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은 캐는 것이 아니라 뜯었다. 못 둑 아래 비탈은 마른 풀잎 사이로 파릇한 새순이 돋는다. 소담스럽게 솟아있는 쑥 더미를 찾아 칼을 댔다가 칼을 소쿠리에 담고 손으로 우두둑우두둑 뜯었다. 쪼그리고 앉아 쑥 캐는 것도 힘에 겹다. 해마다 쑥을 캐 돈벌이를 하던 동네 노인조차 보이지 않는다. 동네에서 우리 집 앞까지 거리가 멀어 노인이 걸어오긴 역부족이다. 누군가 승용차라도 태워주면 올 수 있을까. 나 역시 동네까지 걸어가기엔 힘에 부쳐 승용차가 필수다. 운동 삼아 걷는 것도 비탈길은 무리다. 집 건너 편 고사리 밭에 가는 것도 힘들다. 건강하게 살자. 건강식을 찾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한 해가 다르게 기운이 빠진다고 한다.
머위도 캐고, 쑥도 뜯을 요량으로 나선 길이지만 산비탈 묵정이가 무서워진다. 마른 풀숲에서 멧돼지라도 튀어나올까봐 겁나고, 뱀도 나올 철인데 싶어 겁난다. 꿩이 알을 품고 있다가 날아간다. 까치발을 하고 일부러 아픈 척하며 천적을 유인하는 까투리에게 속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느긋한 미소로 바라본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모성본능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가끔 인간말종도 있는 모양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린다.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도 모자랄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들 칭찬만 하고 살고 싶은데 자꾸 단점이 보여 힘들 때가 있다. 구업을 짓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구업을 짓는다.
찔레 잎도 파릇파릇하고, 개나리도 샛노랗게 피었다. 숲에는 진달래가 피어 발그레 하다. 꽃철이 다가와도 농부는 꽃 감상하고 느긋할 여가가 없다. 과수원에 거름내고 비료 내고, 논밭 갈아엎느라 연일 허덕거린다. 과업을 자식에게 대물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평생 해 오던 일이 힘에 겨워질 때다. 영화 한 편을 봤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편지로 고민 상담을 해 주던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30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재밌는 발상의 영화였다. 영화로 나오기 전에 책으로 나온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더 인기를 끌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사고방식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36년간 일본인의 지배를 받았던 탓일까. 무의식 속에 부모로부터 답습된 것이 우리네 의식 속에 아직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동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일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내용은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이다. 어느 날, 소매치기 범 청소년 세 명이 대기업의 여사장 집을 털고 나오다 폐가로 남아있는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 몸을 숨긴다. 그날 밤 우체통에 떨어지는 편지는 1980년대에 넣은 고민상담 편지다. 장난기가 발동한 세 청년은 답장을 쓰게 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그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권력가의 종이었다. 주인 집 딸과 야반도주를 하려다 주인 집 딸을 포기하고 평생 그 여인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해 준다. 벽 한 쪽에 익명의 고민상담 편지가 붙으면 그 편지를 쓴 사람에게 답장을 써 우유 통에 담아놓는다.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을 하고 싶은 청년의 고민,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 하는 고민, 돈 때문에 부자의 애인이 되려는 처녀의 고민,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학대 받던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 그 고아원과 고아원생이 연결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내용이 감동적이다. 행복한 결말이라 흐뭇하다.
요즘 나는 로맨스보다 중국 무협영화를 좋아한다. 세계의 오지 탐험이나 다큐멘터리도 즐겨 보는 프로다. 텔레비전은 없지만 컴퓨터가 텔레비전 역할을 톡톡히 한다. 편하게 보고 잊어버릴 수 있는 영화가 좋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나 책을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물어볼 때도 있다. 며칠 전 받은 소설 <사봉>은 하루 만에 읽어버렸다. 이달의 <그린에세이>, <녹색평론>도 다 읽고 나니 읽을거리가 없다. 도서관을 다녀와야 하는데 나갈 짬이 없다.
봄은 봄이다. 쑥을 다듬었더니 쑥보다 버려야 할 검불이 더 많지만 보물찾기에 당첨 된 기분이다. 쑥 한 소쿠리 다듬어서 씻었다. 들깨 갈아 넣고 국산 스프 만들어야겠다. 기온이 쑥 올라가니 고사리가 피어날 것 같아 조바심 난다. 고사리 꺾는 철은 또 얼마나 아등바등해야 할지. 과수원 다녀온 남편은 시아버님 모시고 대학병원 갔다. 노인의 앓는 소리에 봄도 앓는다.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자, 아자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