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크레덴시알을 만들며...
지난 밤 알베르게는 베드가 두개인 아담한 침실을 이용했다.
성당이었던 곳을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던 곳이다.
하지만 얇은 칸막이 하나만 세워져 있을 뿐
천정은 뚫려 있어 옆방의 자잘 한 떠드는 소리와
밤 중에 들리는 코고는 소리가 여지없이 빈 공간을 타고 내 귀로 들어왔다.
그래도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공동 알베르게를 벗어나
한적하니 잠을 청 해 본 적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함께 묵었던 25살 오스트레일리아 친구 산드라는
어제 말한 대로 이른 새벽 일찍이 먼저 출발한 것 같다.
베드가 말끔히 비워져 있다.
산드라가 조심스럽게 준비를 하였는데도 나도 일찍 잠에서 깨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 5분. 다들 오늘은 무슨 경주라도 하는 지..
몇 군데만 불이 꺼져 있고 모두 일찍 서둘러 출발한 상태다.
머리가 온통 귀죽박죽이다 이리저리 삐쳐 있는 머리꼴이 말이 아니지만..
아침 기온이 차 머리 감는 일도 귀찮다.
오늘은 이런 덜떨어진 상태로 그냥 출발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밥도 먹지 않은 체
주섬주섬 대충 짐을 꾸려 알레르게를 빠져나왔다.
어제 부터 혼자 걷는 길..더우기 오늘은 깜깜한 새벽을 걷고 있다.
여유는 있으나..아침 기온이 차다. 그리고 배도 고프왔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도로길. 자꾸 옛날 생각들이 새벽부터 나를 상념에 젓게 했다.
그러다 그만 싸인을 놓쳐 버렸다. 저쪽으로 가야하나?
반신반의하게 그냥 언덕을 넘어 가려는데 포도농장 저 구석에서 농부가 나를 불러 뭐라 그런다.
'아! 저기로? 반대로 ?...'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나는 꾸벅꾸벅 인사를 드리고
방향을 바로 잡아 다시 아스팔트길로 이어진 도로를 향해 계속 걸어 나갔다.
혼자 걸을 땐 조금만 방심하면 이렇게...길을 자주 잃는다.
특히나 상념에 젖어 있을 때는 자주 길을 잃게 될 확률이 높다....
땅만 쳐다보고 가기 때문에 사방을 둘러보지 않아 그렇다.
거짓말 처럼 정말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길을 잃곤 했다.
그리고 또거짓말 처럼 들리겠지만 ..누군가 짠! 하고 등장해
'이봐! 당신! 길은 저쪽으로 가야 하네...' 하며 나를 바로 잡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사람들이 그랬나보다. 카미노에선 절대로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1시간 30분 정도 걸었을까..viilafrauca bierzo에 다달았을 즈음, 길가에 자리한 작고 예쁜 카페를 만났다. 노란 태양이 환하게 웃고 파란 별들이 반짝이는 곳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테코레이션으로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핸드 메이드 작품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침 카페에는 청소년 둘이 있었는데 얼굴엔 피어싱을 하고 개 한마리를 앉혀 놓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배도 채우고 또 떨어져 버린 핸드폰 배터리를 채우기 위해 잠깐 이곳에서 40분 가량을 쉬어 갔다.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너무 커. 반만 겨우 먹고 반은 담아 왔다. 알고 보니..주인 아주머니가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손수 만든 작품들이 많았던거고. 피어싱 한 그 아이들은 아들과 여자친구였다. 특이한 것은...개 한마리였는데 손님들이 올 때마다 테이블 옆에 바짝 붙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애처로운 눈길로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게 장기였다. 그 모습에 너무 예뻐 무엇을 안 줄 수 가 없다. 나는 샌드위치를 3/1을 떼어 주었는데 이 녀석 계란과 햄만 먹어버리고 빵은 남겨 둔체 또 나를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린 모두가 한 바탕 웃었다. 또한 모자 지간 마주 앉아 아침부터 맛 담배를 피우서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이 콩가루 집안이네..라기 보다는 다정한 친구처럼 보여 새로웠다. 우리나라에선 감히 상상하지 못할 풍경이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 나쁘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무엇가를 먹겠냐고 하시는데...알고 보니 알콜에 담아 둔 체리 몇 알. 우리 네로 치면 매실주에 담긴 매실?..속이 빈 탓이었을까..그 몇 알에 제법 취기를 느꼈다.....갑자기 20대 때 강남역 한복판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과 짜장면을 시켜 놓고 친구랑 소위 말하는 '빼갈'을 시켜 놓고 낮술을 마신 기억이 났다...우리끼리만 얼굴이 벌게서 좋아라 하고 강남 점심을 먹고 있는 직장인들 속을 휘젓고 다니던 그 기억. 그리고 회사 다닐 때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알탕에 쇠주 두잔 정도로.. 알딸딸 기분 좋은 취기를 느꼈던 그 느낌...빙긋이 미소가 번지고...스페인 땅에서 알탕과 짬봉을 생각하며 웃게 되다니. 아...더 취하고 싶기 전에 빨리 일어나야 겠다 . 나는 곧 핸드폰 배터리를 찾아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빠져나와 다기 걸었다.
3km를 걸으니 Viilafrauca.
