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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릉 삼각산 경국사(三角山 慶國寺)를 찾아서 ④
-관음성전(觀音聖殿)의 사리친견 및 그 밖의 당우(堂宇)-
관음성전 정면 모습
관음성전(觀音聖殿) 편액 송천 정하건(松泉 鄭夏建)선생 글씨
극락보전 정면에 있는 이 관음성전은 ㄷ자형 팔작지붕 건물인데 새로 중수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1.2년 전만해도 단청도 안 된 상태였으니 새로 지어진 지는 그 보다 더 되었겠지 만 근년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언제 낙성된 것인지 정보가 없지만 2000년대 지어진 건물 입니다. 그 전에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이란 이름으로 정면 8칸의 큰 건물이었다고 합니 다. 이 건물의 처음 건립할 때의 이름은 관음전(觀音殿)이라 했는데 다시 그 이름을 찾은 것 같습니다.
기축년(己丑年) 입추절(立秋節)에 현판을 쓴 것으로 보아 불기 2553년(2009)에 현판을 달
았으니 이 무렵에 관음성전이 낙성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송천 정하건 선생은 조계사 일주문의 현판과 주련의 글씨를 쓴 분입니다. 혜암종정의 비 문을 비롯해 불교와 관련한 많을 글을 쓴 분으로 서예의 대가이십니다. 1935년 유교집안 에서 태어난 5세때부터 붓을 잡았고 그 후 대학시절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선생에게 사사하여 서예를 익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노력 끝에 일가를 이루어 추사를 뛰어 넘을 대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화엄회(華嚴會).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법화회(法華會).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선생 글씨.
관음성전에는 화엄회(華嚴會), 법화회(法華會)편액 분만 아니라 보화루(寶華樓)라는 편액 도 걸려 있는데 사진이 흐려서 못 올렸습니다.
관음성전(觀音聖殿) 옆 모습.
관음성전에 걸린 경국사(慶國寺)현판. 이승만대통령 글씨.
이 경국사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경국사를 방문하고 쓴 글씨입니다. 관세음보살 단독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경국사 목조관음좌상(慶國寺 木造觀音坐像).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8호. -모셔온 사진-
목조관음좌상(慶國寺 木造觀音坐像)에 대한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경국사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 보살상은 1703년(숙종 29)에 나무로 조성된 관음상으로 크기는 70cm이다. 이 보살상의 상호는 사각형인데 눈이 가늘게 표현되었고 코는 반듯하 며 인중이 넓고 입술은 가볍게 다물고 있고 입술의 양 끝이 살작 올라가 있다. 이러한 모 습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법의(法衣)는 두 어깨를 감사고 있고 가슴에는 치마(裙衣) 윗단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조 선 후기보살상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옷차림이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중 지(中指)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정병을 들고 역시 같은 모습으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1980년 새롭게 개금할 때 보살상 몸속[腹藏]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강희(康熙) 42년(1703)에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서 색난(色難)비구가 조성하였 고, 월출산 도갑사 견성암에 옮겨 모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원래 도갑사 산내 암자에 봉안되어 있던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성 시기와 장소, 최초의 봉안처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매우 좋아 조선 후기 17.8세기 불교 조각을 대표한다.』
원불과 각종 관세음보살 상
사리친견하는 모습
다비후 출현한 사리
사리는 지난 번 2재 때 처음 공개된 이래 계속 친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은 한계가 있어 이미 공개된 사진을 다시 올려 봅니다.
구슬사리 3과와 치아사리 5과
2재 때 세민 스님은 "사리 자체가 수행의 척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스승에 대한 깊 은 존경심과 신심의 차원에서 공개키로 했다" 며 "지관 대종사의 유훈과 원력을 받들고 실 천하기 위해 사리의 일부만 우선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보화님의 사리친견 모습
정수님의 모습
정파님, 관음심님도 차례를 지키시며
정파님과 관음심님의 친견 모습 덕명님은 돋보기로 확실하게
사리친견 후 큰스님께 청다(淸茶) 한 잔 올리는 의식이 베풀어졌는데 동참자가 많아 마음 으로만 올리신 분들이 많지요? 관음심님은 차례를 기다려 올리셨다고 합니다. 막재인 49재는 총무원장으로 소임을 다하셨던 조계사에서 베풀어진다고 합니다.
