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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상의 2008년 중국 일정을 마치면서...1부
10월10일을 마지막으로 올해 중국 중국일정을 마치려고 했는데...환율 급등 등 사정이 급변하여 중국일정을 앞서 마칠지 심각히 고민 중이다.
솔직히 올해 내몽고 후허하오토, 승덕 그리고 고구려 천리장성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었지만. 북경 올림픽과 백두산여행이 겹쳐 현지 방문 및 조사가 취소되거나 매우 빈약하게 진행되었다.
중국비자문제와 올해 개인적인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올해의 가장 특징적인 여행은 나의 개인적인 여행보다는 여러 중국 여행객 팀을 이끌고 인솔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인솔 경험이 적다 보니, 여행 기획이 생각보다 미흡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된다.
여행의 아쉬운 점을 하나 둘씩 접어가며 벌써 올해 중국 여행의 끝 정리를 해본다. 올해 여행에 가장 아쉬운 점은 고구려 천리장성에 중점을 두었지만.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목표로 한 곳을 제대로 탐방하지 못한게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 둘씩 짚어 보기로 하자.
첫째. 이번에 여러 팀을 인솔하면서 난 개인적으로 고구려 성터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나쁜 기상과 나의 준비 부족으로 고구려 성터 방문 효과를 얻지 못한게 아쉽다. 내년에는 보다 철처한 준비를 가지고 개인적 답사나 손님들을 인솔할 생각이다.
둘째. 고구려성터 방문이 어려운건 같이하는 여행객 분들의 인식 부족도 한 목 한다. 내가 굳이 볼거리도 없고 가기도 불편한 고구려 성터를 찾는 건, 흔히 갈 수 없는 우리들 선조의 혼을 숨쉬기 위해서다. 같이 하시는 혹자 분들은 말한다. “왜 이렇게 공허하고 아무 실체도 없는 곳으로 귀한 시간과 돈을 내고 오는가?” 우리가 여행하는 가장 큰 여행지는 백두산 압록강 북경 등은 흔히 한국에서도 여러 여행사들을 통해 갈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 성터로 알려진 곳은 모시기 여간 힘든게 아니다. 흔히 여행 상품화 된 고구려 비사성 박작성 등은 이미 중국 동북공정화 된 곳이다. 한국 일부 여행객들은 오히려 고구려 혼이 숨쉬는 건안성 안시성 백암성 등은 외면하고. 중국화된 고구려 성들 짝퉁 고구려 성을 보면서 왜 더 열광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셋째. 집요한 중국 쪽의 방해공작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접근금지, 고구려 성까지 가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현지 여행사가 차량의 파손이 염려스럽다며 여행지 포기 또는 거부, 또 이번 중국 현지 단체여행에서 느낀 점이지만, 중국 현지여행사는 가능한 쇼핑할 시간을 확보하려 들기 위해, 자신들이 짠 여행일정에 충실해 주길 바라는 점이다.
여기서 난 주요인들을 더 심층적으로 짚고 넘어가려 한다.
a. 해성시에 있는 안시성은 한국인은 공식적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안시성 입구 안내문으로 한국인 출입금지란 쓰여 진 녹슨 푯말이 있다. 내가 2년 전에 본 푯말인데 지금 더 녹쓸어 글씨마저 보일지 의구심이 든다. 중국 성정부에서 안시성을 관리하는 안내인을 두어 통제한다고 하는데 안시성 입구에는 안시성을 안내하는 한족 호객꾼들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1인당 10위안 정도만 주면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거리는 채 5분도 안된다.
실제로 안시성에 대한 한국인의 입장이 해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0명 이내로 방문하면 입장은 가능하다, 그러나 10이상 단체로 관람하면 중국쪽에서 통제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지 여행사에서 꺼려한다. 어째든 단체 여행의 핵심은 안전이기 때문이다.
b, 안시성 내게는 중국을 찾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관심이 큰 곳이기에 중국에서 여러모로 통제를 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현지 여행사에서 안시성 관람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현지여행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시성까지 관람 아니 현지 이동하는데 현지 지상비 이외에 터무니 없는 비용을 내게 청구하는 것이다. 자그만치 30만원 불렀다. 참 기가 찼다. 도대체 여기에 무순 연유가 있을까 사실 단동으로 이동하는 시간상 무리가 있었던 사실이지만. 못 갈 정도는 아니였는데. 지금 유추해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단체가 안시성 관람을 통해 야길 될 외교적-사회적으로 파생될 문제에 대한 현지 여행사의 거부, 아니면 단동에서의 쇼핑할 시간을 확보해 두려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영구 자정향호에서 내리고 중국현지 입국하자 현지 가이드는 안시성은 무조건 안된다는 통첩을 한다....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 있을 것이다.
