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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산행 감상(鑑賞)-노인봉~소금강
▶산행일시: 2005년 10월 9일 오전 11: 50 - 오후 16:30(4시간 50분 소요)
▶날씨: 맑음.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으나 낮에는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
▶산행거리: 약 18km(소금강 주차장까지)
▶경로요약: 진고개(11:50)→노인봉 정상→노인봉 산장→소금강 관리사무소16:30
▶산행기 요약: 능선 부드럽고, 산세 너그럽고, 날씨 좋은 산행. 소금강 계곡의
절경이 천하 일품.
▶주관 및 안내: 운암산악회. 참가 인원 약 47명.
이제, 이 시간부터
모든 것을 당신(山)의 품안에 / 나를 내어 맡기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주는
당신(山)을 만나면, 당신(山)의 품안에
나의 전부를 내어 맡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山)이 내게 / 자유를 주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나는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 의식은 오직 지난 한 주일의 때묻은 일상을 떨쳐내고 또 다른 삶의 의미와 자유, 행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산을 모르는 속세의 사람들은 “헐떡거리고, 땀에 젖어 신음하면서 올라가는 등산이 어째서 자유이고, 행복이냐?” 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산을 아는 ‘산꾼’들은 이런 일반인들의 우문(愚問)에는 그저 미소로 대답하는 것이 현답(賢答)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왜 산을 오르느냐고요?”, “그 산이 거기에 있기에, 그 산을 가보고 싶었고, 내 의지에 따라 산의 품에 안기는 것이 자유이고, 무사히 산행을 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바로 행복이잖아요...” 라고…….
오늘은 운암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오대산 산행에 편승하기로 예약하고 0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출발지인 시내 중심가 대우당 약국 앞 버스에 도착하니 매화씨, 인선씨, 정순씨 등 반가운 얼굴들이 환하게 맞이한다. 편안한 마음이 든다. 07:30분 정시에 출발한 우리의 버스가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다. 아직 벼 베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차창에 비친 풍경에는 가을이 넘쳐나고 있다.
오대산은 백두대간의 주릉이 관통하는 명산이다. 휴전선 아래 향로봉에서 힘찬 줄기가 꿈틀대며 용솟음 친 곳이 설악산 공룡능선이고 이어서 점봉산을 거쳐 구룡령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두로봉, 동대산, 비로봉에서 병풍을 이루며, 노인봉, 황병산에서 듬직하게 활갯짓하여 초원을 이루는 명산을 통틀어 오대산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가 산행할 구간은 진고개에서 출발하여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으로 빠지는 가장 아름다운 산길이다. 기대가 된다.
11:30 드디어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김민수 산악 대장님이 오늘 산행에 대하여 상세하게 안내 말씀을 해주신다. 작년에 백두대간을 타면서 이곳을 한밤중에 다녀갔지만 오늘 부담 없는 산행으로 다시 와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행장을 단단하게 꾸리고 일행과 함께 관리 사무소를 출발하였다(11:50). 관리사무소에서 노인봉 정상까지는 3.9km. 1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다. 날씨가 산행하기에 적절한 온도를 내주고, 구름이 많이 끼어서 강한 햇빛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산행 초입 길도 아주 평탄하다. 복 받은 날이다. 다만 엄청난 등산 인파가 몰려서 떼지어 가는 모습이 시끄럽고 심란할 뿐이다. 허지만 어찌 그들을 탓할 수 있으랴.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인 것을…….
관리 사무소에서 약 1km 정도의 길은 그냥 들길을 걷는 느낌이다. 오른쪽으로 밭이 있고 편안한 길이다. 등산로도 돌 하나 없이 부드러운 흙길이다. 이어서 완만하게 오르막 길이 시작되더니 점점 경사도가 심해지면서 호흡이 거칠어진다. 산 중턱에서 쉬었다 가려는 인파가 늘어난다.
작년 한밤중에 대간을 뛰느라고 헤드랜턴을 달고 이 길을 걷던 생각을 하면서 작년 속도를 내보았다. 앞사람을 계속 추월하면서 올라가니 산악 대장님이 보인다. 땀을 흘리며 능선을 올라 채니 다시 경사도가 완만한 산길이 이어진다. 출발지에서 여기 1242m 봉까지 약 25분쯤 걸린 모양이다. 앞길을 막던 사람들도 이젠 별로 없다.
