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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성명 |
이 민 규 | |||
학교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02학번 3학년 | ||||
주소 |
[363-883]충북 청원군 오창읍 각리 한라비발디 819동901호 | ||||
집전화 |
043-212-0116 | ||||
휴대폰 |
010-9797-3115 |
이메일 |
realmk18@hanmail.net | ||
인 맥 |
알고 지내는 현장의 사회복지사 목록(이름,소속, 연락가능한 전화번호,이메일) | ||||
① 노연선/좋은이웃(사회복귀시설)/016-813-2593 | |||||
② 강지연/충북재활의원/017-483-0321 | |||||
③ 이애란/괴산신기학교/016-617-1883 | |||||
④ 김현주/평화3000/016-432-5737 | |||||
⑤ | |||||
⑥ | |||||
⑦ | |||||
구분 |
기간/일시 |
내 용 | |||
학 력 경 력 사 항 |
1990.3~1992.2 |
청주교대부설초등학교 입학 | |||
1992.3~1996.2 |
청주 율량초등학교 졸업 | ||||
1996.3~1999.2 |
청주 율량중학교 졸업 | ||||
1999.3~2002.2 |
청주 운호고등학교 졸업 | ||||
2002.3~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입학 | ||||
연 수 훈 련 실 천 활 동 |
자원봉사/실습/동아리활동 경험 | ||||
2002.3~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밴드동아리 TON | ||||
2002.4~2003.12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방송부 KWBS 기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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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 |
청주 무심천 하드코어 펑크 레이블 가입(MF crew) | ||||
2004.6 |
Korea-Japan Oi Festival in KOREA 참가/스컹크레이블 | ||||
2004.7 |
Japan-Korea Oi Festival in JAPAN 참가/스컹크레이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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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학술소모임 회장 (English Speaking & Writing Club) | ||||
2002.2~2005.1 |
청주교구 내덕동주교좌성당 초등부주일학교 교리교사 -05학년도 교리교사회장 | ||||
2003.5-2003.12 |
도자기페인팅 자원봉사/한국도자기 | ||||
2002.5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행사보조(페이스페인팅)/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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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수 훈 련 실 천 활 동 |
특강, 세미나·웤샵·학술대회·연수· 캠프·수련회 참가경험, 현장견학 경험 | |
2002.2.28~3.3 |
제14기 교리교사연수/청주교구 | |
2002.7 |
초등부주일학교 여름신앙학교/내덕동주교좌성당 | |
2003.3.29~3.30 |
제12기 교리교사 레크리에이션 연수/청주교구 | |
2003.7 |
초등부주일학교 여름신앙학교/내덕동주교좌본당 | |
2004.7 |
초등부주일학교 여름신앙학교/내덕동주교좌본당 | |
2005.1 |
예비중학생 피정/청주교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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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점 자 원 자 격 면 허 |
2007.02.01 |
자동차 운전면허 1종 보통/충북지방경찰청장 |
2007.02.14 |
Microsoft Office Specialist (Miscrosoft PowerPointⓡversion 2002) /Microsof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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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기 광활 지원>
자 기 소 개 서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사회복지행정학과 02학번
이름 : 이민규
※ 작성요령 : 후배들, 학우들이 이것을 읽고서 남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지혜를 얻고 자극을 받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즉 읽는 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구체적으로 자세히 써 주십시오.
