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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금나라는 삼국 통일 신라 왕조의 김씨족?
놀라지 않을 수 없는...,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글은 21세기 로 들어서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이 본격화 되면서 우리 정부와 역사학계가 이를 우려한 나머지 만주 일때 우리와 직결되는 나라들과 민족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방영된 역사 다큐멘터리 내용을 중점으로 정리를 한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본인의 부연설명과 경험관련해서 설명이 추가되고,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와 어떤 상관 관계가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예지적인 관점에서 방향 제시를 하는 글의 요지...
핵심 내용 전반은 2000년 전 동북3성의 김씨 일족이
어떻게 여진족의 시조가 되고, 금나라를 설립했는가?
그 뿌리와 발전상 전 과정은 우리 신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정리한 내용이다.
여진족 추장 아골타, 금나라를 세우고 성을 안완씨로 정했다. 정식 이름은 '완안 아골타'이다. 이 아골타가 만주 일대에 나라를 세우고 그 도성을 심양으로 정했고 완안 아골타로 성과 이름을 규정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묘비석이나 족보에는 김(금)씨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족들은 이 금나라를 '진족'이라고 그렇게 불렀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김씨 족이란 의미이다. 후에 완안 아골타 추장의 4째 아들이 만주와 중국 북쪽 내륙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금나라였고 자신의 이름을 완안 올출이라 했고, 중국인들은 '진우주'라고 불렀다.
어떻게 '완안 아골타'나 '완안 올출' 성이 김씨로 칭해 진 것인가? 어째서 완안 올출을 김올출로 불려질까? 이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금나라 성이 완안이 아니고 왜 김씨일까?
중국 서북 깊은 곳 감숙성의 '경안현'에는 완안성씨의 완안 마을이 동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계조상이 아골타의 4째 아들 '완안 올출', 즉 '김올출'이라고 한다. 이들 마을에 시조와 조상들 시향 묘들의 비석도 모두 김씨로 되어 있다. 어떻게 금의 완안 후손들이 김씨의 후손들이 되고, 왜 만주와 정반대의 지역인 이곳 감숙성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을까?
이는 자신들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이곳으로 피해와서 자리를 잡고 800년 동안 살아오며 현재의 후손들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완안 올출을 김올출로 호칭한다고 한다. 물론 이들 후손들은 자신들 시조가 김씨성을 가졌지만 왜 그렇게 불려지고 기록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 성은 중국에서 대단히 드문 성이다. 668년 고구려의 멸망, 30년 후 698년 대조영에 의해서 발해가 세워지고(발해란 이름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고 중국이 자신들 발밑에 속한 나라란 의미로 중국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것으로 동북공정을 시작함에 매우 중요한 핵심으로 활용한다고 함), 926년 요나라를 세운 거란에 의해서 발해가 끝나고, 1115년에 여진족 추장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고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부터 중국 한족은 북방계들에 의해서 도륙을 당하기 시작하는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이 금나라가 우리와 관계해서 매우 의미있고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강화도 마니산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뿌리와 역사 전통을 이어오며 숭상하는 장소로 특별한 곳들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는 하늘에 제를 올리는 신성시 여기던 장소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이는 우리 시조들이 제사장 제도를 집도하면서 하늘의 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제사 행위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며 고대 사회를 신적 배경으로 인도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제를 올리는 장면들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오늘 기독교 예배의 원초적 배경이 되는 구약시대의 예배의 본이 바로 제사였다. 산 정상이나 중요한 장소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행위는 매우 중요했다. 이곳들은 매우 신성시 되는 장소였다.
노아의 홍수심판 직후 땅이 완전히 회복되어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산 정상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려 하는 제를 올리고자 했다. 감멜산 제단, 모세의 제단, 엘리야, 엘리사의 제사 행위는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절대적인 행위였다.
제사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깨끗이 하는 의식과 하나님께 비내리게 해달라는 요청이나 전쟁에서 이기고 원수나 적들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듣고, 뜻을 알고자 하는 제사 행위는 매우 중요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고대도 노아 심판 후에 셈족으로 아시아 고대 지역들로 흩어지면서 그 제사 제도는 매우 중요하게 전파 되어지고 확산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고대 제사장 제도는 그것이 신의 창조로 온 지구의 인류가 확산 되어 가면서 제도나 의식 등이 인류의 번성에 따라서 함께 확산 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고조선 삼국시대 등의 제사 제도는 공유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그 제사를 받는 신의 대상들이 달라 졌을 수 있었지만 그 형태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범죄한 인간 타락성이 참 된 신을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전환 되면서 제사의 대상이 달라 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마니산 제단 바로 그 가까이에 또 하나의 중요한 곳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대의 우리 역사에 시초이며 주요한 기점과 의미를 가져다 준 고대부터 주요하고 대표되는 조상들이 모셔져 있는 '개천각'이란 전각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민족 지도자 이유림선생이 설립해서 24분의 우리나라 역사에 귀한 선조들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환웅 단군, 치국천왕, 구주몽, 대조영, 왕검단검 등, 이분들을 기리며 봄 가을 두 차례식 제를 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뜻밖의 인물 한 명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전혀 예상 할 수 없는 인물이 그곳에 함께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금나라 '태조 아골타'이다. 어떻게 금나라 사람이 이곳 우리 조상을 기념한다는 전각 24분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째서 여진족 아골타가 우리나라 역사의 위인들과 나란이 함께 하는 위치에 세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 하얼빈시 근교에는 '아성'이란 지역이 있다. 현재는 하얼빈시로 편입되어 있다. 이곳은 금나라 수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30년 전 방문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기억으로는 고성처럼 큰 기와 건물들이 즐비하게 달 다듬어져 있는 입구에는 큰 현판으로 김씨 나라라는 표시가 잘 걸려 있었고, 유적지 상태는 비교적 잘 정비되어 보존되어 오고 있었다. 하루 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기이한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 마을의 몇 가지 문화들이 선 보여 졌는데 한족들과 좀 다른 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족들은 온돌 문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방 안쪽에 모두 온돌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에 방문을 했었는데 이들은 방안에서 온돌에 옹기종기 모여 우리와 같이 몸을 지지는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 구조도 한족들 마을 같지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옛 고향 마을의 구조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더욱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놀이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 사람들의 전통 놀이인 씨름이었다. 그것은 영락없이 우리 옛 고향 마을에서 늘 상 보던 씨름과 영락 없이 같은 토종 씨름이었다. 우리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을 때, 마을마다 있었던 씨름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한족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들이 우리로 말하면 장구와 굉과리를 치며 도는 장면, 그리고 어떤 이들은 몸에 색동 저고리 입거나 오색 끈 모양을 늘린 줄을 몸에 두루고 추는 모습은 어릴적 우리 마을 풍악패들에게서 볼 수 있던 장면그대로가 아닌가? 설날이나 대보름, 단오절, 추석명절 때 입었던 오색 저고리나 오색 띠 물결은 우리 옛날 모습의 전형이다.
