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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게시판 스크랩 실천적 연기 (전-3) - 연기법 상의 탄생 (사례)
행복 추천 0 조회 150 13.07.25 00:07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The Birth of the flow of Dependent Origination

연기법 상의 탄생 (사례)

 

Example 1

사례 1

 

Now I would like to give a few examples from everyday life to show how Dependent Origination arises. A little child cries loudly because her doll is broken. Think carefully for a moment about this and then I will explain how Dependent Origination arises.

이제 일상생활에서 연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인형이 부서졌기 때문에 큰 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잠시 주의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어떻게 연기가 일어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A little child cries loudly because her doll is broken. When she sees the broken doll, there is contact between the eye and the visual object, in this case, the form (shape and color) of the doll in a broken condition. At that moment, eye consciousness arises and knows that the doll is broken.

어린 아이가 자신의 인형이 부서졌기 때문에 큰 소리로 웁니다. 이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볼 때, 눈과 시각대상 사이에 접촉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 시각대상은 부서진 인형의 형색(형태와 색깔)입니다. 이때 안식(눈의 의식)이 일어나서 인형이 부서졌다는 것을 압니다.


As a matter of course, the child is filled with ignorance because she doesn't know anything about dhamma. When her doll breaks, her mind is filled with ignorance.

당연히 아이는 담마를 조금도 모르기 때문에 무지로 가득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인형이 부서진 것을 보았을 때 아이의 마음은 무지로 가득합니다.


Ignorance gives rise to volitional formations, a kind of power that gives rise to an idea or thought, which is consciousness.

무지는, 견해와 생각, 즉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힘의 일종인 의도형성을 야기합니다.

 

That which is called consciousnes is seeing the broken doll and knowing that it is a broken doll. This is eye consciousness, because it depends on the eye seeing the broken doll. There is ignorance, or no mindfulness, at that moment because the child has no knowledge of dhamma. Because of this lack of mindfulness, there arises the power to give rise to consciousness, which sees form in a way that will be suffering.

의식이라고 하는 이것은 부서진 인형을 보고 부서진 인형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부서진 인형을 보는 눈에 의존하므로 안식(눈의 의식)입니다. 이 아이는 담마를 모르므로 이 순간에 무지가 있고 마음챙김이 없습니다. 마음챙김이 없으므로,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야기합니다. 이 의식은 고(괴로움)를 겪게 될 방식으로 형태(부서진 인형)를 봅니다.


The meeting of the eye and the form (the doll) and the consciousness that knows this are all three together called contact.

눈과 형태(인형)와 이를 아는 의식, 이 세 가지가 함께 만나는 것을 접촉이라 합니다.


Now eye contact arises in that girl. And, if we are to be detailed, that contact gives rise to mentality/materiality: the girl's body and mind conditioned to experience suffering arise.

이제 눈의 접촉이 이 아이에게 일어납니다. 과정을 자세히 살펴 보면, 접촉은 '정신/물질'(명색)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로서 아이의 몸과 마음은 고(괴로움)를 겪을 상태가 됩니다.


Please understand that ordinarily our body and mind are not in a conditon to experience suffering. There must be ignorance, or something to condition it to become receptive to the possibility of suffering. And so it is said that the mind/body only now arises in this case. It means that ignorance conditions consciousness and this consciousness helps the mind/body change and arise to action and become capable of experiencing suffering.

평상시에는 우리 몸과 마음은 고(괴로움)를 겪을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고(괴로움)를 겪기 위해서는 무지 또는 고(괴로움)를 받아들이도록 조건지우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말한대로 이 경우에 이제 바로 '마음/몸'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무지가 의식을 조건지우고 이 의식이 마음/몸을 변화시키는 인자가 되어 행위를 일으키고 고(괴로움)를 겪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In this kind of mind/body, at this moment, the sense bases arise which are also primed to experience suffering. They are not asleep, as is usually the case, so there will be perfected contact which is ready for suffering. Then arises vedana or feeling which is unpleasant. Then this unpleasant feeling gives rise to grasping, the desire to follow the power of that unpleasantness. Next, attachment clings to the feeling as "mine", This is where the "I" concept arises, which is called becoming. When this blossoms fully, it is called birth. Then there is suffering in seeing the broken doll - there is crying. That's what is known as tribulation, which means extreme frustration.

이런 류의 '마음/몸'에서 이 순간에 또한 고(괴로움)를 겪을 준비를 하는 감각기초(감각기관)가 일어납니다. 평상시와 같이 잠들지 않은 상태이므로 고(괴로움)를 겪을 준비를 하는 접촉이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불쾌한 느낌(웨다나)이 일어나고, 이 불쾌한 느낌은 불쾌함의 힘에 따라 갈망하여 집착을 불러 일으킵니다. 다음에 집착은 '나의 것'이라는 느낌에 매달립니다. 이곳이 '되어짐'이라고 하는 '나'라는 개념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이 '나'라는 개념이 완전히 전개되었을 때 이를 '탄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서진 인형을 볼 때 괴로워 울게 됩니다. 극심한 좌절을 의미하는 '고뇌'는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Now about birth (jati): it has a wide range of meaning, which includes such things as old age and death. If there were no ignorance, there would not arise the belief that the doll broke or that the doll died or some such belief. If that were the case, no suffering at all would have arisen. But now suffering has arisen fully because there arose attachment to self: my doll. When the doll broke, there was incorrect action because of ignorance, and so the girl cried. Crying is a symptom of completed suffering: the end of Dependent Origination has been reached.