신원적 부종수교 원통삼장 가산당 지관대종사 각령 新圓寂 扶宗樹敎 圓通三藏 伽山堂 智冠大宗師 覺靈
정부에서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이 보입니다. 지난 4재 때 도솔님과 지현이 그리고 비니초 님과 경국사에 와서 사리를 친견하고 차를 올렸는데 지현이는 어려서 우리 셋만 나란히 앉 아 감로다를 올리고 삼배를 올린 다음 돌아서서 집전스님께도 절을 올리고 물러나오는데 지현이가 자기는 하지 않았다며 무척 서운해 하며 자기도 올리겠다고 하여 지현이도 감로 다를 올렸습니다. ^^
감로다 잔을 받는 지현이
두 손으로 받들어
큰스님 전에 올렸습니다. ^^
기특하지요? 아기가 잘 한다 하니 "저는 아기 아니예요." 하더군요. ㅎㅎㅎ
관음성전벽화. 마랑매혹무상각(馬郞魅惑無常覺)
《석씨계고략(釋氏稽古略)》권3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唐) 원화(元和) 12년(817)에 섬우(陝右)지방에 매우 아름다운 미녀가 살았는데 모든 남 자들이 그 뛰어난 자태의 미모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에 그 여인이 말하기를 "나와 결혼할 남자는 하루 저녁에 능히 《보문품(普門品)》을 외우는 사람이라야 만 된다." 하였습니다.
하룻밤을 새고 새벽이 되자 그 조건을 만족시킨 남자가 20명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짝이 될 수 없으니 《금강경(金剛經)》을 외우는 이에게 응하겠다" 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10여 명이 《금강경》을 외우니, 그녀는 다시 《법화경(法華經)》7권을 주면 서 3일의 기한을 주고 외우도록 하였습니다. 기한이 되어 마씨(馬氏)의 아들만이 홀로 외 우게 되어 그녀는 예를 갖추고 혼인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혼인한 날 그녀가 "마침 몸이 편치 않으니 조금 뒤에 몸이 나으면 뵙겠습니다."라 고 말하더니 손님들이 돌아가기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ㅠㅠ
장사를 지내고 며칠이 지나 어떤 노승이 그녀의 무덤에 찾아가 파헤쳐 보니 시신은 없고 황금쇄자골(黃金鎖子骨)만 남아 있었습니다. 노승이 석장으로 뼈를 흩어 보이며 대중에게 말하기를 "이 분은 성인(聖人)이다. 그대들의 업장(業障)이 두터운 것을 가엾이 여겨 방편 으로 교화한 것이다."라 말하고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로부터 섬우지방에는 불 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을 일러 마랑부관세음보살(馬郞婦觀世音菩薩)이라 부릅니다. ^^
관음성전벽화. 천수천안광도중(千手千眼廣度衆)
관세음보살님이 천수천안으로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벽화입니다. 해상용왕(海上龍王) 과 남순동자(南巡童子)가 옆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받들고 있습니다.
관음성전벽화 해상기룡보군생(海上騎龍普群生)
용을 탄 관세음보살님께서 뭇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벽화입니다. 임진년 흑룡의 해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길 합장합니다.
문수원(文殊院)
여기 문수원은 일반인 출입금지입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지관대종사께서 주석하시던 무 우정사(無憂精舍) 금강반야대(金剛般若臺)가 나옵니다. 제가 특별히 담아 보았습니다. ^^
금강반야대(金剛般若臺)
가산지관 대종사께서 머물던 주석처입니다. 2010년에 이곳에서 큰스님 뵈었을 때는 무우 정사(無憂精舍)라는 현판이 앞에 걸렸었습니다. 지금은 금강반야대란 이름이 걸렸는데 작 년에 이 무우정사가 비에 새는 등 낡아 작년 여름 장마통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름을 바꾸어 단 것 같습니다. 무우정사란 이름은 경국사에 주석하시는 인환 큰 스님께서 명명했다고 합니다. 인환스님은 지관스님보다 1년 연상이라 합니다. 무우정사 현판은 금강반야대 한편에 지금도 걸려 있습니다.
