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전
경주 불국사에 가면 무설전(無說殿)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건립된 이후로 오랜 세월 불교의 법회와 강학에 사용된 건물이지요. 학승들이 모여 경전을 강의하고 토론하며 불가의 가르침을 전파한 매우 중요한 건물인데 건물의 명칭은 무설전(無說殿)입니다.
풀이하면 '말이 없는 집' 즉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주고받는다는 의미이지요. 경전을 강의하고 토론하는 강당을 일컬어 말하지 않는 집이라고 하였으니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깨달음은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체득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말보다는 경험과 체험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 폭발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과도한 콘텐츠 및 언어에 노출되어 있어 정보 과잉과 소통 피로로 의사 전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우리에게서 깊이를 앗아갑니다. 공감과 경청이 필요한 세상에서 질보다는 양을 강제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보다는 짧고 피상적인 소통을 야기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밭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식물을 다룬다는 것은 한 번 잘못하면 그 개체의 농사는 망치는 것임에도 아버지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지요.
그 무언의 깨달음이 비단 농작물을 가꾸는 것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진실성이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이 많을수록 실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랑은 말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눈빛 하나 행동하나, 챙겨줌. 씀씀이가 동반될 때 깊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비언어적 요소가 언어적 요소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방법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것입니다. 경청(傾聽)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뚝배기보다는 장맛입니다. 오랜 세월 숙성된 것이 깊은 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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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이분은 아버지와 농사를 같이 지었다고 했는데, 나는 선친과 양계를 같이 했습니다. 워낙 밑천없이 시작한 양계라 빠다리라고 하는, 말하자면 닭 아파트 같은 것을 직접 지어야 했습니다. 한치 각목 네개로 기둥을 삼고, 기스리라는 폭 한치, 두께 1센티도 안되는 나무로 5층짜리 아파트를 지어야 했죠. 두께 1센티도 안되는 곳에 못을 박아야 했는데, 하도 하다보니 못질은 목수 뺨치게 하게 되더군요.
이분의 글을 읽으며 돌이켜보니 선친도 당신이 먼저 하나를 만들어 놓고 "지어라"라고만 하셨지 이래라 저래라 하시지는 않으셨네요. 물론 실수도 했죠. 그래도 아무 책망도 않으시고 당신이 고쳐놓으셨었네요.
난 왜 학생들 가르칠 때 그리도 책망을 많이 했는지........ |
첫댓글 선생님의 그 가르침 덕분에 오늘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