탄생(자띠)에 대해 말해 보면, 탄생에는 늙음과 죽음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리석지 않다면 인형이 부서졌고 죽었다는 등의 믿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고(괴로움)는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자아에 대한 집착, 즉 나의 인형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고(괴로움)가 완전히 일어났습니다. 인형이 부서졌을 때 무지(어리석음) 때문에 잘못된 행위가 있었고 따라서 아이는 울었습니다. 울음은 괴롭다는 것을 완전히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로 연기 과정의 끝에 도달한 것입니다.


Here is the point that most people fail to understand. It's the hidden part of the topic called the language of ultimate truth or the language of Dependent Origination. Most people don't believe that people are born all the time or that mind/body is born or that the sense bases are born. They don't believe that the normal state is equivalent to not yet being born, in which there has yet been no action according to functions. When any natural event causes these things to function, then we can say that birth has occured. For example, take our eyeball. We believe that it already exists, that it has already been born. But in the sense of dhamma, it has not yet been born until that eye sees some form. When it performs its function, the seeing of forms, it can be said that the eye is born and the form is born and then eye consciousness is born. These three help each other to give rise to what is called contact. Contact gives rise to feeling, grasping and all of the other elements, all the way up to the completion of the cycle.

여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궁극적 진리의 언어 또는 연기법의 언어라고 하는 드러나지 않은 화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이 항상 태어나고 '몸/마음'이 태어나고 감각기초(감각기관)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상상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 해당하고 이 상태에서는 기능에 따른 어떤 행위도 없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자연적 사건이 이것들을 기능하게 할 때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구(눈알)를 예로 들어 봅시다. 사람들은 안구가 이미 태어나 존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담마의 의미에서 눈은 어떤 형상을 볼 때까지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눈이 형상을 보는 기능을 할 때 눈이 태어나고 형상이 태어나고 그리고 나서 안식(눈의 의식)이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협력하여 접촉을 불러 일으킵니다. 접촉은 느낌을 야기하고, 집착과 모든 다른 요소가 순차적으로 일어나 (연기법의) 한 순환이 완료될 때까지 진행됩니다.  


Now, if later on, that young girl goes to bed and thinks about the broken doll, she will cry again. At that time, it is a matter of mind consciousness, not eye consciousness. When she thinks about the broken doll, the thought is the object of perception, and that object contacts the mind, giving rise to mind consciousness. She thinks about the broken doll. This gives rise to the body and mind at that moment and causes them instantly to change into body and mind which are the condition for the sense bases which will experience suffering. Those sense bases will give rise to contact of a kind that will experience suffering. Then feeling arises, followed by grasping, attachment, and finally suffering. At this point, the little girl is crying again, even though the doll broke many days or even many weeks ago. These Thoughts, which are concocted one after another, are called Paticcasamuppada and they are in all of us as a rule.

그런데, 만일 나중에 이 아이가 잠자리에 들어 부서진 인형을 생각한다면 다시 울 것입니다. 그때에는 안식(눈의 의식)이 아니라 마음의식이 생기는 문제입니다.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생각할 때 이 생각이 인식의 대상입니다. 이 대상이 마음에 접촉하여 마음의식이 일어납니다. 아이는 부서진 인형을 생각합니다. 이 마음의식이 이 순간에 '마음/몸'을 불러 일으켜 고(괴로움)를 겪을 상태로 변형시키며, 이 '마음/몸'은 고통을 겪을 준비를 하는 감각기초(감각기관)를 조건지웁니다. 이 감각기초는 고(괴로움)를 겪을 부류의 접촉을 야기합니다. 그러면 느낌이 일어나고, 움켜쥠과 집착이 이어져 결국 고(괴로움)를 겪게 됩니다. 비록 인형이 수 일 전 또는 수 주 전에 부서졌다해도 이 시점에서 어린아이는 다시 울게 됩니다. 잇달아 꾸며지는 이 생각들을 '연기'라 하며, 이 연기는 우리 모두 안에서 통상적으로 진행됩니다.


Example 2

사례 2

 

As another example, let us suppose that there is a young male student who fails his final exam. He may end up fainting or going to bed at night crying. How does this happen? The student goes to where the exam results are posted and either doesn't see his name listed as passing or sees his name listed as failing. He sees the posted results with his eyes. Those posted lists have a meaning - they are not merely form. The lists are meaningful forms which tell him something he wants to know. When his eyes perceive the lists, a kind of eye consciousness arises that gives rise to mind/body. That is, his body and mind which were in a state of normalcy suddenly change character. They are now primed to give rise to sense bases and contact which can lead to suffering.

다른 예로서 최종 시험에서 떨어진 한 학생이 있다고 해 봅시다. 이 학생은 기절하거나 밤에 울면서 잠자리에 들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이 학생이 시험 결과가 게시된 곳에 가서 시험에 통과한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지 못하거나 시험에 낙방한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봅니다. 이 학생은 시험 결과를 나타내는 게시물을 자신의 눈으로 봅니다. 이 게시물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이 학생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게시된 리스트는 이 학생이 알고자 하는 것을 말해주는 의미있는 형상입니다. 이 학생의 눈이 리스트를 인식할 때 안식(눈의 의식)이 일어나 새로운 '마음/몸'을 불러 일으킵니다. 즉 정상 상태에 있던 몸과 마음의 특성이 갑자기 변합니다. 이제 이 변화된 '마음/몸'은 감각기초(감각기관)와 접촉을 불러 일으켜 괴로움으로 이끌 준비를 합니다.

