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번에 재미없는 화하(華夏)족 지나의 계보를 계속 따진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오랑캐들의 계보와 비교해보기 위해서이다. 큰 흐름으로 보면, 역사가들의 입장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두 입장을 간략히 설명해 보겠다.
첫째번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기나긴 세월을 거쳐 지정학적인 강약의 좋은 점과 피해를 같이 맛보며 대륙과 해양의 문화를 흡수하고 침략과 강탈을 이겨내며 굳건히 버텨 오늘날의 자기정체성을 이룩한 것으로 본다.
강대국 중국과 겨루어 대등했던 때도 한 때 있었을 정도로 대단했고 문화적으로도 고유성을 가지고 중국을 흡수하고 일본을 지도했으며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나라로 그 모습을 아로새겼다고 평한다.
특히 주목해야할 집단이 바로 신라다. 신라는 고구려의 대륙성과 백제의 해양성을 흡수통일하지는 못했으나 중국과 분명히 다른 우리만의 고유함을 지키고 발전시켰으며 동아시아의 수 많은 종족들이 중국으로 흡수되어 가는 동안 우리 민족이 자기모습을 지키는 기초를 닦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 끝에 붙은 조그마한 나라였지만, 마치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구석진 곳의 고유함을 세계적인 문화로 발돋움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첫번째 입장이다.
두번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의 역사는 중국과는 반대로 원래의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흐름을 보인다. 환웅의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이 워낙 광대하고 강한 나라였던지, 종족의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은 중국과는 반대로 통합(統合)이라는 흐름이 아니라 이산(離散)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전국시대에 중국땅에 있었던 그 많은 나라들중 절반이 우리 종족의 나라였으나 각개분열로 중국역사에 흡수되고 말았고, 중원과 북방, 만주, 몽골고원, 시베리아의 여러 동족들도 제각기 나라를 세워 서로 치고받기 시작하면서 종족분화는 물론, 각 종족도 문화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거야말로 잘 나가던 집안이 형제간에 싸움질로 쫄딱 망하는 모습, 그 자체다!
특히 고구려의 멸망은 기가 막힌 민족사의 절단이었다. 맏형 고구려가 무너짐으로써 우리는 거대한 중국과 외롭게 싸워야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단군조선 시절의 빛을 잃은 채 살아남기 위해 사대(事大)해야했다.
고구려와의 단절을 어떻게든 회복하려는 수많은 노력들은 사대주의 정파와의 싸움에서 지고 또 져서 결국 한말의 국권상실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것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라는 것이 두번째 입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는가?
독자 여러분은 아마, “고대사 X파일”이라는 글을 짓는 사람이라 당연히 두번째 사람들의 입장이리라 여기시겠지만, 나는 두 생각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난 번에 말했던, 역사의 아이러니가 내 입장이다. 거대종족의 연맹체를 꿈꾸는 것은 한편으로 오늘의 우리가 보잘 것 없기 때문이고, 작은 나라지만 고유의 문화를 간직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거대종족의 연맹체가 사실은 “민족국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함을 알기 때문이다.
고구려를 정통으로 하는 민족사를 서술하면서 단일민족을 운운하기가 나는 쑥스럽고, 그렇다고 신라를 버리면 우리의 지금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혼란에 빠져있는 외로운 학인(學人)이다. 내 역사관점의 한계라고 자인한다.
그래서 나는 앞에서 설명한 두 관점의 공존을 용인하는 “자랑스러운 오랑캐의 역사”라는 관점을 내세운다. 이것은 사실을 보는 관점으로써 신채호 선생의 그것과 김용옥 선생의 그것을 빌려온 것이다. 두 유형의 오랑캐중 나는 아직 어느 것이 더 자랑스러운지 결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둘다 너무 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아직 내 겨레의 자기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다시 바꾸어 말하면 우리 민족이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미래가 안보인다는 의미다. 미래가 안보이니 과거를 해석하기가 어렵다. 가엾은지고.
