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 가면 / 신정일
아무도 밟지 않은 길마다
눈 내리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퍼붓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휘젓고 지나갈 때마다
산자락에서 하얀 송홧가루 날리고
나무마다 하얗게 하늘 바라기를 하는
섬진강
강물이 여울져 흐르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강가에서
겨울의 소리인가 봄의 소리인가 모를
낌새를 느끼다가
적성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가
창구에 앉은 여자분에게 물었다
삼십 년 전인가
이십여 년 전이던가
맡겨둔 걸 찾으려고 왔습니다
똥그란 눈으로 묻는 여직원,
예금인가요?
아니요, 그리움입니다
잊으면 안 될 그리움을 맡겨두었거든요
그제야 빙긋이 웃던 그 여직원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ㅡ『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작가, 2023.
감상 – 위 시의 한 구절처럼 “겨울의 소리인가 봄의 소리인가 모를”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근래, 추위는 다소 눅어졌다 해도 날씨가 궂고 흐린 날이 이어진다. 영등할미의 심술이 일찍 시작된 것인지, 기후 변화 때문인지 그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영등할미에 관한 이야기는 근래 출간된 김준호의 『한국인의 고유신앙 영등 수목 칠성』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으나, 제주 여행을 꿈꾼다면 신정일의 『신정일의 신 택리지』 제주 편을 지참해서 해당 내용을 보고 움직이면 좋을 것이다.
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이기도 한 신정일 작가는 전국의 땅을 걸으며, 단순한 이 땅의 지리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일어나고 쓰러지고 이어지는 역사와 인물과 문화를 알리는 데 오랫동안 애를 써왔다. 특히 『신정일의 신 택리지』(10권)는 쉼 없이 걸으며, 보고 들은 것을 익히고 공부했던 수고의 결실이다. 시집을 냈는지 미처 몰랐는데, 표제시을 읽어 보니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내가 ‘아직도’라는 말을/ 사랑하는 까닭은/ 아직은 가야 할 미지의 곳이/ 섬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고,/ 걸어가야 할 길이/ 길길이 펼쳐져 있어서/잠시도 멈추지 않고,/ 아직도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중)라고 작가는 노래한다. 아직도는 섬이기도 한 것이다. 여러 섬 중에 사윤수 시인이 ‘언제라도’(강주 노래)를 으뜸으로 꼽더니, 이번엔 신정일 작가가 가슴의 온도를 높여주는 섬으로 ‘아직도’를 제일로 치는 것이다. 이처럼 등재되지 않은 섬을 하나씩 차지하고 주인이 되어버린 작가들을 보면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맘만 바빠진다.
시집『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엔 작가의 산문을 간결하게 줄인 듯한 시편도 있다. 산문에 비해 시는 서사를 절제하고 감정을 더해서 울림을 주는 효과가 있다.
나는 호남평야의 중심
두승산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옛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가던
삼남대로의 큰 고개인
갈재를 넘던 매월당 김시습 송시열
또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광해군과 추사 김정희
전주를 향해 진격하던 동학농민군과
불시착했던 화란인 하멜이 저 길을 걸어갔지
어디 그뿐인가, 차천자로 이름을 드날린
차경석이 살았던 입암산 아래 대흥리가
저곳이지,
-「두승산하(斗升山河)」 중에서
정읍에 있는 두승산 일대는 동학운동의 산실이다. 전봉준 장군의 생가 터가 있고, 동학운동의 계기가 된 만석보 터가 있는 곳이다. 작가는 자신이 쓴 택리지에서 동학운동의 끝을 이렇게 적어두었다.
“결국 삼례에서 2차 기포를 했던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완패하고 태인에서 공식적으로 해산하게 된다. 전봉준은 김경천의 고발로 다리가 부러진 채 들것에 실려 금강을 건너갔고 손화중 김덕명 성두환 등은 밧줄에 묶여 건너갔지만 김개남은 전라감사 이도재에 의해 목이 잘린 채 건너가면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의 함성이 결국 근현대사의 시작이 되었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과 보천교를 세웠던 차경석으로 그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다시 쓰는 택리지2』에서)라고.
증산교주 강일순과 강일순 뒤를 잇는 보천교주 차경석도 정읍 사람이다.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는 동학의 정읍 접주로 활약하다가 희생당한 인물이고, 차경석의 장남인 차일혁은 지리산 토벌대 대장으로 총격전 끝에 빨치산 대장 이현상을 잡았던 인물이다. 차일혁은 토벌 과정에서 상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화엄사 등 주요 사찰을 불 지르지 않았고 이현상의 장례도 예를 갖춰 치러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차씨 삼부자의 삶이 곧 근대사를 관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동학운동을 깊이 파고들었던 작가인 만큼 그의 다른 책에서 관련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을 줄 안다.
다시 「우체국에 가면」을 천천히 읽어본다. 시집에 실린 여느 시보다 낭만적이며 감성적이다. 작가가 들른 적성 우체국은 순창에 속해 있는 곳이다. 작가가 섬진강변을 답사하며 오르내리는 중에 들렀을 것이다. 작가의 고향도 섬진강 발원지로 언급되는 진안인데 인터뷰한 글을 읽어보니 초등학교 졸업 후 가출 경험도 있다. 자칭 타칭 일찍 ‘길 위의 인생’이 된 작가는 이삼십 년 전에 이곳 우체국에 들렀을 것인데 그때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상황의 차이를 재며 짐짓 그리움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행자의 이런 감회가 낯선 것만은 아니다. 다만, 시인은 조금 짓궂은, 다소 엉뚱하고 어쩜 싱겁기도 한 유머를 시도한다. 물론, 실패해도 크게 문제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상대를 빙긋이 웃게 했다니 모험은 성공적이다. 한순간 우체국은 ‘아직도’가 그러하듯이 예금 대신 “잃어버린 꿈”의 한 조각을 떠올려보는 섬이 된다. 겨울인지 봄인지, 눈가루인지 송홧가루인지, 그 사이를 비집고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걸어온 설렘이 이렇게 환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때로 어두운 상황, 아픈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도 오겠고 이를 수용하는 작가의 자세는 또 다를 테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무수한 길을 걷고 많은 책을 쓰게 동력이 이러한 낭만성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집 서문의 “길은 잃을수록 좋다. 더 많이 길을 잃고 헤매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이다”라는 말에서도 모험과 낭만을 사는 작가 정신을 만나게 된다. (이동훈)
첫댓글
멋져요
아름답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