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 의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은 보는 것(seeing)이다. 시각적 정보에 의해 모든 사건과 사물들이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결정되며 그 시선은 간단하지 않은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다는 것은 인식하는 것이고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이야기한다.
시각적 정보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만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1차적이고 즉각적인 정보는 오로지 시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각은 인식의 차원에서 볼 때 언어의 사용을 위한 청각보다도 우선이다. 머릿속에 갈무리되지 않은 언어의 개념은 무용하다. 기표(記表·Signifiant)는 기의(記意·signifié)를 전제로 하는데, 기표란 감각적 이미지의 재현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은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줄리언 스팰딩은 <미술, 세상을 홀리다>에서 예술을 봄(seeing)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은 다른 미술관련 책들과 많이 다르다. 우선 미술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연대기적 서술이나 유파별 혹은 작가별 서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술사를 통찰하는 유일한 기준은 '경이로움(wonder)'이다. 책의 원제가 '경이로움의 예술: 보는 행위의 역사(Art of Wonder: A History of Seeing)'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의 큐레이터이자 미술사가인 저자는 미술에 대한 또 하나의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시각에 의한 미술과의 만남은 1차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접근이다. 보는 행위를 통해서 독자들과 미술은 가장 본질적인 첫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눈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라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셸 프루스트의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미술뿐만 아니라 자아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행의 중요성은 장소가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인 것과 같이 무언가 깨달음과 각성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풍경을 좇을 것이 아니라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는 전언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오해와 관심은 사실 편견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발생과 기원으로부터 출발해서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적 표현과 흐름들을 재미있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노력은 책 곳곳에 배어있다. 우선 책 날개 부분을 활용한 삽화들과 사진들은 낯선 작품과 애매한 느낌을 즉각 해소해 주는 시각 자료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본문에 삽입된 그림이나 사진 자료는 물론이지만 엄청난 양의 자료들을 크기와 편집을 통해 적절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배열하고 있어 가독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특히 서양 예술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신화의 시대부터 종교의 세기 그리고 과학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와 예술적 경향들 그리고 작가들의 노력이 작품을 통해 제시된다.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인문학적 배경으로 예술과 역사 그리고 색다른 예술의 세계를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부한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미술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별과 태양과 달, 탄생과 죽음, 빛과 어둠 등 주제별로 엮어내는 이야기들은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묶이면서 전체가 미술사 전체를 조망하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계획한다고 해서 아무나 쓸 수 없는 책이다. 일견 부럽기도 하고 번역서 특유의 다소 딱딱하고 건조한 문장이 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책이다. 어쨌든 대중적인 미술사로 이만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후천적인 습관에 따라 다소 왜곡된다."
본다는 것(seeing) 자체에서, 우리 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과정에서 또다시 놀라운 것이 발견될 것이다. 사적 경험의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세계는 지금까지 사실관계만을 따지는 과학적 탐구 분야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지만, 이제는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예술가가 활동할 풍요롭고 다채로운 사냥터이다. 의식, 죽음의 인식, 예술 제작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연관성이 바로 우리와 다른 생물, 심지어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네안데르탈인과의 차이일 수도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지평선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 경험의 핵심적 본질인 감정과 생각은 그 지평선에서 다시 한 번 경이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결국은 우리 눈에 별이 있는지도 모른다. (315쪽)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후천적인 습관에 따라 다소 왜곡된다. 이런 현상은 영화 포스터와 잡지들이 온갖 틀에 박힌 이미지를 쏟아 내는 오늘날 더욱 자명해 보인다. 편견이 마음을 오염하든 이런 이미지는 눈을 오염한다. 왜곡 없이 사물을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는 모든 대상을 항상 처음 보듯 대해야 하는 화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아이와 똑같은 눈으로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능력이 없으면 자신을 독창적이고 개인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없다." – 마티스 (321쪽)
영국 출신의 저명한 큐레이터이자 작가, 줄리언 스팰딩(Julian Spalding)
영국의 셰필드, 글래스고, 맨체스터 등 여러 도시 미술관과 갤러리의 관장으로 일했다. 러스킨 미술관(Ruskin Gallery), 세인트 멍고 종교 미술 및 생활 박물관(St. Mungo Museum of Religious Life and Art), 글래스고 현대미술관(Glasgow Gallery of Modern Art) 등을 설립했고, 2000년에는 캠페인 포 드로잉(Campaign For Drawing)을 출범시켰다. 2002년 <시적인 박물관>(The Poetic Museum)을 출간해 미술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2003년에는 <예술의 몰락>(The Eclipse of Art을 내 현대미술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을 펼쳤다. 2006년도에는 <미술, 세상에 홀리다>로 영국 작가 클럽(the Authors’ Club)이 우수한 예술 분야의 저작에 수여하는 배니스터 플레처(Sir Banister Fletcher)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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