 

The Sense bases in their normal condition are not characterized by suffering, but when they are mixed with ignorance, these sense bases will work in a way to help suffering arise. There will be contact, feeling and so on, all the way up to attachment to the "I" concept: "I failed!" The student falls down in a faint at the moment the eyes perceive the list. In that brief moment, he faints. This is called one complete working of the eleven conditions of Dependent Origination. The student has a self that failed, and so this self experiences great suffering, grief and tribulation.

정상 상태에 있는 감각기초(감각기관)는 고(괴로움)를 야기하지 않지만, 무지와 결합되었을 때 이 감각기초는 고(괴로움)가 일어나도록 도우는 식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접촉, 느낌 등이 있고, "나는 떨어졌다"고 하는 '나'라는 개념에 매달릴 때까지 연기가 이어집니다. 이 학생은 눈으로 명단을 인식하는 순간에 졸도합니다. 이 짧은 순간에 졸도합니다. 이것은 연기의 11가지 조건이 한 번 완전히 작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학생에게는 시험에 떨어진 자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아는 극심한 괴로움과 비탄과 고뇌를 겪습니다.

 

Several hours or even two or three days later, that student thinks about his failing again and he may faint again. The same symptoms arise. It is a manifestation of Dependent Origination in the same way, but this time it begins with the mind door, or mind consciousness. When consciousness arises, it causes mentality/materiality of a type subject to suffering to arise. That, in turn, causes suffering prone sense bases to arise, which cause suffering prone feeling, grasping and attachment to arise. Each in their order is conditioned by ignorance for suffering. Finally, conditioned birth arises again: "I have failed my exam!"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에, 이 학생은 시험에 떨어진 사실을 다시 생각하고 졸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같은 식으로 연기가 진행되지만, 이때에는 마음의 문, 즉 마음 의식에서 시작합니다. 의식이 일어날 때 이 의식은 고(괴로움)를 일어나게 하는 종류의 '정신/물질'을 야기합니다. 이 '정신/물질'은 고(괴로움)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 감각기초가 일어나도록 조건지웁니다. 그리고 고(괴로움)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 느낌, 움켜쥠과 집착이 차례대로 일어납니다. 이 순서에서 각각은 고(괴로움)를 일으키는 무지에 의해 조건화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조건화된 탄생이 다시 일어납니다.

 

Example 3

사례 3

 

For our third example let's suppose that a young lady sees her boyfriend walking along with another women. She immediately becomes inflamed. Within the space of a brief moment, she becomes so enraged that it is just as if she had passed through ten hells, so burned up is she! And all this because she saw her boyfriend walking together with another woman.

세 번째 예로 자신의 남자 친구가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을 본 아가씨가 있다고 해 봅시다. 이 아가씨의 마음은 즉시 불길에 휩싸이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많은 지옥을 거치는 것과 같이 되어 마음이 불타 오르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What has happened is that her eyes have seen the form of her boyfriend with another woman. This causes eye consciousness to arise immediately. Before this moment, this kind of consciousness did not exist. There was only a functionless consciousness, a consciousness without any duty to perform. You could say there was no consciousness. But now, this kind of consciousness arises with that form and these eyes and together they make contact. Just a moment ago there was no contact; now there is: there is a coming together of the eye, the eye object or form, and eye consciousness.

'이 아가씨의 눈이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광경을 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 현상은 즉시 안식(눈의 의식)을 일으킵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전까지는 이런 류의 안식이 없었습니다. 이행할 어떤 임무도 없는 의식, 즉 기능없는 의식만 있었습니다. 이 상태를 칭하여 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광경과 눈으로 의식이 일어나고, 이 세 가지가 함께 접촉합니다. 조금 전까지는 접촉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눈과 시각대상(형상)과 안식(눈의 의식)이 함께 모여 접촉을 이룹니다.

 

Contact arises and causes feeling, craving and so on, to arise. Or to put it in more detail, once consciousness arises, it causes a newly conditioned kind of body/mind to arise which, in turn, gives rise to the kind of sense bases, eyes, that can experience suffering. This is followed by a feeling of suffering and a restless craving. Then arises attachment to the "I" concept: "I, I, I'm so mad! I could die!" And it all arose by way of the eye.

접촉이 일어난 후에는 느낌, 갈애(갈망) 등이 차례로 일어납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의식이 일어나면, 이 의식은 새롭게 조건화된 '마음/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고(괴로움)를 겪을 종류의 감각기초(감각기관), 즉 눈이 차례로 일어납니다. 이것에 이어 괴로움의 느낌과 요동하는 갈망이 있고, "나, 나, 나는 미치겠다! 나는 죽겠다!"라고 하면서 '나'라는 개념에 집착함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눈을 통해 일어납니다.

 

This is birth (jati). It is a suffering prone ego. An "I" that can experience dissatisfaction has arisen and will become subject to suffering. We can simply say that it is an ego so attached to its arising that it suffers. It is the passing away of this ego that is suffering, sorrow and frustration. This is full blown Paticcasamuppada, eleven conditions, all within the mind of this young girl. This particular example of Paticcasamuppada arises by way of the eye. 

