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시월에
시월이 가는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다. 카풀로 동행하는 지기는 축구 동호인들이 멀리 광양까지 이동해 친선 경기를 갖는다고 해서 평소보다 거제로 떠나는 시간을 늦추었다. 이른 아침 전날 다녀온 산행기를 남기고 아파트 뜰로 내려가 꽃을 가꾸는 초등 친구를 만나 근황과 안부를 나누었다. 친구가 아파트단지에 정성 들여 가꾼 화초들은 서리를 맞은 가운데 막바지 정염을 토했다.
친구와 헤어져 아침나절 산책으로 용지호수를 찾았다. 아침 햇살이 번지는 호숫가 산책로에는 볕을 쬐며 걷기에 몰입한 사람이 더러 있었다. 호수 수면을 덮은 연잎과 가장자리 수초들은 시들어 갔다. 호수를 에워싼 벚나무를 비롯한 여러 조경수들을 단풍이 물들어 갔다. 호숫가 안전 펜스에는 문인 단체에서 내건 걸개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시화가 아닌 작가들의 수필 구절이었다.
용지호수를 한 바퀴 두른 뒤 성산 아트홀로 갔더니 전시실은 경남미술대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미술 영역에서 작가들의 혼이 담긴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여름 교직에서 퇴직하고 곧바로 문인화 화실에 수강생으로 등록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서예에 입문한 적 있었는데 문인화에서도 짧은 기간에도 재능을 발휘했다.
1층과 2층의 전시실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고 야외 광장으로 나가니 가을이 도심 한복판에 찾아와 있음을 확인했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는 갈색과 홍색의 알록달록한 단풍이 물들어 도심에서도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산 아트홀과 인접한 용지문화공원에서도 여러 조경수들은 단풍이 물들어 갔다. 특히 은행나무는 서리를 맞은 이후 샛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니 눈이 부실 정도였다.
용지문화공원에서 관공서가 밀집한 중앙대로 보도를 따라 걸었다. 대로 보도 가장자리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목들이 가로수로 심겨져 자랐다. 거리의 낙엽활엽수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니 황홀경이었다. 일요일이라 관공서거 휴무이니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량이 한 대도 없고 대로에 오가는 차량도 한산해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도청 뒤 멀리 정병산과 날개봉으로도 단풍이 엷게 물드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대로에서 창이대로를 건너 도청 뜰로 들어섰다. 도내에서 뜰이 가장 넓은 곳이 도청이다. 수형이 아름다운 여러 수목이 자라는 도청 뜰에도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우람하게 높이 자란 메타스퀘어만이 단풍이 늦게 물들어 청청한 잎을 그대로 유지했다. 메타스퀘어는 겨울 들머리 갈색이 되었다.
도청 동편 연못을 둘러보니 모과나무에 달린 모과도 노랗게 물이 드려는 즈음이었다. 경찰청과 도의회 사이를 지나 창원대학 동문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대학 캠퍼스는 인적이 드물었다. 벚나무는 진작 나목이 되었고 공학관 외벽에 붙은 담쟁이덩굴도 단풍이 물들어갔다. 자연대학과 예술대학에서 사회과학대학를 지나 학생생활관 앞으로 가니 청운지 연잎은 죄다 시들어 있었다.
창원대학 서문을 지나 사림동 주택지 천변을 따라 걸어 창이대로로 내려가니 정오에 이르는 가을 햇살이 따사로웠다. 퇴촌삼거리에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남산교회와 중학교를 지나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들어섰다. 아파트 뜰의 벚나무들은 내년 봄 피어날 꽃눈을 점지하고 낙엽이 모두 져 겨울을 날 채비를 마쳤다. 아파트단지 내에는 서리가 약했는지 은행나무 잎이 청청했다.
늦은 오후에 카풀 지기와 거제로 건너가면 달이 바뀌어 십이월이 된다. 십일월 첫 주를 거제에서 보내면 그곳 남녘 해안 산자락의 낙엽활엽수들도 단풍이 물들어갈 테다. 엿새 뒤 주말을 맞아 창원으로 복귀하면 도심의 거리는 낙엽들이 뒹굴 테다. 근교 산자락은 물론 도심까지도 가을이 깊숙이 침투해 수목들은 소신공양을 하지 싶다. 더 붙잡을 수 없는 시월은 이렇게 가고 있더이다. 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