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부론면 단강 1리에 있는 <단정(端亭:단종이 잠시 머물렀다는 정자)>에서 알수 있듯이 조선의 제6대 왕인 단종이 1457년 음력 6월 22일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유배교서를 받고 돈화문을 출발하여 한강나루를 출발 뱃길을 따라 여주 이포나루에 다다르고(한양 광나루에서 원주 흥원창까지 바로 뱃길로 갔다는 주장도 있다) 안창을 거쳐 5일만에 영월땅 주천에 그러고도 2일이 지난 1456년 6월 28일이 되어서야 최종 목적지인 지금의 청령포에 도착을 하게 된다.
7일 동안 700리(280km)의 먼 여정이 16살의 어린 소년인 단종이 걸었던 바로 <단종 유배길>이었다.
살고자 함에, 살아나고자 함에 왕위까지 삼촌 수양대군(세조)에게 물려주었음에도 결국 폐족이 되어 서울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던 소년 단종의 마음은 영도교(永渡橋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崇仁洞)과 중구 황학동(黃鶴洞) 사이 청계천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로 2005년 청계천 복원이 새로 건립됨)에 이르러 서야 현실의 비참함에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영도교에서 그의 부인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와 영원히 이별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16살 단종과 17살 왕비가 마지막 이별을 하였다 하여 영도교가 <영이별다리>,<영이별교>,<영영건넌다리> 등으로도 불리운다고도 한다.
특히, 서울시 종로구에서는 매년 4월말경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제>를 청계천 영도교 일원에서 개최한다. 그리고 매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단종문화제>가 실시되는데 소년소녀 같은 젊은 부부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청계천 영도교에서 2010년도 개최된 단종비 청순왕후 추모제 행사 모습>*까망천사 블로그 참조인용
영월문화원에서 고증한 단종의 유배길을 추적해보면 아래와 같다. 한양에서는 여주까지는 뱃길로 그리고 나머지 길은 걷거나 말을 타는 방법으로 영월로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 한나라의 왕이었던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내쫓아 내면서도 백성들의 원성을 두려워 하였던 것 같다. 가급적이면 백성들을 많이 만나지 않는 구간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단종 유배길을 트레킹 하려고 한다면 서울에서는 여주까지는 자전거로 그리고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서부터 문막을 지나 부론면과 귀래면까지도 자건거로 가면 좋을 듯 싶다.
원주에서 영월로 향하는 유배길은 자전거로는 무리다. 자전길로 가장 무난한 코스는 바로 원주 부론면 흥원창에서 귀래면까지의 구간이 아닐듯 싶다. 가다가 역사 문화유적도 찾아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서울구간) 창덕궁 돈화문⇒청계천 영도교⇒살곶이 다리⇒화양정(현재의 광진구 화양동 주민센터 옆)
(한강구간) 광나루(현재의 광진정보도서관 근처에 위치)⇒(배알미리)⇒이포나루
* 배알미리라고 하는 지명은 단종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배알을 하였던 곳이라 하여 배알미리라 하였다 한다.
하야하고 쫓겨나는 전 국왕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이였을까
(여주구간) 이포나루⇒원통고개⇒어수정 ⇒ 서원리
* 원통고개는 단종이 귀양가는 것이 원통하다 해서 원통고개라 하였다 한다.
(원주구간) 안창리(지정면) ⇒ 문막 ⇒ 손곡리(부론면)⇒ 단정지(부론면) ⇒운남리(귀래면) ⇒ 뱃재
(제천구간) 뱃재 ⇒ 꽃댕이
(원주구간) 운학동 ⇒ 구렁재 ⇒ 신림(원주시) ⇒ 배나무거리 ⇒ 싸리치 ⇒ 황둔리 ⇒ 송계리
(영월구간) 솔치고개(어음정) ⇒ 공순원 ⇒ 주천⇒군등치⇒신천리(명리곡)⇒배일치⇒점말⇒문곡교⇒남애마을⇒선돌마을⇒
서강마을⇒청령포
위와 같이 구간별 경로를 살펴 보았지만 비운의 단종처럼 7일동안의 고난의 행군을 체험하고 싶다면 영월군의 향토사연구회원들이 현재의 지명에 따라 답사한 일정에다 좋은 곳을 몇가지 추가하여 보았다.
(제1일차) 청덕궁 돈화문 ⇒ 이씨종약원 ⇒ 정업원 ⇒ 영도교 ⇒ 살곶이다리 ⇒ 화양정
(제2일차) 화양정 ⇒ 광나루 ⇒ 하남시 배알미리⇒ 여주군 이포리
(제3일차) 이포리 ⇒ 대신면 상구리(어수정) ⇒ 주암리
* 어수정은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上九里) 64번지에 있는 우물로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유배 가다가 물을 마셨다고
전해지나 현재에는 골프장 내에 있음
(제4일차) 주암리 ⇒ 어운리고개 ⇒ 안창리(흥법사지,김제남 신도비, 의민공사우) ⇒ 안창대교 ⇒ 문막
* 흥법사지 : 신라시대의 절터로서 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이 있다
* 김제남 신도비 : 조선 중기의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를 기리는 비
* 위민공사우 : 김제남을 제향하는 사당
(제5일차) 문막⇒부론 흥호리(흥원창) ⇒ 손곡리⇒법천리(법천사지)⇒자작이고개⇒정산리(거돈사지)⇒단강리(단정지)⇒
용암리⇒귀래면(미륵산)⇒운남리
* 흥원창 :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등 강원도 영서지방 남부 5개 고을의 세곡과 강릉·삼척·울진·평해
등 영동지방 남부 4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일정한 기일 안 에 경창(京倉 : 서울에 있는 조창)으로 운송하던 곳
* 법천사지 : 신라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우리나라 묘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101호)과 탑비(塔碑, 국보 제59호)가 있으나 탑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으며,탑비를 비롯 지광국사현묘탑지 와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이 있다.
