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지켜야할 몇 가지 절기를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절기는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율법을 폐하지 말고 그것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알고 완성하신 이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그 방식대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절기의 정신과 의미는 되새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절기 가운데 하나가 맥추절입니다. 맥주절이 아닙니다. 오늘이 아니고 다음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맥추절을 지켜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출23:16에서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기를 지킬 때에는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안다면 감사도 입술로만 아니라 반드시 물질을 드려 감사의 분량을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그날에 어떤 예물을 드릴 것인지도 자세히 기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약의 제사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시대, 신약시대라고 해서 구약은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구약을 아는 것은 구약으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신약의 은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추절에 드리는 대표적인 제사가 소제입니다(16절). 소제는 밭에서 수고하여 거둔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경작하지 않은 야생의 산물은 소제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경작한 것의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땀 흘려 수고한 것에 대한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의미입니다. 맥추절에 드리는 소제 예물은 떡 두 개입니다. 맥추절에 드리는 소제의 예물인 떡을 어떻게, 무엇으로, 얼마의 크기로 만드느냐면 먼저 20절에 ‘첫 이삭의 떡’이라고 합니다. 첫 이삭의 밀을 재료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출23:19절에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가장 좋은 것, 흠 없는 것, 소중한 것입니다. 소제가 히브리어로 ‘민하’인데 뜻 자체가 예물,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또 고운 가루라고 했습니다. 밀을 잘 갈아서 부드러운 가루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래야 반죽이 잘 됩니다. 내가 먼저 고운 가루가 되면 우리도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량도 말씀하셨는데 17절에 에바 10분의 2입니다. 떡 두 개입니다. 보통 소제를 드릴 때는 떡 한 개이지만 맥추절은 두 개입니다. 이것이 얼마냐 하면 한 사람의 이틀 분 식량입니다. 즉 이틀 분 식량의 분량으로 하나님께 떡을 만들어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틀 분 식량을 요구하신 것은 예물을 드릴 때 믿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 하루의 양식을 드리면서 오늘 하루를 위한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내일의 양식까지 드리면서 내일도, 미래도 주님께 맡기는 것이 10분의 2를 드리는 정신이고, 이틀 분을 드리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예물을 드릴 때 반드시 중요한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도 오늘과 내일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드리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칭찬하신 일이 있습니다. 눅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오늘과 내일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떡을 어디에서 만들라고 합니까? 17절에 떡을 만들되 ‘너희 처소에서’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내가 직접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와서, 혹은 빵가게에서 사서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즉 준비 없이 드리는 예물은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헌금을 드릴 때는 미리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맥추절 소제 예물을 준비할 때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 떡을 만들라고 하십니다(17절). 이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제 예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이 원칙입니다(레6:17). 누룩은 부패와 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유월절에도 무교병을 먹는 것은 누룩을 섞지 않음으로 정결하고 거룩함을 상징하는데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은 유교병을 예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누룩은 부패와 죄를 상징하지만 부풀게 하여 풍성하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풍성하니 감사절에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감사도 누룩처럼 부풀어 올라 풍성하게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소제의 예물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에 이 소제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립니다. 16절부터 제사 이름을 보면 요제, 전제, 번제, 화제, 속죄제, 화목제 등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요제와 전제, 화제는 방법에 따른 분류입니다. 요제는 제물을 위, 아래로 흔들어서 드리는 것입니다. 17절과 20절에 보시면 흔들다는 표현이 요제와 함께 쓰입니다. 전제는 제물에다 포도주나 기름을 부어드리는 것이며 화제는 제물을 태워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 속죄제, 화목제인데 이것은 제사의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 번제는 내 죄를 대신하여 이 짐승이 피 흘려 희생되었다는 뜻으로 짐승을 잡아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태워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서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고 합니다. 보통 제사 때는 형편에 따라 소도 한 마리, 양도 한 마리, 염소도 한 마리, 비둘기도 한 마리를 드리지만 맥추절 때는 이 예물도 분량이 훨씬 많았습니다. 양을 일곱 마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고 숫양 두 마리로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속죄제란 죄를 지은 자가 자기 죄를 사함 받는 의미로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화목케 하는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감사드릴 때와 서원할 때,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맥추절에 드리는 제사는 소제와 번제, 속죄제와 화목제를 다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십일조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맥추감사예물 드린다고 십일조는 안 드리고 주정헌금 드릴 것을 봉투만 바꿔 드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가르쳐 줍니다. 맥추절은 한 해의 수확, 소득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니 그 예물을 보통 때보다 많이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설교는 듣는 여러분도 부담되겠지만 하는 저도 참 어려우니 이번에 잘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지만 번제, 속죄제 화목제물은 모두 짐승을 잡아 드립니다. 즉 모두 피 흘리는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 모든 제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번제물로, 속죄제물로, 화목제물로 희생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제사들을 다 완성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는 맥추절에 이러한 의미를 담은 제사를 드렸음을 기억하고 이 모든 것을 대신하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나 절기를 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정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소득을 허락하심에 감사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드리는 표현, 그 자체입니다.
이어서 21절을 보시면 맥추절을 지키는 자세가 나옵니다.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하십니다. 먼저 성회를 공포하고 모이라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온 백성들이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육신의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이니 하루가, 한 시간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 예배가 우선임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서 감사드려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때 곡물을 벨 때에는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며 또한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규정으로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방법에 대한 지침도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되 곡물을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하셨지 그들의 입에 매일 떡을 넣어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수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땀과 수고의 열매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창3:17-19). 그래서 사도바울은 심지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어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자비를 베풀어 그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입을 것이 없어 헐벗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선하고 아름다운 원리입니다. 이것을 영원히 지키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끝으로 이처럼 맥추절을 잘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출34:24입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절기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다녀오는 동안 적군이 와서 곡물을 가져 가버릴까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히려 지경도 넓혀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맥추절의 정신을 새기면서 우리도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진실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정성되이 준비하여 예배의 성공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