어쨌거나 나를 과대망상이라 부른다면, 신채호도 뒤지지 않는다. 과대망상이라, 내 방 책장에는 아직도 군대시절 잡지에서 오려만든 신채호선생의 액자가 날마다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분을 과대망상환자로 (진심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다. 나는 항상 그분을 진지한 연구와 끝없는 노력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우리 겨례의 눈을 띄워준 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용옥도 마찬가지다. 내가 존경하는 이 동양학자는 직설적인 강의와 선정적인 표현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은, 이 시대의 천재다. 단순히 동경제대를 들어가기 위해 한 달만에 일본어를 마스터했다거나 대만국립대와 하바드를 동네학원 들어가듯 쉽게 다녀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는 “한자”로 적힌 우리 옛문헌을 “번역”해야한다고 감히 주장한 정통파중 단 한 사람이다. 우리 옛문헌이 외국어로 적혀있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 사상을 계승하기에 너무도 변란이 많았던 우리시대의 지성으로는 저 거대한 조상들의 머릿속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번역서 한 권 없이 원효가 어쨌다느니, 성리학이 어쨌다느니 하는 것이 정말 웃긴다는 분노 서린 한탄을, 주류학계에 마구 날릴 용기를 가진, 진정으로 노력하는 사람, 진정한 천재다. 만약 나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사람을 일본 열도와도 바꿀 마음이 없다”고 선언하고 싶다.
동시대의 사람에게 이런 면류관을 주기에 우리는 너무 작은 사람들이어서, 신채호 선생도 그 시대에는 기인으로 취급당하며 감옥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너무도 쓰라리게 살다 가셨다.
그가 남긴 조선상고사의 외로운 빛이 아닌들, 우리가 어찌, “위대한 오랑캐”라는 상상이나 감히 할 수 있었을까. 그저 곰의 자손이라는 자기멸시 속에서 토끼만한 나라를 지키느라 죽을 고생 다하며 더러운 짓 다했기에 세계사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함석헌의 절망노래로 만족해야 했겠지.
독자 여러분중 아마 몇몇 분은, 글을 짓는 나를 “과대망상”에 걸린 환자로 생각하시리라. 한 편으로는 그런 모습이지만, 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한 민족국가 시대에 살고있다. 몇몇의 합중국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지구상의 사람들은 “민족”을 단위로 나라를 세우고 삶을 영위한다. 이 관점에서 먼 과거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모순과 허점 투성이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아니”라고 한다든가, 우리 생각에 맞게 억지로 바꿔버린다면 해석이 아니라 “조작”이다. 역사에는 추정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사실”을 견지한다는 “관점”이 있을 때 정당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정말 잘났다는 자기기만이 아니라, 진실을 회복함으로써 상처난 우리 자존심을 치료하는 꾸준한 작업이다. 이것은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 소공녀의 이야기와도 비슷한 것이어서, 조금 동화스럽기도 하지만, 충분히 필요한 작업이다.
물론 시험에는 안나오는 이야기를, 가끔 이런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하는 나에게 던지는 가당찮다는 시선을 경험한 필자로서는, 마구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중국을 정벌하고 일본을 가라앉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문화주체의 역할을 스스로 인정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의 계통에 대해 나름대로 주장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흥하고 민족국가가 생성되면서, 각 민족은 별 상관도 없던 왕족의 역사와 그 이전의 역사까지 죄다 “민족의 역사”로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면면한 실천과 끊임없는 정진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상식적인 주장에서 헤겔의 “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역사”라는 학문을 탄생시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상들의 재미난 흔적보다는 이 철학일지도 모른다. 역사에 대한 생각(철학)은 곧바로 사실을 담고 조리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어떤 그릇이냐에 따라 담긴 사실은 어떤 모습과 색깔을 품는다. 오늘 흐트러진 우리의 현대사가 담을 수 있는 진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한다면, 작아진 우리가 담을 수 있는 저 거대한 조상들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더 초라한 스스로를 느끼고 이 작업을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역사를 통감(通鑑)이라고 불렀던 우리 선인들의 뜻깊은 생각을.
그들은 그들 대에 아무런 소용이 없을 실록을 오백년간 임금도 못보게 한 채 써왔고,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오백년 왕조의 실록을 가진 민족이다. 지구상에 오백년씩 왕조를 유지한 종족이 과연 얼마나 되던가? 그리고 오백년간 실록을 써온 종족국가가 얼마나 되던가?
하물며 그 전통은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고 저 먼 옛날, 단군조선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천년이 넘는 단군조선과 부여족의 여러 나라들이 기록한 사서들은 이제는 연기로 화한지 오래된 비기(秘記)가 되었지만, 그 정신만은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정신을 혼란한 틈새에 놓쳐버린다면, 그 죄를 조상과 후손들에게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