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학교 시절
내가 다녔던 서울중학교는 신문로에 있었고 당시로는 상당히 넓은 부지인 3만 8천 평의 숲속에 있었다. 그곳은 원래가 궁궐이었는데 그 궁궐을 복원한 것이 지금의 경희궁이다.
원래 경희궁은 광해군이 지었지만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경희궁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장희빈으로 유명한 숙종과 그 아들 경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숙종과 영조는 이곳에서 승하했다고 한다. 정조와 헌종은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가졌다니 그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가 1907년 통감부 자제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1915년 경성중학교를 설치하여 당시 친일파 자제나 일제 고위층의 자제들이 다녔다. 해방이 되자 서울중고등학교가 이 자리에 개교하고 1980년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있었다.
당시는 전국의 모든 남학생들은 겨울에는 검정색 동복을 입고 일률적으로 검정 모자를 썼다. 그 모자에 학교모표를 그 동복에 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다. 서울중학교 모표와 배지를 달고 다니면 선망의 대상이 됐다. 서울중학교의 여름하복은 카키색으로 만든 색다른 모양이었기에 먼 곳에서도 눈에 띠어 더욱 돋보였다.
서울중학교는 서울고등학교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1969년부터 정부 시책에 따라 전국의 중학교가 평준화기 되기 시작하여 당시 세칭 일류 중학교였던 서울중학교를 위시한 몇 학교는 폐교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래서 나의 모교는 없어졌지만 상급학교인 서울고등학교가 서초동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된다.
그 때 같이 입학한 동급생은 원래 420명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60명을 추가로 더 뽑았다. 명분은 근소한 차이로 불합격된 우수한 학생들을 구제한다는 문교당국의 발표였지만 실제로는 권력층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을 편법으로 합격시킨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유서 깊고 전통 있는 서울중학교의 후륭한 환경 속에서 전국적으로 선발된 뛰어난 수재들과 함께 학창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때 내가 심은 버드나무앞(10년전)
입학식 얼마 후에 전통적으로 하는 입학기념 식수를 했다. 나는 교문 옆 아래 운동장으로 가는 길옆에 버드나무를 몇 수 심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옛 학교터인 경희궁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버드나무가 아름드리가 되어 아직도 그 자리에 있기에 감개무량해서 한참동안 기대어 있다 기념사진도 한방 찍었다. 그 버드나무와의 얽힌 사연도 있다.(나중에 삽입된 글에서 별도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중학교에서의 나의 학창생활은 썩 만족하지 못했고 기대에 못 미쳤다.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사정은 최빈국이나 다름없었다. 6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60불정도로 유엔에서 조사한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가난한 나라로 발표되었다. 최빈국이라도 빈부의 격차는 늘 있는 법이고 빈국 일수로 권력과 결탁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불공정이 판친다.
우리 집은 형제만 6남 2녀였고 당시 아버지가 하시던 시장에서의 장사도 변변치 못하여 가세가 늘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는 폐결핵까지 앓으셨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동기생들의 대부분은 나보다는 풍족한 집안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고 머리도 뛰어나게 좋았다. 여러 면에서 그들의 학창생활과 나의 생활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었고 그들을 따라가기에 벅차기만 했다.
그 당시 우리 집이 있던 장충동은 1가와 2가로 구분되었는데 1가는 부유층이 많이 살았고 내가 살던 2가는 상대적으러 서민층과 빈민층이 많이 살았다. 그 곳에서 함께 자란 동네 꼬마들이 이젠 어엿한 중학생들이 되었고 방과 후면 학교 친구들 보다는 그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나의 학교생활은 부적응으로 이어졌고 성적도 늘 하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동네나 일반 사회에서는 서울중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 이었기에 학교에서의 친구들과의 어울리는 것보다는 동네 골목출신의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더 편했던 것 같다.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첫댓글 국민학교 시절과 중학과정 시절에는~~ ~
공부 좀 하는 학생과 처지는 학생의 차이는 얼굴만 보아도, 바로 알리더라구여~~~!!
흡~~~
선배님의 중학과정 사진만 보면 바로 알리네요~~~!!
판단은 선배님이 하시구여~~~!! ㅎㅎㅎ
크릭후배님은 쪽집게 괸상가ㅎ 결국 난 학창시절이 낭만이 아니라 고생만 죽사코 했던거 같아요 ㅎ 국민하교 때는 상위권 지킬려고 애썼고 중학교시절은 따라가느라 애썼고ㅎㅎ 사회 나와서는 살아가노라 애썼고ㅎ그러고보니 인생은 고뇌덩어리네 ㅎㅎ 이제 그런걸 알만하니 늙어 맥 빠지고ㅎ 크릭님~ 그러니 노새노새 젊어서 노세요 ㅎ
장충동은 제가 살던 동네기두해요 전 당시 뚜껑없는 체육관 윗쪽 최인규씨 집 방향으로 가는 가파른 언덕 입구쪽에 살았어요. 그 후 원 할머니 족발집 인근 야산 기슭 쪽동네(지금두 그 동네 모양새는 있지요)에두 살았어요. 선배님의 인생행로를 보면서 생각납니다. 심으신 저 버드나무 역시 역사의 산 증인이 되었네요 ~ ~ ~*
반갑네요 최인규집 불타는걸 중3때 구경했어요ㅡㅎ 그리고 그장충단 공원은 내놀이터였지요 수표교이전 공사도 구경했고요 지금의 동대입구 공원어귀에 있는 돌다리 그때도 있었지요 그밑에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섯고 그 돌다리옆에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매달리고 놀았어요ㅡ 작년에 가봤더니 그 느티나무가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진도 찍었어요ㅡ 지구촌님은 장충체유관위 약수동쪽 경계선에 살았군요ㅎ 눈에 선합니다
@구름정 네 정말 반갑습니다. 모든게 생각납니다. 공원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미끄럽틀에서 자주 놀았구 공터켠 제법 큰 정자에선 궁사들이 활쏘는 모습을 자주봤지요(그 후 그 정자가 트럭뒤 꽁무니에 단 밧줄로 잡아당기어 철거되는 모습두 봤습니다 ) 글구 장충체육관 어귀에 굵은 철사로 각종고무줄 총을 만들어 파는 분이 계셨는데 매일 볼 때마다 쌍고무줄 총등 새로왔습니다....***
신문로에 있던 서울중학교에 다니셨군요 선배님...