대장과 일행 한 분,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바람을 가르고 대화를 나누며 시원스럽게 운행을 한다. 거의 평지 길이나 다름없는 등산로이다. 나는 이런 능선 길을 참 좋아한다. 평지나 다름없는 편안한 이 숲 속에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맑은 얼굴을 내밀곤 한다. 허벅지 굵기의 단풍나무가 쭉쭉 뻗어 하늘을 가리고 무릎 아래 산나물들이 지천으로 깔린 푹신한 길을 휘적휘적 걷고 있다.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걸으며 햇살과 내가 나무 등걸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그저 아무런 잡념 없이 걷고 있는 맛이 담백하다.
김대장님과 산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소금강에 대한 설명도 들으면서 걷는다. 능선 왼쪽으로 멀리 강릉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오른쪽 숲이 트여진 사이로 보이는 맞은 편 산자락의 단풍이 참 곱게도 물들었다. 형형 색색의 수채화를 그린 치마폭을 곱게 펼쳐 놓은 듯, 산자락을 물들인 단풍을 바라보며 이런 숲길을 걷는 이 맛을 산아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약 20분쯤 운행을 하고 나니 노인봉 정상으로 가는 길과 황병산 능선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 여기 위치가 1321m로 표시되어 있다. 좀 전의 능선에서 100m고도를 올라온 셈이다. 노인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외길이라 무척 붐비고 정체된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1338m). 매표소에서 여기 정상까지 대략 55분쯤 소요된 것 같다. 정상 표지석에 ‘찜’을 하고 김대장과 서로 사진을 찍어준 후 김대장은 안내를 위해 다시 내려간다.
정상은 지금까지의 산세와는 다르게 온통 화강암바위로 고깔모자를 쓴 것 같은 형상이다. 참 특이한 형태이다. 그래서인지 노인봉 이름의 유래가 『옛날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왔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산삼이 있는 곳을 알려주어 그곳에서 산삼을 캤다』.하여 노인봉으로 불리기도 하고, 『정상의 화강암 봉우리가 사계절을 두고 멀리서 바라보면 백발노인과 같이 보인다.』고 하여 노인봉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름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서니 등산객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고, 산 너머 동쪽으로는 안개가 가득 차서 시야가 막혀 답답하기만 하다. 아쉬울 뿐이다. 다행히도 북쪽과 서쪽은 깨끗하게 트여서 조망의 기쁨을 즐길 수가 있다.
북동쪽으로 동대산이 안개에 살짝 가리면서 점잖은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으로는 코앞에 헬기장이 보이고, 그 뒤로 장쾌하게 뻗은 대간 줄기가 초록빛을 발산시키며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어 소황병산의 구릉지대와 대관령 목장 건물로 이어진다. 아스라하게 닿는 시선 아래 수십 만평의 초원이 장쾌하게 펼쳐져 장관을 연출하니 이것이 가슴 뭉클한 감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초록 비단을 푹신하게 깔아 놓은 듯한 저 능선으로 달려가서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시 소금강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첩첩 산 능선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 우뚝우뚝 서있다. 우람하게 서 있는 듯한 봉우리에, 점잖게 앉아 있는 봉우리며, 솟구치는 듯한 날렵한 봉우리 등 제각기 생겨난 그대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도 모습이 같지 않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다. 주춤주춤 다가오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불끈불끈 솟구치는 봉우리들……, 산악들……, 그리고 쭉쭉 뻗어 무한대를 향해 꿈틀대는 산맥들……, 우주의 생동하는 힘이 온통 여기에 뭉쳐 약동하고 있다.
한참 조망의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김기화님이 올라온다. 함께 내려가 갈림길에서 일행을 기다렸다가 소금강쪽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내려간다. 약 100 여m 쯤 내려오니 숲 길 오른쪽에 점심 식사하기 좋은 장소가 있어서 여기에 점심을 차렸다. 인선씨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소주 몇 잔을 돌리니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산에서 마시는 한 잔 술맛이 이렇게 달착지근할 줄이야……. 평소에 마시는 소주 맛이 이처럼 달다면 어찌할 뻔했겠는가.
몇 잔 술에 그만 불콰하게 술이 오르며 시간 개념, 공간, 거리 개념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산행기를 쓸려면 경관 느낌과 시간 개념을 머리 속에 숙지해둬야 하는데 혼란이 일어난다. “에라,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느낌만 쓰자.” 점심을 먹고 얼마를 내려오니(200m 쯤 되려나?) 노인봉 산장이 단촐하게 나를 반긴다. 지리산의 우람한 붉은 벽돌의 산장에 비하면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노인봉 산장이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산자락에 바짝 붙여서 지은 산장은 낮은 지붕에 나무 껍질을 벽에 붙인 형태의 자연그대로의 모습이다. 자연과의 조화이다.
