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고위원 전여옥 의원 주관 오케이톡톡 북클럽 초청 특강 일시 : 2006. 11. 4(토) 장소 : 국회의원회관 104호실
오케이톡톡 11월 북클럽은 저자 최정호 교수를 모시고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를 함께 읽었습니다. 전여옥 의원과 30여명의 네티즌들이 저자와 함께 2시간여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나드는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먼저 전여옥 의원이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를 소개했습니다.
“이 책을 신문 서평에서도 접했고 주위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참 즐겁게 읽었습니다. 히틀러 생가 방문 이야기도 그렇고 유머러스하게 쓰신 부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읽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정호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정말 꾸준히 글쓰기 해 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을 풀어내실 때 굉장히 글에 친숙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읽으셨고 많이 쓰셨고, 많이 다니신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최교수님도 모신 만큼 직접 여러 말씀들을 듣고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내용들에 대해 함께 토론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말 즐거운 자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최 교수가 준비해 온 영화 ‘폴링다운(Falling Down)'의 한 장면을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보았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평범한 미국의 샐러리맨이 사회를 향해 거친 분노를 쏟아내다 파멸하는 영화입니다. 함께 본 장면은 영화중에서 주인공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 분)가 공중전화를 걸기 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97년 국내 개봉 당시 한국인 비하 논란이 뜨겁게 번지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 대사 중 일부입니다.
디펜스 : 전화 걸게 잔돈 좀 바꿔 줄래요?
한국인 주인 : 안돼요, 뭘 사야 돼요
(디펜스가 음료수 캔을 집어오자)
한국인 주인 : 팔십 어 센이요
디펜스 : 뭐라고요?
한국인 주인 : 팔십 어 센이요
디펜스 : 잘 못 알아듣겠소.
한국인 주인 : 팔십 어 센이요. 팔십 어 센!
디펜스 : 팔십오 센트요? 그럼 전화 걸 돈이 없어요. 내가 오십 센트를 드릴 테니 오십 센트를 바꿔 주시오
한국인 주인 : 안돼요
디펜스 : 돼야지요.
한국인 주인 : 그 음료수는 팔십 어 센트요. 안 살 거면 나가요
디펜스 : 발음이 그게 뭐요? "센트" 라고 발음해야 맞소. 점잖은 중국인이 그게 뭐요?
한국인 주인 : 아니, 한국 사람이요
디펜스 : 어디든지 간에 우리나라에 와서 돈 벌려고 하면서 우리말도 안 배웠소? 한국인이라고? 우리나라가 당신네 나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도와준 지 아시오?
영화 장면 감상에 이어 최 교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 말씀 중 주요요지를 간추린 것입니다. 이 글은 말씀을 그대로 옮긴 녹취록이 아니다 보니 여러 표현 등이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에서 한국인 미스터 리 역할은 마이클 첸이라는 중국계 배우가 했다고 합니다. 주목할 대사는 디펜스가 ‘우리 미국이 너희 나라에 얼마나 많은 것을 줬는지 아느냐’고 다그치는 부분입니다.
6.25 종전 직후 서울 시내는 말 그대로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제 집이 을지로 쪽에 있었는데 어린 시절 명동성당에서 내려오다 보면 명동성당 언덕에서 서울 시내의 을지로 6가 쪽 소위 성동원두의 지평선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모든 것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미국이 얼마나 한국을 도와줬는지 알고 있냐고 주인공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 후 1970년대에 저도 종합상사의 섬유수출 본부장으로 대미수출에 앞장을 섰습니다만 미국에 엄청난 물량의 섬유제품을 수출해서 우리가 원조 없이 외화벌이를 해서 무역입국의 기틀을 만든 것은 대미수출에서 그 발단이 된 것입니다.