'당두'라고 마을 제당이나 마을 촌장이 정하는 주요한 곳에 언제나 오색 띠들이 나무들에 메달리거나 새끼줄에 꼬아 칭칭 감아 놓았던 그 때의 동네 모습이 연상 되었던 순간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개화되고 발전되어 버린 현실이기에 우리의 옛 모습들을 잊어버렸고, 너무도 발전 된 미래를 향하니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먼 까마득한 옛 옛날 호랑이 담배 필적이란 꿈속처럼 생각하는 정도도 안 되는 잊어버린 것들로 오히려 부정시 되는 그런 단절 상태에 놓인 것이 우리네의 모습이다. 이제는 고증되는 것도 어렵게 된 일들이지만 우리의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이나 풍습들은 이들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인은 선교사로써 우리의 고구려 백제 포로들로 중국으로 끌려가서 소수민족들로 살아오고 있는 대상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깊고 크다. 중국과 동남아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들에게서 보이는 고구려 백제의 잔재의 뿌리들은 현대 우리가 발전 되기 이전 우리의 토종과 원시적 모습들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태국 북쪽 사람들만이 먹는 음식들 중에는 우리와 너무도 잘 맞는 전통 음식들, 이것은 북쪽 사람들만 먹는 전통 음식이란다. 이들은 볏집을 둥그렇게 싸아 올라가고 꼭대기 중앙은 남자들 상투 틀듯이 마무리하는 것이며, 남자들 한복 속 바지, 우리는 이것을 '핫바지'라고 칭한다. 이것이 이들 생활에 일상복으로 적용되고 있다.
내륙지대 모든 음식들은 복거나 지지고 삶고 탕으로 나오는데 젖국이 중심으로 들어간 생음식 몇 가지는 태국인들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다. 지독스런 북쪽 전통에 속하는 이들이 주로 즐겨 먹는 데 이것은 옛날 우리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 맛 그대로와 같아서 얼마나 입안에 감돌고 확 사로잡아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고구려 백제의 포로 유목민들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우리 옛 토종적인 배경과 겹치는 것을 너무도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언어도 우리가 이전 순수한 토종적인 표현을 많이 잃어버려서 그렇지, 이들에게서 우리의 옛 고전어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 '아버지' 호칭만 봐도 그렇다.
우리의 토종적인 호칭은 '어무이', '아부지', '어바이', '어매', '아베', '어마이', '아바이', '아부지' '엄마' '아빠', 이 외에도 더 있음을 안다. 우리는 잘 안다. 언어가 개화되어서 그렇지 40, 5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 사투리가 서로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 서로가 알아 듣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다반사였던가? 그러니까 이런 토종이 고구려, 백제 후손들인 소수 민족들에게는 여직 남아 있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가 자주성과 자조적인 자존감이 높은 국가로 내력과 내공이 강해진 현실이라면, 우리의 현재적 의지와 여력은 과거 이들, 일제 강점기 나라 떠나 여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세계 속에서 유리 방황 하는 이들 우리 혈육들을 돌아보고, '회기'시키고자 하는 나라 안의 복원의 힘이 일어 날 것이다. 그 방향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그러한 자주성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구려, 백제 후손들, 그들은 1천 년 이상을 살아오면서도 포로로 잡혀 왔던 1 세대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라고 하는 정신들을 그 후대들이 계속 지켜오면서 반복되는 유전으로 지금까지 어디에 예속됨이 없이 자기들만의 민족 공동체를 지켜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들은 소외되고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난과 고난의 여정, 질병에 시달린다. 물론 최근 들어서 시대의 발전으로 의식들이 전통 고집의 이들 자체적인 힘이 사그라 들고 개화의 바람을 타거나 정보화의 발전으로 세계화의 물결이 빠르게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들 소수민족들도 자신들 집단 거주지를 벗어나고 흩어지고 희석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중국 소수민족들을 훨씬 이전, 중국이 공산화 되고 50년 대 이후부터 이들 소수민족 마을마다 중국 정부 관련 기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간섭하며 소수민죽 전통을 분쇄하기 시작한 이래 너무도 많이 무너졌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지켜오고 보존해오던 순수한 민족 정신과 자신들의 뿌리와 전통성을 뒷받침 해주던 물건이나 산물들을 모두 중국 공산당의 강제에 의해서 태워 없애 버렸다고 한다.
구심점이 약한 마을들은 더욱 더 급속도로 사라졌고, 그나마 좀 강한 민족성을 조직적으로 잘 구축하고 있었던 마을들은 중요한 핵심 물건들을 어떻게 해서든 감추어서 보관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마을은 목숨 걸고 숨기고 보존함으로 해서 자신들 역사에 대해서 은밀히 맥을 살려오는 곳이 있지만 이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소수민족 마을들은 중국에 복속되어 현재는 거반 잃어버렸다고 한다.
