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슬 여름도 끝물이네요. 새벽과 밤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고요.
하지만 낮에는 아직도 덥죠? 매미도 목청을 한껏 돋우고 있고요.
사실 피서를 가기에는 이맘때가 더 좋죠. 더위도 약간 꺾여서 놀기 편하고 휴가지에 사람도 어느 정도 빠져나가서 한산하거든요.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바다나 산으로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저도 그렇고요.
이번 서평은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답니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봅시다!
도서명: 물고기는 알고 있다
저자: 조너선 밸컴
* 이 책은 아이프리 도서관 5번 순수과학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여름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다. 파란색, 아이스크림 내지는 빙수, 즐거운 휴가 피서, 그리고 하얀 모래가 깔린 백사장의 해변과 시원한 파도 넘실대는 바다이다. 그중 이번 책은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에 사는 생물, 물고기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과학 도서의 서평은 처음 남기는 것 같다. 그렇다. 분명 처음이다. 머릿속의 기억을 아무리 뒤적여도 결론은 같다. 그렇다고 순수 과학적인 도서라 재미가 없을 거라는 편견은 접어라. 바다의 신비가 죄다 밝혀진 것이 아니듯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재미도 펼쳐서 읽기 전에는 모른다. 서론은 이쯤에서 접고 본격적으로 도서 소개에 들어가 보겠다.
오만한 편견이 물거품으로 보글보글, ‘금붕어 = 바보’라는 공식은 가라!
물고기는 ‘오해’의 동물이다. 기억력이 형편없이 비루한 사람을 보고 ‘붕어’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새도 ‘새대가리’라는 경멸적인 단어가 붙는 오해의 동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물고기에 비하면 아무래도 ‘약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체 왜일까? 물고기는 왜 그 많은 편견에 시달리게 됐을까?
물고기에 대한 인식은 보통 이렇다. 붕어, 3초에 불과한 기억력. 자연 다큐에서 본 자리돔 낚시 바늘을 달고 유유하게 헤엄치는, 고통과 눈물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맹추. 뇌가 작아서 사고력이 떨어지는 생물. 미끼만 보면 무작정 달려들고 보는 단순함. 지극히 원시적인 우가둥가한 동물. 과연 물고기는 정말 이런 동물일까?
이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그 답을 ‘no!’라고 딱 자른다. 지은이 ‘조너선 밸컴’은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외친다. 그뿐 아니라 그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연구와 사례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고기들의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심지어 전자기 감각 등의 감각 세계와 여느 영장류를 능가하는 물고기들의 지각력, 인간 사회를 방불케 하는 물고기 사회의 역학, 그리고 인간중심주의에 일격을 가하는 처절한 물고기들의 삶까지. 이 작품은 그런 물고기들의 ‘사생활’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어가 어떻게 바다에서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지 아는가? 그것은 엄청난 후각과 전자기에 반응해 회전하는 세포 때문이다. 연어는 바다로 향하는 길에 지났던 모든 물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래서 회귀할 때는 자기가 통과한 격로를 거슬러 올라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방향을 잡을 때는 전자기를 활용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과학적이고 초월적인 기억력이라니! 바다에 이르는 물줄기가 몇 개인데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나? 게다가 딱 한 번 어릴 때 지났던 길이 아닌가?
가자미의 눈이 원래는 정상적으로 위치해 있다는 걸 아는가? 우리가 아는 눈이 한쪽으로 확 쏠린 가자미는 성인 물고기라는 거. 치어인 시절에는 눈이 양쪽에 있다가 성어기가 다가오면 눈이 한쪽으로 몰린다. 메스나 성영 도구도 없이 자가적으로 안면 수술을 행하는 것. 보통 변하는 데 5일이 걸리는데, 종에 따라서는 하루밖에 안 걸리는 녀석들도 있단다.
또 청어에게 재미있는 의사 소통 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건 바로 ‘방귀’이다. 뽕뽕 보글보글 방귀로 물거품을 일으켜서 뭔가 수다를 떤다는 거.
이 외에도 흥미롭고 기상천외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물고기의 사생활이 많다. 무엇보다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가 아니다. 1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금붕어의 일화가 그 증거이다.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저자의 말마따나 물고기와 인간은 사는 물이 다르다. 그뿐이지, ‘다름’이 논리의 근거나 현상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물고기의 오해와 편견을 깨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는 ‘바다 생태와 물고기의 생활’에 즐거운 만족감을 느꼈다.
물고기에서 이 세상 모든 생명으로! 가치관과 사고의 확장.