이것이 '탄생'(자띠)입니다. 이것은 고(괴로움)를 겪을 에고입니다. 불만족을 겪을 '나'가 일어났으며 고(괴로움)를 겪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그렇게 집착하는 에고가 일어나 고(괴로움)를 겪습니다. 그리고 이 에고가 사라지는(죽는) 것에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좌절합니다. 연기법의 11가지 조건이 이 아가씨의 마음에 완전히 전개된 상태가 이것입니다. 연기법에 관한 이 예는 눈을 통해 일어납니다.

 

Now let us suppose that this young lady was fooled by one of her friends. In fact, her boyfriend is not going with any other woman, but someone decides to play a trick on her and tells her that her boyfriend was seen going with some other woman and she believes it. Now there is ear contact; sound comes in by way of the ear and ear consciousness, accompanied by ignorance, is present. Because there is no mindfulness, this ear consciousness gives rise to mentality/materiality, i.e., her body and mind are newly primed to give rise to the sense bases which will function in a way that leads to suffering, as in this example. Once the sense bases have arisen, there is complete contact and then the feeling appropriate to the situation, namely, an unpleasant feeling, arises. Restless craving then arises, which gives rise to attachment. Then there is the full blown becoming of the "I/mine" concept. It is the birth of the "I" which has suffering, grief and lamentation. Suffering has arisen in accordance with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by way of the ear.

그럼, 이 아가씨가 누군가의 말에 속아 넘어 갔다고 해 봅시다. 사실은 이 아가씨의 남자친구가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이 아가씨를 속이려고 마음먹고 '남자친구가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하고, 이 아가씨는 이 말을 듣고 그대로 믿습니다. 이제는 귀를 통한 접촉이 있습니다. 귀를 통해 소리가 들어오고, 이식(귀의 의식)이 무지를 동반하여 현존합니다. 마음챙김이 없기 때문에 이 이식(귀의 의식)은 '정신/물질'을 야기합니다. 즉 이 아가씨의 몸과 마음은 이 예에서 고(괴로움)로 이끄는 식으로 기능하는 감각기초(감각기관)를 야기하도록 새롭게 준비됩니다. 감각기초가 일어나면 완전한 접촉이 있고 이 상황에 따른 느낌, 여기서는 불쾌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요동하는 갈망이 일어나고 이어서 집착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나/나의 것'이라는 개념의 '되어짐'이 완전히 전개됩니다. 이것은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나'의 탄생입니다. 이 예에서 고(괴로움)는 귀를 통해 연기법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Again, several hours or days later, this young lady may simply begin to doubt the sincerity of her boyfriend. No one has said anything to her, and she hasn't seen anything, but in her own mind she begins to doubt whether or not her boyfriend has been going with another woman. She begins to make assumptions and so Dependent Origination begins to operate by way of the mind door: a mental object comes into contact with the mind and mind consciousness arises. This mind consciousness conditions a new mentality/materiality to arise: what was an inert body/mind, not conditioned to experience suffering, is now the mentality/materiality that conditions sense bases capable of experiencing suffering to arise. The sense bases condition suffering prone contact to arise. Contact conditions feeling conducive to the arising of suffering. Then follows restless craving and clinging attachment and the same kind of suffering arises again. This is a case of Dependent Origination becoming active in that young lady by way of mind consciousness.

다시,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에 이 아가씨는 남자친구의 진실성을 단지 의심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니다. 아무도 무슨 말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어떤 것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가씨의 마음에,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가씨는 이 데이트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하여, 연기가 마음의 문을 통해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즉, 정신대상(생각)이 마음에 접촉하고 마음의식이 일어납니다. 이 마음의식은 새로운 '정신/물질'을 야기합니다. 정상상태의 몸과 마음은 괴로움을 겪게 하지 않지만, 이제 괴로움을 겪을 수 있게 하는 감각기초를 야기하는 '정신/물질(마음/몸)'로 바뀝니다. 이 감각기초는 고(괴로움)를 겪게 하는 접촉을 야기합니다. 이 접촉은 고(괴로움)가 일어나도록 조장하는 느낌을 야기합니다. 그러면 동요하는 갈망과 매달리는 집착과 고(괴로움)가 다시 순차적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은 마음의식을 통해 이 아가씨에게 연기의 흐름이 진행된 경우입니다.

 

In the three cases of this young lady, we can see that when she saw forms with her eyes, Dependent Origination became active in her by way of eye consciousness; when she heard her friend telling her a lie, Dependent Origination was activated by ear consciousness; and, finally, when she began to doubt, all on her own, Dependent Origination became functional by way of mind consciousness. This shows that Dependent Origination can arise dependent on different sense bases, and suffering will be the result in each case.

아가씨에 관한 이 세가지 경우에서, 눈으로 형상(광경)을 보았을 때는 안식(눈의 의식)을 통해 연기가 진행되었고, 귀로 거짓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이식(귀의 의식)을 통해 연기가 진행되었으며, 단지 자신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는 마음의식을 통해 연기가 진행되어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연기가 각각 다른 감각기초에 의존하여 일어날 수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고(괴로움)가 생기게 됨을 보여줍니다.