억지로 중화민족에 동화시키는 작업들이 본격화 되었던 시기가 길다보니 지금은 많이 잃고, 자신들이 그런가 하고 살아오고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포로로 잡혀 온 이들은 세월이 가다보니 글대신 입으로 고전되고 그리고 그런 마을마다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지킴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50년 대 이후부터 그들 존재들을 제거하고 감옥에 가두고 함으로써 모두 사라지는 세월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사료들이 중국 내부 어딘가 깊숙히 보존되고 있을지, 그리고 이것이 언젠가 빛을 보고 풀리는 날이 있을지?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우리 현대가 세계 속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우리 안으로 불러들여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국민들로 수용하는 귀화 자격을 주려고 할 것이 아니다. 기왕이면 우리와 혈통적으로 같은 이들 고구려, 백제의 후손들인 소수민족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1천년이란 시공간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세기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기 중심으로 영향력이 실제로 주도되고, 스스로 발전을 전적으로 지향하는 기반이라면 이런 방면조차도 민족 복원사업으로 이루고자 진행할 것이란 점이다. 생판 모르는 남들도 돕고자 하는데, 비록 1,30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포로로 잡혀간 자신들의 혈족이라면 이들을 돌아보고자 함이 진정한 휴머니즘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가 전적으로 온전한 주권 국가라면 과거 우리가 무너짐으로 발생했던 문제들도 바로 잡거나 그때 발생하여 이탈 된 우리 혈족들도 구하는 국가 환경이 움직일 것이란 사실이다. 외교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혹은 그들 소수민족이 그 어디에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겨우 살아오고 있는 상태에 놓인 이들을 중점으로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국민 수가 줄어들고 자식 낳지 않으려고 하는 때에 이들에게 이주의 기회를 부여함도 하나의 지혜일 것이다.
다시 돌아가자! 이렇게 24인 우리의 조상들과 함께 하고 있는 여진족 아골타 추장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어서 24인 귀인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중국 베이징 수도 도서관, 이곳에는 고문헌 자료실이 있다. 이곳에는 중국 역사의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우리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러한 고전시대 내용들이 관련되어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사서 중 금 황실의 가계도와 관련해서 기록된 '송막기문'이란 책이 있다고 한다. 여진족 금나라에 쫓기던 송은 양자강을 건너 항저우로 피신을 하는 장면이 기술되어 있다. 송막기문은 남송의 신하가 한족 황제와 함께 10년 동안 금에 머물면서 기록한 역사적 내용이다. 당대의 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된 책으로 하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놀라운 내용을 남겼다.
"여진 추장은 신라인"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금나라 정사인 '금사'에는 자신들 황실 뿌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형 '아보'는 고려에 남고, 둘째인 금의 시조와 동생 '보할리'는 여진으로 왔다. 이 금나라 8대손이 바로 태조 '아골타'이다. 그럼 고려에서 온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였다. 신라와 고려라는 차이는 있지만 금나라 시조가 모두 한반도에서 넘어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기록에 의하면 신라가 끝나고 고려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신라의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일단의 무사들, 무리들이 여진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록 물만이 아니다. 중국 수도 도서관 고문헌실에는 금나라에 관한 기록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는 청나라의 뿌리가 금나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제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신라 왕실인 김씨가 수 십세기를 이어왔고, 금이 신라로부터 왔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금나라 국호 또한 김씨성을 따른 것이다. 이는 900년 전 정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오늘에 이르러서 새롭게 주장하고 기록되는 내용이 아니다. 이는 우리 한국이 지금에 와서 우리의 역사서를 고증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정부 주요 기관이나 국립 도서관 고문서 보관실 고문헌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밝히는 내용들이고, 중국 학계와 학자들이 주장을 했던 것을 우리가 받은 것이다.
금태조 아골타의 선조 과연 그는 누구일까?
신라의 왕능은 모두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다. 그런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만이 유일하게 경기도 연천에 있다고 한다. 왜, 신라 왕의 무덤이 경기도에 있을까? 잠시 마의태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경순왕이 신라의 사직을 고려 왕에게 넘기자 이를 막고자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분개하며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바위를 집으로 삼고 풀로 연명하며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강원도 인재군 상남면 다물리에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다물은 나라의 환복을 뜻한다는 것이다. 강원도에 무슨 나라가 있었다는 것인가? 그런데 마의태자가 금강산에서 쓸쓸하게 죽었다고 하는데 이곳 인재에 마의태자 유적지비가 있다고 한다. 왜, 마의태자 유적비가 여기에 있을까?
이 지역 김부리라는 곳에는 '대원각'이란 사당이 있다고 한다. 매년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는 나라가 망하고 없어졌음에도 신라인들이 고려에 저항했음을 보여주는 산물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천년 동안이나 세워져 지속되던 나라가 한 순간에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 끝났을리는 만무하다.
신라의 화랑들이 그대로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마의태자가 그랬듯이 이들 젊은 화랑들도 다시 복원을 꿈꾸며 마의태자와 연합하여 복원운동을 계속 했을 것이다. 이것이 강원도 지역이 대표적인 저항지역이었음을 밝혀두는 증거이다. 그럼 금시조에 대한 고구려 사조에는 그와 관련한 기록은 있으며, 금의 시조인 김함보와 고려시초 신라 복원 운동을 하던 이들과 김함보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기록에는 평주의 승려인 금준이 여진에 들어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혹은 평주 승려 권행의 아들 극수라고도 한다. 그런데 고려사에 권행과 같은 이름이 나왔다. 1636년 김세령이 일본 외교를 다녀오면서 '해시록'이란 책을 입수하였는데 거기에는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가 '완안 아골타'는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다고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아골타의 성은 김씨인데, 왜 권행의 후손이라 했을까? 왕건이 나라를 세울 때, 후백제 견훤과 전쟁을 하던 중 신라 출신 3 장수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 왕건은 이들 세 장수에게 태사의 직책을 내리면서 김행에게 '권'씨 성을 하사한 것이다.
