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수원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의 法基水源池는 일제 강점기 때 건립한 수원지로 부산 지역의 일본인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09년에 건립한 성지곡 수원지에 이어 1927년 착공하여 1932년 준공하였다.
법기 수원지의 댐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최고 수위 해발 197.23m, 최대 수심 14.7m, 댐의 높이 21m, 길이 260m, 폭 6m이며 총저수량 157만 톤으로 상수 원수의 공급 능력은 하루 약 8천톤이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위치하나 부산광역시가 소유,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법기 수원지의 물은 범어사 정수장으로 보내어 정수한 뒤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두구동, 청룡동, 남산동 일대 약 7,000여 세대에 공급하고 있다.
도수터널 입구 아치 위 석벽에는 源淨潤群生(원정윤군생: 깨끗한 물로 많은 사람과 생물이 윤택해 진다)이라는 글씨의 석각이 있다. 이 석각의 글씨는 일본 해군대장으로 두 번이나 조선 총독을 지낸 사이토마코토(斎藤 実 1858~1936)가 수원지 준공을 기념하여 쓴 글씨이다. 사이토는 삼일운동 이후 '문화통치'라는 미명 하에 조선민중의 항거를 억압하여 조선의 영구지배를 획책했던 인물이다.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를 폭살하기로 결심한 강우규(姜宇奎 1859~1920)는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재의 서울역)에서 사이토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총독을 암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라다 육군소장, 혼마치 경찰서장 등 핵심인물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강우규는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군과 경찰들에게 공포심과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폭탄 투척 후 피신하던 중 일제 경찰에 복무한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구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60년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 장군이 들려 5.16을 구상하였다는 이곳은 2011년에 개방되었으며 댐 위의 6그루의 아름다운 반송(盤松)은 그림엽서 속의 풍경 같다.
첫댓글 堰提盛土並補强張石作業(192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