 

Please observe that in just a very short time the complete course of Dependent Origination leading to suffering can arise. It is the complete chain of all eleven conditions. In the brief moment that a daughter-in-law sees her mother-in-law's face, suppressed restlessness and uneasiness arise. In that brief moment, Dependent Origination manifests itself with all its eleven conditions. She sees a form with her eyes. That gives rise to the kind of eye consciousness that conditions a change in mentality/materiality to a mentality/materiality ready for suffering prone sense bases, which condition contact conducive to suffering. The feeling that then arises is unpleasant. The resultant craving is restless because she does not like her mother-in-law's face. There then arises attachment, becoming and the birth of the "I" concept which hates the mother-in-law's face and, so, suffering finally arises.

고(괴로움)로 이끄는 연기의 완전한 순환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11가지 모든 조건이 이어진 완전한 고리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얼굴을 힐끗 보는 극히 짧은 순간에 억압된 불안감과 불편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순간에 연기의 11가지 조건이 모두 진행되어 나타납니다. 며느리가 눈으로 형상(시어머니의 얼굴)을 봅니다. 이것은 고(괴로움)를 겪게 하는 종류의 안식(눈의 의식)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안식은 정상 상태의 '정신/물질'을, 고(괴로움)를 겪을 감각기초를 준비하는 '정신/물질'로 변화시킵니다. 이 감각기초는 고(괴로움)를 조장하는 접촉을 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접촉을 조건으로 불쾌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동요하는 갈망이 일어나고, 이어서 집착과 되어짐('나'라는 개념)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며, 시어머니의 얼굴을 싫어하는 '나'라는 개념이 완전히 전개된 탄생이 있으며,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괴로움)가 일어납니다.

 

Example 4

사례 4

 

For my last example, I don't want to talk about a particular case or individual, but I would like to talk about people in general when they are chewing some very tasty food. Most people become unmindful when they are eating delicious food. They are forgetful  and ignorance is in control. Let this be a given: when eating something delicious, mindfulness is absent because of the delicious taste, and so ignorance is present.

마지막으로, 특별한 경우나 개인적인 예를 들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대단히 맛좋은 음식을 먹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매우 맛좋은 음식을 먹을 때 마음챙김이 없습니디. 먹고 있는 자신을 잊고 무지에 의해 지배 당합니다. 어떤 맛좋은 음식을 먹을 때, 이 맛 때문에 마음챙김이 없고 무지가 현존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The thoughts of the person experiencing in this way something very delicious are a complete manifestation of Paticcasamuppada already, in the  same sort of way as in the previous examples. When the tongue and one of its objects, in this case, taste, come into contact, tongue consciousness arises which creates a new mentality/materiality, in the sense of changing ordinary mentality/materiality into that kind of mentality/materiality capable of experiencing suffering. There then arises the sense bases capable of having contact and feeling which can experience unpleasantness or pleasantness from the present situation.

이런 식으로 대단히 맛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생각은, 앞 예의 경우와 같은 식으로 연기법의 순환이 이미 완전히 진행된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혀와 그 대상(맛)이 접촉할 때, 설식(혀의 의식)이 일어나고, 이 설식은 새로운 '정신/물질'을 야기합니다. 이것은  정상상태의 '정신/물질'을, 고(괴로움)를 겪게 하는 종류의 '정신/물질/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에 새로운 감각기초가 일어나고, 접촉과 느낌이 순차적으로 일어나 현 상태에서 불쾌함과 유쾌함을 경험합니다.

 

If the experience is one of good taste, then the average run of the mill person calls it a pleasurable feeling. But as soon as the good taste is clung to, there is attachment which then transforms the feeling into one prone to suffering because of the tendency to want to sustain that good taste and make it last. People cling to and grasp after it and begin to worry and become anxious about it. They become attached to it. And so in this way the good taste or pleasant feeling instantly becomes a manifestation of suffering. "This is delicious! I am happy! I'm really happy!" But the mind is a slave of pleasure because it is aflame with attachment to the pleasure.

이 경험이 좋은 맛이면 보통사람들은 유쾌한 느낌이라 합니다. 그러나 좋은 맛에 매달리는 즉시 집착이 일어나 즐거운 느낌이 변형되어 고(괴로움)를 일으키게 합니다. 좋은 맛이 유지되고 지속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매달리고 움켜쥐며 근심 걱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맛에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좋은 맛과 유쾌한 느낌은 즉시 고(괴로움)로 나타나게 됩니다. "정말 맛좋다! 행복하다! 정말로 행복하다!" 고 하지만, 이 마음은 유쾌함에 집착하여 불타기 때문에 유쾌함의 노예가 된 마음입니다.

 

This is a trick of Dependent Origination that shows its depth and profundity. If the average person were to give an opinion, he or she would say that there was pleasure. If Dependent Origination speaks, that pleasure becomes unsatisfactory. When anyone thinks "delicious", Dependent Origination has already arisen in its entirety.

이것이 그 깊고 심오함을 보여주는 연기법의 방식입니다. 보통사람에게 물으면, (세상에는) 유쾌함(즐거움)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기법은 유쾌함(즐거움)은 불만족이 된다고 말합니다. 맛좋다고 생각할 때, 벌써 연기법의 순환이 완전하게 일어난 상태입니다.  

 

Now there is more to all this. When someone thinks "This is so delicious that I think I'll go steal some more tomorrow so I can have some more to eat", that person is born as a thief at that moment. Whenever a person thinks he will steal something or has a thief-like thought, that person has become a thief". So someone goes and steals some fruit from a neighboring farm and, having eaten it and found it to his delight, thinks to go and steal another one the next day. The thought of being a thief or of becoming a thief is the arising of one bhava or state of becoming. Similarly, if someone eats some meat and thinks that he will go hunting the next day for some more, that person has been born a hunter. Even if it's simply a matter of getting lost in the great taste of some food, such a one is born into heavenly realms of good taste. Or if it's a matter of something tasting so good that that person can't eat fast enough, that person is born a peta, or hungry ghost, who can never get enough to eat fast enough to satisfy his great hunger.