그래서 안동 권씨의 뿌리가 시작된 것이다. 권행은 본래 경주 김씨인 것이다. 하지만 태사 직위를 받고 권씨가 된 이들 가문은 이후 100년 넘도록 고려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백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를 했던 것이지 왕건을 위해서 싸웠던 것이 아니고 중심에는 신라에 대한 충성심이 여전했기에 고려 조정에 출사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함보는 신라 왕족임에 들림이 없다. 김함보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반고려 세력들이 두만강을 거쳐서 여진지역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추론이 된다. 우리 역사에서 여진족은 음로, 말갈, 물길, 숙신, 주신, 여진, 그리고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이 이름들은 우리와 너무도 밀착되는 관계선상에 놓인 부족들이다.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구성원들이었고, 우리 역사의 한축을 이룬 이들로 어쩌면 우리와 같은 뿌리라고 주장해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점에서 우리는 중국으로 연결되는 한반도가 아니라 바로 이들로 연결되고 몽고, 중앙아시아와 상관관계에 놓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 홍수 이후, 셈의 자녀들이 셈족군을 이루면서 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한반도 방향으로 흘러온 민족이 바로 우랄알타이아 계통으로 연결되고 그 중심이 바로 우리 한반도에 종착지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홍수 심판 후의 셈족 계열은 아시아 방향으로 번성하여 확산되면서 아시아 북부, 중부, 하부 방향으로 흩어지며 확산 된 것이다. 거대 아시아 대륙과 숱한 민족과 나라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북부방향으로 유목과 기마민족의 농경사회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아시아 중부 방향으로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하고 동북부 동남아 일대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를 한 혈통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의 직계 인류는 셈족이고, 이 중에서도 아시아 북방계인 우랄알타이아계에 속한 한반도 유목과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이란 점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중국에서 건너 온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또 우리 쪽에서는 여러차례 전쟁 관련해서 포로로 잡혀 간 인구도 적지는 않다. 이와 같은 여러 이유들에 의해서 한중 사이에 인간 이동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근본 이동과 본체는 북방민족으로 어질고 선량하고 하늘을 숭배하고, 두레와 홍익인간임을 본으로 삼는 민족이었다.
김함보가 여진으로 들어 갈 때 당시 여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고 한다. 서로 규합이 안되고 의견들이 분분하여 모였다하면 서로 싸우기 일쑤로 분열의 골만 깊어지는 문제투성이의 민족기반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성문법을 만들면서 모든 일족들을 하나로 묶는 데 김함보가 지대한 역할을 함으로써 그 지도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함보 사후 150년이 흐른 1107년 아골타가 등장하기 직전, 고려와 여진이 큰 격돌을 하게 된다. 팽장을 하던 여진족은 함경도 일대에서 고려와 잦은 충돌을 하다가 결국 대충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때 고려의 대승으로 여진을 몰아내고 공험진에 국경비를 세웠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이 공험진을 지금의 함경남도 일대를 지칭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전쟁을 주도하고 공적비를 세운 윤관 장군은 공험진을 당시 지점에서 북으로 700리 올라 간 지역, 곧 두만강 넘어 지역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때의 여진족 추장은 아골타의 형이었다. 빼앗긴 간도 지역을 되돌려 받고자 고려 왕실에 서신을 보내면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일직이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나이다.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생각하겠습니다. 저희 땅을 돌려주시면 고려의 기왓장 하나라도 건들지 안겠나이다. 역시 황제가 된 아골타도 고려를 부모 형제의 나라라고 했다. 금나라에 있어서 고려는 부모의 나라였다.
금나라의 주요 성중의 하나였던 동경성이 있었던 요양, 이곳에서 1985년 우연히 비 하나가 발견되었다. 비명은 동경승엄사 선사 탑명이란 승녀의 일대기였다. 스님의 성은 고씨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스님의 본을 발해인이라고 적고 있다는 것이다. 발해 멸망 후 200년이 지난 시점인데 아직 발해인이라고 적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여진과 발해는 어떤 사이였을까? 이 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발해 멸망 후에도 발해인들은 거란을 향해서 끊임없이 발해 복원을 위한 공격을 했다고 한다. 거란 수도에서는 발해인들이 2년 동안을 공격을 했다고 한다. 이때 발해인들과 여진족 사람들은 은밀히 교류하며 협력했다는 것이다.
자신들 두 만족은 본래 하나임을 자각하며 서로 협력적 관계를 지속했고, 큰 나라를 운영해 본 발해인들의 건축술과 각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운 후 발해인들을 주요 위치에 세웠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해인들은 금나라의 고위층과 관계가 둔독해지면서 금나라의 상층부로 들어갔다.
발해 여인들은 금나라의 왕족, 귀족들은 물론 금나라 사람들과 결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즉, 금나라는 여진족 발해인들의 연합적 성격을 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라가 없어지면서 고려로 이어졌고, 이런 격동기를 통해서 중국 북쪽 만주 일대에 신라 고려의 왕족, 귀족, 군인, 일반인들이 발해와 금나라를 세우면서 시작된 시간들은 우리 역사적 맥락 그대로가 실현 되었다는 것이다.
여진족은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렇다면 만주 역사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의 후예인들 발해와 여진이 세운 금나라 역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맥락이 중국의 역사와는 상충되고 우리의 역사와는 그 맥이 일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나라는 북방민족의 또 다른 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300년 간 원나라가 지배하다 한족인 명나라가 일어나서 1368년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한족의 세상을 회복하는 듯 하더니 1696년 여진족이 다시 일어나서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멸하고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 국가인 청나라를 건국합니다. 북경에서 청나라 건륭황제의 7대 손인 이의 주장을 통해서 청나라의 뿌리와 관련 된 주장에 의하면,지금의 중국은 청 6대 황제인 건륭황제가 이루어 놓은 것이다.
