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시절과 청년시절
상제님의 유소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가장 대목적인 몇 가지
내용만 살펴보기로 한다.
유소시절
*어릴 때부터 호생(好生)의 덕이 많아 여섯 살 때
마당 구석에 화초를 심어 아담하게 가꾸시고 밭둑에 나가시어 나무를 즐겨 심으시니라.
자라나는 초목을 꺾지 않으시고
미물 곤충이라도 해치지 않으시며 위기에 빠진 생물을 보면 힘써
구하시니라.
일곱 살 되시던 정축(丁丑 : 道紀 7, 1877)년에 풍물(風物)을
보시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려
장성한 뒤에도 다른 굿은 구경치 않으시나 풍물은 자주 구경하시니라. (도전 1:15)
이 해에 부친께서 훈장을 청하여 천자문으로 글을 가르칠 때
하늘천 자와 따지 자밖에 따라 읽지 않으시고, 그 까닭을 물으시는 부친께
*“하늘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따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사오니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사오리까.
남의 심리를 알지 못한 훈장이 남 가르치는 책임을 감당치 못하리니
돌려보내사이다”
하시며 천지를 가르는 혜명하심을 보여주셨다.
*아홉 살 되시던 기묘(己卯 : 道紀 9, 1879)년에
부친께 청하여 후원에 별당을 짓고 홀로 거처하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고
하루 건너 암꿩 한 마리와 비단 두 자 다섯 치씩 구하여 들이시더니
두 달 후에 홀연히 어디로 나가셨는데 방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더라.
그 뒤에 집으로 돌아오시어 스스로 밖으로 다니면서 글을 배우시니라. (도전 1:15)
*아홉 살 때 부친께서 정읍 읍내 박부호에게 수백 냥 빚이 있어
독촉이 심하므로
늘 걱정으로 지내시거늘 하루는 부친께 아뢰어
“돈 50냥만 주십시오.” 하여 박부호에게 가서 돈을 주시고
그 집 사숙에서
학동들과 같이 노시는데 훈장이 운(韻)을 불러 학동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는지라.
함께 운을 달아 시를 지으시니 시격이 절묘하거늘 훈장과 학동들이 매우 놀라며,
박부호도 심히 기이하게 여기더라.
이에 박부호가 집에 머물러 그 자질(子姪)들과 함께 글 읽기를 청하는지라.
일순이 부득이 며칠 동안 머물다가 부친의 빚을 걱정하시니
박부호가 모든 일에 크게 기특히 여기고 감복하여 드디어 채권을
포기하고 증서를 불사르니라.
… 어려서부터 집에 있지 않으시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시니
종종 시루봉에 올라 매봉과 망제봉(望帝峰), 동죽산(東竹山)을 타고 뛰시어
두승산으로 올라가 고산준령을 향해 크게 외치시곤 하니라. (도전
1:15)
*하루는 부친이 벼를 말리는데 새와 닭의 무리를 심히 쫓으시니
이를 만류하며 말씀하시기를
“새 짐승이 한 알씩 쪼아먹는 것을 그렇게 못 보시니 어찌 사람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하시되 부친이 듣지 않고 굳이 쫓으니 별안간 한낮에 천둥이 치고
큰비가 쏟아져
말리던 벼가 다 떠내려가 한 알도 건지지 못하니라. (도전 1:16)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오신 새 하늘의 하느님이시며 미륵존불이신 상제님은
농사꾼으로, 그리고 14 ~ 15세 시에는 기울어 가는 가세 때문에
글공부를 중단하고 사방으로 외유의 인생길을 걸으셨으며,
정읍군 입암면 거사막에서 남의 집 머슴이 되어 보리를 베기도 하셨다.
하늘의 지존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생의 바닥생활을 하신 것이다.
청년시절 그리고 김일부와의 만남.
*하루는 전주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송광사(松廣寺)에 가서 여러 날 동안 지내실 때에
하루는 어떤 중이 무례하게 대접하는지라.
증산께서 노하여 큰 소리로“요망한 무리들이 산속에 모여
불법을 빙자하고 백악을 감행하여
세간에 해독을 끼치니 이 소굴을 뜯어 버리리라.” 꾸짖으시고
커다란 법당기둥을 손으로 잡아당기시니 기둥이 한 자나 물러나는지라.
