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조금 했지만, '부는 되물림된다'에서 약간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음.. 사실 초등교사하면서 굉장히 여러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도 잘 풀리는 학생들도 많이 봣습니다.
그 학생들의 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집안이 어려운데도 훌륭한 학생들' 이야기를 좀 써볼까 합니다.
1. 결국은 칭찬이 최고다
지금까지 교사 하면서 가장 천재에 가깝다 생각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남학생인데, 일단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엄청나고 시험을 봤다하면 만점을 받는 것은 기본이구요,
말을 무척 잘해서 항상 친구들을 잘 이끄는데, 그 학생이 이끄는 그룹은 항상 분위기가 좋았어요. 농담도 잘하고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심지어 게임도 잘해요. 그당시 롤 플래티넘 찍었어요.
지금은 경기과학고 고3인데, 카이스트 갈 것 같아요. 고2때 연락받기로는 카이스트가 목표라 하더라구요. 과학자 될듯.
근데 이 집안이 요리사 집안입니다.
무슨 대단한 식당이 아니라, 그냥 적당한 식당을 운영하는 집이었어요.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근데 그 시간에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혼자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음)
사실 유전적으로 공부 잘하게 태어났다고는 생각하는데, 학부모상담을 하다 보니 하나 발견한게 있는데
엄마가 완전 칭찬의 정석을 하더라구요.
1단계 : 리액션
학생이 무언갈 잘 하면 놀라기도 하고 껄껄 웃기도 하면서 리액션을 세개 해 주고
2단계 : 구체적 칭찬
잘한 부분을 콕 찝어준 후 (예시: 특히 이 부분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게 대단하다, 빨간색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구멍을 뚫어서 둘이 같이 움직이게 하는 거는 생각도 못했다 등등)
3단계 : 약간의 지적
지적은 정말 흘러가듯 딱 하다만 딱 한줄만 얘기한다 하더군요. (예시 : 빨간색 위에 다른 색의 무늬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구멍이 잘 보여서 가리면 더 좋겠다, 등등)
사실 이게 칭찬의 정석이라고 선생님들도 배우는 건데, 이걸 정말 충실히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학생은 어렸을때부터 신이 나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이거저거 만들어서 보여주고, 엄마와 아빠는 리액션과 칭찬하고, 이게 매일 반복되니 나중에는 없던 일도 스스로 찾아서 하고, 그것이 잘 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자식들이 뭐 해오면 오도방정 떨면서 리액션합니다. '우와 이거는 초등학교 2학년도 하기 쉽지 않은거야~~'
2. 리더쉽을 원하면 따라줘라.
이번엔 여학생인데, 이 집도 평범한 회사원(대기업 아님)에 엄마는 가정주부입니다. (그당시 그동네가 좀 힘들게 사는 동네였음)
이 학생의 특징은 '다 잘한다' 입니다. 삼국지로 따지면 무력88, 지력90, 정치86, 매력88 같은 느낌.
그런데 이 학생의 장점은 '리더쉽' 입니다. 정말 신기해요.
당시 여학생이 13명이었는데, '내가 가장 친해지고 싶은 친구'로 11표를 얻었습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본인, 하나는 단짝친구(이미 제일 친해서 딴사람 씀)
신기하게 공부 잘하는 곳에서는 모범생처럼 굴고, 일진들 사이에 끼면 쌍욕하면서 놀고, 아이돌덕후판에 끼면 연예인얘기 하면서 꺄악꺄악 해요.
심지어 남자애들 축구하는데 가면 열심히 응원하고, 핸드폰게임하는데 가면 우와우와 리액션도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학생이 굉장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공부도 곧잘 했음. 지금도 전교 20등 안쪽에서 유지중) 너무 궁금해서 엄마한테 물어보니 뭐 한것도 없는데 저런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다가 옛날 썰을 푸는데, 하나에 딱 꽃혔습니다.