청나라 황실의 성은 '애신각라'이다. 여기서 이 여교수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성은 "김"씨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김괄'이고, 자신의 조부는 김광평이라 했고, 아버지는 김계종으로 우리의 성은 김씨이다. 청나라 황실 6대 황제인 '건륭'의 7대 손이라고 소개를 했다. 현재의 중국령은 청 건륭제가 이룬 것이다. 청황실 성은 한자로 애신각라이다.
그럼, 왜 여교수는 자신을 김씨라고 소개를 하는가?
청황실의 성은 '애신'이다. 청나라 역사서인 만주실록에는 청황실과 만주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신들은 하늘의 딸인 불구륜의 후손들이며 성은 애신, 즉 아이 신의 원래 뜻은 '금'이다."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여기서 '각라'는 만주어를 한자로 '쥐러'로 처음 표기 한 것이다. 뜻은 '겨례', '성', '씨족' 등과 같고, 성씨에 붙는다.
그러니까 이 성이 가진 만주족의 본 뜻은 "김씨족(금씨), 혹은 김씨 부족들" 등을 의미한다. 중국어로는 '진'족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신라의 김씨 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숲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금궤짝이 나무에 메달려 있는 아래서 하얀 닭이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금 궤짝을 내려서 보니 알이 있고 거기서 아이가 나오니 왕이 기뻐하며 이름을 알지라하고 금 상자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다는 것이다. 신라왕인 경주 김씨 왕조, 신라인의 후예 금황실, 그 금 나라의 후신인 청황실, 이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씨들이었다.
현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1911년 신해혁명과 함께 청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 중국인들이 내세웠던 구호가 '멸만흥한', 만주족이 세운 나라를 멸하고 한족이 다시 흥하자! 라는 뜻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만주족이 역사적으로나 혈연적으로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요즘 한족 중심의 전통적인 단일민족 사관을 버리고 다민족 통일국가론이라는 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즉 중국이 이민족을 멸하고 복속시키는 항쟁한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통일 된 중국을 이루어 온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동북공정의 핵심사상이다.
중국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것, 그것만이 주장하고 듣고 다른 것은 아예 듣지도 보지도 상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구상에 이 같은 경향성은 자신들을 최고로, 중심으로, 무엇보다 자신들이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자들에게서 볼 수 있고, 이런 힘을 따르고자 하는 아류 무리들에게서 나타나는 무조건적 특징이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으로 병적 특징이다. 자신들을 특권으로 간주하여 그 외 모든 것은 무조건 자신들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교만이자 건강한 정신의 결핍증 증세에서 비롯되는 반관계주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이런 부류들이 일어나고 있고, 현재 한창 정치적으로 이와 같이 무조건적 자기 중심외에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자신들 외 모든 경향성이나 인격은 처단되고, 공산주의화 같은 적으로 간주하는 정신이상착란증과 같은 집단들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의 김민석전총리도 이들과 동일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국힘, 극보수진영의 이런 극단성이 두드러지고 이들과 함께하는 조중동 언론 단체들이 함께 움직이고 새롭게 민주당에 영입하여 들어오는 새-민주당 파들이 이 김민석전총리와 맥을 같이 하면서 네거티브적인 극단적 공격성으로 민주당 전당 대회를 몰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주지역 우리의 뿌리와 관련되고, 고구려의 역사적 위치와 사실적인 실현된 역사를 현대 중국이 자신들 목적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의도성으로 동북공정이란 새로운 역사 각색의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근본 사실적 역사를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이 새롭게 제시하고자 하는 거짓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억지 주장으로 정신적 결핍증세요 거만한 비인간적 관계요 파괴지향의 정신 이상 행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거만에서 비롯되는 비정상 정신 문제가 국가 형태로 자행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형태는 비단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비정상 정치적 운동들도 모두가 이러한 정신결핍증 증세에서 비롯되는 파괴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벌이고 있는 비정상 정치 운동들, 이들이 내세우는 슬로건들, 이들의 언어폭력성, 이들의 폭력적 사회 방향몰이, 무조건적 내거티브 선거 운동으로 상대를 죽이려 하는 공격적 선거 몰이, 그 어느 것 하나 정상과 거리가 멀다. 이런 증세는 모두가 정치적 정상과 거리가 먼 정치 결핍 증세인 것이다.
배후에 이와 같은 환경을 조성하라고 명령이 입력된 그런 방향으로 테압이 감긴 것 처럼 움직이는 파괴성이기에 결핍증세인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바로 이러한 역사 파괴에서 비롯되는 국가적 결핍증세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이 경향성은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나라, 민족, 정치기반, 세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떤 곳에서든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결핍증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장 일선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질을 바로 알고서 근본적인 대처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막고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 글로 잇도록 하자!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 등도 모두 중국 내부의 갈등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지능적으로 접근하고 펴는지, 모른다.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안 된다. 세계에서 삶의 테크닉 방향에서 가장 깊고 기술적인 방식을 가장 잘 습득하고 살과 뼈와 피가 되어 있는 민족이 있다면 그들은 지구상에 중국인들이 유일 할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손자 병법이 상술로 전환되어 중국인들과 한 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여기에다가 이들은 현실주의적인 각성이 뛰어난 민족이다. 모든 것을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본다. 그리고서 공산주의가 덧붙여 진 현대 중국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 점에서 우리가 중국에 들어가서 상대 할 중국이란 의미를 알리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더니 후에 놀아나는 것을 보면서 애석하게 생각 했다.
