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180 / 공연 리뷰〛
정서로서의 화술과 표현으로서의 포즈의 아쉬움
공연예술극단 아홉의 <시계가 머물던 자리>
김 문 홍
극작가, 연극평론가
〚객석에서 180 / 공연 리뷰〛
정서로서의 화술과 표현으로서의 포즈의 아쉬움
공연예술극단 아홉의 <시계가 머물던 자리>
김 문 홍
극작가, 연극평론가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완성도가 뛰어난 희곡과 창의적인 연출의 극적 상상력에도 배우의 연기가 이에 따르지 못하면 연극 전체가 무너진다. 배우의 연기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확한 발성으로서의 화술이다. 화술의 기본은 호흡으로 인물의 정서 표현에 있어서, 단어와 구를 하나하나 띄어 읽는 것보다는 한 호흡으로 문장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정서 표현으로서의 발성은 감정이 점진적으로 고조될 때마다 구와 어절의 어미 처리는 하강보다는 상승의 어조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대본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어조로 발성해야 하는가, 겉으로 나타난 표면적 의미로서의 뜻도 중요하지만 대사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로서의 ‘서브 텍스트’ 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서브 텍스트는 보통 표정이나 시선. 제스처로서의 마임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또한 연극적 액션이 적은 잔잔한 희곡에서는 배우의 화술과 연기 표현으로서의 ‘포즈’(pause)의 세심한 배려가 절대적이다. 화술에서의 포즈도 중요하지만 연기 표현으로서의 포즈 또한 중요하다.
신생극단 《아홉》의 공연 <시계가 머물던 자리>(이시원 작, 박한솔 연출, 73분, 2024. 2. 23〜25, 나다소극장)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단원으로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이시원의 작품으로, 그의 이번 작품의 핵심적인 정서는 쓸쓸함과 그리움으로서의 정서로 나타난다. 연극적 액션보다는 인물의 심리 변화의 추이에 연출과 배우의 연기 표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 인물의 정서 표현으로서의 정확한 화술의 구사와, 서사 진행에 있어서의 ‘포즈’의 세심한 배려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 있어서의 배우들은 화술이 정확하지 못하고, 연기 표현에 있어서 포즈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해 희곡의 주된 정서인 쓸쓸함과 그리움이 잘 표현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연출로서도 서사적 흐름에서의 포즈와 템포로서의 극적 리듬이 세밀하게 계산하지 못하고 있어 극중 인물의 정서가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포즈는 또 그렇다 해도 인물의 심리적 정서가 잘 융합된 화술만 세심하고 정확하게 구사되었다면 작품의 주된 심리적 정조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포즈는 역할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중요하지만, 극중 인물에 감정 이입하는 관객의 관극 태도에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조에 못 미치는 연기
이 작품은 두 남매의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계 점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의해 두 남매는 학대와 불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어머니와 남동생 은수(탁현국 분)마저 가출한 채 누나인 소현(정수연 분)만이 아버지의 시중을 든다. 결국 아버지는 쓰러지고 은수는 시계 점포를 정리하고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 한다. 이 작품의 서사는 현재와 과거가 중첩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소현은 극중 인물과 화자의 역할까지 맡는다. 남동생 은수가 오랜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은수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위압감에 짓눌려 다시 떠나 버리고 소현만이 쓸쓸하게 남는다.
이 작품은 화술과 연기의 포즈 없이 진행되어 러닝 타임이 70여 분밖에 지나지 않는다. 화술과 연기의 포즈만 정확하게 계산되었다면 러닝 타임이 90분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관객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아버지라는 존재에 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장 안에서 성장했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쓸쓸함과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관객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었더라면 감동의 파문이 일었을 법하지만, 그러한 감정이입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서사의 골격만 전해지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로 서사의 추동력이 되는 누나 소현을 연기한 정수연 배우가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서에 적확한 화술과 대사 사이의 포즈, 그리고 서사 진행에서의 포즈만 정확하게 구사했더라면 작품의 주된 정서가 잔달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남동생 은수를 연기한 탁현국 배우는 그런대로 다양한 표정 연기와 연극적 액션으로, 포즈의 부재에서 야기되는 정서적 결핍의 정조를 어느 정도의 저항과 갈등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화술에서의 계산된 포즈와 연기 표현에 있어서의 포즈만 잘 구사했어도 인물의 심리적 정조는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화술과 연기 표현의 포즈가 쌓이고 쌓이면서 극적 리듬에 박차를 가하고, 감정과 정서가 추동력을 얻어 관객의 감정이입을 부추겼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이미 극본 분석 단계에서 장면과 상황에서의 심리적 포즈가 잘 계산되어 그에 상응하는 화술이 구사되었더라면, 이런 충체적인 난국은 면했을 법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연극적 액션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화술의 허술함과 심리적 포즈거 아느 정도 감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연극적 액션보다는 인물의 심리적 감정의 추이와 정서를 전달하는 진잔한 희곡은 화술의 입체적 변용과 포즈가 절대적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연극에서 탁현국 배우가 소현의 남동생 은수와 헤어진 소현의 연인을 함께 연기한 것 역시 아쉽다. 관객은 같은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인물에 쉽게 감정 이입하지 못한다. 소현의 연기는 다른 배우가 맡아 연기하는 것이 옳다.
이번 공연에서 화술과 포즈는 아쉬웠지만, 작품에 몰입되어 진지하게 연기한 두 배우의 태도와 자세는 진심이 묻어나와 좋았다. 그런 진심의 연기가 묻어나와 있기 때문에 아쉬움은 어느 정도 상쇄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 공연은 연극이 배우 예술이며, 배우의 가장 큰 덕목은 화술이라는 점을 깨우친 것만 해도 성공적이었다.
첫댓글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도
연출력이 이에 따르지 못하면
관객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화술의 기본은 한 호흡으로 문장을 표현해야 한다>
이 표현이 좋군요.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힘입니다.
또 어떤 무대는 연출력이 뛰어나지만
배우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출, 배우, 극본이 좋아야 하고
이를 본 관객의 감동이 있을 때
최고의 무대라고 할 수 있겠어요.
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