동남아로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필리핀이었나?) 학생이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좀 배울 때였다 해요. 초3이었나.
엄마아빠가 (본인 말로는 장난으로 그랬다 하는데) 우리는 영어 못하니 니가 주문해라, 했답니다.
그래서 그 애가 어린 마음에 별 생각없이 막 손짓발짓하면서 주문하는데, 재밌다고 그냥 냅뒀데요. 다행히 웨이터가 친절해서 무사히 넘어갔고, 음식도 무사히 나왔고, 딸이 영어 잘해서 잘 먹었다고 하면서 나왔데요.
그런데, 이게 재미가 들려서 다른 곳에 가서도 계속 하고,
나중에는 국내여행을 할 때도 호텔예약 같은거를 일부러 시키기도 했다 해요.
그러다 혹시 잘못된거 있으면 아빠가 화장실 간다고 스윽 나와서 따로 연락해서 고칠건 고치고,
나중에 가서 '딸 덕분에 이런 좋은 곳도 오는구나~' 이런걸 종종 한다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알겠더라구요.
그 학생은 매사에 진지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거였어요.
아이들은 항상 시키는대로 따라다닐 뿐인데, 하늘같은(?) 엄마아빠를 내가 리드해서 대리고 다니고, 그게 성공하는 경험을 하니 매사에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를 갖추게 된 거더라구요.
3. 최선을 다해 대답하기
이 학생도 여학생인데, 과학쪽에 특기가 대단한 아이입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학생을 꼽으라면 2번학생을 꼽겠지만, 일반적으로 우수한 학생이라 하면 이 학생이 더 우수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공부를 엄청 잘하는데, 놀랍게도 학원을 한군데도 안다닙니다.
심지어 영어학원도 안다녀요. 학교 방과후는 하긴 하는데..
그럴만도 한게 아빠가 없어요... 엄마와 오빠하고만 사는데 엄마가 돈버느라 바쁩니다.
이학생의 특징은 호기심이 엄청 많아요.
매사 왜그리 궁금한게 많은지. 심지어 밤 12시에 전화를(!!)걸기도 합니다. 궁금한게 있다면서.
근데 질문에 대답을 해줄만한게, 그 호기심이 꽤 수준이 높아요.
한번은 양자역학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맞다면 쉬레딩어 고양이가 양자역학이랑 무슨 관계였냐 뭐 그런 질문이어서 이중슬릿 얘기를 해줫나 그럴겁니다.) 이때 수업 끝나고 한시간동안 즐겁게 양자역학에 대해 수다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기특한 친구였죠.
그리고, 가장 큰 특기는 발표에요. 자료를 수집해서 PPT를 만드는데, PPT 자체는 그리 이쁘지 않는데 찾아서 정리하는 자료가 아주 뛰어납니다. 보통 자료점수 8점도 많이 주는건데 이 학생이 15점을 받아갔죠. 제 교사생활 기록 중 최고기록입니다.
이유가 뭔고 하니,
지금은 이혼해서 못하지만, 이혼하기 전에는 엄마가 가정주부였는데,
그때 본인의 철칙이 '무슨 질문이던 무조건 답하기'였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몰라' 하면서 넘어가는게 어렸을때 되게 무책임하게 보였데요.
그래서 애가 뭘 물어보면 같이 앉아서 인터넷 찾아보고 그림 그려보고 뭐 그랬는데,
이게 너무 귀찮아서 나중에는 마음을 바꿨더래요. '애가 궁금해하면, 나도 궁금해하자. ' 그래서 '내가 궁금해서 찾아보는거야' 라는 태도로 질문에 답해줬다 합니다.
그렇게 같이 찾는 활동을 하다보니 나중에 이혼하고 바빠져도 학생이 스스로 인터넷 뒤지면서 궁금증을 해소했다고 하고,
다행히 학교 수업중에 궁금한걸 직접 찾아보는 습관이 생겨서 학원 안다니고 오로지 '스스로공부법'으로 공부하게 되었다고, 다행이라고 하더라구요.