온 절이 크게 놀라 여러 중들이 몰려와 절하며 사죄하거늘 이에
노를 그치시고 그대로 두셨더니 그 뒤에 법당을 여러 번 수리하여도 물러난 기둥이 원상대로 회복되지 아니하더라. (도전
1:27)
불우한 젊은 시절에 이같이 의기(義氣) 충천한 대의(大義)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증산 상제님은
당시 19세기 말에 대위기에 처한 민족과 세계를 광구(匡救)하실 거룩한 뜻을 더욱 다지고,
인간의 생동하는 산 역사의 세태와 민정을 더욱 깊이 체험하시기 위해
27세이신 정유(1897)년 후반기부터 3년간에 걸친 천하유력의 길을 떠나셨다.
그리하여 금구군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님은
곧장 익산군 이리와 태전(太田)을 거쳐 다음날 위대한 만남을
가지셨다.
*충청남도 강경을 지나 연산(連山)에 이르러 향적산(香積山) 김일부에게 들르시어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敎法)을 관찰하시니라.
지난밤 일부의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서 “옥경(玉京)에
올라오라.”고 전하거늘,
일부가 천사를 따라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曜雲殿)이라는 액자를 써 붙인 장려한 금궐에 들어가 상제님을 뵙고 내려왔는데
이제 맞이한 강증산을 뵈니 그 모습이 간밤 꿈에 뵙던 상제님과 형모가 같은지라.
이 일을 아뢴 뒤에 요운(曜雲)이란 도호(道號)를 드리고 심히 경대하였으나
증산께서는 그 호를 받지 않으시니라.
증산께서 이 곳에 머무시며 후천개벽의 천지대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라. (도전 1:29)
이 때 상제님은 27세 이셨으며
일부 선생은 72세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1897년)의 만남이었다.
대성철 김일부(1826~1898, 초명 在一)선생은 충남 논산군 양촌면 남산리에서 탄생하셨다.
날으는 학체(鶴體)로 생긴 선생의 풍모는 손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모습을 하였다고 전한다.
순수한 자연음(天地五行의 五音)의 영가무도(詠歌舞蹈)로 영혼과 몸을 고도로 단련하여
처자를 전혀 돌보지 않고 오직 혈심어린 구도의 외로운 길을 일로매진하셨다.
당시 한양에서 난세를 피해 이곳에 내려와 은거중이던 연담 이운규
선생의 방향제시를 받고
36세(1861)때 ‘서경’과’역경’을 새로운 도적 차원에서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부턴가 눈을 감고 있으면
장려한 천지의 광명 속에서 흔연히 팔괘의 형상이 오랫동안 출몰하였다고 한다.
그 후 18년이란 각고의 노력 끝에(1884년)
실로 황홀하기 그지없는 후천 우주대개벽의 신비경을 “정역”으로 논리화시켜 놓았다.
“정역”은 이제까지의 모든 종교와 위대한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우주의 새시대를 여는 천지변화의 가을개벽의 이치를 밝힌
‘천리의 해설서’이다.
우주생명(氣)의 조화의 현현묘묘한 변화원리를 뚫어지게 안 사람은
나 김일부가 천지에서 제1원자(一元者)라 자처한 일부 선생은
*우주의 조화세계를 고요히 바라보니 천지의 공덕이 사람으로 오시는 상제님을 기다려 성사되는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
(靜觀宇宙無中碧하니 誰識天工待人成가) (布圖詩)
천상의 우주통치자도 결국은 인간으로 반드시 오시게 되어 있고,
오직 한 마음(一心)으로 돌고 도는 천지일월도 우주사의 추수하는
인물을 기다려
자신의 운행 시간대의 대이상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는 구원의
섭리를 밝혀주고 있다.
천지의 맑고 밝음이여, 일원의 새 생명 빛나도다. (天地淸明兮여
日月光華로다)
일월의 새 생명 빛남이여, 낙원세계 되는구나! (日月光華兮여 琉璃世界로다)
개벽의 세계여, 새 세계여! 상제님이 성령의 빛을 뿌리며 친히 강세하시도다!
(世界世界兮여 上帝照臨이로다) (十一吟)
이 “정역”이 전하고 있는 구원의 메시아 강림 소식은
천지개벽기에는 상제님이 지상에 친히 강림하신다는 것이다.
그 분의 도법으로 천지낙원의 새 운수를 개벽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즉 불교의 도솔천 천주님(하느님)이신 미륵불이 상제님과 동일한 분이며,
그 분이 지상에 강림하시리라는 인류구원의 중대한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도전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