c. 백암성은 올 초 까지는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5월 이후로 백암성 관람이 힘들어 졌다. 아니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 현지 여행사에서 내게 관람이 불가하다고 주절된 이유는 백암성까지 가는 도로 사정이 너무 나빠 버스 파손이 심한다고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면 도로사정이 괜찮은 백암성 주변인 관둔촌까지 버스로 들어가 교통편을 다시 구해 보겠다고 하니깐 장마철 폭우로 다리가 끊겨 백암성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단체 여행객을 모시고 갈 때는 중국 현지여행사에 많은걸 의지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도로 사정이 나쁘고 다리가 끊겨는지 모른다. 아니면 중국 중앙정부의 보이지 않는 동북공정의 압력이 있는지 나로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백암성은 나 홀로 방문하기에는 많은 경비가 소요된다. 아쉽게도 올해 내가 직접 백암성을 방문하여 확인할 기회를 놓친게 아쉽다. 또 내년으로 백암성을 탐방을 뒤로 한게 못내 아쉽다. 근 1년 사이 중국 정부의 백암성 동북공정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답답하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지속적인 백암성 탐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d. 건안성이야기다. 지난번 경기민예총분들과 백두산-연길 탐방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포인트를 잡은 것은 건안성이다. 나의 준비 부족으로 건안성 많은 부분을 놓친게 아쉽다. 중국 현지 여행사에서는 고구려 천리장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고구려 천리장성이 어디에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하지 않고 외교적-사회적으로 여행사 차원에서 이슈화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에 설계된 여행 경로를 가이드나 운전사 모두 편하게 움직이려 하기 때문이다.
2부를 통해 올해 내가 느꼈던 중국 현지여행사와의 현지 쇼핑문제 그리고 자아비판적인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인솔했던 단체여행의 문제점을 상세히 다뤄 보기로 하겠다.
단군세상의 2008년 중국 일정을 마치면서...2부
2008년 10월 8일 어제 경기도 민예총에서 주최한 경기통일미술전이 있었다. 8일만에 외출이다. 머리에 있던 조그만한 종기 수술을 받아 일주일만에 멱을 감고 홀가분한 몸으로 맞이한 가을의 첫 나들이었다. 미술에 대해 무뇌한이지만, 이번 미술전은 내게는 아주 특별한 연과 추억이 깃든 행사였다. 예술적 작품성을 떠나 내가 인솔했던 여행 팀의 여정이 그림과 사진으로 다시 재연된다는 것 이런 결과물로 자리매김 한다는 점에서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뿌듯한 맘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번 썼던 단군세상의 2008년 중국일정을 마치면서 2부를 엮어 나가려 한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오민희님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단군세상님은 왜 중국을 그렇게 좋아 하시나요” 어~ 내가 중국을 좋아했던가... 좀 당황스러웠다. 사실 중국의 매력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중국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동기는 북한과 관련된 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중국의 첫 입국은 단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중국이란 낯선 이국의 느낌보다. 단동 앞에 압록강을 끼고 펼쳐진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었고 가슴속에 더없는 관심이 용솟음 쳤다. . 음~ 내가 지금까지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봤던 지금까지 북한과 북한보다 더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은 180도 다른 느낌과 설레임이었다.
난 이후 개인적으로 단동과 신의주에 대한 매력에 빠져 연거푸 세 번 단동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동부터 한반도의 끝단이 보이는 중국 지린성 도문까지 배를 빌리고 자동차를 빌려서 총 2주간의 중국여행을 마쳤다. 1주간은 단동에서 도문까지 조-중 국경선을 따라 여정에 올랐다. 이것이 내가 본격적으로 중국여행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북녘의 또 다른 모습과 중국 현지인들의 삶, 연변 조선족 자치주, 그리고 그때서야 느끼게 된 우리의 조상인 고구려의 숨결이 내 가슴속에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중국을 방문하게 된 동기가 첫 번째 동기가 북한이었다면. 두 번째 이유는 무릎골절로 나빠진 내 좌측 골반을 물리치료 즉 안마를 받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치료비가 한달에 80~150만원 가까이 나오는 터라 부담감에 앉고 중국을 찾았다. 중국에서는 한 달 내내 치료를 받아도 위안화 한국 돈 만원에 80위안(현재 45위안) 할 때 한 달 치료비는 15만원을 넘지 않아서다. 그리고 동북3성의 유명하다는 중의사를 찾아 다녔다. 치료의 질이 한국보다 높았던 것이 이유였다. 근 치료비로 4년동안 2000만원 이상 지출하였지만 여행하면서 치료를 받은터라. 한국보다 상당히 저렴하였고,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세 번째 이유는 이렇게 중국을 오고가면서 단동과 진황도를 중심으로 동북3성과 하북성을 휘젓고 다녔다. 단동과 심양에서 진황도를 왕복하기를 수십 차례 아무생각 없이 맥없이 다니기가 뭐했다. 하여간 뭔가 허전하였다. 뭐~ 새로운 프로젝트가 없을까. 친구도 거든다. 그것이 “박지원의 열하일기”였고 “고구려의 천리장성”이었다. 나의 새로운 탐구 대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네 번째는 나의 취미와 연관 지은 노후설계다...지금 조그만한 나의 중국에세이라고나 할까 한줄 한줄 적어가고 있다. 만약 책으로 나온다면. 저자와의 여행이랄까. 50대 이후 소박하게 중국에서 가이드를 하며 내 노후를 만들어 가고 싶어서다.
