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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 방문을 마치고 부탄으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어젯밤 8시에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6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인도 델리 공항에 새벽 4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을 잤습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몸이 무거웠지만, 곧바로 수하물을 찾고 인도 입국 수속을 했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5시 20분에 델리 공항 앞에서 김은희 님을 만나 부탄 사람들에게 선물할 치약과 비누를 받았습니다. 김은희 님은 어제 오후에 갑자기 연락을 받았지만 빠르게 비누와 치약을 준비해 새벽에 공항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고마워요.”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 스님은 어제 낮에 가지안테프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으로 받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는 델리 공항에서 부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의자에 앉아 부족한 잠을 자기도 하고 업무도 처리했습니다. 9시 30분에 부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했습니다.
부탄으로 가는 비행기 앞 탑승구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부탄 사람 두 명이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혹시 라마 님 맞으신가요? 저희는 젬강에서 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중 한 분은 지난 5월 스님이 부탄을 방문했을 때 마멍 치옥에서 영어를 부탄어로 통역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법륜 스님인 것을 확인하고 무척 기뻐하면서 자신의 마을에 스님이 방문했을 때의 ‘스님의 하루’ 기사를 보여주며 “이날 스님께서 저희 마을에 오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요?"
스님이 답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오는 길이에요. 작년에 튀르키예에서 큰 지진이 났었어요. 지진 피해 복구 활동을 하고 무너진 학교를 새로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올해는 시범사업을 하는 게 목표예요. 앞으로 5년 동안 사업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지난번에 저희 마을에 오셨을 때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갑게 대화를 나눈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파로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12시 30분이 되어 델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히말라야 산맥의 협곡을 지나 오후 3시에 파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공항 밖으로 나오자 통역을 맡은 린첸다와 님과 부탄 중앙정부 공무원인 이시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린첸다와 님은 부탄 전통에 따라 흰색 천을 스님께 드리며 환영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은 흰 천을 받아 린첸다와 님의 목에 걸어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린첸다와 님은 통역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서 먼 길을 와주었습니다.
차를 타고 오후 3시 40분에 파로를 출발하여 트롱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을 두 번이나 넘어야 트롱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어제 오후 1시부터 내일 낮 12시까지는 계속 이동만 하는 일정입니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델리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부탄에 도착하여 다시 차를 타고 젬강까지 가야 합니다.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자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 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스님에게 저녁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스님은 "아닙니다. 이렇게 잘 먹었는데 밥값을 내야죠. 잘 먹었습니다" 하고 정중히 답하고 밥값을 드리고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길을 계속 달렸습니다. 밤 10시 20분에 드디어 트롱사에 도착했습니다.
트롱사 기획담당관 잠양 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양 님과 함께 숙소로 이동한 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잘 지냈어요?”
“잘 지냈습니다.”
잠양 님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장시간 운전해 준 운전사에게도 스님은 따뜻한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운전수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제 일이기 때문에 고생이 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숙소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긴 여정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부탄에서의 첫째 날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을까요?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신뢰를 주려고 해도 나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안 생기기도 하고, 상대가 나에게 신뢰를 주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상대에게 신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차피 의지대로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냥 생겨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간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아 나갈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신뢰한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예요, 내 문제예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예요, 내 문제예요?”
“제 문제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신뢰를 받는 건 상대의 문제니까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에요. 내가 상대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면 왜 내가 신뢰를 못 받는지에 대해서 탐구를 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꼭 내가 잘못해서 신뢰를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나를 못 믿겠다고 말하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의 어떤 문제 때문에 믿음이 안 가는지 진지하게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불신을 살 언행을 했다고 생각되면 그 부분을 조금 개선하면 됩니다.
상대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를 불신하는 경우라면 내가 상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부모님이 많이 싸워서 늘 어머니가 이혼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든지, 어머니가 이혼하고 나서 혼자 자식을 데리고 사는데 남자친구를 사귀는 모습을 자식이 보게 된다든지, 이런 경험을 가진 남자는 대부분 성장한 후에 여성과의 관계가 늘 불안합니다. 어릴 때 늘 어머니가 자기를 두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성장한 것이 자신의 습(習)이 되어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좋아했다가 멈추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늘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잘 사귀다가도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됩니다. 그러면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죠. 그러나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을 잘 연구해 보면 여성이 떠나버린 후의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하니까 미리 떠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트라우마를 몇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격은 어릴 때의 경험이 작용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살펴서 상처를 치유하면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불신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거나,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가 없어요. ‘법륜 스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입에 거품을 물고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 일부는 제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하여 몹시 나쁘게 생각해서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 하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 일부는 제가 북한 난민을 돕거나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저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똑같은 일이나 사람을 두고도 각자가 가진 성향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JTS에서 인도에 구호품을 지원하면 ‘왜 우리 동포인 북한에 지원하지 않고 인도에 지원하느냐?’ 이렇게 민족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고, 또 북한에 구호품을 지원하면 ‘왜 북한 사람을 돕느냐? 차라리 인도에 지원하지!’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것을 문제 삼으면서 ‘왜 무슬림 사람들을 지원하느냐?’ 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은 자아가 형성되는 세 살 때까지는 가능하면 심리적인 억압이나 상처가 없도록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말하면 30대 직장맘이나 여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기를 낳아서 키워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하고 비판합니다. 저는 그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반응할 수 있지만, 저는 아이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실제로 엄마가 어떻게 해야 아기에게 심리적 억압이나 상처를 주지 않는지에 관한 수많은 연구 사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혼자된 여자가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어요. 피난을 다니면서 4살 된 첫째와 갓난아기인 둘째를 모두 다 키우며 장사를 할 수가 없어서 한 아이를 남한테 맡겼습니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갓난아기는 돌보기가 힘들어서 아무도 안 맡아주니까 결국 4살 된 첫째 아이를 친척 집에 맡겼습니다. 엄마는 잘 사는 친척 집에 아이를 맡겼으니 아이한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를 맡깁니다. 그래서 둘째 아이는 엄마 따라 밥도 굶어가면서 등허리에 업혀서 자랐고, 첫째 아이는 잘 사는 집에 보내져서 살았어요. 나중에 성장하면 잘 사는 친척 집에 보내져서 자란 첫째 아이와 장사하는 엄마의 등허리에 업혀서 자란 둘째 아이, 둘 중에 누가 마음속 상처가 많을까요?”
