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아닌 척 / 유은희
다른 색을 칠했다고 네 맘이 숨겨지겠니?
옆구리에 작은 벨까지 차고 안 기다린 척은
몇 번을 고쳐 채운 자물쇠 자국 좀 봐
이미 너도 흔들리고 있었잖아
ㅡ『수신되지 않은 말이 있네』, 애지, 2023.
감상 – 아닌 척 긴 척. 이때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일컫는 말이니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가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는 분명 그러하지만 진실이란 게 뚜렷하고 적확한 형태로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한 쪽이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오히려 불편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언제든 진실 편에 서려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헌신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어 왔다고 믿지만 그 반대편 사람들도 자신을 진실의 편이라고 믿고 사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자연스레 영향받고, 주변으로부터 지지받았던 쪽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 속에 살고 그것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신념으로 뿌리내리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자기 안의 마음조차 뭐가 뭔지 정리 안 되고 수습 안 될 때가 많은 걸 감안하면, 상대의 모호한 말 한 마디, 애매한 태도에도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진실에 가까이 있고자 하는 노력과 별개로 상대의 진실을 인정해주는 태도도 귀해 보이는 것이다.
유은희 시인의 디카시 「애써 아닌 척」에서 뜻밖에, 사는 방편을 읽게 된다. 사물과 상대의 마음을 깊이 읽어주고 속내를 들킨 대상을 유머러스한 말로 안아주는 풍경이 그렇다.
시인이 눈에 담은 것은 얼굴에 화장하듯 곱게 페인트칠한 대문이다. 꽉 닫힌 대문은 바깥세상의 추위와 피로가 들어오지 않도록 안팎의 경계에 있다. 그 대문으로 한때는 분주하게 드나들던 식구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것도 연상이 된다.
하지만 시인이 주목한 것은 “몇 번을 고쳐 채운 자물쇠 자국”이다. 주인이 바뀌어서 새로 달기도 했을 거고, 열쇠를 잃어버리고 연장으로 열쇠 경첩까지 떼어버리는 일도 있었을 것이지만 이는 건조한 접근이다. 그 많은 구멍 자국을 시인은 흔들리는 마음으로 읽는다. 흔들리는 마음은 대문으로 다가오는 사람과 관련이 된다. 밀고 당기고, 헤어지고 만나는 중에 가슴에 구멍이 나기도 하지만 기다림이 있을 때 대문은 낡아도 윤이 난다.
숱한 사연과 역사를 간직했을 대문에서 시인은 누군가의 기다림을 읽는 중이고, 페인트칠을 해가면서까지 “애써 아닌 척” 위장하는 마음을 밉지 않게 흔들어준다. 사는 게 단호하지 못해, 기다 아니다 못 박지 못하고 긴 척 아닌 척 모호한 것이 오히려 관계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생각컨대 시인이란 “빗장” 친 마음이 어느새 “눈발로 젖어드는 걸”( 「빗장」중) 헤아리는 사람인가 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