베스트셀러 작품 선정의 조건을 궁금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예전에 대학에서 ‘사회복지 실천기술론’을 배울 때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적이 있다. 레포트 쓰는 과제 때문에 말이다. 그때도 이 책이 좋은 줄은 알겠지만 어떻게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싶었다. 내용도 철학도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가장 대중적으로 잘 읽혔다는 뜻일 텐데, 내용을 읽으면서도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사고력이 짧아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찌어찌 레포트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작가의 의도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이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도 마찬가지. 작품의 이력을 보면 정말 호화찬란하다. 어디어디 네셔널에서 최우수 도서로 뽑혔다는 둥, 뉴욕 최고의 책이라는 둥, 가장 주목받는 도서라는 둥, 반짝이 가루를 대량으로 도포한 듯한 칭찬이 가득하다. 어떻게 물고기라는 소재가 가장 대중에게 어필하는 소재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의 어류에 대한 무신경을 토로한다. 그런데 그 정도로 물고기의 삶이 ‘핫(Hot)’한 소재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 했던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재밌긴 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던 이렇게 새로운 세계라니! 독서를 하는 내내 어디 대형 아쿠아륨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해양 생태를 죄다 모아놓은 종합 선물 세트 전시장을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산호초, 강, 심해까지 물고기가 사는 곳이라면 다 관광하는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신기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대화의 소재로 삼으려고 머릿속 한 구석에 기록까지 했다. 기억 말고 기록이다. 오타 아니다! 까먹지 않도록 뇌세포에 꽉꽉 기록을 해두었다.
물고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터라 과학적 생태학적 연구만 다루지 않고 여러 사례나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한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는 검증이 되지 않은 정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고기도 사회생활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기억력과 적응력이 있는 개체임을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감성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식물도 음악 감상을 하는 이 시대가 아닌가? 물고기가 미술 작품의 취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말도 안 된다!’고 뒤집어질 사람은 적을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본능적으로는 ‘다 아는 사실’이 외면을 받아 온 이유는 과학적인 근거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미진한 부분을 보환해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논문처럼 고루하고 지루하고, 했던 말 또 하는 방식의 ‘수면제 도서’는 아니니까, 책을 읽으려다 말고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번역이다. 물론 이 많은 물고기의 이름과 연구 내용을 번역하다 보면 쉽게 패닉이 오겠지만, 그래도 물고기 이름을 한글명으로 썼다 영문명으로 썼다 한 부분이나 뭔가 잘못된 표기처럼 보이는 ‘지명’을 볼 때는 안타까웠다. 독서를 할 때 주로 음성을 활용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영문과 한글 혼용 표기는 그리 큰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지명 오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영문과 한글 혼용 표기도 일반인이나 책을 점자로 읽는 시각장애인, 혹은 전자 도서로 보더라도 중간중간 메모를 하는 취향을 가진 나 같은 독자라면 조금 거슬릴 소지가 있다. 설마 원작자가 처음부터 잘못 쓴 건 아니겠지?
책은 물고기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물고기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비윤리적인 물고기 사육과 도축이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문제 의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학계에서 ‘물고기의 지각력’에 대한 의견이 난분분하기 때문에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하겠다.
사실 ‘율리적 배려’는 비단 물고기뿐 아니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건 최근 글쓰기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식물을 소재로 삼아서 이런 비슷한 테마로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어떤 생물도 다른 생물의 희생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고, 윤리적인 배려를 하는 것이 우리가 속한 생태계에 대한 최선의 배려일 것이다.
어쩌면 윤리적인 이유로 어류를 먹고 물고기에게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어류에게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윤리’는 문화와 사상 등의 관점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기도 하니까. 인간이 인간을 먹지 않듯 객체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에 따라 기준이 달리 적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멸종 위기 생물의 경우 특정 종이 더 배려가 필요한 상황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특정 종이 아닌 전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애초에 육지 동물로의 진화에 첫 스타트를 끊은 것도 물고기 아니던가? 그들과 우리는 아주 조금 다를 뿐이다. 다르기에 공존해야 하고, 다르기에 알아야 하고, 다르기에 이해해야 한다. 다름은 배척과 경멸과 없인여김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자세는 물고기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른 성원에게도 적용돼야 하는 원칙이다. 이 책을 통해 물고기에 대한 시선을 돌리고,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그로 인해 사고와 가치관도 확장시켜보자. 5%밖에 밝혀지지 않은 심해의 길이 열리듯,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한층 더 넓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