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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 > ( Jesus' Final Odyssey ) 제8회
제8장 야고보, 예수에 가려진 다윗의 적통자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예수 출생 시 일어났던 서출 논란과 정통성 시비에 계속해서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나게 될 아이는 적법성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스라엘 왕손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번에는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6년 이상을 기다리고 생일을 유대 '왕의 달'인 9월에 맞추어 야고보 James를 출산하였다. 서기 1년 9월 23일 야고보가 태어났을 때 물론 그가 그의 형 예수처럼 서출의 시비도 없는 진정한 상속자이고 다윗의 정통적 자손이었다. 율법과 의식을 중시하는 바리새파 출신의 대사제 가야파는 예수를 적자로 보지 않았고 따라서 다윗의 정통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야고보를 정통으로 보아 야고보야말로 다윗 왕의 혈통을 잇는 미래의 유대 왕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예수와 야고보을 둘러싼 정통성 문제는 어떤 대사제가 권좌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가야파아 같이 엄격한 규율 해석을 하는 보에투스 가문에서 대사제가 나오면 예수는 사생아로 취급되어 야고보가 요셉의 후계자의 자격이 있었으며, 대사제가 관용적인 안나스 가문에서 나오면 예수가 후계자의 자격이 있었다.
예수의 형제자매는 모두 8남매로, 야고보 James, 요세 Joses, 시몬 Simon, 그리고 유드 Jude의 4명의 남동생과 살로메 Salome, 마사 Martha, 그리고 에스더 Esther의 3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 중 야고보는 복음서에서 '부자 아리마대 요셉 Joseph of Arimathea'으로도 등장한다. 또한 그는 야고보서 The Letter of James의 실제 저자이기도 하다. 성장해서 그는 형 예수를 따라 종교인이 되었고 예루살렘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다.
서기 삼십 년대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두 사람을 꼽자면 예수 자신과 야고보였으며, 당시 야고보는 '주교 중의 주교 the Bishop of Bishops' 또는 '대주교 Archbishop'라고 불리었다. 베드로나 바울의 존재는 훨씬 뒤에 무대에 나타난다. 야고보는 신앙심이 높고 경건한 사람으로 음주도 하지 않았으며 육식도 하지 않았다. 면도를 하거나 몸에 기름을 바르는 일도 없었다. 그는 양모가 아닌 아마포 제의를 입고 거동하였으며, 홀로 신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를 사해달라는 끊임없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의 무릎은 수 없이 반복된 구부림과 폄으로 인해 낙타의 무릎처럼 굳은살이 박혔었다고 전한다. 야고보는 예수의 관용적인 교리에 반대하였다.
그는 율법의 준수를 중요시하였으며 이방인에게도 할례등 엄격한 유대인식 규율과 의식을 요구하였다.
그의 이런 점은 바울의 견해와 상충되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알력이 있었으며 때로는 심한 충돌도 있었다. 바울은 신도수를 쉽게 늘리기 위해 특히 이방인에 대해서는 유대식 율법의 적용을 최소화 할 것을 주장하였다. 바울은 또한 교세확장을 위해 '정신적 할례'라는 기발한 용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방인들 누구나 할례없이도 간편하게 개종할 수 있게 하였다.
다윗의 적통자로 '실천 제일주의'를 강조한 예수의 친동생 「(小)야고보」(좌) / '믿음 제일주의'로 민족종교에 불과했던 유대교를 세계종교 반열에 올린 「사도 바울」(우)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믿음 제일주의를 주창하였다. 이와 반면에,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팔레스티나 밖에 흩어져 살고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실천 제일주의를 주창하였다.