『..... 중략 ....
스님 이것은 기억나십니까? 스님이 제 앞길에 환희세계를 펼쳐주셨습니다. 스님이 경국사 의 북방에 계시기에 제가 스님의 거처를 무우정사(無憂精舍)라 이름 지어 드리자 스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삼일이나 지났었나요. 헛간을 고쳐 만든 제 거처를 스님이 환희세 계로 바꾸어놓았죠?
“스님은 남방에 계시니 그곳은 환희세계가 아니요” 하면서 유명 서예가의 글씨로 새긴 ‘환희당(歡喜堂)’ 현판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그게 엊그제 같은데 스님은 뭐가 그리 급하 십니까? 서로 거처이름을 지어주면서 경국사는 관음전을 중심으로 동방의 동별당, 서방 극락보전, 남방 환희당, 북방의 무우정사(일명 금강반야대)로 도량을 더 친근하고 아름답 게 꾸려오지 않았습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저는 다시 스님이 있어 근심이 없던 북두(無憂世界)를 바라보며 삼각산 길을 오르려 합니다. 스님 발자국을 따라 오르다보면 아직은 어렵지 않겠지만 스님 없는 ‘환희세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해인사 연화대에 들렀다 다시 돌아오시는 날 기다 리겠습니다. 그날은 북방이 아닌 서방에 있겠습니다. 오시면 그곳으로 인터폰을 해 주세 요. “차 한 잔 하자(喫茶去)”고. 임진년 양력 정월 초나흘 인환 분향』
-인환대종사의 큰스님 추모편지 중에서-
가산지관(伽山智冠)스님은 1977년 8월 1일부터 1987년 1.26일까지 주지로 재임하시면 서 보경보현(寶鏡普賢)스님의 뒤를 이어 경국사를 일신시켰고, 주지 소임을 마친 후 동국 대학교총장과, 가산불교문화연구원설립, 총무원장을 지내시면서도 주석처는 이 금강반야 대였습니다. 오늘날 경국사의 구석구석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주인 잃은 금강반야대엔 누가 오셔서 지혜의 빛을 더하실까?
삼층석탑(三層石塔)
이 석탑이 아름다워 팔공산 갓바위 스님이 보시고선 갓바위에 똑같이 근년에 3층석탑을 건립하신 바 있습니다.
동루관(東樓觀)
금강반야대 좌측에 있는 스님의 요사채입니다.
균제실(均提室)
금강반야대를 중심으로 금강반야대 우측에 있는 스님의 요사채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면 왼쪽이지요. 이름이 독특하지 않습니까? 균제(均提)란 무슨 뜻일까요?
균제(均提)는 마하춘다라고도 합니다. 바라문의 아들로 7세에 부모와 사리불을 따라서 출 가하였습니다. 사리불의 최연소 사미(沙彌)이며 사미로서 육신통(六神通)을 구족하고 아 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현우경(賢愚經)》『사미균제품((沙彌均提品)』에 따르면 균제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당 시 목소리가 좋은 사미였는데, 목소리가 나쁜 장로를 비방하여 5백세 동안 개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한 상인이 개로 태어난 균제를 때려 죽게 되자, 사리불이 천안통으로 그것을 보고 살려주고 여러 가지 법을 설하였습니다. 그 후 개가 죽어 사위국(舍衛國)의 한 바라 문의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사리불(舍利弗)을 은사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아라한과를 얻고 난 후 자신의 전생을 살피다 이 같은 사실을 알자 사리불의 은혜에 보답 코자 평생을 사미로 지내면서 사리불에게 필요한 것을 공양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균제(均提)는 문수보살(文殊菩薩)보살의 시자(侍者)라 합니다. 중국 항주(杭州) 의 무착문희선사(無著文喜禪師)가 오대산(五臺山)에 머물며 균제동자(均提童子)를 만났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균제실(均提室)은 아마도 시자실(侍者室)이 아닌가 합니다. 앞의 문이 문수원(文殊院)이란 현판이 이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전각을 참배하고 의미를 함께 새기기도 하고 법담도 나누면서 마지막 단계로 관음성전에 들어 관세음보살님께 예배드리고 지관대종사 6재에 동참해 사리도 친견하는 등 모든 과정을 마치고 11시 30분경 관음성전 아래에 있는 공양간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경국사에서는 마지막 재(齋)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찾은 것 같습니다. 공양간이 꽤 넓은 데 만원이었습니다. 벌써 몇 번 이곳에서 공양을 했는데 법우님들과 함께하는 공양이라 더욱 맛있는 비빔밥 공양이었습니다. 또 떡도 특별히 더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료 로 나누어 주는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즐거운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공양은 무료로 주시 지만 우리는 1인당 5천원을 계산하여 종무소에 드리고 나왔습니다. 무료라도 우리가 할 도리는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끝으로 종무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2시 30분, 다음 행선지인 흥천사로 발걸 음을 옮겼습니다.
