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를 낳으란 말이냐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맹자』의 첫머리에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가 나온다. 양혜왕이 묻는다. “나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마음을 다 쏟고 있다.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면 백성을 하동 지방으로 옮기고 하동 지방의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준다.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이웃 나라의 정치를 보건대 나처럼 마음을 쓰는 나라가 없건마는, 이웃나라의 백성이 줄어들지 않고, 내 나라의 백성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맹자는 답한다. “당신이 잘 한다는 정치가 무어 그리 대단할까? 이웃나라와 오십보백보가 아닌가. 평소 백성을 학대하여,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제지할 줄 모르고,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이 길거리에 나뒹굴어도 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 모른다. 당신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흉년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무어 잘 한 것이 있단 말인가?” 양혜왕의 답은 없다. 그는 아마도 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옛날, 인구의 증가는 선정(善政)의 지표였다
전근대 사회에서 인구의 증가는 선정(善政)의 지표였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은, 임지로 떠날 때 임금 앞에서 지방 행정의 요체인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외어야 하였다. 농잠의 흥성(農桑盛), 호구의 증가(戶口增), 학교의 발달(學校興), 군정의 정돈(軍政修), 부역의 균등함(賦役均), 송사의 간략함(詞訟簡), 간활의 멈춤(奸猾息)이다. 두 번째가 호구, 곧 인구의 증가다. 인구의 증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가를 알 만하지 않은가.
선정으로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호적에 그대로 반영되어야만 할 것이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다산은 「호적의(戶籍議)」에서 호적이 정확하지 못한 이유로, 누락된 호(戶)와 인구, 실상과 맞지 않는 호(虛戶), 이중으로 기록된 호, 직명(職名)과 역명(役名)이 사실과 다른 호의 존재를 꼽고 있다. 이 중 실상과 맞지 않는 호(虛戶)에 대해 살펴보자. 이것은 수령칠사의 ‘호구증’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수령은 자신의 임기 중 호구가 줄어들면,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호구, 줄어든 호구도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양혜왕이 인구의 증가를 바란 것과 수령칠사에 ‘호구증’이 들어 있는 것이 과연 백성을 위한 것이었을까? 양혜왕의 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된 전국시대였다. 양혜왕이 바란 백성의 증가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전쟁을 하기 위한 물자를 생산하고, 전장에 나갈 병사가 많아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겉으로야 애민(愛民) 운운했지만, 속내는 다를 것이 없었다. 지배자인 왕과 양반을 위해 먹을 것을 생산하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전쟁이 나면 대신 죽어줄 군사가 될 존재가 곧 백성이었다. 백성이 늘어나면 왕과 양반의 이익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었다. 호구증을 주문한 내심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나라에서는 저출산으로 인해 앞으로 젊은 사람 1명이 노인 몇 명을 부양해야 할 것이고, 미구에 대한민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다지 효과적일 것 같지 않은 유인책을 쓰며,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독려도 한다.
넉넉하고 안정된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된 후라야
한데, 무조건 낳으면 되나? 혼자 벌어 도저히 생활이 안 되기에 맞벌이를 하는데,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이 핵가족시대에 누가 키울 것인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면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에 사교육비를 퍼 부어야 하는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나? 좋은 일자리가 드물어진 사회에서 대학을 나온들 취업이 가능할 것인가? 용케 취업을 한들 마흔을 넘으면 잘리는 인생이다. 어느 순간 비정규직이 되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쌓아놓은 무더기 재산이 없으면, 곧장 지옥이 되는 세상이다. 지옥에 사는 사람더러 지옥에 살 자식을 낳으라 하면, 과연 낳겠는가, 아니 낳겠는가?
인구를 늘릴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백성들을 전쟁과 부역에 몰아넣지 말고 편히 농사짓게 하여, 그들이 고기를 먹고 비단옷을 입고, 학교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한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몰려들 것이고,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원리는 이처럼 간단하다. 국민이 넉넉하고 안정된 삶, 즐거운 삶을 살게 한 뒤에 출산 장려책을 써야 할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털끝만큼도 배려하지 않고, 불안과 경쟁을 일상화시키고는, 아이를 더 낳으라니, 흡사 양반을 위해 노비를 낳으라는 말로 들린다. 누구 좋으라고 노비를 낳으란 말이냐?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
첫댓글 오늘 다섯째를 임신한 산모께 표창장 드려야 한다고 말했었답니다..^^ 그러게요....아이 하나 키우는 일이 갈수록 힘드는 현실..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겪어내야 할 현실 또한 만만챦고...흐휴.....
이 글을 읽으면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법이 떠오르더군요. 비정규직인 어떤 분이 며칠 전에 인터뷰를 하는데 '그 사람들 와서 일 해보고 그 돈으로 한 달만 살아보라고 해라' 하고 말하더군요. 한 달에 백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 제가 쓰는 한 달 생활비와 비교해 보면... 나도 허덕이는데 그들은 오죽하겠나 싶습니다.
다산연구소에서 다산에 관해서 한 말씀 하셨군요..ㅎㅎㅎ 맹자의 인구증가론은 도시 인구 증가에 관한 말씀이고...노비든 양반이든 일단 씨는 뿌려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요...내가 뿌린 씨가 좋은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라야 겠지요.ㅎㅎㅎ
정치 잘못이 분명 크지만 정치를 변화시킬 힘도 국민에게서 나오겠지요. /저는 둘이 만나서 둘을 낳았으니 본전은 치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