위에 열거한 내용이 내가 중국을 찾는 이유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2008년 단군세상의 중국여정에 대한 반성문을 담아 보겠다.
먼저 단군세상의 단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1, 중국을 오래 다녔지만, 중국어를 모른다.
나이가 먹어서인가,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져서 인가. 이상하게 중국어 자체가 싫다. 내가 성격이 급하고 발음이 강해서 그런지 중국 발음의 핵심인 4성을 발음하지 못한다...하루내내 단어를 공부해 발음하여도 중국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맥이 풀린다. 성취도를 느끼지 못하였다. 중국어는 내게는 뭔 당신과 같은 존재이다. 10월부터 6개월간 시간이 빈다. 중국어는 못하더라도, 중국 한자 간자체 공부나 열심히 할 생각이다.
아~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원래 중국에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었던 사업이 핸드폰 통역 사업이었다. 중국 현지에 직원을 두었다. 옆에 가이드가 없어도 핸드폰 통역으로 중국인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사업적 동기도 있었지만 나의 태만과 의지 결여도 한 목 단단히 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성격이 불같고 급하고 고지식하고 예의가 모자르다...
암~ 내가 항상 고민하는 문제이다. 음~ 성격이 워낙 급하다...내 마음과 의도는 그런게 아닌데 많은 오해를 받는다. 워낙 고지식하고 자존심이 강해 이것이 정도가 아니면 돌아가지 못할망정 길을 멈춘다. 그리고 주변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내 가장 큰 성격 장애인데 왜 이리 나이를 먹어서도 고치기 힘든 줄 모르겠다.
여행사 하는 친구가 내게 말한다..너는 손님 모객만 하지..., 인솔을 하지 말라고, 내가 성격도 급하지만, 내성적인 면도 많다. 속된말로 말하자면 손님들 비유를 맞히지 못한다. 어떤 때는 역전돼 손님들이 내 비유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한, 웃질 못할 내 치부를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아래서도 다시 말하겠지만, 먼저 짚고 넘어가겠다. 손님들도 나의 이런 결점에 대해 지적하시곤 한다. 직장 생활도 위와 같이 불같이 해서 상사와 동료와 트러블이 많았지만, 내 업무에 대한 애정과 정도의 길로 고지식하게 걷기만 했다. 이제는 단속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내 일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 직장동료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나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큰 장애 요인 이란건 안다. 나도 알지만, 참 고치기 힘들다. 정말 많은 개인 수양이 정말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솔직히 수십명의 손님들을 모시고 인솔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대다수의 여행사 직원들도 회피하려고 한다. 나도 정말 내 사고와 이상을 이해해 주지 못하시는 손님들과 여행을 동행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아니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인솔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내가 추진하는 것이 학술테마 쪽이다. 인솔자가 확실한 신념과 지식을 가지고 손님을 통솔 또는 인솔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인격적 겸양과 도덕, 여행테마의 지식을 모두 겸비한 분을 인솔자로 섭외한다면 아주 많은 인건비를 내가 지출해야 한다. 솔직히 내가 고생하는 만큼의 금적전 수입은 거의 없어진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현지 가이드의 문제이다. 현지 가이드들은 아무리 친절하다라도 진정 가식적 모습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여행객 손님들은 1회용 매출을 올리는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손님을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다. 가이드는 오늘이 중요한거지 미래에 대한 이미지는 중요치 않다. 나의 그들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고 경험하였기에 그들의 손님들에 대한 비상석인 영업행위는 묵과하지 못한다. 내가 사사건건 가이드가 충돌하는 모습을 손님 앞에서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데. 내 덕목이 부족하여. 손님들 앞에서 숨기지 못하고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이 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이런 부족한 내 자신도 부끄럽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심하게 나무라는 손님들을 볼 때, 어느 때는 가이드의 작태를 눈감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이 있다. 어쨌든 인솔자의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가 현지 가이드의 효율적 통제이다.
아니 2부에서 쇼핑문제를 다루려고 했는데...이야기가 길어져 3부나 4부에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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