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나가노현이 있듯이 한국에는 강원도가 있습니다. 각종 스키장에 있고 백두대간의 허리로 수많은 정맥을 거느리고 동서로 흐르는 북한강,남한강과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지이자 서울에서 가까워 그 허파역할을 하고 있으며 휴양지이기도 합니다. 서울사람들은 강원도를 일러 지친 심신을 보충해주는 자양분을 생각하고 있고 기어코 그런 이미지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5/13 새벽 그 강원도의 중심인 춘천으로 연중행사가 되어버린 지인들의 봄나물 채취 나들이를 위해 대전을 떠납니다. 오랜만의 외출이고 익숙한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접어드니 진천을 지나 남하하는 모심기기 시작됩니다. 고속도로 주변의 천년역사를 간직한 진천 농다리가 보입니다. 돌다리 사이에 물길을 내어 스스로 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신화를 만든 자연친화적인 그대로의 돌다리입니다.
한국의 풍수사상은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전국적 명성을 남겼는데, 진천은 산이 야트막하고, 농경지 많고 적당한 물길이 있어 농경시대 한국인의 이상적인 주거지라는 이미지입니다. 그 진천을 쭉 둘러볼 기회가 없었지만 조촌씨의 영감과 권박사의 감각이라는 어느정도 답이 가능할 것입니다.
경기도로 올라가 안성을 지나 이천에 이르면 길은 강원도 가는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듭니다. 이천은 남양주,여주와 더불어 근기의 도자기공방이 있었던 곳이라 지금도 이조백자를 재현하려는 축제가 열립니다. 수사끼의 그 사람은 이미 마스터한 곳이겠지요. 그 이조백자가 하나 있다면 이사한 내 아파트의 빈 공간은 빛날 것입니다. 이조는 목공예와 백자라는 실내문화의 정수를 남겼습니다. 그에 감탄한 1920년대 일본사람들의 얘기는 이제는 일반화된 것입니다.
여주는 남한강이 흐르는 도시입니다. 김교수가 대학의 청춘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 뗏목이 지나갓던 곳입니다. 아직도 버드나무가 늘어진 사행의 큰 강은 유유히 흐릅니다. "상사적 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아 있는 경관 대신 복원이 아니라 상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많은 유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뱃길의 중심이었던 강경의 옥녀봉을 오르면 금강의 삼각물이 합강하여 수백대의 나룻배가 물산을 나르던 상상의 공간창출이 가능합니다.
지금 언급한 여주나룻터의 주막과 나룻배와 춘양에서 내려온 뗏목을 엮을 수 있는 상상적 유물의 가설이 가능한 곳입니다. 봉수대를 재연하여 한성에서 충청을 거쳐 영남과 호남을 거치고 관동과 평안도,함경도를 연결한 밤의 봉수축제와 파발을 역으로 엮는 릴레이식 파발축제를 묶어 나라가 한 바탕 그 옛날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전통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미래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것과 현재의 공존이 주는 모노가타리가 있어야 한다는 그 전통입니다.
섬강을 지나면 강원도의 초입인 원주입니다. 산세가 달라집니다. 고속도로를 춘천가는 중앙고속도로로 꺽으면 중간에 있는 홍천강을 제외하면 깊은 산중에 난 강원도 내륙 그 곳을 달리는 것이지요. 길 주변에 산을 깍아 밭을 만들고 물이 있으면 논을 만든 곡선의 원형의 농경지와 그 부근의 몇 채의 감나무가 있는 농사가 있는 여기는 김교수식의 산촌론의 전개가 가능한 앙증맞은 동네입니다. 조금 큰 마을에는 어김없이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그 넓은 강원도를 봇짐장수,들짐장수가 다닌 산길이 있고 그 길들을 답사한 책이 있습니다. 짐을 지게로 지고 하루 60킬로 산길을 거뜬히 헤치우고, 다음날 다시 다른 곳으로 간 그들의 흔적은 지금은 히말라야의 셀파들에게서나 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예술의 영역에서 표현된 적은 없습니다만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관심영역입니다. 이조의 문화적 통역자였던 역관들과 그 산길걷기의 달인들의 이야기가 최근 내가 들은 가장 관심가는 것이었습니다.
춘천에는 공무원조차 순박한 강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정을 통채로 주는 마음을 여는 강원도는 편안합니다. 80년대 슬픈 현실 속에서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웅변한 그 경춘가도의 끝이 호반의 도기 춘천입니다. 길이 따라가는 북한강변의 80년대식 대학생의 시국과 청춘의 설레임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그 강변은 '박하사탕'이라는 슬픈 영화를 남겼습니다.
춘천은 북한강이 직통하여 내륙의 호반을 형성하고 순환 트레킹 코스가 환상적인 분지에 둥지를 튼 잠기고 싶은 도시입니다. 도시에 때묻지 않은 강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을 춘천입니다. 소양강과 북한강은 서울이 있는 한강의 본류라 숱한 댐으로 흐름을 빼았겼지만 상처를 깊숙히 간직한 채 흐릅니다. 문명이 그 생명마저는 앗아갈 수 없는 흐름입니다.
김유정을 낳고 최근 인형극의 본마당이 된 문화의 도시 춘천에는 강원대학교가 있어 본격적인 강원도 전통이 탐구되고 있고, 인류학과가 생겨 지인들이 그 유장한 모노가타리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위 봇짐장수들의 얘기도 있겠지요.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일본에도 봄이 되면 산나물을 뜯는 풍경이 있나요. 조선의 많은 처녀들의 얘기는 봄나물로 시작됩니다. 조선의 고갱이라는 이인상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상징적인 조선의 풍경입니다. 그 전통이 어디에 연유하는지 모를 요즘의 봄나물 채취는 산을 걱정할 정도로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 속을 다니며 설레이게 그 취라는 봄나물을 언제부턴가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천에 널린 그 취라는 놈은 흙냄새를 그대로 간직한 생명을 느끼게 하는 향이 있습니다.
매니아들은 연중 산에서 나는 생명을 채취합니다.
일정을 마치고 부여로 다시 내려오는 4시간의 드라이브는 기분좋은 산행 덕분에 덜 지친 심신이 되어 달립니다. 오랜만의 산행은 기분좋은 잠이 되고 봄내음 가득한 부여의 처갓집 식두들마저 즐겁게 합니다. 이렇게 생명은 다른 생명의 기운을 부릅니다. 다음날 처갓집 집뒤 둔덕에 잡초를 뽑는 식구들의 공동노동도 그 취 때문에 즐겁습니다. 건강한 취와 건강한 노동과 건강한 가족이 함께한 외출이 끝나갑니다.
사진 없이 지루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