서기 삼십 년도 중반 빌라도 총독이 물러나고 헤로데 아그리파 Herode Agrippa 왕이 팔레스티나 통치를 맡게 되자, 야고보는 헤로데가 없는 다윗만의 왕국을 역설한다. 그리고 예수가 바로 구세주라고 주장한다. 아그리파는 측근이었던 안나누스의 막내아들 젊은 안나누스가 대사제가 되자 그는 야고보가 예수를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불렀다는 죄목으로 야고보를 최고 법정에 불러 심문하고 돌로 쳐 죽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서기 62년 야고보가 처형당하면서 예루살렘에 그 중심을 둔 히브리 그리스도교는 곧 힘을 잃고 바울이 이끄는 새로운 '바울적인'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때부터 남성신도 중심의 베드로 파가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실상 초기교회의 교회의장은 베드로가 아니고 야고보였다. 초기교회에서는 사도들에 의한 집단지도체제가 많았는데, 가령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보더라도 의장은 베드로가 아니라 야고보였다. 예수는 야고보를 계승자로 정하였다. 후세에 예수의 혈족 승계 Desposynic Succession에서 사도 승계 Apostolic Succession로 넘어가면서 베드로 파가 주축이 되어 베드로를 예수의 계승자, 초대 로마교황등으로 추서 追敍하였을 뿐이다. 실제로 예수는 베드로를 계승자로 정한 적이 없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하마디 Nag Hammadi에서 발견된 도마의 복음 Gospel of Thomas은 격언집 또는 교훈집 Listing of Jesus' Sayings or Teachings으로 114격언 중 12번째는 이렇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당신이 우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됩니까? 예수는 그들에게 답하였다.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너희는 '정의로운 야고보'에게 가서 물어보아라. 하늘과 땅은 그 때문에 생겨 난 것이다."
예수는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너희는 정의로운 야고보 James the Just에게 가서 물어보아라."하고 말함으로써 야고보의 권위와 교회지휘권을 그에게 맡긴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가 말하는 교회 지휘권은 야고보가 초기에 주교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로마제국 하의 팔레스티나 전역에 있는 교회를 포함하는 것이다. 다음 문장 "하늘과 땅은 그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는 야고보와 같은 덕이 있고 정의로운 소수의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이 존재하고 또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의 신앙심이 깊고, 인격이 고매하고, 능력이 탁월하였다는 말로 해석된다.
어쨋든 예수의 이 말은 예수가 야고보를 계승자로 정하여 교단의 수위권을 인계하였음을 방증하는 기록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역시 예수가 야고보를 계승자로 정하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형 이후, 베드로와 요한 마가는 그때까지 예수가 그들에게 준 영예에 감사하며, 더 이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 다투지 않았다. ... 중략 ... 예수는 교단을 정의로운 야고보에게 전하고, 야고보는 요한과 베드로에게 전하고, 다시 이들은 나머지 사도들에게 전하고, 또 이들은 70인에게 전하여 면면히 이어지게 하였다."
형 예수를 너무 닮은 예수의 막내 남동생 「도마」(좌) / 예수 옆구리 구멍을 확인하는 의심많은(?) 「도마」(우)
이러한 계승의 체계와 야고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으로 볼때, 예수가 조직한 임시정부의 성격을 가진 '12사도 the Council of Twelve'라는 협의체의 승계 역시 야고보가 계승자가 된 것으로 본다. 야고보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격으로 그의 좌측에는 요한 마가를, 우측에는 베드로를 자문역으로 하고 그 밑에는 나머지 사도들을 두었으며, 70인으로 상하 위계를 이어갔다. 따라서 베드로를 제1대로 하는 사도 승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은 물론, 로마나 안티옥 어디에서도 주교로 활동한 적이 없다. 최초의 로마교회의 주교는 리누스 Linus이었는데 이때, 즉 서기 58년 당시 베드로는 생존해 있었다.
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는 원래 아주 평범한 동네의 에세네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본업이 어부로 무지하여 글도 알지 못하였으므로 사제들이 맡아서 해야하는 공적인 역할이나 사도들에게 맡겨지는 행정이나 입법 업무등의 공적인 역할을 일절 맡아서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책무가 없는, 말하자면 무임소 無任所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필요에 언제라도 응할 수 있었다.