이 영화는 1992년에 촬영이 시작되어 1993년에 완성된 작품인데 이 영화 촬영 중에 LA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이미 그 전에 완성됐겠지요. LA 폭동 당시 누구보다도 우리 교민들의 피해가 정말 컸는데 미국에서는 LA 폭동을 놓고 남북전쟁 이후 내전 상황에서 그렇게 큰 재산피해와 파괴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LA에는 저팬 타운, 차이나타운도 있지만, 코리아타운이 폭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코리아타운 바로 뒤에 상류층이 거주하는 베벌리 힐즈가 있고 그곳은 강력한 경비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고급 주택가입니다. 폭동세력이 접근하면 바로 사살해버릴 곳이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폭동세력이 코리아타운의 1600개 상점을 처참히 부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우리 교포들이 무례하고 흑인들을 무시한 탓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8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반미주의와 관련된 각종소요 움직임은 미국 매스컴을 통해 그대로 미국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광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서울 광주등 미문화원 점거사건, 레이건 대통령 방한 반대 등 지속적으로 누적된 반미운동을 미국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한국을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LA, 뉴욕 등에서 택시를 타면 반드시 말조심해야 합니다. 뉴욕에 갔을 때 택시에 함께 탄 제 친구가 흑인 운전기사를 두고 ‘이거 길 돌아가서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냐?’고 욕설을 섞어 한국말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운전기사가 뒤로 돌아보며 ‘아니다’고 한국말로 받아치더군요. 미군으로 동두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인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미국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지도자들이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그 정권과 나라가 패망했습니다. 반미 운동을 해서 국내 정치권에서 이득을 본 사람들의 웃음 뒤에는 150만이 넘는 LA교포를 포함한 미국 한인사회의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제대로 가보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의 하나가 되면서 나라 안팎으로 여러 문제들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덜렁 하와이 섬에 갔다 와서 미국에 갔다 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하와이가 미국의 전부가 아닙니다. 태평양의 팔라우라는 섬은 미국이 독립을 시켜서 공화국이 되어 유엔에 가입되었습니다만 아직도 국방안보를 미국이 책임지고 달러도 그대로 쓰는 미국 주권 하에 있는 준 자치령입니다. 미국의 국무성이 아닌 내무성의 도서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자유연합(Free Association)형태의 이 도서 국가는 영토의 표준시간대가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미국이 유엔에 가입시킨 마이크로네시아 연합국(FSM)과 마샬군도 공화국(RMI)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관리합니다. 마샬에 속하는 비키니 섬에서 핵실험을 해왔고 미국의 미사일 발사대도 설치되어있습니다. 또한 북마리아나군도 연방(CNMI)과 여기에 괌과 웨이크군도를 합치면 미국의 주권이 미치는 서태평양의 영토와 영해의 크기는 우리나라 영토의 적어도 80배나 됩니다.
그 뿐입니까. 대서양에는 푸에르토리코, 버진아일랜드, 나바사 등이 있고 다시 태평양 동쪽에는 하와이군도는 물론이고, 베이커섬, 하울랜드섬, 자비스섬, 존스턴섬, 킹먼섬, 팔미라섬, 미국령 사모아 등 실로 광활한 해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엄청난 해양 국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미국을 한나라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아메리카’(America)라는 고유명사를 이름으로 내걸기로 합의한 50개의 ‘연합된 국가들’(United States)이 일열로 서 있습니다. 그 것이 USA입니다. 반미를 한다는 것은 이 많은 국가들을 골고루 미워해야하는 참으로 무리한 설정입니다.
크게 보아 홍콩의 대미수출을 포함하면 중국 수출의 약 30%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이라는 시장에 목을 매는 편향적 의존성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적어도 수출의 약 1/4을 미국시장에 팔아야 수출이 유지됩니다. 우리 시장으로서의 미국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하나 우리가 이웃나라로 내 보내는 수출품의 최종 가공제품의 행선지로서 결국 미국시장으로 나가는 비율을 넣으면 아직도 우리 수출시장의 대미 의존도는 20%가 될 겁니다.
조만간 우리나라 수출 총액만큼을 미국 한 나라에 수출할 정도로 커지고 있는 중국의 대미수출의존도를 놓고 볼 때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의 큰 몫이 이런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실속 없이 미국과 멀어지는 한 중국과도 일본과도 그 만큼 멀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미국은 그야말로 초강대국입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안보적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한반도에서 자꾸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폭격을 당한 미국은 핵폭탄 2개를 떨어뜨려 일본에 보복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당한만큼 반드시 갚음을 하는 나라로 나는 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외교 면에서 미숙하고, 노련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노련한 외교 쪽은 영국이라고들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미국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해 보상심리마저 가지고 있는 미국을 쓸데없이 자꾸 건드리고, 실리도 없이 자꾸 자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영화 폴링다운의 이 장면은 미국이 한국에 취할 문화 경제 역공세의 예고편으로도 ?瑾患求?. 제가 아는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미국이 한국에 무언가 할 것이라며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분은 문화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야스쿠니 참배 등의 문제로 국내에서는 평가가 나쁘지만 전 나름대로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타산지석으로 눈여겨 볼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총리로서 미국에 가서 부시 대통령에게 그가 서부 영화 ‘하이눈’의 주인공 게리 쿠퍼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게리 쿠퍼는 외로웠지만, 오늘날의 부시 대통령은 일본이 옆에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말입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 립서비스는 불과 4개월 전에 미국 외교만찬장에서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30초 이상의 박수갈채를 끌어냈습니다.