성이 보이고 낮게 제비떼들이 비행을 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비가 올려나...저 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다리와 강물..그리고 고풍스런 도시의 풍경들..꽤 큰 도시이고 역사가 있는 곳 같다. 하지만 스페인여기저기는 개발공사가 한창이라 곳곳에서 마주하는 공사의 소음과 북적거림으로 인해 오래 도시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오늘 갈 길이 멀어 잠시 몇장의 사진만 찍고 계속 걸어 간다. 나는 이제 대도시가 흥미롭지 않다. 어머어마한 성당을 구경하는 일도 별로 신이 나지 않고 멋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별로 관심이 없어 져 간다. 그것보다는 작고 평범한..들 길. 숲 길. 들판. 그러다 만난 시골 의 작은 BAR가 더 정겹고 마음이 포근하다. 땡볕을 걸을 때 만나게 되는 나무는...정말이지 세상 어느 친구보다 더 고마운 친구였다.
카페에서 출발한지 2시간쯤 지났을까.배가 또 고파 오는데 고맙게도 저기 내 눈에 체리 나무들이 들어온다. 나의 효도상품을 사용할 때 다. 2m 나의 작대기여 ! 받들어 총!...체리 서리가 이번이 세번째. 이젠 양심의 가책도 없다. 자동적으로 작대기를 후려 치고 있는 내 모습은 거의 준 프로다. 후두둑...체리들이 쏟아졌다. 보조가방 가득 체리를 담고 행여 그래도 누군가 나타나실까 급히 그 마을을 빠져 나왔다.
아!...훔친 사과가 맛있다더니..정말 체리맛은 꿀맛 이다... .
오후 12시.
6시넘어 출발했으니 5시간 정도 걸은 셈이다. 이젠 정말 점심을 먹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새 여권도 만들 겸(크레덴시알이 꽉 차 새 여권이 필요했기 때문에...) 동네 알베르게를 찾았지만 도통 보이질 않는다. Trabadelo라는 마을에서 겨우 알베르게를 찾았지만 12시 22분에 open. 여권은 만들어 주지 않는다며 여권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이곳은 내가 지닌 자료에는 모든 시설이 마련 되어 있는 (십자가표 5개) 도시로 체크되어 있어 제법 큰 마을인지 알았었는데 벌목을 하는 현장만 인상적일 뿐 그저 작은 시골 마을 같기만 하다. 변변한 bar도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좀 더 걷다가 길가 나무숲에서 아깐 싸온 샌드위치와 서리한 체리를 씻어 점심을 먹었다. 갈증이 계속 올라 오는데 내겐 물이 없었다. 아까 그 알베르게에서 물이라도 채워 올 걸...하는 후회가 된다. 걷다가 bar를 만나면 시원한 '아구아' 한병 사먹어야겠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 길. 햇볕은 이글거리고..물은 떨어져 가고..심지어 카페도. BAR도...사람도 없는 땡볕 길을 계속 혼자 걸어왔다. 몸이 지쳐간다...그래도 도로 옆 보이진 않지만 강물 소리가 들리고 그 시원한 물줄기가 그마나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점심을 먹고 1시간30분 정도를 더 걸어 왔을까.. 물이 없는 고통으로 도저히 오늘은 안되겠다. 예정으론 오늘은 32km를 걷고 싶었었지만 포기하기로 한다. 24km 지점인Ambasmestas 서 나는 알베르게를 찾았고 이곳에서 새로이 여권을 만들고 쉬기로 했다 .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참으로 오랜만에 이른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작은 이곳 알베르게는 다리 밑으로 흘러가는 강가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알베르게다. 햇빛이 강물을 뚫고 조약돌을 유리알처럼 빛나게 하고 있었다. 샤워를 했고..간단히 이른 저녁도 했기에 몸과 마음 모두 행복하다. 따듯한 햇살과 알맞게 불어 주는 바람..그리고 따스한 이 여유. 나른한 햇살이 나를 감싸고 흘러가는 강물 속 반짝이는 자약돌을 보고 있으려니 졸음까지 몰려 온다. 따듯한 여유가 한없이 행복한 거로구나...
새로 만든 크레덴시알과 생장에서 부터 들고 다닌 여권을 바위 위에 함께 올려 두어 보았다. 어느새 여기 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생장에서 도장을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은 말로 형언할수 없는것이었는데 지금은 도장에도 연연하지 않게 되고...새로운 여권이 필요할 만큼 이 만큼이나 왔는데...'넌 카미노에서 원한 걸 찾았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넌 카미노에서 정말 무엇을 얻길 원하니...' 계속 내 속에서 나를 향해 소리들이 들렸다. 점점 길은 가까워 지는데 매일 몇 km를 왔다는 사실만늘 체크하는 일 외에 난 하고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작 내가 풀어야 할 숙제나 기도에 대해선 보따리 조차 꺼내지 않고 있다.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행여 그것들을 꺼내 보다 다시 복잡해 질 것 같아 얼렁뚱당 피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지금에서야 카미노 길 위에서 이 단순함을 배워 가고 있는데.....이것이 행여 깨질 것 같아 두려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에이샤에게 말 했던 나의 꿈
진정 나로써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나의 꿈이, 나의 기도가..그 소망이
카미노가 끝날 즈음,
이 흐르는 강물처럼
맑게 맑게..흘러가서
묶인 것들에서 풀리고 유유히 털어낼 수 있을 런지.
내 자신이 새로운 물길이 되고.
희망이 되어 자유로이 흘러 갈 수 있을 런지...
하느님 께 간절히 기도 드리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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