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목이 뻣뻣한 백성
소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불법 계엄으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하마터면 북한과 무력 충돌까지 일어날 뻔했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지. 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미국 국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정말로 변하지 않거나 변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느님이 당신 말씀을 안 듣는 이스라엘을 두고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하셨는데(탈출 32,9),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사람이 그런 피조물인가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진리라고 우기고 믿는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설교다. 당신 말씀을 안 들으면 벌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졌으니 그리로 들어오라는 초대다. 뉘우치고 통회하라는 게 아니라 다른 길로 가라고, 삶을 바꾸라는 호소다. 회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이자 선교 사명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회개하기를, 당신이 주신 계명을 지키기를 바라시고 또 일하신다.
한낱 사람을 구세주 하느님이라고 믿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그건 예수님도 인정하셨다. 그 대신 당신이 하시는 일들은 믿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율법도 글자도 모르는 그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다가 그분 설교를 듣고는 그냥 돌아왔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 그분에게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함을 느꼈던 거다. 예수님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 저주받고 태어났다고 여겨졌던 그 사람도 예수님을 의심하는 바리사이들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요한 9,30-33) 그분이 구세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하느님의 사람, 최소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건 그분이 자신에게 해주신 일로 드러났다는 증언이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정말 바꾸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묵상에서 예수님,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를 두고 하느님과 안전한 거리를 두고 사는 편리한 삶을 선택했다고 표현했다. 예수님이 율법을 파괴하신다고 여겼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제자요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하느님 말씀을 삶의 첫 자리 혹은 생의 중심에 두지 않는 거 같다. 예수님과도 별로 친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친밀감을 광신이라고 또는 종교에 빠진 거라고 말하곤 한다. 어쩌면 그분과 친해지면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될까 봐, 가진 걸 다 잃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순교자들을 기억하면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하느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 것을 잃게 될까 봐 예수님과 친해지지 못하는 걸 거다. 나는 나쁘거나 사악하지 않다. 어쩌면 목이 뻣뻣하다는 하느님 말씀도 겉으로는 고집스럽고 오만하지만 속으로는 바꾸고 싶어도 바뀌지 않는 어떤 딱딱한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뜻일 거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무의식이 지배하는데, 말 그대로 의식하거나 알아채지 못한 채 말하고 행동한다는 거다. 내 무의식은 너무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라서 열어 보거나 그것들과 마주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려는 마음 간절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일 거다. 2천 째 같은 책, 복음서를 읽고 같은 기도를 죽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 오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다. 좋아도 너무 좋아서 그저 믿을 수밖에 없는 하느님, 그분이 다스리는 공동체에 속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 속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뻣뻣한 목을 숙이고, 완고하고 무딘 마음을 부드럽고 순하게 만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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