먼저는 중국 속임수의 경전 손자병법은 상술로 전환되었다.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중국인들에게 보편적인 삶 자체가 되었다. 이는 속임수로 세상을 이기는 오직 자신들의 이익이 중심인 작용의 힘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상술과 그 상술의 근본 힘이 되는 속임수는 중국인들과 하나 된 전술의 문제이다. 개체적이고 구체적으로는 그러지 않은 인간들이 있을 수 있지만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인들의 하오! 문화와 뒤이어 거기에 따라 오는 전술적인 거짓부리기나 손바닥 뒤집기는 얼마나 중국인들이 거짓의 전략에 능숙하며 일반인들 조차도 일상에서 거짓부리기로 무장되어 있는가? 이런 점에서 다른 민족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이해 할 때, 동북공정의 근본을 알게 될 것이다. 중국인들과 상업 거래를 할 때도 이에 대한 근본을 알고 출발하면 중국인 공무원들이나 사업가들이 나오는 전법의 다음 수들이 연달아 보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중국과 수교를 할 때 이런 점에서 먼저 중국을 요해하고자 함이 부족했다.
먼저 중국을 요해 하기 보다는 우리 식으로 사람 사는 곳은 뭐! 다 똑 같은 거지, 하고서 시작부터 했던 것이다. 그렇게 들어 갔다가 중국 정부나 사업 상대들의 하오! 겸손 작전 그물망에 걸려드는 물고기 정도로 시작되었고, 30년 만에 중국 맛을 톡톡히 보고 난 후에 많이 빼앗기고 나왔던 것이다.
중국 속임수의 힘은 대인의 풍모나 하오!(좋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들 내부에서는 이것이 속임수의 힘이 될수 없다. 하지만 자신들 외에 외국인들과의 관계나 국가간의 외교 관계에서는 이 중국인들의 대인적 풍모와 보폭이 큰 행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하오! 가 특유의 습관적으로 나오게 된다.
하오!는 중국인 말하는 화자가 듣는 상대의 말이나 감정을 긍정하고 공유하고,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적절하게 전달되는 언어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중국인들은 의중에 담아 둔 진짜와 상관 없이 이 하오! 개념으로 편하게 말하고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외국인들은 이러한 중국인들의 하오! 태도로 부드럽게 만들고 긴장을 놓게 하는 작전에 너무 쉽게 무장 해제를 해버린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들이나 가능성이 큰 외국 투자가들을 중국에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내고자 할 때, 베푸는 특혜나 선의의 배례와 같은 제공도 바로 이 하오! 개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것 같이 해 놓고서 분격적으로 투자하고 설비 과정을 다 마쳐놓고 가동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컨트롤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중국인들의 하오! 자신들의 목적을 이끌어내기 위한 상대 안심하게 만들기, 무엇도 상대로 하여금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포섭의 힘으로써의 작용하는 속임수의 힘이라 할 수 있는 하오!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 정부나 중국인들의 호의 베품으로써 무기는 이 하오! 수준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깔아놓고, 상대를 무장해제 시켜놓고서 걸려들면 그 때부터 알짜 없이 법이나 중국 방식을 강조내지 강요하면서 냉정한 관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중국이 고의적으로 보이지 않게 수많은 장치들을 해 놓는다.
그것이 저개발 도상국들이 중국과 손을 잡고 외교 관계나 일대일 관계를 맺었을 때, 혹은 디지털 정보 관련해서, 스마트폰 등의 협력을 맺었을 때, 그 안에는 중국이 조절하고자 하는 내부 장치들이 수도 없이 설치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배경이 중국인들의 특유의 풍모의 대국적인 제스처와 동시에 하오! 개념 차원에서 속임수가 가동된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중국의 현실주의 문제이다.
중국의 현실주의는 다른 나라의 현실주의와 좀 다른 차원이다. 공자로부터 시작되는 성인들의 가르침은 그 바탕이 현실주의에서 시작된다. 중국은 과거부터 현실주의정신이 강한 국가였다. 공자는 죽은 사후는 가보지 못한 세계이니 알 길이 없고, 그러니 귀신을 섬기기 보다는 지금 살아 있을 때 인간 관계와 도덕적 삶을 중시여김이 마땅하다.
공동체적으로 인과 예의 조화로운 현실 삶이 되도록, 개인적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사회에 대한 '예'의 자세를 갖도록, 그 외에도 정치와 교육적인 측면에서 현실론을 강조했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사악하게 보았다. 한비자에게 있어서 인간의 본성은 지독스럽게도 부정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경의 관점과 같은 맥락이다. 해결 부분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한비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통제와 법으로 다스리고 이로부터 도덕적 인간으로 몰아갈 때 인간을 통솔할 수 있다는 현실론을 펴고자 했다. 그런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 사악성을 끊임없이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객관적 시스템, 즉 정부와 군대와 같은 강력한 힘을 통해서, 어쩌면 한비자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된 사회를 이룬다는 현실론을 펴고자 했다. 그래서 한비자가 내세운 기준 세 가지, 법, 술, 세의 통치 방식을 끄집어 냈던 것이다. 한비는 여기서 정치적 현실주의로 인간 본성의 이기적 문제, 나라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특출한 능력의 해결자 성인 부족론을 폈고, 지난 시대 방식은 현재에 그대로 존치 할 수 없고 맞도록 재도 개선을 한 후에 적용 등을 주장하며 여기에 법, 술, 세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제도의 중요성과 상벌의 확실성으로 국민적인 효과를 끄집어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면 통치자의 개인 감정이 아니라 명확하고 확실한 정치 공식을 잘 살펴서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현실주의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중국 공산당 정부는 공자의 현실주의에서 내세를 빼고 현세 중심의 현실참여론을 채택했다.
