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시네마에서
'영화 같지 않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요. 주인공(신동주/신동빈)과 총제작(신격호)은 알겠는데 감독이 누구인지는 모르겠군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롯데그룹 내분이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업 막장 드라마나 음모와 괴계(怪計)가 난무하는 느와르를 보는 느낌이
들어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봉건시대의 패악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롯데그룹은 지배구조가 특히
복잡합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특이한 구조에다, 직원이 3명뿐인 초미니 회사(광윤사)가 지주회사의
대주주이고, L투자회사로 지칭되는 정체불명의 회사가 지배구조의 정점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업집단 내 순환출자 고리도 416개나 돼
미로처럼 얽혀 있다고 하는군요. 이에 더해 그룹 수뇌부인 핵심 친족과 전문경영인이 이해득실에 따라 엇갈리고, 방송을 통해 막말 비방과 저질
폭로전을 펼쳐 관전자의 눈을 어지럽게 합니다.
재벌그룹 내 진흙탕 싸움은 많은 역사인문학적 코드를 품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이긴 하지만요. ‘카인과 아벨(형제 살해)’ ‘카노사의 굴욕(석고대죄)’ ‘왕자의 난(골육상쟁)’ ‘상왕 유폐(노인 학대)’ ‘루비콘강
도하(사생결단)’ '태풍의 눈(롯데호텔 신관 34층)'…. 형제 간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칠보시(七步詩)’도
생각납니다.
한(漢)의 승상 조조(曹操)는 시문에 능한 셋째 아들 조식(曹植)을 총애합니다. 조조가 죽은 후 제위를 이어받은
큰아들 조비(曹丕)는 같은 어미(변태후)에서 난 동생 조식을 경계하여 일곱 걸음을 내딛는 동안 시를 한 수 짓도록 명합니다. 감성적이며 순발력이
있는 조식은 죽음을 앞두고 일곱 걸음에 시를 지어 깨우침을 줍니다. 이에 조비는 가책을 느껴 조식을 봉읍지로 돌려보내지요. 나중 조비는 신하들의
옹위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조식은 울화병으로 죽습니다.
당대의 빼어난 시인인 삼조(三曹, 조조조비조식) 중에서도 가장
문재기 뛰어난 천재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는 읽을수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절묘한 의인법의 풍유이자 삶의 이치와 도리를 에둘러 말하는
아포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음은 ‘칠보시’의 원문입니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는데(煮豆燃豆) 가마솥 속에서 콩이
우네(豆在釜中泣) 본시 한 몸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그리 급히 달구는가(相煎何太急)
과거 현대그룹을 비롯 다른
재벌사에서도 닮은꼴 불량사례가 있었지만, 롯데그룹 내분은 한층 유치하고 저열하여 재벌에 대한 의구심과 부정적 시각을 더욱 증폭하게 될 것입니다.
금번 사태가 어떻게 판가름날지 모르겠습니다. 이사진을 장악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유리한 형국이지만,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누가 조비고 조식인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이번 사태는 지루한 소모전 끝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아니 모두가 패자인 참담한
모양새로 종결될 것입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일 테고요.
재벌그룹의 추악한 민낯과 전근대적 가족 경영의
폐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퀭한 눈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허탈한 모습과 어눌한 말투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백화점과 식품, 소비재 산업이 주 산업분야라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편인 재계 상위 서열의 롯데그룹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껌이라면 롯데껌~” 해맑은 음색의 CM송이 허공에 헛되이 흩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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