고이즈미는 총리로서 독일에서는 바그너 전용극장에 가서 몇 시간이나 걸리는 작품을 감상했고, 체코에 갔을 때는 유명한 드보르작의 묘소도 들렀고, 폴란드에서는 음악가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폴란드에 가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가지만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당을 가보자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문화를 이해하는 코드를 지닌 고이즈미, 그 폭넓은 수용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미국에 갔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상대의 문화를 깊이 건드려서 스킨십을 강화해왔습니다. 그의 독일에서의 바그너 러브콜이나 미국에서의 하이눈 러브콜 전략은 돈도 들지 않지만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서부 영화 ‘하이눈’에서 주인공 게리쿠퍼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자기 신부에게까지 외면당하고 혼자 악당들과 싸웁니다. 미국의 클린튼 대통령은 재임 시에 이 영화를 20번 봤고 물론 부시 대통령도 그 영화를 봤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걸 알고 미국에 가서 그 문화코드를 건드린 것입니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 아리랑을 진심으로 불러준다면 우리도 감동할 것입니다. 즉 다문화 코드를 이해하고 또 활용하는 것이 앞으로의 비즈니스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21세기는 진정한 문화의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비즈니스를 하던 안 하던 문화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문화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 영화 등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즐기고 자기 격을 높이는 쪽으로 유도하고 또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해야 합니다.
외국 가서 종교 이야기 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유태교든 이슬람교든 자신이 노력해서 나름대로 그 종교를 이해하면서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면 관계 진전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 됩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종교도 잘 모르겠고 문화도 잘 모르겠다고 하다 보면 결국 현지인들과 할 수 있는 것이 사우나나 골프 밖에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진정한 스킨십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중국에서는 ??시라고 해서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중국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게 식사 자리에서 자꾸 사업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관계를 맺기도 어렵고 사업도 제대로 진전되기 어렵습니다. 사업 스토커가 되어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모두들 여러 다른 문화들에 대해 이해도하고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아닌 부분들에도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습니다.”
최교수의 열띤 말씀 이후에 네티즌들과의 자유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책 표지의 호두 그림 의미에 대한 한 네티즌의 질문에 대해 최교수는 “호두 껍데기를 보면 딱딱해서 먹을 수 없는데 그것만 까고 나면 껍질과 색깔이 똑같은 알맹이는 맛있다”며 “우리가 문화를 피상적으로 수박 겉핥기만 하면 그렇게 골치 아프고 어렵기 짝이 없는데 마치 호두처럼 껍질만 까고 들어가 그 코어를 이해하고 나면 정말 맛있고 즐겁다”고 답하셨습니다.
대우 그룹의 세계 진출과 해체도 화제에 올랐습니다.
한 네티즌이 대우 사태가 우리에게 준 교훈에 대해 질문하자 최교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이야기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대우의 각 사가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다 잘되고 있습니다. 대우건설도 시공능력 1위를 평가받았고, 대우조선도 조선업계에서는 세계적인 평가 속에 수익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작년에 11조원 적자를 낸 세계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GM에서 대우자동차는 거의 유일하게 효자노릇을 하고 있고, 대우 인터내셔널 무역 종합상사도 제일 실적이 좋습니다. 대우증권도 잘 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업이 잘 되서 주식 값이 오르면 기본적인 자산은 나중에 다 재평가되기 마련이고 공적자금도 회수되고 오히려 플러스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 경제 관료들이 너무 다급하게, 단 6개월 안에 모든 것을 몰아 부치다 보니 외국계 자본들에게 좋은 일을 시킨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IMF때 너무 놀라서 냉철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너무 황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그 와중에 30개 재벌 중 18개가 무너졌습니다. 지금도 웬만한 회사는 모두 외국계 자본 지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외국인 보유주가시세가 254조원이고 보유지분율은 38퍼센트나 됩니다. 우량기업의 지분율은 이보다 더 높습니다. 지난 10년간 실속 있는 외국기업의 대한 직접투자가 활발했다기보다는 멀쩡한 우리 우량기업의 주식지분 사냥에 초점이 쏠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쓸 만한 기업들 지분의 절반 정도를 외국자본이 가져갔다고 봐도 됩니다. 삼성이 이건희 공화국이라고들 해도 그 우호지분이 얼마나 됩니까? 외국계 자본이 주주권 행사하면 내일 아침이라도 경영진들 갈아치워 버릴 수 있습니다. 포스코는 국가기간산업인데 이것도 외국계 자본이 잠식했고, 은행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외국계 지분 비율이 20% 넘어가는 예가 드물다고 아는데 우리나라는 80%에 달하는 은행도 있다고 합니다.
