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첫날에
월요일로 시작된 십일월 첫날이다. 새벽녘 잠을 깨어 재방송 자연인을 시청하다가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간밤 저녁 씻어둔 쌀은 밥솥에 전원을 넣고 밥이 지어지는 사이 김치찌개를 끓였다. 시래기나물과 무짠지로 비빔밥을 비벼 먹고 설거지까지 마쳐도 다섯 시가 되질 않았다. 보일러 온수를 가동해 세면을 하고 여섯 시가 되어 와실을 나서니 골목은 어둠이 사라져가는 즈음이었다.
미명의 새벽하늘은 엷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가도 아침은 쌀쌀해 방한과 보온을 위한 차림을 갖추었다. 기온은 그렇게 내려가지 않아도 새벽은 추위를 느낄 정도라 모직 헌팅캡을 쓰고 가죽 장갑도 꼈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향했다. 추수가 한창 진행 중인지라 주말 이틀 사이 벼를 수확한 빈 논바닥이 더 늘어나 있었다,
들녘 한복판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걸으니 이른 시각에 산책을 나온 한 사내가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들판에서 바라보인 연초삼거리에는 엷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수월지구 고층 아파트에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고현과 옥포 사이 거제대로에는 날이 점차 밝아오니 오가는 차량의 통행이 늘어났다. 고현 터미널을 출발해 갯가 종점으로 달려가는 시내버스들도 운행을 시작했다.
들녘이 끝난 곳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라섰다. 조정지 댐으로 가두어진 냇물엔 북녘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온 고방오리들이 오글거렸다. 물에서 밤을 보낸 녀석들을 아침이 밝아오자 활기차게 헤엄을 치면서 먹잇감을 찾는 듯했다. 천변에서 알록달록 꽃을 피웠던 코스모스는 꽃잎이 거의 사그라져갔다. 무서리를 맞은 강아지풀과 달맞이꽃들도 잎줄기가 갈색으로 변해 시들었다.
천변 둑에는 이른 아침 산책을 나온 이들이 가끔 지나쳤다. 연효교에 이르러 세 갈래 갈림길에서 효촌마을 앞으로 갔다. 효촌교를 향해 올라가니 조정지 댐에 가두어진 냇물에도 고방오리들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겨울 철새로는 비교적 이르게 구월 초순 남녘으로 내려와 베이스 켐프를 차린 개리 네 마리는 냇바닥의 수초를 쪼고 있었다. 개리는 초식성이라 풀잎만 뜯어 먹었다.
연초삼거리가 가까운 효촌교에 이르러 다리를 건너 연효교로 되돌아왔다. 천변 둑에서 내려다보니 아까 고마리와 여뀌를 뜯어 먹던 개리는 냇물로 들어가 헤엄을 쳐 다녔다. 개리는 사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 없이 천연덕스럽게 잘 놀았다. 겨울을 나게 될 개리 네 마리는 연초천의 명물이었다. 고방오리보다 덩치가 컸지만 우아한 자태라 수중 발레를 하는 듯 경쾌하고 날렵했다.
냇물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개리를 뒤로 하고 연사천 둑길에서 연사마을 동구로 향했다. 미명의 새벽에 와실을 나서 1시간 남짓 걸린 들녘 산책을 끝내고 교정으로 들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줄지은 느티나무는 주말 사이에 물들었던 단풍이 낙엽이 져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쓸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만 월요일은 1교시부터 수업이 4시간이 든 날이라 마음을 거두었다.
앞뜰에서 본관을 돌아 뒤뜰 쓰레기 배출 장소로 갔더니 종량제 봉투에 음식 쓰레기가 있었던지 고양이가 찢어 내용물이 밖으로 흩어져 있었다. 청소 시간이면 내가 지도를 맡은 구역이라 아침마다 챙겨보는 곳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수습해 놓고 산언덕 절개지에 심어 가꾼 맨드라미꽃을 살폈다. 무서리가 내린 속에도 붉은 꽃송이는 불꽃처럼 솟아 늦가을 교정을 훤하게 장식했다.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실내등을 켜고 노트북을 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책상 위 놓인 달력에서 시월은 지났는지라 십일월로 바꾸어 놓으니 인쇄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셋째 주 목요일 수능일이 관심사였다. 수능을 치르고 십이월에 우리 학생들이 2차 고사를 보고 나면 올 한 해가 저물면서 겨울방학에 들게 된다. 이제 달력에서 한 장 더 남은 십이월마저 넘기면 내 교직은 … 2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