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자동차로 두 시간 넘게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고속철도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2월 23일) 저희 교회 1부 예배 마치고 아산천호교회 2시 30분 제1 남전도회 헌신예배 설교를 다녀왔습니다. 아산천호교회는 저와는 각별한 교회입니다. 담임을 맡고 있는 김주섭 목사님은 제가 서울 은평교회 평신도로 신앙 생활할 때 저희 가정이 속한 교구 담당 목사님이었습니다. 늦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농촌 목회를 하고 있는 제게 늘 관심을 갖고 기도로 중보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경험하는 현상이지만, 전에 함께 신앙 생활했던 사람들 앞에서 저는 위축되곤 합니다. 김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열심히 신앙 생활했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에 참으로 부실하게 신앙생활을 했거든요. 그런 저를 김 목사님은 변치 않고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고, 힘들 때는 큰 위로가 되는 분입니다. 한 2 주 전쯤 될 것입니다. 아산천호교회 헌신예배 설교를 와 달라는 겁니다. 저는 다른 생각 전혀 하지 않고 그렇겠다고 즉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 김천서 아산이지, 주일 낮 예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는 곳입니다. 150 여 Km를 시속 100 Km로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도 2시간 30분은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利器) KTX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면 김천구미역에서 아산천안역까지 1시간쯤 소요되고 그곳에서 아산천호교회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낮 예배를 조금 일찍 마치고 모든 걸 아내(박성숙 전도사)에게 맡긴 채 김천구미역으로 달렸습니다. 할머니들 댁까지 모셔드리는 일은 새로 온 조지현 청년이 담당해 주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김주섭 목사님이 역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김 목사님의 얼굴이 건강하게 보여 반가웠습니다. 그는 늘 따뜻합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까지 가는 차 안에서 교회 근황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아산천호교회는 4년 전에 400 평 건평의 새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기도 없이 가능하지 않은 건축이었다고 했습니다. 많지 않은 성도들이 똘똘 뭉쳐 기도로 건축한 성전이어서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보였습니다. 헌당 예배 때 가서 이런 큰 교회 강대상에 올라 말씀을 선포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 마당엔 제1 남전도회 회원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과 반갑게 안사를 나누었습니다. 김현수 장로님은 더 젊고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목양실에 가서 간단하게 차를 들고 시간에 맞춰 2층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계단은 장애인인 저에게 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청년들이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회 그리고 청년회의 젊은이들은 우리 교계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들입니다. 넓은 예배당에 그들의 찬양 소리가 악기 음에 실려 귀를 살갑게 자극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늘게 맺고 자신의 관심사를 좇는 요즘 이들이 너무나 귀하게 보였습니다.
30 여 명의 성도들이 2시 30분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느 교회처럼 낮 예배 끝나고 공동식사를 한 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귀가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부흥의 관건이 이들을 오후 예배까지 드리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교계가 젊어져야 할 중대한 과제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1 남전도회 회장 김용태 집사님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처럼 다른 교회 목사님을 모셔 드리는 예배라 눈망울들이 초롱초롱했습니다. 이럴 때 외부 강사는 마음의 부담을 더 갖게 마련입니다. 저는 본문 중심의 설교보다는 간증으로 시간을 메워나갔습니다.
사진설명-헌신예배 마치고 제1 남전도회 회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오른쪽부터 김현수 장로, 제1남전도회 회장 김용태 집사, 이명재 목사, 김주섭 목사, 남궁 영 집사, 조덕만 장로, 한남석 장로)
말씀의 깊이보다 인간적 친밀감을 표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담당 목사님 앞에서 설교를 한다는 게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입니다. 함께 한 성도들도 그런 저에게 관심을 보여 주면서 잘 이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직도 마음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는 생각 하나는, 제가 충북 옥천 두메산골 소서교회에서 목회할 때, 김 목사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 광고 시간에 두메산골 성도들에게 그런 사연을 전하니 한 권사님이 함께 중보기도하자고 하시면서 맑고 밝은 두메산골 노인 권사 집사들이 한 목소리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빨리 응답주시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권사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가 계십니다.
김 목사님은 광고 시간에 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찬을 했습니다. 늘 여러 모로 도와주려는 그의 마음이 읽혀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에 쫓겨 왔다는 말에 점심 식사도 하지 못했을 거라며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로 근처 식당을 찾았습니다. 1남 전도회 회원들뿐 아니라 부인 권사님들까지 합류하니 갑자기 잔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남 전도회에서 저녁 식사까지 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회장 김용태 집사님은 다른 약속까지 미루고 식사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해 주었습니다. 400 여 평의 건물에 하나 되어 움직이는 신실한 일꾼들, 실력 있고 심성 좋은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을 앞세워 부흥의 발동을 걸었으니 이젠 시간문제입니다.
김 목사님이 천안역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힘든 것이긴 하지만 보람된 승리의 길임을 서로 동감했습니다. 꼭 큰 목회를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크든 작든 목회 자체는 승리를 담보하고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다니던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겠다고 왔을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임), 성지 순례 때 평신도들로부터 베스트 목회자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목양일념으로 충성하니 외국에서 말씀 선포할 기회를 가외로 주신다는 등의 얘기는 서로에게 따뜻하게 전달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 장로님과 사모님이 천안역 구내까지 들어와 저를 배웅했습니다. 저는 율법주의자들의 메마른 철저함보다 양 손에 사랑과 복음을 들고 따뜻하게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더 좋아합니다. 사모님이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한 상자 사 들고 왔습니다. 함께 오지 못한 제 아내를 생각하고 전하는 선물 같았습니다. 아산천호교회를 한자로 이렇게 표기합니다., '牙山千戶敎會'. 아산에서 천 가구를 책임지는 교회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핵가족 시대라고 해도 한 가정에 4명의 가족 구성원을 상정한다면 일 천 호는 4 천 명의 사람들을 담는 것이 됩니다. 비전으로 충만한 아산천호교회가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젊은 학생 청년들에게서 그리고 남여 전도회로 인해 나아가 신실한 장로님들과 요즘 보기 드문 담임 목사님을 생각하면 그렇게 될 날이 멀지 않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