그리고 한비자의 국가론을 공산주의 사상에 접목을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와 군대의 객관적 통치에 의거해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국가에 반하는 자들임을 지적하는 근거를 갖고서 현대 중국 공산당의 현실주의 정치적 기반을 더욱 확대 발전 시켰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비자는 현대 중국이 중국의 현실주의 국가 기반에 핵심적 인물로 바라보는 고전의 사상체계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여기에 공산당은 인간을 두 구조로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 육체, 정신만에 국한시킨 현실주의인 것이다. 인간이나 인간 세상 그 외에 그 어떤 다른 세계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물질세계만이 존재한다. 교회나 종교가 말하는 사후 세계, 교회가 말하는 영적 세계란 인간의 고차원적인 능력을 일컫는 정신의 문제이지 그것은 영적 세계니 이런 주장들은 모두가 허황 된 교회와 종교들이 고안해 낸 거짓 된 세계관들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오로지 눈 앞에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정신으로 이룰 수 있는 현재적 공간, 의미, 지식, 교육, 식량, 돈, 국가 등의 의미만이 있는 현실이다.
육체적으로 희.노.애.락이란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이성, 감정,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오감을 통해서 맛보고, 느끼고, 맡고, 보고, 깨닫는 육체적 존재와 그 세계 만을 말하고, 해결하고, 이루는 힘을 말한다. 이것이 인간 세상의 현상의 핵이고, 이로부터 나오는 힘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 중심의 힘의 논리, 용광로적 힘
그런데 중국 정부나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이 힘의 문제 앞에서 지구 다른 나라와 민족들과의 다름, 차이, 반공존이 파생된다는 점이다. 중국에게 있어서 힘은, 중심의 힘이다. 여기에는 판별의 힘이자, 결정의 힘으로써 중심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 국가의 중심, 문화의 중심 등의 반공존 심리적인 힘의 논리를 갖고 있다.
동북공정은 바로 이런 힘의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거나 거치면 철저히 중국 것으로 재설정되어서 중국 것으로 변질되어서, 괜히 짝퉁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용광로 의식이라 한다. 그래서 중국식이란 의미의 중점은 용광로주의 일 것이다. 세계의 모든 것을 중국화로! 말로야 공정, 공평, 공존, 존중, 인정, 함께 등의 관계 설정, 얼마든지 중국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언어나 행동이지 진정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상에서 중국이 진행하고 추진하는 관계에서 과연 진정성, 함께 이익 추구, 이런 그림들이 그려지는가? 중국이 말하는 힘의 정체는 바로 이런 근본적으로 안 되는 작용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중국식만이 존재하는 현실주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각색해서라도 자신들 중심주의 역사관을 실행하며 무조건 바꾸고 작은 조선인들을 자신들 소수민족이라는 억지로 명분을 만들어서 한국의 모든 문화를 중국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주의이다.
끝으로 중국 현대 공산주의이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유대인 공산주의 사상을 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리가 공산주의 행동주의자 레닌에 의해서 전세계로 확산되며 중국이 그런 공산주의 세계관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현대 중국의 공산주의는 유대인들의 공산주의 원리에서 출발은 했지만 그 실체는 변형된 중국식 공산주의 체계이다. 유대인들이 주도한 공산주의 독제 체제 형태는 무너졌는데 아직도 세계 몇 곳은 이처럼 자기 국가 중점으로 전환 된 공산주의 국가들이 존재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중국은 가장 발전 된 형태를 띄면서 자신들만의 강력한 공산주의 체제를 발전 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앞으로 지구 시대를 조망해주는 배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공산주의가 이렇게 유대인들의 목적하에 설립되었던 공산주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형태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 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의 거대 국가 노선과 예로부터 중국이란 거대하고 깊고 찬란했던 문화적 바탕, 거기에 동양철학이란 종주국답게 지식의 보고 국가였기에, 그리고 한 사람 작은 거인 등사오평이 있었기에 지금에 이렇게 살아나고 다음을 향한 발전의 발판을 깔아가는 나라가 되고 있음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나는 중국식 공산주의가 앞으로 세상을 마지막 위기로 몰아가는 거대한 지구적 대립의 파괴의 힘이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본인은 일직이 지구의 마직막 두 충돌 세력에 대해서 말해오고 있다. 그것은 종교우월주와 문화우월주의 간의 충돌현상이다.
나는 이를 계시록 13장에서 그 근거를 찾고자 했다. 여기에는 두 짐승들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바다 위에서 올라오고, 하나는 육지위에서 올라온다. 교회 2천년 역사에서 이 두 짐승에 대해서 로마 가이사 황제, 독일 히틀러, 천주교 교황 등으로 해석들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 때는 무조건 미래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상징성에 중점을 둔 해석이 주류였다.
하지만 세월이 깊어지고 오늘 현대 인류가 초월시대처럼 발전을 이루면서 부작용과 인류의 사악성과 범죄들이 깊어지면서 예고된 날들이 점진적으로 보이는 21세기 초엽에 이런 두 강하고 탐욕의 힘을 가진 이들 두 집단들의 충돌은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성질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아맛겟돈 지구적으로 일어날 마지막 전쟁, 이것을 3차 세계 대전이라고 하겠지만 그 이전에도 그에 준하는 전쟁은 많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그런 형태들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 종교우월주의 집단, 문화우월주의 집단 두 집단들로 구성되어 나타날 충돌이 지구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세계를 상대로 거대힘을 이룬 유대인들은 종교우월주의자들이다. 자국을 중심으로 힘을 이룬 중국은 문화우월주의 국가기반이다. 이들은 반드시 충돌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그 장소가 어디일까? 아마도 우리 한반도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150년 전부터 열강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현재 그 힘의 작용성은 우리를 둘러싸고 어떻게 움직이며 역학구도를 펴고 있는가?
현재 민주당 전당 대회가 왜, 이렇게 극단성을 띄면서 자신들 식구들끼리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 되고 있는가? 이는 김민석전총리가 네거티브적 환경을 조성하면서 그 판을 몰아왔다는 점이다. 왜, 그럼 김민석전 총리는 이와 같이 저급한 방식으로 몰아오는 전당대회 환경을 몬 것인가?
