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이 입대 예정일이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입대해야 한다.
그렇다. 영장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병무청에 전화를 걸었는데 일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뒤 오라고 했다. 대만과 일본에 져 금메달이 무산됐으니 이제 군에 가야 하지 않겠나. 누구나 가는 군대이기에 덤덤하다.
팔꿈치를 비롯해 부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상태다. 허벅지와 허리, 어깨 모두 좋지 않다. 온통 테이핑투성이다. 그렇지만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올시즌 77이닝을 던졌다. 도하에 와서는 공을 던지기 전 몸을 푸는데 무척 아팠다. 어제(12월 4일) 태국전에도 1이닝을 던졌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어째서 이제까지 수술을 하지 않았나.
팔꿈치 부상이라면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야 했기 때문에(말끝을 흐리고 잠시 침묵하다) 올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고 많이 아팠다. 수술을 받았어야 하는데 이번 대회에 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 정도 부상이라면 아시아경기대회 출전 대신 수술로도 면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나.
수술만으로도 병역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명예롭게 병역을 해결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할 거 다하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하는 말을 듣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 때문에 대표팀에 참가했다. 도하에 와서도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상태는 아니었다. 어제는 대표팀 양상문 투수코치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코치님께서 “금메달을 못 땄다고 이제 와서 아프다고 안 던지고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
이혜천(두산)과 선수촌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당신과 같은 처지다.
나와 (이)혜천이 모두 공익근무요원이다. 혜천이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대표팀 김재박 감독에 대해 비난 여론이 많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투수 교체를 비롯해 이견이 있을 법도 한데
대표팀에 나 같은 선수를 뽑아 주신 분이다.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런 기회 자체를 준 데 감사드릴 뿐이다. 전술과 선수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때 대표팀이 제주관광대와 연습 경기를 벌였다. 그때 나는 제주관광대 투수였는데 대표팀을 상대로 던지면서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선배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정말 열심히 운동해서 저렇게 돼야지 생각했지만 한번도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아시아경기대회 예비 명단에 들었을 때 이게 꿈인가 싶었다.
아시아경기대회 예비 명단에 오른 투수가 12명이었다. 3명은 탈락될 운명이었다.
솔직히 말해 예비 명단이 발표됐을 때 속으로 누가 남고 누가 떠날까 계산을 해봤다. 설마 내가 대표팀에 선발될까 싶었다. 모두 쟁쟁한 투수들인데 나는 한 번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선수였으니까.
최종 명단에 당신의 이름이 남았는데
(기억이 선한 듯) 친구들과 가족 모두 기뻐했다.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결승과 다름없다는 대만전에서 졌다.
(고개를 숙이며) 대만에게 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경기 초반에 (손)민한 선배가 홈런을 맞자 ‘아, 이건 아닌데’ ‘질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선취점을 우리가 냈다면 경기를 좀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먼 곳을 잠시 바라보다)경기가 끝나고 선수촌으로 이동하는데 ‘아, 3시간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일본전에도 졌다.
일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사회인선발이 나오고 타자 쪽에서 대학선수가 2명 있다는 정보만 들었다. 막상 경기를 치러보니 타자들의 경우 오히려 대만 타자들보다 힘이 좋았다. 게다가 일본 선수들이 갖다 맞추는 재주가 좋지 않나.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했다. 투수 쪽에서도 사회인 야구선수지만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지명을 받은 선수도 있다고 들었다.
대만과 일본에 연패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만과 일본 모두 예상보다 수준이 무척 높았다. 실력도 있었고. 그렇다고 두 나라보다 우리가 실력이 낮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는 변수가 많았다. 알 라얀구장은 우리가 경기할 때만 바람이 유독 오른쪽으로 많이 불었다. 대만과 일본은 그걸 잘 이용했는데 우리는 이점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다. 스트라이크존도 아쉬운 부분이다.
일본전 패배로 금메달의 꿈은 사라졌는데
일본에 이겼어도 12월 7일 열리는 대만-일본전을 보면서 ‘얼마나 피를 말렸겠나’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솔직히 대만과 경기에서 졌을 때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전이 끝난 후 그동안 팽팽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어지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쏟아졌다.
대표팀 선수들의 준비부족과 정신력 해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준비기간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다. 특히 대만과 경기를 앞두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준비했다. 경기에 졌고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 대표팀에 병역미필자가 14명이다. 우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놀러 온 게 결코 아니다. 오직 금메달을 목표로 왔다. 대만과 경기가 끝난 뒤 선배들이 무척 미안해했다. 선배들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가족들에게 연락은 했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국에는 아직 전화 한 통화도 못했다.
[도하] 박동희 기자
첫댓글 대체... 군대란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