대우 사태를 돌이켜보면 김우중 회장 개인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결국 국가적인 손해입니다. 그렇게 싼 값에 GM에 대우자동차를 급하게 팔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 값에 팔려면 차라리 국가가 잠시 관리하다가 재평가해서 좀 더 받고 국민 자본에 파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적어도 냉철하게 CEO라면, 한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이든 기업 경영자이든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아까운 기업들이 너무나 졸속적인 행정으로 해외 투기자본들에 너무 쉽게 넘어갔습니다. 국제사회가 요구한 기업 투명성이라는 것도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을 집어 삼키기 좋도록 해준 측면이 있었습니다.”
기업 투명성과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어졌습니다.
“기업마다 모두 다르고 사정이 다르니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동안 우리나라가 놀라운 경제 개발을 해온 배경에는 투명성에 대한 부담감이 덜 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돈을 꾸고 이래저래 얽었기 때문에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투명성을 지향할 때도 과도기와 조정기를 거쳐서 이제 투명하게 하자면서 천천히 어느 정도 숨통을 트면서 갔으면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국민자본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6개월 내에 일 년 내에 부채비율을 얼마로 낮춰라, 앞으로는 한 치도 오차 없이 투명하게 하라는 식으로 요구해서는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기업은 유기체입니다. 그렇다보니 두부 자르듯이 한 번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동안은 수출의 날이다, 산업의 날이다 기업인들에게 줄줄이 훈장 달아주다가 어느 한 해부터 무조건 이건 아니라며 너무 급전시키니까 기업들이 갑자기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기업 규모가 작다면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도 있지만 큰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겁니다.
국내에서 보면 간단한 문제지만 해외까지 고려해서 글로벌하게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행정을 펼칠 때는 그 후유증을 고려하고 단계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외국자본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참석자는 관념적인 민족과 자주 이념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미국 지사 경험이 있다는 이 참석자는 함께 일하던 필리핀 출신 외국인 직원으로부터 “너희(대한민국)는 미스터박(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에 잘 살게 된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우리 필리핀이 너희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친미’로 상징되는 실용적인 가치에 기초해 맹목적인 반미주의에 반대한다 해도 반대편에서 민족이니 자주니 하는 좋은 말들을 내세우는 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최교수는 “우리가 매사에 무조건 친미 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좋은 의미에서 선용,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쓸 만한 기업들이 미국계 투기자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런 일을 반미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했습니까? 친미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했습니까? 결국은 반미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정치 외교적으로는 해서 손해 보는 반미를 하고, 경제 실리면에서는 그렇게 쉽게 해서는 안 될 친미를 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한 친구가 못 살아도 좋다, 평등해도 좋다, 공산주의면 어떻겠냐, 같은 민족끼리 같이 살면 좋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교수님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또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어이없이 다 빼앗기고 나서, 하향식으로 못 살아도 좋다는 식으로 합리화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 참석자는 활력을 잃은 산업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예전에는 불 꺼지는 회사가 없었는데 요즘은 거의 다 불이 꺼집니다. 최근엔 반기업 정서가 너무 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습니까? 이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그나마 세워졌던 기업 배려 정책들조차 이젠 하나씩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업을 일으키는 데는 몇 십 년이 걸리지만 기업을 정책으로 말살시키는 데는 2년이면 충분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은 완전히 말살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기업 정책 부문에서 이론적으로 정책화해서 핵심적인 걸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서투릅니다. 빅3라고 꼽히는 주요 대권후보들도 그 정책부문들을 보면 과연 이 정권을 이길 수 있을지, 기업들을 살려낼 수 있을지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CEO 경험이 있는 분들, 또 지식인 분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업과 함께 살아가는 법이 뚜렷이 제시되면 좋겠습니다. 