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곽 예
얼마 전 설날에 조카에게 새로 나온 빳빳하고 앙증맞은 지폐를 내밀다가 물었다. ‘히구치 이치요’란 일본의 소설가가 일본 5천 엔짜리 지폐에 실려 있는 걸 아느냐고. 그것도 110년 전, 2년 정도 글을 쓰고 아주 이른 나이에 타계한 여성이란 걸….
조카는 굉장히 놀라워하면서 “글 쓰는 사람도 지폐에 나올 수 있는 거구나”하였다. 내 눈에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비를 듣는 윤동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에서 출생하여 평양과 서울에서 학업을 하고 더 공부를 하기 위하여 일본에 갔다가 독립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6개월 전 그 생을 마쳤다. 정지용의 말대로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은 것이다. 살아서는 시인의 칭호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 윤동주는 국민의 시인이 되어있다. 시간의 벽을 넘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천진하고 쉬운 언어로 되어있는 그의 시집 중, 내가 읽은 것은 1948년에 초판을 찍고 제2판이 1976년에 나온 정음사 간행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시뿐만 아니라 금쪽같은 4편의 산문도 함께 들어있다. 1960년대 이전의 언어로 된 박두진, 백철, 문익환, 장덕순, 윤일주, 정병욱 등의 후기를 읽는 것도 정겹고, 오늘날과는 달리 ‘조금’은 ‘조곰’으로, ‘얼굴’은 ‘얼골’로 표기되어있는 것과, 페이지가 오른쪽에서 시작하고 세로로 글이 배열되어 있는 것도 이채로운 일이다.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중에서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 밤을 더불어 말할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 수 없도다
그신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매끼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윤동주, <산골물> 전문
턴넬을 벗어났을 때 요지음 복선 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아침 첫차에 나갔을 때에도 일을 하고 저녁 늦차에 들어 올 때에도 그네들은 그대로 일하는데 언제 시작하야 언제 그치는지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 그 육중한 도락구를 밀면서도 마음만은 요원하데 있어 도락구 판장에다 서투른 글씨로 신경행(新京行)이니 북경행(北京行)이니 라고 써서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다닌다.
―윤동주, 산문 <종시(終始)> 중에서
“붓끝을 따라온 귀뜨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 라고 한 나의 글월에 “너의 귀뜨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라고 답장을 주신 일이 기억됩니다.
―동생 윤일주의 후기, <선백(先伯)의 생애> 중에서
해방되고 난 뒤의 세상이 그가 바라던, 바로 그 세상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여태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세계는 여전히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환경 파괴가 심해서 기온은 너무 높거나 폭설이 내리고, 침팬지는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돌아갈 고향이 없는지도 모른다.
새까맣게 선 전경들 사이, 10명도 안 되는 농민들이 서툰 글씨로 “대추리 마을의 검문소를 없애주시오” 라고 쓴 천을 들고 서서 추위에 떨고 있는 풍경을 지나다가, 잎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의 살랑임을 보다가, 비에 젖은 신문지와 박스를 끄는 할머니를 보다가 그를 떠올린다. 윤동주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그의 시집을 처음 만났던 17살이 된다. 윤동주와 같이 북간도에서 나서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은, 신춘문예에 ‘숟가락’이라는 콩트가 당선되기도 했던,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에 대해서도 애잔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나의 시 <북간도>는 그런 그들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의 노래이다. 삶도 하나의 여행이라면 인생의 길에서 만난 따듯한 눈동자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봄물같이 유순하고 따듯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