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있을 때 참 영화 많이도 봤다. 행정병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마침 시나리오 작가가 내무실에 있어서 녀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영화를 봤었다.
굳이 행정병이어서 봤다기 보다 내가 상병이 되면서 내무실에 유행하게 된 psp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의 여자친구는 매주 16기가의 sd카드에 영화를 꽉꽉 담아 보내주었고
매일 밤마다 녀석의 psp로 영화를 봤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아마 내가 군대에서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영화였다.
그 이유는 아마 저 장면 때문이 아닐까.
공포란 무서운 녀석이다.
죽음 앞에서 반항조차 하지 않는 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참 복잡한 심정이었다.
아마 저항, 반정부 등에 익숙한 한국 역사 탓이기도 하겠지만
저 장면 앞에서 나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에 익숙해지면 죽음 앞에서도 졸렬해지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한 피아니스트가 2차 대전 중에 살아남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 중간중간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좋다라는 것 밖에는.
2차 대전을 소개로 한 외국 영화를 보면서 한국과 다른 점은
그 사람들에게선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미국 영화는 다르지만 유럽에서 만들었거나, 유럽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나치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전하는 이야기 정도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2차 세계 대전에 관련된 영화를 감정 위주로 다룬다면
피아니스트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2차 세계 대전은 그저 이야기의 세계관에 불과하다.
직접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던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글루미 선데이처럼 말이다.
그 영화들에서는 분노보단 부드러운 감성이 느껴진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라고 하는 감성이.
요 며칠 전에 문득 티비에서 피아니스트를 하는 걸 보고 꼭 카페에 소개해 주고 싶었다.
마지막에 로만 폴란스키가 해방 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그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음. 다음엔 베바나 다시 다운 받아 봐야겠다.
설마 베바 모르는 건 아니겠죠? 베토벤 바이러스!
첫댓글 저 영화 본 듯합니다! 중간부터 봐서 왜 전쟁 중에 느닷없이 피아노를 치나 했더니,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었군요.
영화를 본 일이 오래되었는데도 주인공이 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네요.
잘은 기억안나도 음악때문에 한사람은 살고, 그 음악이란걸 좋아했던 장교는 패전으로 죽었었나? 하는 기억만 나는데. 무척이나 괜찮게 봤던 영화중에 하나였던거 같네요. 피아노라는 영화도 좋았던 기억이... 광적으로 피아노를 좋아하던 여자가 나왔었나?
이 영화 정말 좋은데, 다른 피아니스트도 있어요. 그건 영화가 좀......로만폴란스키가 '악마의 씨'(하나도 안 무서움)라는 영화 찍고 부인이 죽었다고 그러고, 미성년자 성추행해서 미국에서도 추방당했다고 그러고. 근데 영화는 참 좋아요. 음악이라는 건 정말 커다란 힘이 있는 거구나 라는 것도 느끼게 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