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앤 피플: ‘사회복지의 날’ 국무총리 표창 받은 김동순 씨
“30여 년간 인천광명원 근속하며 ‘큰엄마’로 불리기까지…”
지난 9월 열린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서 인천광명원 생활재활교사 김동순 씨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인자한 얼굴과 밝은 미소를 지닌 그는 30여 년 동안 같은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저시력인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닥친 이들을 돕는 그는 “광명원은 내게 둥지 같은 곳”이라며 “편의와 자립을 응원하는 ‘큰엄마’로 남고 싶다. 그것이 곧 삶의 행복이고 나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걸어온 길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만의 수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함께 근무하는 모든 직원을 대표해 받은 것이죠. 인천광명원은 1956년 임경삼 목사가 자택에서 시각장애인 학생 여섯 명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발판이에요. 직원 모두가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자’는 취지를 이어받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사회복지시설평가 A등급을 세 번이나 받는 쾌거도 이뤄냈죠. 인천광명원에서 그 시간을 함께하며 조금이나마 손을 보탤 수 있었기에 행복합니다. 지금 돌이켜 봐도 참 보람된 시간이죠.
Q. 선생님 본인이 저시력인입니다. 이 일을 하는 게 버겁지는 않은지요.
A.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빛이나 색상, 사물이 보이긴 하는데 선명하게 보지 못했죠. 안과 질환도 몇 번 앓았고요. 회고하기에는 많이 벅찬 시간입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지만 그뿐이었어요. 삶에 대한 긍정이랄까, 보람이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 제게 그런 면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인천광명원에 들어오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됐어요. 이곳은 제게 낯선 곳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인천광명원의 도움을 받은 이용자였거든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의 심정에 공감하며 동질감을 품었고,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욕으로 이어졌죠. 요즘은 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이용자들의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이들을 ‘생활재활교사’라고 지칭하는데, 당시에는 ‘보모’로 불리곤 했어요.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사 보조나 청소 등 가사 전반에 손을 거드는 정도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서류 작성 등의 활동에서는 어쩔 수 없이 틈이 생겨요. 그런 부분을 다른 동료들이 보완해줍니다. 저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그분들이 놓친 부분을 채우며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일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Q. 생활재활교사가 되기 위한 조건이 궁금합니다.
A. 사회복지나 장애인복지, 인간재활학 등을 배우는 게 도움이 돼요. 인천광명원에는 다양한 이용자들이 있어요.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 실비를 내고 생활하는 학생들도 있고, 가정의 보호가 어려워서 들어온 어르신들도 계세요. 그뿐 아니라 자폐나 지체장애, 중복장애 이용자들도 생활하고 있습니다. 목욕을 돕거나 청소를 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지원할 수 없어요. 아이들을 돌보며 엄마 역할을 하고, 숙제를 봐주며 선생님이 돼야 해요. 때로는 고민 상담을 하며 심리 건강도 돌보고, 약을 먹는 어르신들의 건강도 챙겨야 하죠. ‘업무상 필요한 것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습니다. 경희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를 배웠고, 노력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생활재활교사로 활동하려면 사회복지를 토대로 심리상담이나 음악치료 등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 중 하나죠.
Q. 광명원에서 ‘큰엄마’로 통한다고요.
A. 아이들이 불러주는 별명입니다.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그 호칭이 듣기에 참 멋쩍더라고요.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죠. 그래서 “그냥 ‘큰엄마’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한 게 완전히 굳어진 것 같네요. 생활재활교사로서 맞은 소소한 기쁨이지요. 그만큼 이용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는 방증이니까요. 생활재활교사 업무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근무 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고질적인 인력 부족은 여전하거든요. 교사 한 명당 대여섯 명의 이용자를 지원하는 건 기본이고, 혼자서 열한 명을 맡은 적도 있어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두 분의 식사를 보조하고 아이들 서너 명의 양치를 도와주다가, 휠체어 이용자들을 지원해요. 짬짬이 실내 청소 및 외부 보수 작업도 하고, 이용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동행하죠. 이런 모든 일을 단 여덟 명의 인력으로 맡아야 해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더라도 시간을 맞추고 쪼개서 움직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이용자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합니다. 식사나 양치조차 힘들어하던 학생이 혼자서 척척 해내고 보행도 능숙해지는 걸 지켜볼 때, 또 어리게만 본 아이가 어느새 자라 자립하겠다며 퇴원할 때 등등…. 그럴 때면 감회에 젖기도 합니다. 이용자들이 금방 호전되는 건 아닙니다. 천천히 더디게 나아지죠. 그런 무수한 시간이 쌓여 새로운 오늘과 내일이 되는 모습이 이 일의 큰 보람이에요.
Q. 새해 목표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A. 언젠가부터 제 목표는 ‘하루에 만 보 걷기’가 되었어요. 건강을 지키자는 의미죠. 제가 먼저 건강해야 활기차게 일할 수 있고, 그래야 인천광명원 이용자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인천광명원은 ‘둥지’입니다. 편히 쉴 수 있고, 꿈과 미래를 향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죠. 저는 앞으로도 이 둥지 안에서 이용자들의 편의와 자립을 응원하는 생활재활교사로 남고 싶습니다. 아울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제 경험상 그게 바로 ‘행복’이더라고요.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146호 피플 앤 피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