산허리를 끼고 점점 계곡 아래를 향하여 내려가면서 비경이 펼쳐진다. 함께 가는 대장님이 여기 경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경치에 취해가고 있다. 계곡에 바위가 넓어지면서 처음 만난 경관이 낙영폭포였다. 높이가 그리 높지 않지만 수량이 많고 물소리가 크며 소(沼)가 제법 깊다. 시선을 계곡 경치에 빼앗기다 자꾸만 돌부리에 걸리기도 한다.
광폭포를 지나 백운대에 이르니 소나무와 어우러지는 경치가 멋들어진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깊은 소(沼)를 내려다보니 깊고 소용돌이치는 물줄기에 그만 현기증이 날 것 만 같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오늘 등산의 운행 방향을 참 잘 잡은 것 같다. 만물상의 기암 괴석은 또 어떻게 필설로 표현을 해야할까. 인간의 능력이 자연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염려할 것도 없이 그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나는 절승(絶勝)에 감동하고 있다. 김대장은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김대장이 가리키는 절벽의 소나무가 너무 아름답다. 살색이 불그스레한 적송이 멋진 자태를 선보이는 위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만물상의 절경을 완상해본다. “층암 절벽상의 소나무‘라고 옛사람들이 칭송하더니 바로 저러한 경관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층층 단애(層層斷崖)로 내리 깎은 검은 바위 층들이 마치 시루떡을 켜켜이 재워 놓은 것같이 겹쳐서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니 선경 속에 빠진 나 자신이 신선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선사 -
아름다운 절경 속에 신선놀음을 하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올수록 경치는 더더욱 아름다워 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선녀탕을 보고, 멋진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고 학유대를 지나니 귀면암이 우뚝 머리 위에 솟구쳐 있다. 얼굴은 귀신 형상인데 코는 인간의 코를 닮았기에 귀면암이라고 한 것일까? 옛 선인들의 작명법도 역시 낭만적이다.
이어서 웅장한 물소리가 저만큼에서 들리기에 살펴보니 구룡폭포의 하단 폭포와 중단 폭포가 층층이 장관을 이룬다. 계곡을 가로질러 폭포 위로 올라가니 상단 폭포가 있다고 하며 이 계곡이 바로 구룡폭포 계곡이라 하여 또 다른 비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더 오르지 못하고 다시 또 내려가니 「노인봉 7.3km」팻말이 붙어 있고 그 밑에 아주 넓은 바위(4, 50평)가 있으니, 이곳이 바로 식당 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가 기울어 가는 나라를 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며 밥을 지어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제법 그럴 듯하다.
그 다음 물결의 파장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는 연화담을 지나 십자 모양의 깊은 소(沼)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십자소(沼)를 지나니 소금강 표지석이 나타난다. 율곡 이이 선생의 글씨라고 하는데 서체가 맑고 정중하다. 관리 사무소를 지나니 자동차 매연에 식당이 즐비하고 곳곳에 술추렴을 하는 관광객들이 딴 세상처럼 보인다. 선경을 벗어나 다시 속세로 돌아온 기분이다.
주차장에서 우리 버스를 찾아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이 무척 개운해진다. 준비해주신 어묵 찌개에 소주잔을 들고 앞산을 바라보니 세상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역시 오늘도 나는 산행을 하며 자유와 행복을 얻었다. 끝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운암산악회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고맙습니다. 글: 이익수
첫댓글 이익수님에 산행 후기글 정말 감사 합니다..! 그날 산행 너무 즐거웠구요. 다음에두 자주 참여해 주세요! ^^*
경관이 빼어나다는 소금강을 전 아직 못 가봤습니다. 꼭 기회라 오리라 믿으며...멋진 산행기 잘 봤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글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
정말 멋진 산행기를 올려 주어서 감회있게 잘 보았습니다.감사드립니다.
졸작산행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장 일과 시간에 쫒겨서 소금강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고 대충 지나치며 쓴 것이 부끄럽습니다. 운암산악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직 못가본곳이지만 ~언제고 그곳에 가면 이멋진 글이 생각날것같네요 ~멋진 산행기 ~글솜시가 대단하십니다 운암 에처음 와서 보는글인데 감히 꼬리를 남김니다~~
이익수 선생님 문장력이 대단하십니다..! 멋진글 감회깊게 보았습니다^^! 운암을 자주 찿아주세요~~@
좋은 산행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