. 사회복지학과를 선택을 할 때에는 ‘아하’하면서 약간은 막연한 듯한 느낌으로 사회복지를 선택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민규는 나중에 사회복지를 한다고 그러더라’라고 아이들 앞에서 말씀하신 기억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어 그래도 막연한 느낌으로 사회복지를 선택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는 것을 제 스스로 인지합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무언가가 저를 아마도 사회복지의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주일학교를 통해서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게 되었고 여기서 접했던 경험들, 나보다 못 가진 사람들을 접해보면서 내가 과연 이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놀아주고 청소해주는 것 밖에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놀이가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고 저보다 가진 것 없이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배려해주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모습들을 접했을 때 이런 고마움들을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스스로의 힘으로 커왔다고 하면 정말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만큼 저를 이끌어 주고 인도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들의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감사해야겠다고 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만큼 베풀어 준다‘라는 생각으로 제가 받은 관심과 사랑을 사회복지의 길을 통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가치관을 먼저 말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의 가치관은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정말로 많은 일을 하면서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남을 기쁘게 해주는 일은 참으로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주는 것보다는 작은 것을 나눔으로써 나의 기쁨을 옆에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과거에 내가 했던 일들을 무시하고 생각할 수 없다고 봅니다. 아마도 성당에서 교리교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너무 좋았기에 청소년, 아동 복지 쪽에서 일을 하고 싶고, 또 해외교류사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실현가능하다면 세계일주를 하는 여행가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음악활동을 하는 것 또한 저의 꿈입니다.
-꽃동네 봉사활동
제가 다니는 학교가 꽃동네와 관련이 깊은 학교라서 입학 전부터 꽃동네에서의 봉사활동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꽃동네에서의 경험은 때로는 느끼는 것 없이 힘들기만 한 고단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침 일찍 고단히 환자들의 밥을 나르는 일을 시작하고 일요일 아침이면 좁은 화장실에서 허리를 숙이며 4-50명이 넘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들을 하루 종일 목욕시키는 일, 대변을 치우는 일 등등 하루해가 저물어도 안심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힘쓰는 일에 유독 많이 불려가서 일을 같이 하곤 했습니다. 꽃동네에 안가본지 2년이 넘었지만(군복무중) 어떠한 봉사활동을 하든지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저는 꽃동네에서의 봉사활동을 생각해보면서 ‘그리 어려운 일들을 해냈는데 이정도 쯤이야’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습니다. 면역력이 더욱 강해진 제 자신을 찾았습니다.
-성당 주일학교 교리교사
두 번째로 성당을 다니면서 초등부주일학교 교사회에 참여해 초등학교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때로는 고민도 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군입대하기 전 3년 동안 함께 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저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배웠고 그 순수함과 천진난만한 행동들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이번 여름 광활 사업이 저에게 있어서 더욱 뜻 깊은 이유, 그리고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이런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함께 놀며 광산지역사회복지를 같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일주일 동안 지친 고단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성당에 도착을 하지만 도착하는 순간 나를 즐겁게 반기는 아이들은 저를 더욱 힘이 나게 했고 나를 즐겁게 반겨주는 아이들은 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리교사회에서 행사가 있게 되면 항상 마이크를 잡고 아이들 앞에 서서 서툰 발음으로 사회를 보곤 했습니다. 한번은 신임교사 시절에 여름성경학교에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캠프화이어 시간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준비를 많이 못해 아이들이 실망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름성경학교 후에 선생님들과 평가회의를 하는 도중 캠프화이어 시간을 재밌게 진행하지 못한 제자신이 바보스러워 그만 울음이 나왔습니다. ‘내가 좀더 노력했더라면, 조금만 준비를 더 했었더라면 아이들이 좀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교리교사 3년째가 되는 해에는 교사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조직 내에서의 원활한 업무수행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 자체가 결단력, 책임감이 조금 부족한 저에겐 조금 무거운 직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신부님, 수녀님과의 의사소통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 꾸중을 듣는 와중에도 ‘사회에 나가보면 교리교사 생활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저에게 자신감과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아직 사회생활의 경험은 적지만 언젠가 제가 설 자리에서 교리교사를 통해 알게 모르게 습득한 것들을 발휘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각각의 경험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자기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1쪽 내외 분량으로 자세히 쓰되, 많이 쓸 내용이 없는 경험들은 모아서 간단히 쓰십시오. 후배들, 학우들이 이것을 읽고서 실습에 대한 자극을 받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즉 읽는 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써 주십시오.
광활이 저의 첫 번째 실습입니다.