이 모든 것에 더한 상태로서, "이것 참 맛좋으니까 내일 좀 더 훔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순간에 도둑으로 태어납니다. 어떤 것을 훔치거나 훔칠 생각을 할 때마다 도둑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웃 농장에 가서 과일을 몰래 따서 먹고 즐거워하고, 다음 날 더 훔쳐 먹을 생각을 한다면, 훔치거나 훔칠 생각이 '되어짐(바와)'의 일어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고기를 좀 먹어보고 좀 더 먹기위해 다음 날 사냥을 가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사냥꾼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단지 대단히 맛좋은 음식에 홀딱 빠진 경우라 해도 이 사람은 좋은 맛을 보는 천상계에 태어난 것입니다. 또는 매우 맛좋은 것이 있지만 충분할 정도로 빨리 먹을 수 없다면 아귀, 즉 허기진 유령으로 태어납니다.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 구멍처럼 작아서) 아무리 먹어도 허기짐을 채울 정도로 빨리 먹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Take a look at all this and you will see that in just the space of chewing some delicious food, many kinds of Dependent Origination may arise. So please observe carefully that Dependent Origination is concerned with the cycle of suffering. Paticcasamuppada is a teaching about suffering which arises in its fullness because of attachment. There must be attachment in order for suffering to arise according to Dependent Origination. If there is no attachment then even if suffering arises, it is not the dukka of Paticcasamuppada.

이 모든 것을 살펴보면, 맛좋은 음식을 씹는 바로 그 동안에 많은 종류의 연기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괴로움의 순환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의깊게 관찰해 보십시오. 연기법은 집착으로 인해 완전하게 전개되는 고(괴로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연기법에 따라 고(괴로움)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집착이 있어야 합니다. 집착이 없다면, 설사 (육체적) 고통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연기법에서 말하는 고(괴로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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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7.25 01:20

    첫댓글 호잔님께서 번역하신 실천적 연기라는 글에 있는 붓다다사 스님의 연기법인데요.
    이 스님께서는 청정도론의 3세양중인과의 설명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4가지 사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연기법의 해석에 대한 법우님들의 말씀을 한 번 부탁드려봅니다^^

  • 작성자 13.07.25 01:59

    예전에 읽을 때는 몰랐는데...
    아마도 어려워서 그때도 그냥 휘익 읽고 만 듯해요^^
    지금 보니 제 눈에는 볼수록 난해해집니다.
    그래서 여기로 한 번 갖고와서 도움을 청해보는 것입니다.
    일단은 첫번째 사례를 한 번 정리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3.07.25 01:52

    상황: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해설: 12연기 분석

    무지: 담마를 모르는 상태
    의도형성
    안식: 부서진 인형을 보는 눈에 안식이 생김
    눈과 형태(인형)과 의식?(안식 같음)이 만나서 접촉발생
    명색을 불러옴.
    감각기초(감각기관) 발생
    느낌(불쾌한 느낌)발생,
    집착 발생
    나의 것이라는 개념이 탄생
    괴로움으로 울게 됨

  • 작성자 13.07.25 02:06

    스님 설명:
    담마의 의미에서 눈은 어떤 형상을 볼 때까지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눈이 형상을 보는 기능을 할 때 눈이 태어나고 형상이 태어나고 그리고 나서 안식(눈의 의식)이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협력하여 접촉을 불러 일으킵니다. 접촉은 느낌을 야기하고, 집착과 모든 다른 요소가 순차적으로 일어나 (연기법의) 한 순환이 완료될 때까지 진행됩니다.

    문제점:
    12연기라면 '애'와 '유'가 불명확하다.
    생에 노사를 집어넣고 있다.
    혹시 제가 잘못 요약한 것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에휴...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보고 운다]는 것을 12연기로 어떻게 해석할까요..

  • 작성자 13.07.25 09:38

    실론섬님 자세하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6입처와 인형과 식이 갖추어졌을 때만 인형이 깨어졌다는 인식활동을 하게 된다. 5온에서 보면 식은 명색이 있기에 존재하고 명색은 식이 있으므로 존재하게 된다. 깨어진 인형이 아깝다는 생각의 식이란 과거의 선행정보인 신구의 3행으로 형성된 것들이다. 이 행은 무명에 의한다. 이것에 의해 분별심과 취착과 전도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문제점: 저 붓다다사 스님은 애, 유 정도가 빠져있는데 비해, 12연기가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감상: 12연기를 모두 언급하며 설명할 수는 없는가...

