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이(萬積-亂) 난을 일으킴(1198년 신종 1년)
만적의 난(萬積-亂)은 1198년(신종 1년) 고려 무신 집권기에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노비 해방운동이다.
무신정변은 문무의 지위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신분 질서에 많은 변동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하층 계급은 집권 세력이 약화된 것을 이용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현저히 진출하였다. 특히 명종·신종 시대에는 각지에서 농민과 노비가 자주 난을 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목적이 뚜렷한 것이 만적의 난이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로서 여섯 명의 노예와 함께 개경의 북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공사노비들을 모아 놓고 난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
그는 무신정변 이후 천예출신으로 공경대부가 된 자가 많음을 지적하고, 왕후장상이 본래 씨가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연설하였다.
“ 왕후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의 고통만을 당할 수는 없다.
최충헌을 비롯하여 각기 자기 상전을 죽이고 노예의 문적을 불질러, 우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
이 선동적인 연설은 노비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하여 만적은 계획적인 반란을 꾀하여 궐기 방법을 정하고, 반란이 성공한 후에는 자기들이 집권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적의 연설을 듣고 있던 한충유의 노비 순정은 망설이다 이 사실을 주인에게 밀고하였고, 그리하여 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만적을 비롯하여 난에 가담하려 했던 공사노비 백여 명은 붙잡혀서 포대 자루에 넣어진 채 묶여 강물에 던져졌다.
만적의 난은 실패했으나 한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노비 해방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