5. 현장 견학 경험, 연수(세미나, 특강, 교육, 양성과정 등)에 참가한 경험
때와 장소, 주최기관명, 교육내용, 그곳에서 배운 점, 깨달은 점, 다짐한 점 등 자신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가급적 자세히 써 주십시오. 후배들, 학우들이 이것을 읽고서 외부 학습 활동에 대한 자극을 받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즉 읽는 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써 주십시오.
2002년도에 청주교구 14기 신임교리교사연수, 또 레크리에이션 연수 등 주로 성당주일학교활동에서 비롯된 연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레크리에이션에서 교육받았던 여러 가지 활동, 프로그램들을 주일학교 행사에 접목시키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워낙 제 성격이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땀 흘려 움직이는 율동과 포크댄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2003년도 초등부주일학교 여름수련회 때에는 제가 직접 율동안무를 만들어 만화영화‘피카츄’주제곡에 맞추어 아이들과 그리고 동료선생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적이 있습니다.
그 동안 연수나 세미나에 소홀한 제 자신을 반성하며 5월 한 달 동안 저희학교에서 매주 수요일 개최 될 사회복지 세미나에 참여해 볼 계획입니다.
6. 집 떠나 살아본 경험, 단체 생활 경험, 고생했던 일, 의미있는 추억들
이러한 경험들이 자신의 성장과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드러나면 더 좋겠습니다. 읽는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구체적으로 써 주십시오.
-음악의 시작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공격대”라는 펑크밴드에서 드럼을 쳤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말로 하고 싶었던 밴드활동을 정말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하게 되어서 정말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3년 동안 한 장의 데모 앨범과 2개의 컴필레이션 음반 작업을 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뿌듯했고 처음 녹음을 했었던 2002년 8월 경 긴장을 한 나머지 2곡 녹음을 하는데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마친 기억도 있습니다. 청주는 물론 서울 홍대, 신촌 주변의 클럽, 그리고 대전, 광주, 대구, 제주도에 있는 지방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2004년 여름에는 일본 스킨헤드, 오이 밴드들과 우리나라 오이 밴드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을 했습니다. 밴드활동을 하면서 해외에서 공연을 한다는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행운으로 즐겁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을 듯 한 소중했던 일이었습니다. 군 입대와 동시에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제대 후 공격대 멤버들과 다시 음악을 연주하고 있고 싱글 앨범을 발매 준비 중입니다. 지난 3월부터는 청주의 펑크밴드 99 Anger의 멤버가 되어서 지금까지 매주 주말에 서울홍대, 대전, 청주에서 활발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 생활
카투사를 지원했었는데 영문모를 낙방을 하는 바람에 시간에 쫓겨 재빨리 서둘러 지원했던 것이 의무경찰이었습니다. 해병, 특전사가 왠지 더 어울렸을 것 같은 제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된 일, 더 늦게 입대를 하게 되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의경으로 복무해 지난 1월에 전역을 했습니다. 추운 겨울 훈련소에서의 한 달 동안은 퇴소할 때 까지 기침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모포에 먼지도 많았고 건조한 내무실 때문에 감기가 쉽사리 떨어져 나가질 않아 잠자리에 들 때마다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힘들 몸을 이끌고 행군을 할 때 자칫 나를 생각하는 가족, 선생님, 여자친구를 생각하면서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흐트러짐 없이 훈련에 임했고 힘든 생각보다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화성경찰서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일경이 되면서 무전병이 되었고 군생활의 대부분을 인근지역 평택 대추리 K-6 미군기지에서 지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시작 된 철야경계 근무가 제 군생활의 반을 차지해버렸고 더운 날씨와 싸우느라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7.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
실명(實名)으로 자세히 써 주십시오. 이 글을 읽는 이가 ‘나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할 만큼 소상하게 써 주십시오. 중요한 영향을 준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도 소개해 주십시오
성당교리교사 옛 동료인 안기원 누나
정말 밝은 성격의 누나이고 제가 교리교사를 하면서 힘들어하던 나를 옆에서 많이 지지해주고 격려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아니지만 기원이 누나가 갖고 있는 마음씨나 아이들을 대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습니다. 밝은 성격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어 제가 옆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았던 사람입니다.