베드로의 역할은 로마 점령하의 로마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다인들, 즉 디아스포라에게 예수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예수의 동생들과, 때로는 그들의 부인들과 같이 주로 소아시아 폰투스 Pontus, 갈라디아 Galatia 같은 곳을 자주 여행했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의 오른팔 심복, 때로는 보호자가 되었고 예수의 일을 항상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평판을 누렸다.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 메시아 즉 유대의 왕의 역할을 하는 것은 옳지만, 대사제나 교황의 역할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후에 와서는 예수가 원하는 바대로 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 마가, 일명 바돌로매 Bartholomew, 또는 유티고 Eutychus는 처음부터 예수와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아그리파 1세로부터 해방된 노예로, 할례를 받지 않은 개종자였다. 그는 예수의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신흥종교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로서 이교도로서는 높은 직분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기 삼십 년대 후반 아그리파 2세가 통치자로 위임되면서 요한 마가는 그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베드로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예수가 리드했던 12사도 평의회, 즉 가까은 미래에 도래할 왕국의 통치를 위한 협의체의 인적구성도 많이 달라졌다. 서기 29년에 이미 멤버가 된 야고보를 필두로 한 예수의 형제들의 참여와 유다의 사망, 도마의 동방행, 안나스의 예수와의 결별등을 고려하면 최초의 구성과 다른 새로은 12사도 협의체가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천국의 열쇠를 줜 「베드로」(좌) / 예수 혈통세습을 거부한 「실베스터 로마주교」와 「콘스탄티누스 대제」(우)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베드로가 예수에게서 교단의 수위권 首位權을 받은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약성서의 어느 부분에서도 베드로에 대한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거나 언급하는 구절은 전혀없다. 기독교에서 베드로가 예수에게서 교단의 수위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마태복음 16장 16~19절을 든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기독교에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를 예수가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그에게 교황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또한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는 구절은 예수가 베드로에게 교회의 통치운영권을 부여하는 것, 즉 베드로를 후계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교단의 수위권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여 후에 그를 초대 로마 교황으로 추서 追敍하였다. 이것은 교권장악을 위한 베드로파의 음모였다.
그로부터 그의 뒤를 잇는 역대 로마교황들은 모두 다 그 권한을 위임받는 것으로 간주하여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는 교황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 Peter를 그리스어의 '페트라 Petra 바위, 반석'에 비유하여 그를 반석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 반석'은 베드로 개인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졌던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베드로 위에'가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그 믿음을 반석'으로 하여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은 위 마태복음 16:19 역시 구약 이사야서의 구절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올바른 해석은 원문인 아사야서를 토대로 하는 것이 옳다. 원문인 이사야 22:22에는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 마태복음 16:19에서는 위 아사야서의 구절을 차용하여 바꾸어 부연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장황한 수사법은 마태의 특징중의 하나이다. 원문 이사야 22:22에서 "그의 어깨"의 '그'란 엘리아킴 Eliakim인데 그는 다윗의 자손인 히스기야 Hezekiah왕가에서 중요한 행정관리직을 맡아 했었다. "다윗의 열쇠"를 갖는다는 뜻은 지금의 비서실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바울의 말에 따라 서기 390년에 작성된 사도신경 the Apostles'Creed의 '사도'와 관련이 있는 사도승계는 서기 2세기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예수의 혈통승계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예수, 야고보, 예수의 셋째 동생 시몬 그리고 그의 넷째 동생 유드의 순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스템은 적어도 이들의 다음 다음 세대, 즉 3세기 초까지도 이어진 것으로 역사가들은 밝히고 있다.
로마교회가 데스포시니 승계, 즉 예수의 혈족에 의한 세습승계에서 사도승계로 확실히 옮겨 간 것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부터 서품받은 실베스터 Silvester 주교 때이다. 이 때 최초의 로마교회 주교가 리누스 Linus였던 사실을 무시해 버리고 베드로를 최초의 로마주교, 후세에는 로마교황으로, 추서 追敍하게 된다. 로마교회가 이와 같이 예수의 혈족에 의한 승계체제를 무너뜨리고 말살하고 무시하는 처사에 예수 혈족들의 많은 반대가 있었다. 서기 318년 예수의 넷째 동생 유드 Jude의 후손 요세 Joses를 포함한 8인의 예수의 혈족 대표단이 로마 라테란 Lateran 대성전으로 간다. 그들은 실베스터 주교를 알현하고 중대한 쟁론을 하러 가는 것이다.
대표자 요세는 로마주교를 만나 기독교의 중심은 로마가 아니고 모름지기 예루살렘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주교는 데스포시니 Desposyni, 예수의 혈족 승계자가 맡아야 하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옥, 에베소등 중요한 도시 교회의 주교들도 적어도 예수의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것이 예수 자신의 유증 遺贈이라고 첨언한다. 실베스터 로마주교는 그들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기각한다.
그는 인간구제의 권능은 더 이상 예수에게 있지 않고 콘스탄티누스 대제한테 있다고 공언한다. 또한 로마황제의 지시가 예수의 가르침보다 선행한다고 말한다. 이것으로서 예수의 혈족승계냐, 사도승계냐의 논쟁은 끝이 나고 로마황제의 뜻에 따라 사도승계로 가게 된다. 이로부터 본산 교회 本山敎會 Mother Church는 자연 로마교회로 굳혀지게 된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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