였던 것을 똑같이 아들들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었으며 보디발의 아내의 질투를 받아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자 모든 것은 요셉의 손에 달렸습니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흥왕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나 개인이 복을 받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집무실에서 유혹을 하였으나 어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를 하냐고 합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교도소에 잇을 때는 교도소장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디가도 인정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로의 신하 두 사람이 들어왔는데 꿈을 해석치 못하였습니다.
술관원장에게는 싹이 나고 열매가 나는 것을 보고 풀려날 것을 떡관원장의 꿈은 떡을 새들이 쪼아 먹으므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풀이를 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복직하면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였지만 술관원장은 잊어버렸습니다.
2년 뒤에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못하자 술관원장이 이 일을 기억하여 왕에게 알리고 그 꿈을 해석해 줍니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창세기 41:26∼27)
바로의 유명한 고백을 듣습니다.
<창세기 41:38∼39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그리고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애급을 다스립니다,
양식이 떨어지자 애급으로 양식을 구하러 형들이 옵니다,
그리고 스파이지? 너희들의 아버지와 동생들에 대하여 묻습니다.
양식이 떨어지자 왜 막내아들이 있었느냐고 하지만 막내 동생을 데려오지 않으면 양식을 안 준다고 하여서 야곱을 설득하여 막내아들과 함께 애급으로 갑니다.
요셉은 순서대로 앉히고 양식은 베냐민에게 다섯 배나 더 주었습니다.
히브리말로 통역을 시켰지만 요셉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곡식을 자루에 담아 보내면서 은잔을 베냐민 자루에 숨기게 하고 다시 잡아옵니다.
창세기 45:1절∼5절까지 방성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형들이 미안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5)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살아가는 신적사관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총무를 하거나 감옥에서도 총무를 맡아서 일을 잘 하였습니다.
애급어 공부도 하였을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세 번째 본향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요셉은 죽어서 자신의 뼈까지도 가나안 땅으로 옮기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인생의 결국은 애급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별 볼일 없는 삶을 살다가도 오메가 포인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성공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본향을 꿈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산 우리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억울하기로 따진다면 요셉 특히 예수님보다 더 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의 몸에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생생한 것들을 꿈꾸어 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