다만 이 친구의 학창시절은 좀 불행했어요. 왕따를 자주 당했거든요. 학창시절에 단짝친구가 딱히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혼자 양자역학 얘기를 하는 친구를 또래 여자애들이 같이 놀아주진 않았죠. ㅡ.,ㅡ 그래서 주로 덕후같은 남자애들과 어울렸습니다. 남자덕후들 중 그런 양자역학같은 지식에 관심 보이는 애들이 좀 있어서요.
그러고보니 '부는 대물림된다'의 용돈 300 받는 학생이랑 친하게 지냈더랬는데. 사귀기도 했었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둘이 곧잘 어울렸었네요. 흠.
그 외에도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개천에서 피어난 용' 후보들이 꽤 있습니다.
다만 아닌 애들이 월씬 많을 뿐이지요.
첫댓글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주변의 어른들이 아이에게 어떤 사람인지가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부모의 영향이 정말 크네요
부모의 영향이 엄청 크다고 봐요.
전에 다니던 학교가 특이했던게 반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학원을 안다니는 케이스가 절반이 넘었었거든요.
그런 학생들 부모 만나보면 부모의 영향을 받았구나, 싶은 경우가 많았어요.
공부 잘하다가 망한 캐이스도 나중에 시간 나면 써보도록 할게요. 역시 부모의 영향이 제일 크더군요.
초3 아들을 둔 부모로써 반성하게 되네요.
현직에 계시면서 겪었던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키우는 부모로서 배우고갑니다
우와 글도 재미있게 잘써주셨네요ㅎㅎ 좋은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초딩4 초딩1 아빠반성하고 너뮤재미있게 읽었네요 ㅎㅎ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세상이 건강한 사회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게 어른들의 몫인것 같습니다
단순히 부모자식간이 아니라 제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할 법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자식의 성공(표현이 성공이지 저같은 경우 행복하게 사는것)은 우리가 쉬쉬하거나 부정해서 그렇지 솔직하게 부모 대에서 90프로는 결정난다고 봅니다. 본문과 같이 '부'와 상관없이 부모의 인품과 의지에서요.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의 의지가 있으면 정말 본문처럼 되요
3번 아이 재밌네요 그냥도 대성할거 같은 아이에게 엄마가 기폭제를 넣어줬네요
양자역학이라니.. 마블 영화에서나 나와서 이야기 하던거를..
욱아서 10권 읽은것보다 큰 도움됐어요
진짜 좋은글 감사합니다~~^^ 와이프랑 같이 읽어야 하는글이네요
너무 좋은 글이네요. 이런 인사이트들은 앞으로도 계속 공유해주세요:)
이야기 너무 재미있고 ㅋ 미소지어지네요 ㅋ 선생님같은 제자이야기해주는친구 옆에 지내고 싶네요 ㅋㅋ
3번째 친구 ㅋㅋㅋ 양자역학의 매력을 너무나빨리 깨우친 친구네요 ㅋㅋㅋ 서른다되어서 슈뢰딩거의 고냥이를 알게된 아재도 같이 썰풀며 공부하고프네요 ㅋㅋ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없이자라서 이제 조금 안정이 되어 저도 저런친구들에 멘토가 되어 주고 싶어요. 제발로 찾아나서려고 올해 노력중입니다. 코로나로 답답하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도 구체적으로 칭찬 많이 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네요.
아동기의 부모 양육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칭찬과 질문에 대한 성의있는 답변.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저도 나중에 고등학생 학생들 관련하여 글 남겨볼게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해요 아기가 세살이다 보니 정독하게 되네요~바로 와이프한테 공유했어요ㅎㅎ
1번, 3번은 많이 생각하면서도
정말 쉽지가 않아요...
내 육체적 피로함에 지배가 되버려서
저런것들을 놓치게되니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재밌게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