☞ 다음은 '정릉의 원찰 흥천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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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조계사에서 지관대
사 49재가 베풀어졌습니다. 수 많은 불자와 추모객들이 조계사를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 염화ㆍ미소님, 덕명님, 산수산님이 함께하셨으며, 치악산 산원사의 고공스님도 반갑게 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유스님도 뵈었습니다. 나중에 묘법님도 함께하시어 스님을 기렸습니다. 경국사를 다년온 지 1주일 만에 사진도 올렸고 49재회향도 하였습니다. 큰스님, 구품연대에 오르시어 법락을 누리소서. 나무아미타불 
()()()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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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이 보인다고 하셔서 배꼽만 보인 녀석 몽땅 잡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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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벽화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적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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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수고 하신 법우님 잘
보고 새기며 꾸벅 ,,, 허나 중생의 눈엔 공양간이 쏙쏙 들어 옵니다. 

_()_ 인환 대
사의 지관 큰스님 추모 글은 불교신문에서 본 거억이 나는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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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절에 가시면 우선 찾아야 할 곳이 공양간과 해우소 소재파악이지요.


예, 거기서 인용했습니다. 어디에 무슨 글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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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이승에서의 마지막 회향. 상품상대 오르시어 아미타 부처님 뵈으소서....나무묘법연화경()()()
오늘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 조계사에서 뵈니 마음이 한결 낫네요. 생전에 경국사 무우정사인 금강반야대에서 우리 향불교 법우님들과 차 한 잔 받고 싶었는데... 인환스님께서도 얼마나 절실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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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사의 이모저모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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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제 경국사도
을 고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천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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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지관스님 사리 친견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금 머릿속에 경국사가 그려지는군요. 49재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예 잘 다녀왔습니다. 입적하신 날부터 이운식, 영결식, 다비식, 칠칠재까지 전과정을 마쳤네요. 마랑부와 균제에 대하여 숙지하시면
날 반드시 '이 뜻이다' 하고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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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은 건물도 아름답지만 편액들도 잘 쓰여졌더군요,기축년이면 3년전인데 관음성전 글씨가 살아 있는듯
합니다.49재도 다녀 오셨군요_()_
예, 49재도 잘 다녀왔습니다. 사찰에 가면 주련도 중시하지만 전 현판도 눈여겨 보게 됩니다. 순례하면서 준련을 함게 감상하는 것도 묘미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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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액에 대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마랑부이야기도 재미있네요. 균제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무엇보다 지관스님의 6재에 동참하신 분들은 복이 수승하다고 생각됩니다. 성불하세요.
천사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기대됩니다. 
_()_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천사도 이제 하나 올렸으니 감상해 보세요. 
_()_
다시 성지순례 답습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_()_
순례하고 돌아와 생각해 보면 그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함께해서 반갑고
거웠습니다. 
_()_
가까운 곳에 고찰이 있는줄 모르고 살
으니 세
감사드립니다 백우님 고맙습니다 
_()_
여기도 사진이 많이
아났군요. 잡아와야겠네요. 


_()_
오늘에야 겨우
아났던 사진 모두 제자리에 돌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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