당연히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학교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럽습니다....공부 못한 제가 말입니다...
선배님 서울중학교 다닐 때면....그 옆에 화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지 않았나요??
그러니까...정문에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 오면 있는 .....파출소 전에 말입니다...
아~ 그 신문로파출소 위로 쭉 중국집였지요 고등학교때 많이 이용했어요 학교담을 끼고 있어서 주로 땡땡이 치고 몰래 들어가 짜장면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비모범생 짓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의족을 파는 가게도 그쪽으로 섞여 있어 중학교 입학해서 처음보는 인조손과 다리를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도 납니다ㅎ 제 입장에서는 모교가 없어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평준화 정책은 잘 한겁니다 ㅎ댓글로 관심주신 스카이 후배님~ 복많이 받으세요 ㅎ
연재된 글과 답글 보고 하루 일과를 마감 합니다(^&^)(__)(^&^)
선배님~ 일이 좀 있어서 며칠 못들어오고 눈팅도 겨우하다보니
벌써 11화까지 올리셨네요^^
선배님~ 버드나무 아래서 찍으신 사진 보고 울컥했어요
감동의 쓰나미랄까~ㅎㅎ
얼른 11화도 읽어야겠어요
뒷얘기가 궁금하네요^o^
저도 40년만에 찿아본 모교터에 있는 그 버드나무를 보고 눈물이났어요 그 버드나무와의 잊을 수 없는 사연도 있었고요 ㅎ 버드나무는 원래 속성이라 심은지 45년되니 그렇게 굵어졌어요ㅡ 그리고ㅡ저~사진 속에 있는 나는 체중이 90킬로였을 때였지요ㅡ 지금은 80킬로 입니다ㅎ 그때에 비해서 날씬해졌어요ㅡ늘 관심주신 후배님~ 복많이 받으세요ㅎ
제가 살던 필동 골목 우리앞집 두형들도 서울 중학교와 고교를 다녔기에 익숙했던 교표와 하복이 생각나는 군요..
그형들 역시 선배님 처럼 부러움과 시새움의 대상이었답니다..ㅎㅎㅎ
혹시 그 필동골목에 살던 연극배우 김동원씨댁을아시나요? 셋째 아들이 가수 김세환집이고 세환이형 둘이 서울중고를 다녔어요ㅎ필동 그 일대는 정말 눈에 선한곳입니다 자유당재벌 삼호그룹의정재호씨집이 무척 컷던 생각도 나요 그리 쭉 올라가면 고아원도 있었고요 ㅎ며칠전 그곳을 차타고 지났는데 그 골목형태는 그대로 이던데 옛날이 그립네요ㅎㅎ
@구름정 배우 김동원님은 남산개울이 흐르던 그당시 동국대 후문쪽 필동 이었고 제가 살던곳은 동국대 정문쪽, 지금의 삼성제일병원 건너 아랫쪽 이었지요.. 고개 넘으면 묵정동이고 몇십미터 가다보면 금수장과 장충단공원으로 가는 길이 이어졌어요..
선배님도 그길로 일신학교를 걸어 다니셨을것 같습니다..ㅎ ㅎ
그리고 동네 그 두형들은 백씨 성을 가졌었답니다..
@맨날청춘(최상호)14 하~ 그러네 며칠전에 그 금수장여관였던 엠베서더서 결혼식이 있었지요 그래서 차를타고ㅡ 돌았어요 그너머 충무국민학교 그리고ㅡ 동북중고등학교앞으로 내려가며 ~ 수정약국근처에 삼산병원이 있었고 그골목 우리집이 있어서 후배님 말대로 그길로 학교 다녔어요 ㅎ첨부된 사진은 작년에 손주랑다시 찿아봤던 그골목입니다ㅎ
@구름정 저도 9월29일 혜화동성당에서의 인척 결혼식이 끝난후 마눌님과 함께 동대문, 서울운동장자리,광희동지나 장충동을거쳐(수정약국,태극당은 아직도 건재하더군요) 남산 국립극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가까이 있는 남산 약수터도 찾아보고(개보수 공사중이라 물맛은 보지 못했어요) 잠시 남산길을 거닐다가 불편한 복장과 구두로인해 빠른 하산을 했었지요..
그래도 옛생각 많이 하면서 감개가 무량하더군요..
어느덧 저도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됐나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