8.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자신에게 의미있었던 책과 작품들
본인이 직접 읽거나 보았던 전공도서, 논문, 자료집, 영화, 만화, 소설을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존경스러운 부모님 두 분의 만남으로 1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신니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시며 지금껏 많은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일상생활에서의 과학원리들에 대해서 저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곤 했었는데 제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린 탓에 고등학교 때에 과학점수가 시원치 않았습니다. 고지식하시고 엄하신 저희 아버지가 어릴때는 미운적도 많았지만 제가 커서 이제해보면 저를 엄하게 키워주신 것이 오히려 저한테 득이 된 것이 많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가족의 화목을 중시하십니다.
청주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저희 어머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미술지도 하시느라 집안일을 하시느라 또 누나들을 챙겨주시느라 항상 바쁘십니다. 저의 미술적 재능은 아마도 저희 어머니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자상함과 따뜻함이 생각나는 저희 어머니의 고마움을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요즘 그림 작업에 즐거워하고 계십니다.
저는 누나만 3명이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마다 ‘부럽다, 좋겠구나,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겠구나.’라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부정 할 수는 없지만 저런 소리를 듣기 싫어 저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집에서 청소, 설거지, 빨래를 제가 시간이 되는대로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큰누나는 지난 3월 ‘드디어’ 같은 직장동료와 결혼을 해서 신혼집을 꾸려 살고 있습니다. 제가 군 입대를 할 때 저희 큰누나가 30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희박했지만 그래도 ‘누나 결혼날짜 얼른 잡아서 동생 특별휴가 좀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제가 제대를 하고 두 달이 지나서 결혼을 하게 되어 저한테는 좀 아쉬웠지만 다행이었습니다. 저희 큰누나는 아버지가 특히나 아끼시는 애물단지입니다. 장녀라는 이유이기도 하고 첫째 딸이 시집을 잘 가야 나머지 동생들도 잘 풀린다는 생각을 가지셨기 때문에 여느 누나들 보다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가끔 철없이 행동 할 때도 있어 그래도 생활력 있고 똑똑하고 음식솜씨도 제법이라 맛있는 것을 많이 해주었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둘째 누나는 공부를 정말 잘 하는 우리집안의 자랑입니다. 과학고, 한국과학기술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기흥에 있는 삼성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 양재에서 조그만 빌라에서 혼자 독립을 해서 살고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기숙사 생활을 한터라 아직도 제가 챙겨주는 일이 많습니다. 집에 오랜만에 올 때면 제가 둘째 누나의 심부름꾼이 되곤 합니다. 물 좀 가져다 줘라, 리모콘 좀 가져다 줘라, 빵 좀 사와라 등등 온갖 심부름을 저에게 다 시킵니다.
셋째 누나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동양화를 그리고 있고 매년 개인전을 열면서 앞으로 미래가 촉망한 젊은 화가로 높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그림에 소질이 있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막내누나와 같이 그림을 자주 그렸고 지금도 누나 화실에서 그림 작업을 같이 합니다. 욕심이 많은 누나라 그림 말고도 수영, 에어로빅, 살사댄스 경력도 화려합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살려쓰고 강화시켜야 할 자신의 장점과 밑천들을 최대한 많이 써 보십시오. 자신의 장점이 잘 드러난 사례(경험)를 들어 써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이 항목은 아래의 출사표 항목과 함께 매우 비중있게 보겠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저는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갖고 있어 제게 주어진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의 생활에서 힘든 훈련이 있을 때에도 긍정적인 생각들-‘운동하는 샘 치고 해야지’, ‘남자가 되자’-로 인해 힘든 훈련이지만 피곤함보다는 보람됨이 더 기억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행동하는데 있어서 더욱 자신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잘 웃는다