* 거돈사지 :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 단정지 : (구) 단강초등학교 앞에 있는 단정이라는 정자의 자리로서 노산군(魯山君)이 영월로 유배를 갈 때 여주에서 뱃길로
부론면 단강리의 단정동에 이르러 허기에 갈증까지 겹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유배길이라고는 하나 호송하는 나졸들의
처사가 너무나도 혹독하여 지나는 길에 음식을 바치는 백성들까지도 저지하였다.
더위에 땀냄새는 나고 이것이 뭉쳐져 종기가 되어 가지고 고름이 흘러도 나졸들은 약을 쓰지 못 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는데 목이 말랐지만 나졸들은 모른 체 하고 있었다. 이 때 노산군의 행차란 것을 안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길가에 부복하였고 한 노파가 샘물을 떠다 바쳤다.
이곳서 한참을 쉬고 난 일행은 또 멀고 먼 영월을 향해 떠났고 노산군은 영월서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연고로 이곳 사람들은 동네 느티나무 밑에서나마 잠간 쉬어간 단종을 내내 잊지 못 하고 있었다. 그 후 느티나무 밑 바위에는 정자가 하나 세워졌고 정자 이름을 단정이라고 했다.
(제6일차) 운남리 ⇒ 뱃재 ⇒ 덕동다리재 ⇒ 백운면 운학리 ⇒ 구력재 ⇒ 석동거리 ⇒ 신림
* 뱃재 :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
(제7일차) 신림⇒배나무거리⇒싸리재(옛길)⇒장촌⇒솔치(단종 유배길 영월구간 시점)⇒주천면 물미공원(어음정)⇒신일리 역골 신흥역)⇒주천
* 단종 유배길 영월구간 시점 : 원주 신림면 황둔리에서 (구) 402호 도로 진입 입구에 2012년도 영월군에서 설치
하였다.
* 어음정 : 영월 주천 신일리에서 원주 신림 황둔으로 넘어가는 왼쪽에 있던 물미마을의 샘터이다. 단종대왕이
유배될 때 원주 신림역(神林驛)을 지나 옛길이었던 이곳 샘터에서 물을 마시고 갔으므로 이곳 지명을 '물미'라
하고, 그 샘터를 '어음정(御飮井)'이라 하였다. 1988년 영월 충절현창회에서 『御飮井 端宗解渴之處』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 신흥역 : 황둔(黃屯)과 신림(新林), 원주(原州)로 가는 (구)402번 도로 오른쪽으로 옛날의 구길 이었다. 보안
도(保安道) 소속인 원주 신림역(新林驛)에서 치악산을 넘어오는 역로(驛路)로 이곳은 충북 제천과 강원
원주,영월, 평창으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인 '신흥역(新興驛)'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신흥동을 '역촌(驛村)' 또는 '역골'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 이웃에는 공순원(公順院)이라는 원집이 있었던 원터가 남아 있는데 이곳 자연부락 명칭도 '공순원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말들이 풀을 뜯던 '마래미'와 말을 사육하기 위해서 역(驛)에 다 지급했던 '마위전(馬位田)'이 있었던 곳은 지금까지 '마평(馬坪)'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마평 앞에는 큰 바위하나가 서 있는 데 이 바위를 '색시바위'라 부르고 있다
<단종 유배길 영월구간 출발시점>*세네월의 블로그 참조인용
(제8일차) 주천⇒쉼터⇒거안리⇒군등치⇒명라곡⇒뱃말⇒배일치⇒갈골⇒옥녀봉⇒남애⇒선돌⇒날골⇒서강⇒청령포
영월구간에는 <단종 유배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2012년도에 영월군에서 별도로 만들어 놓은바 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산,들,바람 블로그/음성삼성회 카페/영월문화원/배언덕 블로그/원주문화원
아직은 지역주민도 잘 모를 정도로 생소하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트래킹을 다녀오신 분들의 글을 보면 초보자가 걷기에는 그래도 쉽지가 않다고 한다. 앞으로 영월군과 영월 지역사회에서도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코스로 발전시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침, 제47회 <단종문화제>가 4월 26일(금)부터 4월 28일(일)까지 3일 동안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 장릉 등지에서 개최가 된다. “단종의 향기”라는 주제로 단종제향, 조선시대 국장 재현, 가장 행렬, 칡 줄다리기, 정순왕후 선발대회, 북청사자놀음 등의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한다. 특히, 단종제향은 조선 숙종 24년(1698년)부터 지내오는 전국 유일의 왕릉 제향 행사도 눈여겨 볼만하다.
비운의 소년국왕 단종 그는 오늘도 살아 있다.비록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기를 거부하고 자결을 하였지만, 소백과 태백의 가운데에 있는 고치령의 산신각에....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어 소백산의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과 함께 말이다.
<고치령 산신각에 있는 단종대왕의 영정>*돌구름 블로그 참조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