전 이 책을 읽으며 경제만 해도 너무 어려운데 이제 문화까지 섭렵하라 하시니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물건 만드는 건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데 문화적인 부분들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최교수는 “자기가 다 할 수가 없으면 그 분야에 대해서만 아웃소싱을 줘서 같이 할 수도 있다”며 “자기가 꼭 다 알아야 하는 부담을 지기 보다는, 그런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하는 분들이 비즈니스 상대에게 너무 제품 이야기만 하면서 스토커 식으로 질리게 하지 말고 다양한 측면에서 관계를 맺고 또 접근해나가면 좋겠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2시간여에 걸친 열띤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전 섬유수출부터 시작해서 에어컨 등 전자 부문, 자동차 부문으로 옮겨가며 기업 일선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변화와 함께 저도 옮겨갔던 셈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고, 장사 이외에 무언가를 더 알아야 사업도 잘 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국인들과 비즈니스 토크 하다보면 그저 사업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간에 문화 주제로 이야기를 풀다보면 그 나라에 노벨문학상 받은 어떤 사람이 있는지도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노벨문학상 자체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지식과 정보들을 늘리는 것입니다.
저는 히틀러의 생가도 가보았고 칼 마르크스가 태어난 생가도 가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작 현지에 있어도 잘 들리지 않는 곳들입니다. 전 모든 역사와 사회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러한 인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자라났는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물어물어 찾아가곤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점심이든 저녁이든 현지인들에게 써먹을 기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현지인들도 안 가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제 이야기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가봤던 사람들은 동류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비즈니스도 종합예술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패션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컬처를 모르면 패션이 안 나옵니다. 북한처럼 상대적으로 문화가 낙후된 나라들을 보면 사람들이 대개 비슷한 색깔의 비슷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스타일도 문화입니다. 나라에 따라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헤드램프가 동그랬다가 길쭉했다가 여러 가지로 변화합니다. 그 모두가 그게 다 스타일이고 문화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캔, 페트병, 핸드폰 모두 그 디자인이나 형태가 문화 복합체입니다.
LG는 인도에서 국민스포츠인 크리켓을 활용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중국에서 한 일본기업은 중국의 상징인 사자 상을 함부로 광고에 실었다가 큰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한때 리비아에 농구화 100만족을 수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실무진이 너무 의욕에 넘쳐 리비아의 국호를 영어로 신발에 넣었습니다. 당장 현지에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신성한 국호를 어떻게 발에 신는 신에다가 넣느냐는 것입니다. 간신히 수습되었습니다만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태국에서는 안티코리아, 반한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너무 차별하고 또 편견을 가지고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먹고 살자면 무역 밖에 없습니다. 외국의 문물,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함께 누리고 공존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함부로 충돌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전여옥 의원은 장시간 좋은 말씀 들려준 최교수께 깊이 감사드리며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가 독일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다섯 시간 보았을 때 일부에선 비판했지만 일본 국민들은 총리가 고급문화를 향유할 능력이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이 같은 문화뿐만 아니라 지금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도 국민뿐이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성숙해져야 한다”는 말로 자리를 매듭지었습니다.
오케이톡톡 11월 북클럽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귀한 시간 함께 해주신 최정호 교수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최근에 Silicon Valley의 Santa Clara 중심거리를 "Korea Town"으로 命名하자는 움직임이 일자 이곳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Koreans hate us. Why should we give our Main Street to Koreans?" 하는 글이 올라와서 쇼쿠 먹었습니다.
첫댓글 나도 이곳 미국생활이 44 년째입니다. 특히 정치/경제/역사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해 왔느데 최 정호교수의 예민하고 또 '뚫어보는시각'에 감탄합니다. 자주 정치인들을 ?아 '세상 교육'을 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최근에 Silicon Valley의 Santa Clara 중심거리를 "Korea Town"으로 命名하자는 움직임이 일자 이곳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Koreans hate us. Why should we give our Main Street to Koreans?" 하는 글이 올라와서 쇼쿠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