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성노 교지
가. 해제
교지 강성노 위 통훈대부(정3품下) 의금부 도사자. 광서 19년 11월 일(1893년, 고종28년)
- 의금부의 義字(옳을의)를 議(의논할의)로썼고, 의금부 도사는 종6품도사, 종8품도사가 있으며 정3품下를 도사로 임명할 경우 階高
職卑에 따라 통훈대부 다음에 行자를 넣어야됨.
- 옥새가 시명지보가 아니고, 가로 크기가 약간작은 도장을 만들어 낙관하였음.
2, 장사랑 차첩
가. 해제
이조 만력21년 2월 26일봉 교 진사 김여0 위 장사랑(종9품) 군자감 봉사자. 민력21년 2월 일(1593년, 선조26년, 임진왜란 다음해)
- 직사가 맞게 발급된 차첩같으나, 임진왜란시 招諭使(초유사 : 난리때 백성을 타일러 적개심이 나도록 하는 임시벼슬)가 현장에서
발급한 것이 맞는지에 대하여? 현품의 종이재질 확인 없이는 당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보임.
- 차첩을 발급한 이유인 부서가 고의적으로 훼손한것 같아 알 수 없음.
3. 선무랑 차첩
가. 헤제
이조 만력22년 12월 19일봉 교 진사 김여0 위 선무랑(종6품下) 군자감 주부자. 만력23년 정월 일(1595년, 선조28년)
- 이미 품계를 종9품 장사랑을 받았음으로 진사가 아닌 장사랑을 선무랑(종6품下)로 승차되는 것으로 기록하여야 되며, 차첩을 내린
이유를 납미(미곡을 바침)라 명기되어 있음.
- 임진왜란때는 納米로 받은 告身은 職事가 있어도 부임하는 것이 아닌 명예직이며, 예외로 納米을 많이 바치고 직책을 수행할만한
능력이 있는자 극소에게 納米 實職으로 부서함.
- 왕조시대는 직책은 본인의 사정으로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을 수 있으나, 국왕이 내리는 품계는 그러지 못함.
4. 조봉대부 차첩
가. 해제
이조 만력 훼손 2월 26일봉 교 진사 김여0 위 조산대부(종4품上)제용감정자. 만력23년 3월 일(1595년, 선조28년)
- 4품 부터는 왕이 직접 내리는 敎旨로 발급하고 옥새를 안보 하여야 하나, 차첩으로 내리고 이조직인 도서도 명확하지 않음.
- 제용감정은 제용감의 장으로서 통훈대부(정3품下)의 기관인데, 조산대부(종4품上)품계로 발급되어 職事가 맞지 않으며, 5품이하
에게 발급되는 차첩으로 발급되고, 발급 이유인 부서도 없음.
5. 이조참판 차첩
가. 해제
이조 만력25년 12월 28일봉 敎 진사 김여0 위 이조참판 겸 경연 지춘추관사자. 만력26년 7월 일(1598년, 선조31년)
- 품계도 없이 이조참판(현 행정안전부 차관) 겸 경연(왕앞에서 경서를 강론하는 자리) 지춘추관사를 교지가 아닌, 5품이하에게
발급되는 차첩으로 발급되었음.
- 이조참판 임명을 부하인 참의(국장)가 전결로 처리 하였으며, 좌랑. 참의 수결 위치 등도 맞지 않음.
6. 의정부 좌찬성 차첩
가. 해제
이조 만력二十 ? 년 11월 16일봉 敎 진사 김여0 위 가의대부(종2품上) 의정부 좌찬성자. 만력二十? 년 ? 월 일
- 의정부 좌찬성은 종1품 숭록대부(현 부총리) 인데 종2품上 가의대부가, 그것도 교지가 아닌 5품이하의 차첩으로 발급되었음.
- 만력 연호 20몇년을 고의적으로 훼손한 것으로 보이고, 발급 이유인 부서도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우며, 文官부서는 발급년월일
좌측에 부서 하여야 하나 우측에 했음.
7. 검토 사항
가. 1번 교지는 왜정시대 모대학에 납품하기 위해 가짜로 만든 告身같아 카페지기가 대구 모옥션 오프라인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며,
2~6번 차첩은 후손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을 인출하여 이름 끝자를 블러처리 하였음.
나. 임진왜란 장수중에 최고로 높은 권율 도원수,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삼도수군통제사 생존시에 정2품까지만 승차시켰고,
사후에 몇번의 증직으로 정1품 의정부 영의정 등으로 추존되셨으며, 의병장 출신으로는 곽재우 장군도 종2품까지만 승차시켰고,
사후에 정2품 병조판서로 추증되셨음.
그런데 인명사전에 이름조차 없는 인사가, 임진왜란 중에 납미로 종1품 의정부 좌찬성의 告身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고신 5건중 3건이 4품이상 품계인데 왕이내리는 교지로 발급하지 않고 모두 이조판서가 발급하는 차첩이며, 승진내용도 이어지지
않고 진사에서 조산대부 제용감정, 진사에서 이조참판, 진사에서 가의대부 의정부 좌찬성으로 경국대전의 관료를 임.면하는 吏典과
조례에 전혀 부합되 않는 고신이며, 吏曹之印 직인도 불명확함.
다. 3번의 낭관(선무랑)차첩으로 보아 微量(10석~50석)을 納米한것으로 보여 지며, 武官차첩이 없는것으로 보아 일시적으로 의병에
참전하여 공을 세우지 못했거나 또는 참전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
라. 인터넷에 올린 묘비사진은 김여0 묘의 초기에 세운것으로 보이는 것은 글씨가 마모되어 해석이 어렵고, 1936년에 새로세운 비석은
측면 으로 찍은 사진만 올려놓아 비문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음.
마.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 국학연구기관에서 조선시대 인사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도 없이 김여0의 문집(국립중앙도서 소장)에서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김공 묘갈명을 참고하였다며 인물정보난 주석을 달았고, 해당지역 군청 학예사는 본군에 임진왜란 의병장
이 세분이 있는데 김여0 이란분 이름은 없다고함.
바. 위에서 보듯이 자기 조상이 의병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우고, 納米(양곡을 바침)로 王으로부터 告身을 받았다며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을 타인이 잘못된 문서라고 시정을 요구하기는 어렵지만, 먼저 우리나라 최고 국학연구기관이 잘못된 내용을 인물정보시스텀에
올려놓은 것은 결자해지로 바로잡기를 바라는 봐입니다.
※ 가짜교지 식별하는 방법은 교지연구의 상위단계 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321번 공명첩과 같이 보시면 폭넓은 이해가 되실것입니다.
첫댓글 자료와 높은 식견에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