  • 작성자 13.07.25 10:33

    다시 한 번 보니 본글의 저자인 붓다다사 스님께서는 '눈이 태어남'으로 말씀하시려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찰라생찰라멸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복잡하다는 인상이고 12연기에서 '애'와 '유'가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라서요.
    혹시 시간이 있으시다면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보고 운다]는 것에 대해 좀더 완전하게 12연기로 부탁드립니다.
    여러 법우님들께서도 한 번 해석해보면서 도움 좀 부탁드려요.
    뭔가 해결책을 찾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7.25 15:23

    실론섬님 감사합니다.
    앞의 설명보다 더 구체적인 것 같아요.
    그래도 '애' 부분의 설명이 어려워 보입니다.
    애는 한글로 하면 사랑인데 이것이 드러나지 않아보여요.
    혹시 경전의 12연기나 경전내용에 대입하면서 자세히 해석할 수는 없을까요.
    정작 실제 사례를 들어보이니, 연기법을 안다는 분도 많고 심지어 법거량을 제기한 분도 있었지만 실론섬님 말고는 해석이 없습니다. 저도 어떤 견해가 있지만 아함경을 주요 경전으로 하고 있어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필요하면 일을 마치고 밤에 저의 견해도 올리겠습니다.
    [아이가 부서진 인형을 보고 운다]에 대한 법우님들의 연기법 해석 좀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13.07.25 16:26

    실론섬님 말씀대로 애가 없으면 취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붓다다사 스님은 불쾌한 느낌을 말하고 나서 애를 건너뛰고 집착을 말하고 있죠.
    아마도 말하다보니 연결이 안되어 건너뛴 것 같아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것을 해결해야 할 듯한데, 그럼 어떻게 12연기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시도는 매우 좋다고 생각하여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법우님들의 고견 부탁드립니다.

  • 13.07.25 16:44

    여자아이와 인형의 예에서는
    식(識.)에 대한 과정과 설명이 부족하여 전개하는데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고
    나머지 연기법 촉(접촉)-수(느낌)-애(갈애)-취(집착)-유(존재 ? 태어남)에 대해서는
    실론님께서 정확하게 설명하셨으니

    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 볼려고 합니다.

    일단 삼사화합에 의해서 느낌이 발생하였습니다.
    느낌은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으로 일어나는데
    여기서는 괴로운 느낌이 생긴 것이죠.
    왜? 깨진 인형은 괴로우니까(슬프니까)..

  • 13.07.25 16:45

    이것은 괴로운 느낌뿐만 아니라 깨지지 않은 인형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났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갈애가 이제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갈애가 어느 정도가 아니라 점점 심하게 되면
    나는 죽어도 완전한 인형을 가지고 싶다 정도의 갈애로 변하면 이것은 집착입니다.
    집착이란 것은 저것을 꼭 가지고 싶다 =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 내 것이다. 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13.07.25 16:45

    내 것이란 대상의 소유를 말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대상을 소유하려면 소유주체가 있어야겠지요.
    소유 주체가 되려면 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존재란 지옥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입니다.
    존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현실과 꿈을 비유로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모시는 순일스님께서는 종종 이등변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를 알면 나머지 한 변의 길이를 알 수 있듯이 현실과 꿈을 가지고 내세(윤회)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13.07.25 16:46

    이제 아이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 아이는 인형이 깨지는 그때부터 집착이 일어난 그 모든 것을 식(識)에 저장하고 있습니다.
    식(識) 특성은 저장과 분별이니까요.

    아이는 꿈을 꿉니다. 무지(무명)하므로 꿈에서 의도(行, 상카라)를 일으킵니다.
    완전한 인형을 가지고 싶다는.. 그러면 식(識)에 저장되어 있는 상황을 불러옵니다.
    식(識)에는 깨어진 인형의 상황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상(산냐, 相)을 저장하고 있어
    같이 불러 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실이라는 산냐, 엄마 또는 제 3자를 불러 올 수도 있습니다.

  • 13.07.25 16:47

    이제 명색(물질과 마음)이라는 산냐가 생겼습니다.
    어떤 꿈속에서는 인형이 완전합니다.
    그러나 제 3자(친구나 남동생)이 등장합니다. 그가 인형을 가지고 도망갑니다.

    또는 인형이 깨집니다. 엄마가 등장합니다.
    달랠 수도 있고 야단을 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전개 되는 꿈을 꿉니다.
    수많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꿀 수 있습니다.

  • 13.07.25 16:49

    이것을 다음 생으로 비유하면
    무지하여 의도(행)가 있어 식을 불러내고 식은 명색을 만듭니다.
    그 명색을 조건으로 생각하면 조건따라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여러 가지 상황(또는 生이) 벌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식의 전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육근과 육경이 있어 촉이 생기고 느낌, 갈애, 집착, 존재, 태어남이라는 과정을
    꿈속에 또 할 수 있을 것입니다.(꿈속의 또 꿈을..)

  • 13.07.25 16:49

    이것이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고 생각한 것을 적절한 용어와 문장으로 구성하여 말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듭니다.

    또한 아이와 깨진 인형의 상황만 가지고 연기법을 모두 설명한다는 것이
    뭔가 모순이 아닌가 하는 찝찝함도 듭니다.

  • 13.07.25 16:52

    연기법은 그 순서가 바뀔 수도 없고 무명(무지, 사성제를 모름) 의도, 식, 명색, ....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오온의 발생과 괴로움의 발생, 세상의 생성 그리고 역으로는 소멸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다보니까 좀 많이 부족하고 횡설수설한 면도 있습니다.
    보충하여 설명해주시든지 잘못 표현한 것은 지적해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_()_

  • 13.07.25 17:03

    행복님 경전의 이해에 있어서 한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이해하여 우리말(?)로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애(愛) 를 사랑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보다
    사랑이 깊어진 것이 욕망이고 욕망이 더 깊어지면 갈애, 갈애의 끝판이 탐욕
    이런 식으로 풀어서 이해하시는 것이 좋을 뜻합니다.