사람을 재밌게 할 만큼의 말재주는 없습니다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할 줄 알고 유쾌하고 쾌활한 웃음소리로 반응을 합니다. 가끔 혼자 있다가도 예전에 들었던 재미있던 이야기를 상상할 때면 혼자서 피식 웃기도 잘하고 웃음보가 터지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웃습니다. 아직 거울을 보면 웃는 모습이 좀 어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더 많은 웃음으로 웃음주름살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손재주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 시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나름대로 손재주를 갖고 있어서 섬세한 작업들을 꼼꼼하게 잘 해나갑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크레파스부’에 입회(?)해서 라이벌인 ‘수채화부’와 항상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그 가운데에 제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만화부에서 만화를 그렸고 가끔씩 분필을 조각해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조각칼로 나무토막을 깎아 이것저것 만들고 주일학교 행사 때에도 모든 포스터를 제가 다 그렸을 정도로 꾸미는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이발병은 아니었지만 제가 갖고 있던 이발기와 빗으로 여러 명을 미용실에서 깎은 것과 매우 비슷한 머리로 깎아주었습니다. 후임, 선임, 동기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저 또한 매우 재미있었고 사람들은 무료로 자신의 머리를 깎는 데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악기연주
밴드 생활을 하다 보니 악기를 다루는데 매우 좋은 환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 3때부터 식당에서 주운 통기타로 혼자 기타를 치기시작 했고 중학교 때부터 드럼도 배웠습니다. 프로페셔널 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타도 치고 박자 맞추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악기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번여름 철암의 하늘아래서 때론 지치고 힘들 때에 8기 광활 동료들과 같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습니다.
이 항목이 지원서류의 핵심이 될 수도 있으니 잘 써 주십시오. 어느 기관에 입사원서를 쓰거나 면접을 할 때, 요구하는 자료 혹은 묻는 것에만 응답해서는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나는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학문적으로/실천적으로 이렇게 준비해왔으며 귀 기관에 들어가면 이러저러한 면에서 기여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지원사(志願辭), 출사표(出師表)를 멋지게 써 보십시오.
아울러 동료들을 위하여 그리고 훈련 프로그램 그 자체를 위하여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학습하고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다짐,전략들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우연히 알게 된 광산사회사업입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2007년도 여름을 저에게 있어서 사회복지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사회복지학과를 선택을 했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저의 열정을 쏟아 부을 기회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번 제8기 광산사회사업 팀의 일원으로서의 활동이 저에게는 사회복지의 첫 발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단추를 끼우는 지금 이 순간을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과 그 곳이 과연 어떠한 곳일까 하는 궁금함과 설레임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저를 설레게 하는 점입니다. 광산사회사업 신청을 해 놓은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광활’이라는 이름만으로 처음 알게 되는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은 저에게 정말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두려움도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광활'을 지원하는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꼭 무더울 것 같은 여름 제가 ‘광활'의 한 가운데 있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내뿜고 싶습니다. 부족함이 드러나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철암에 다시금 방문하기 전까지 광활 정신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숙지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사회복지로 나아가는 첫 번째 관문을 철암에서 좋은 인연들과 같이 하게 된다면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여름일 것입니다.
첫댓글 태백 학습여행 때 민규를 만났는데, 인상이 좋았습니다. 성품이 좋더군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선배들에게 인사하라 했더니 인사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게 대화를 하더군요. 산행할 때도 솔선수범하던 모습,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민규는 광활 8기에 복덩이인 것 같습니다.
민규는 참 밝아요. 아이들, 어른들 모두 민규를 좋아할 것 같아요.
자기소개서 잘 읽었어. 한덕연 선생님 말씀처럼 첫 인상이 참 좋았어. 민규랑 함께 광활 할 것을 생각하니 기대되고 두근거린다.^^
광활 동료들과 기타치며 까만하늘의 별을 보면 얼마나 낭만스러울까!!
민규가 어떤 일을 하든 참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져. 그리고 참 밝다는 느낌도^-^ 이 모든 것들을 광활을 하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서로를 채워주며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민규님이 가진 긍정적인 생각이 밝은 모습을 이끄는것 같습니다^^ 민규님과 즐거운 여름을 만들수 있으면 좋겠어요^^
^^ 긍정적으로 먼저 섬길줄 아는 민규. 광활 참 기대됩니다! / 별이 빛나는 밤에 통기타치며 함께 노래부르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