“잘 사는 친척 집에 보낸 아이가 상처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아기는 제 엄마의 젖을 빨며 자라고 싶어 합니다. 저는 엄마들이 아기에게 그렇게 해주고 안 해주고를 떠나서 아기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무도 아기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으니까 저라도 아기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욕을 먹겠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동포들도 북한 안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에 대해서 제가 대변을 하면 남한에서는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욕 얻어먹어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욕을 할 수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상대가 욕을 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얘기를 해야 한다면 비난을 감수하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괴로워합니다. 비난받는 것이 기분 좋은 건 아니에요. 칭찬보다 비난이 더 기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불신하는 것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실하게 일을 하면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실 저는 충분히 남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저를 신뢰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은 다소 위험하고 건방진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사는데 그 방식을 신뢰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뿐이에요. 신뢰를 받고 싶으면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개선하면 신뢰의 강도를 높이거나 신뢰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에요.
내가 다른 사람을 신뢰하면 나에게 이익이 됩니다. 신뢰를 하지 않으면 나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어떤 행위를 하면 신뢰를 하고,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조건 없이 신뢰할 때 내 삶이 더 안정되고 풍요로워집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예를 들어 가족부터 내가 불신하기 시작하면 내 삶은 불안정해지고 고통이 심해집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본인의 결정에 달려있는 문제예요. 저도 간혹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만나는 사람들을 다 좋게 보고 대화를 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좋게 보는 것이 마음의 안정에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질문자가 남자친구를 사귀다가 3년 만에 헤어졌다고 해봅시다. 그때 남자친구에 대해 ‘배신자’ ‘나쁜 놈’ ‘인간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의 3년이 헛되게 돼요. ‘내가 눈이 삐어서 나쁜 놈에게 3년이나 속았다’ 이렇게 상처를 간직하게 됩니다. 반면에 ‘3년 동안 잘 지내서 고마웠다’, ‘너와 만나는 동안 행복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헤어지면 지난 3년을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헤어지면서 ‘나쁜 인간’, ‘짐승 같은 놈’ 이렇게 상대를 비난하면 내 아이가 짐승의 새끼가 되는 거예요. 이것은 본인의 자존심도 해치는 일입니다. 설령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지게 되더라도 ‘우리 남편이 사람은 참 괜찮았다. 단지 내가 남편에게 맞추는 게 좀 어려웠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도 이렇게 얘기해 주면 비록 부모가 헤어졌더라도 아이가 자기 긍정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를 신뢰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성이 높아집니다. 이 말을 ‘무조건 상대를 믿어라’, ‘상대에게 속아도 괜찮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속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후회는 반성이 아니에요. 후회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잘못할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
후회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른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잘못을 할 수 있는 존재예요. 잘못을 하면 ‘내가 잘못했구나. 다음에는 잘못하지 말아야지’ 이걸로 끝이 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후회를 하는 이유는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완벽한 존재인데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잘못한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자기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의 행위를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자기 괴롭힘에 불과하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참회가 아닙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미안하다’ 하고 거기서부터 한 걸음 나아가야 해요. 후회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행위와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나는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고 말고는 그들의 자유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내 승진을 결정하는 것은 상사의 일입니다. 승진에 대한 결정은 그들의 자유이고 그들의 권리예요. 다만 법률적으로 부당할 때는 고소를 해야 합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그런 용기는 항상 있어야 해요. 그런데 법률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인간이 개입되는 일에는 항상 인지상정이 있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법이 엄격하다고 해도 인간 세상에서는 항상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자로 잰 듯이 엄격하게 일을 처리하면 세상이 더 각박해집니다.
그런데 이제 갓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이거나 외국에서 유학을 왔거나 이민을 왔으면 그 사회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현지에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부당한 것을 너무 참으면서 죄인처럼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법이 있고, 법에 보장된 나의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것에 대해서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개인적 손실이 따르더라도 그 권리를 주장하되, 문화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은 조금 부드럽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트롱사를 출발하여 점심때 젬강에 도착한 후 오후부터는 JTS가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5개 게옥의 마을리더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2박 3일 동안 ‘지속가능한 개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