    그래도 한문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현실이지만 되도록이면....
    한자의 한 글자에 우리가 모르는 개인의 선입관이 많아 뜻의 정확한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 13.07.25 17:10

    초기경전을 읽으시면 이러한 것이 눈에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말의 반복인 것처럼 보이는 표현이 초기경전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은 뜻에서 큰 뜻으로 어떤 때는 큰 뜻에서 작은 뜻으로 풀어서 반복합니다.

    원함, 욕망, 갈애, 탐욕 등의 표현이나
    멀리하고 떠나고 버리고 없애고 제거하고 소멸시키고 라는 것을 보면

    갑자기 없앨 수는 없으니까 처음에 멀리하고, 그다음에는 그대상에서 떠날 수 있고
    떠났으니 버리고 없애고 제거하여 소멸하는 점진적 표현으로 이해하듯이..........

    초기경전은 위없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절대로 비슷한 말을 반복하실 리가 없지요.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7.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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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13.07.25 23:11

    책에서는 선험적 기억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볼 수는 없는 듯합니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욕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미 아이와 인형과의 놀이가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즉, 과거의 업이 있어야합니다.

    책의 저자는 ‘수’의 자리에서 아이의 슬픔을 설명하려는 듯합니다.
    그러면 수-애-취...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요.
    그러나 느낌의 내용을 보니 부서진 인형을 보는 아이의 느낌은 [슬픔]입니다.
    뒤의 애는 사랑이구요.
    슬픔과 사랑의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슬픔에서는 사랑이 아니라, 증오나 후회 등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결의 문제가 생겨 ‘애’가 생략된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3.07.25 23:58

    연기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명서부터 생까지 좋은 것만 골라서 빙 돈다는 점입니다.
    이러다가 노사가 발생하면서 우비고뇌의 무명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12연기에서 ‘수(느낌)’가 있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첫 번째가 ‘명색’의 자리에 있는 ‘수’이고, 두 번째가 ‘수’의 자리에 있는 ‘3수나 6수’로 말하지는 곳이고,
    세 번째가 ‘노사우비고뇌’에서 ‘고(괴로움)’입니다.
    아이는 슬퍼하기 때문에 그가 있는 곳은 ‘노사우비고뇌’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책의 저자가 시도한 12연기로 만들어 봅니다.
    아이가 노사우비고뇌의 자리이므로 이전의 내용은 모두 과거가 되고 추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으로 판단됩니다.

  • 작성자 13.07.25 23:35

    한 가지 강조할 점은 아함경에 근거한 해석이란 점입니다.
    또한 제 생각에는 애취유생노사가 간단해 보이는데, 12연기로 하고 있으니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일단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셔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무명
    인형과의 놀이를 통한 아이의 즐거운 경험으로 인한 기대, 아이의 욕망이 무명입니다.
    2. 행
    아이의 눈이 멋진 인형을 봅니다. 여기에 먼저 있던 저 인형과의 욕망이 있으므로 행이 발생합니다. 책에서는 안식에 한정합니다. 그러나 기억은 종합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6행이 모두 발생합니다.
    3. 식
    그리고 6가지 식이 모두 발생합니다. 즉, 멋진 인형에 대한 안식, 이식, 비식, 설신, 신식, 의식입니다.

  • 작성자 13.07.25 23:59

    4. 명색
    그 다음 6가지 식은 저 멋진 인형에 대한 색,수,상,행,식을 증장시킵니다.
    5. 6입처
    그리고 저 생겨난 명색이 뻗어나가 증장하면서 6입처가 만들어집니다.
    6. 촉
    그 다음 멋진 인형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6촉입처가 만들어집니다.
    7. 수
    6가지 접촉이 있으므로 여섯 곳에서 느낌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멋진 인형과의 접촉으로 인한 즐거운 느낌입니다.
    8. 애
    여섯 곳에서 발생한 저 멋진 인형과 함께하는 즐거운 느낌은 여섯 곳에서 성숙하여 이젠 애욕이 만들어집니다.
    9. 취
    애욕으로 말미암아 아이는 저 멋진 인형을 아예 나 또는 나의 것으로 취합니다.

  • 작성자 13.07.25 23:36

    10. 유
    취한 결과 3유인 욕망의 존재, 색의 존재, 무색의 존재가 만들어집니다.
    11. 생
    아이는 혼자였지만 이젠 아이+인형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아이는 멋진 인형과 함께 다닙니다.
    마치 시계를 애지중지하면 시계와 한 몸이 되는 상태인데요.
    어쩌다가 저 시계를 벗고 출근하거나 잃어버린 날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입니다.
    12. 노사
    그러나 인형이 부서졌습니다. 아이+인형이던 생에서 인형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아이는 몸 하나가 떨어져나간 것이라서 슬퍼합니다.
    드디어 노사우비고뇌가 발생한 것입니다. 무명이 더 늘어난 것입니다.

  • 작성자 13.07.25 23:09

    저의 해석은 니까야에 근거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합니다.
    아함경 쪽에서는 행,식,촉,수,애를 6행신, 6식신, 6촉신, 6수신, 6애신으로 각각 봅니다.
    예를 들어 6식신이면, 안식신, 이식신, 비식신, 설식신, 신식신, 의식신이 모두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용과 12연기법에 대한 참고할 수 있는 경전을 몇 개 댓글에 붙여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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