이 또한 우리 한반도 안에서 앞으로 벌어 질 수 있는 이 거대 세력들의 충돌이 지금 이렇게 우리 내부를 충돌 현상으로 몰아오고자 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동북공정 역사관을 근본적으로 바라봐야 할 본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진족 금나라, 청나라의 뿌리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민족적 우월감을 느끼고 드러내고자 해서 한 것이 아니다.
2003년 부터 시작된 중국의 역사 전쟁, 즉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황된 역사관인가를 알라보자 함이다. 악비장군, 금나라가 매섭게 송나라를 치고 들어오며 무너트리고자 할 때 남쪽에 겨우 숨만 쉴 정도로 약해져 있을 때, 금군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낸 장군이 바로 이 악비장군이었다.
악비장군은 놀라운 장군이었다. 그래서 말이 나오길, 산을 흔들어 댈 수 있어도 악비는 결코 흔들어 댈 수 없다는 한족의 추앙을 받았다. 지금도 악비장군의 묘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악비 장군 묘에는 또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그곳은 발가벗겨져 있는 부부를 묘사해 놓은 부부상 앞이라고 한다.
이들은 남송의 진휘 부부인데 악비 장군을 독살한 부부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때리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과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악비 장군을 위로 한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은 아침 식사 용으로 유자호라는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이 또한 악비의 혼을 달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유자호는 말가루 반죽을 한 다음 두개를 꼬아 기름에 튀겨 만드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 유자호가 악비를 독살한 진휘 부부를 독살한 것이라고 한다.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막아내고 나라를 보호한 악비에 대한 한족들의 이와 같은 사랑은 깊고 크다.
그런데 2002년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악비가 더 이상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는 고등중학교 교제에 대강을 발표한다. 왜, 중국당국은 민족의 영웅 악비를 격하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현대 중국이 하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관 세우기에 악비가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오직 민족 영웅이 반통일 전선에 방해자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북방 민족들을 원수의 나라들로 치부하며 공격을 폈는데 역으로 그 나라들을 중국에 편입시키려 하다보니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데 영웅이었던 악비 같은 민족 영웅이 불필요해 진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 진영의 특징이다. 참으로 비정하고 사악한 집단 인간성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맺도록 하자!
이제 우리 현대는 이러한 문제들, 우리를 둘러싸고 돌고 있는 이런 주위 역학구도와 변화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며 막고 막아내며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이런 가운데서도 제대로 새우고 보존하고 지속할 수 있겠는가? 당장은 나라 안에서 뻘짓을 하는 정신 나간자들을 잠재우고 억지시키며 안정되고 강한 나라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위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안으로 공격과 공략을 펴며 혼란과 불안을 조성하여 전쟁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아직은 보이지 않게 뒤에서 조작 짓거리를 하는 작용들을 어떻게 분쇄 할 것인가? 이제까지 말하고지 한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와 같이 조선족이란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떠나 중국으로 간 이들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수 민족도 아니다. 버젓이 한국이란 나라가 있고, 그들 조선족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일부가 아닌가? 그럼에도 중국의 억지는 그들을 이용하여 한국 역사는 물론 모든 문화적 배경까지도 부정하는 동북 공정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는가? 자신들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본래는 일제 강점기 때 이주를 해 간 한국 백성들이 아닌가?
이들을 통해서 한중 간의 역사를 오로지 자신들 중심 관점에서 각색하고자 하는 교만성의 억지가 아닌가? 특히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 여진의 금나라와 우리가 직접 관계 된 역사를 조작하여 자신들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중국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바로 잡을 것인가?
이런 때에 민주당과 현정부의 위치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얼마나 민주당을 믿고 기대는데 정부와 대통령, 민주당이 작은 문제에 마음을 두고 허투게 하수의 행위로 나라를 곤란의 공간으로 내몰고자 하는가?
이미 민주당의 다음 대표는 하늘이 정해놓고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 누가 더욱더 건강하고, 깨끗하게 대처하고 어려운 중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대처하며 상대의 하수의 공격을 지혜롭게 잘 대처하는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현재 대한민국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 같은 형세이다.
이때는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철저히 힘을 합쳐서 나라 안으로는 어리석고 잘못 된 행동으로 나라를 어려움에 빠트리려 하는 자들을 누르고 제거하여 든든한 기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밖으로는 대통령이 깊은 통찰력과 지혜와 조밀한 판단으로 온 나라 힘을 규합하여 강력한 하나의 연합 된 나라 내부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나라 내부가 다져진 다음에야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잘 대처 함으로써 어려움과 위기를 줄이고, 철저히 준비하고 힘을 비축하여 국익을 창출하는 정부 환경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온 나라의 기술진들과 과학자들을 독려하고 적극적인 지원으로 창조와 혁신의 환경을 일으켜서 더욱 발전된 기술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기업인들과 상업 전반을 더욱 하나의 협력 구조로 만들어서 나라 경제가 부강해지도록 하는 방식을 움직이는데 능숙능란해야 한다. 강력한 국방력, 자국을 보호하고 자국내 간첩들의 활동반경을 제압 분쇄하고, 법이 바르게 집행되도록 하여 나라 질서와 안정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 공직자들이 국가 행정부의 국정 동력이 무력해지지 않고 역동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인간 톱니바퀴들이 되고자 하는 자세로 임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즉, 국가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공무원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해 내기 위해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정부 여당이 혼신을 다하고 굳건히 하나의 집단 공동체와 같은 정부 조직구도를 이루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모습을 우리 국민들이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대통령의 통치와 국회의 본질이다.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문제 없는 정부와 정치 기반은 온 나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국가일 것이다. 민주당은 당장 쟁정을 멈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