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주렴개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가원관이불가설완(可遠觀而不可褻玩) 이는 연꽃이 연못 한가운데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가까이서 함부로 만지고 감상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린 예쁜 것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꺾어서 화병에 꽂아두기도 하지요. 짧은 시간 감상을 위하여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꽃은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모래를 손바닥에 올려두면 적은 양이지만 오래 간직할 수 있지만 욕심껏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고 맙니다.
아름다움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TV를 너무 선명하게 만들어 땀구멍까지 보이고 코털의 세밀함까지 보여준다면 결코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산에 피는 야생화가 그리 아름다운 이유는 적당한 거리에서 완상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색 찬란한 무지개도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습니다.
지나치게 친밀하여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단점이나 갈등을 보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치 고슴도치 사랑처럼 말이지요.
그림도 그러합니다. 멀리서 보면 세부적인 결함이나 불균형, 균열 등이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즉 가까이서 보면 거칠고 투박한 모습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어우러짐의 미학이 멋진 작품으로 보이니까요.
음악회에 갑니다. 가끔 지나치게 앞쪽에 앉을 때가 있습니다. 연주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으나 바이올린의 활을 문지르는 소리, 기타의 손가락을 튕기는 파열음 공연자의 들숨 등등 들리지 않아도 될 소리가 음악감상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시끄럽다면 어떤 사실 때문에 불편함이 있다면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면의 모습을 좀 더 잘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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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했죠.
거리를 둘 때 예쁜 것도 있고, 가가이서 자세히 볼 때 예쁜 것도 있겠죠.
문제는, 가까이 봐야 할지, 멀리 봐야 할지 분간 못하는 내게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